[시승기] 페라리 GTC4 루쏘 T…“영락없는 페라리”
  • 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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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4.27 16:05
[시승기] 페라리 GTC4 루쏘 T…“영락없는 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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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C4 루쏘 T는 우리가 막연하게 떠올리는 페라리의 모습은 아니다. 역대 페라리 중에서 가장 독특한 실루엣을 지니고 있는 모델이다. 하지만 어떤 페라리보다 실용적이다. 네명을 태우고도 가장 빠르고, 안락하게 달릴 수 있다. 또 페라리의 최신 기술이 아낌없이 반영된 모델이며, 키를 꽂고 돌리는 아날로그 페라리가 아닌 다양한 디지털 기술이 접목된 페라리기도 하다. 

 

만감이 교차하는 GTC4 루쏘 T지만, 서킷을 달릴 때 만큼은 그저 페라리였다. 난폭하게 속도를 높였고, 날카롭게 코너를 돌았다.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전부 몸으로 전달됐다. GTC4 루쏘 T는 우리가 막연하게 떠올리는 페라리의 성격을 온전히 지니고 있었다. 

# 페라리의 슈팅 브레이크

엔초 페라리는 매우 고집이 셌다. 그를 둘러싼 여러 일화나 그의 자서전에서도 그의 고집과 뚝심은 쉽게 알 수 있다. 엔초는 막강한 스포츠카를 만들며 페라리를 세웠지만, 여유로운 쿠페와 풍요로운 4인승 모델에도 관심이 많았다.

페라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모델 중 하나인 ‘250’는 1950년대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며 다양한 파생 모델을 탄생시켰다. 페라리 최초의 4인승 모델도 250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이후 페라리에게 4인승 모델은 꽤 중요한 존재가 됐고, 4인승 GT는 330 GT, 365 GT, 400, 456, 612 스칼리에티, 그리고 FF와 GTC4 루쏘 등으로 발전했다.

 

4인승 GT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FF처럼 파격적인 디자인을 지닌 차는 없었다. 곱추처럼 등은 불룩 솟아, 날렵함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골프백을 실을 수 있는 파격적인 페라리였지만, 오히려 ‘뚱뚱한 페라리’로 놀림 받기도 했다.

 

GTC4 루쏘 T도 FF와 실루엣은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역동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페라리는 루프 라인의 끝부분을 잡아당겼다. FF에서 느낄 수 없었던 긴장감이 생겼다. 또 뒷휀더를 보다 입체적으로 만들었고, 이 때문에 사이드 캐릭터 라인도 더 선명해졌다. 사이드 로컬 패널도 극적인 느낌이 들도록 변했다.

 

반짝이는 그릴바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시선을 끌던 라디에이터 그릴을 얌전하게 바꿨고, 추켜올라간 눈매는 매끈하게 다듬어졌다. 실루엣보다 인상이 달라져서 얻은 호감이 더 컸다. 뒷모습의 극적인 변화는 없지만 한개의 원형 테일램프가 두개로 달라지며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리어 스포일러와 디퓨저는 공기역학을 고려해 더 과격해졌다.

 

디테일에 많은 신경을 쏟았지만, 페라리의 ‘슈팅 브레이크’는 여전히 어색했다. 재규어, 애스턴마틴 등은 1970년대 다양한 슈팅 브레이크를 만들었고 유럽에서 슈팅 브레이크가 유행하던 시기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페라리 역사에서 슈팅 브레이크는 없었다. 오랜 역사 위에 업혀가는 것은 쉬워도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것이 아무리 페라리라도.

# 영락없는 페라리

겉모습은 전혀 페라리같지 않았지만, 서킷을 달릴 땐 문제될게 없었다. 뚱뚱해도 페라리는 페라리였다. 인제스피디움의 직선구간이 야속할 정도로, 속도를 높이는게 짜릿했다. 3.9리터 트윈 터보 엔진은 막힘없이 속도를 높였다. 시속 200km를 넘어 달리는 게 이렇게 쉬운 일이었던가. 가속페달은 여전히 여유로웠고, 반응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인제스피디움의 대명사와도 같은 첫번째 코너를 들어서기 직전, 하중 이동을 위해 가속페달에서 먼저 밟을 뗐다. 속도가 조금 줄어들자마자 GTC4 루쏘 T는 괴성을 지르며 스스로 기어를 한단계 낮췄다. 내리막 코너를 진입하기 위해 브레이크에 발을 살짝 얹자마자 또 다시 기어를 낮췄다.

서킷을 달리는 상황에서 GTC4 루쏘 T의 7단 DCT는 언제나 가장 격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기계의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최적의 회전수를 찾아냈다. 한수 배운 느낌이었다. 알파고를 마주한 이세돌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거대한 패들시프트에 손을 올리려 할때마다 GTC4 루쏘 T는 선수를 쳤다.

 

인제스피디움의 4번 코너와 17번 코너는 오른쪽으로 도는 헤어핀인데, 여기서 GTC4 루쏘 T의 움직임은 조금 생경했다. 직전에 탔던 캘리포니아 T로는 코너의 정점에서 안쪽을 깊숙히 파고드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GTC4 루쏘 T는 연석을 밟을 정도로 코너 안쪽을 스쳤다. 비단 헤어핀이 아니더라도 코너에서 매우 공격적으로 안쪽 라인으로 달릴 수 있었다.

 

GTC4 루쏘 T는 계속 파고들었다. 오버스티어와는 명백하게 달랐다. 코너 안쪽을 꽉 물고 달렸다. 또 마치 카트처럼 옆으로 스르륵 밀리듯 자세를 고쳐잡고 코너를 탈출했다.

 

차의 속도와 스티어링 각도 등을 계산해 차의 미끄러짐을 감지하고, 자세를 유지시켜주는 ‘슬립 사이드 앵글 컨트롤(SSC)’과 상황에 따라 스스로 뒷바퀴의 조향각도를 조절하는 ‘리어 휠 스티어링(4WS)’의 결합이 낳은 움직임이었다. 뒷바퀴 조향 시스템을 적용하는 브랜드는 많지만 페라리만큼 뒷바퀴의 움직임이 적극적으로 느껴졌던 적은 없었다.

 

리어 휠 스티어링은 이론적으로 회전반경을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고, 고속에서의 방향 전환에도 이점이 있다. 하지만 그만큼 리어 타이어의 부담이 커진다. 인제스피디움은 고저차가 심하고, 내리막 코너에서 앞타이어에 많은 하중이 실린다. 그래서 앞타이어의 마모가 빠르게 진행되는 곳인데, 이곳을 이틀간 달린 GTC4 루쏘 T는 오히려 뒷타이어의 마모가 상당했다. 함께 서킷을 달린 캘리포니아 T는 역시 앞타이어의 마모가 더 심했다.

# 터보 엔진이 만든 새로운 세대

페라리가 한국 최초로 서킷에서 진행한 ‘GTC4 루쏘 T 미디어 익스피리언스’에는 FMK가 주력으로 판매 중인 페라리가 총출동했다. 페라리 중에서 가장 저렴한 캘리포니아 T로 GTC4 루쏘 T와 함께 서킷을 달렸고, 우리가 페라리라고 하면 떠올리는 488 GTB로는 슬라럼을 즐겼다. 이 세모델은 페라리의 성장을 견인하는 모델이면서 모두 페라리의 최신 터보 엔진이 탑재됐다.

 

페라리는 F40 이후 로드카에 터보 엔진을 사용하지 않았다. V8과 V12 자연흡기 엔진만이 페라리의 심장이 됐다. 하지만 F1에서도 터보 엔진이 부활한 2014년, 페라리는 터보 엔진이 탑재된 캘리포니아 T를 선보였다. 이후 458 이탈리아의 후속인 488 GTB, GTC4 루쏘의 다운사이징 버전인 GTC4 루쏘 T 등에 연이어 터보 엔진이 탑재되기 시작했다.

페라리의 터보 엔진의 코드명은 F154. 실린더 뱅크, 헤드, 블록 등은 전부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됐다. 피스톤과 커넥팅 로드 등은 저항에 강한 동합금이 사용됐다. 플랫 플레인 크랭크샤프트, 새로운 흡기 시스템과 8개의 실린더와 연결된 배기 매니폴드의 길이를 전부 동일하게 제작해, 뛰어난 반응과 페라리의 독특한 사운드를 더욱 부각시켰다.

 

두개의 터보 차저가 탑재됐다. 모두 트윈 스크롤 방식이며 워터쿨링 시스템이 적용됐다. 페라리는 ‘제로 터보랙’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GTC4 루쏘 T는 최고출력 610마력, 최대토크 77.5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동일한 엔진 블록을 사용하는 캘리포니아 T는 560마력, 488 GTB는 670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한다.

# 페라리라서 가능한 차

여느 스포츠카가 그렇듯, 페라리는 제약이 많다. 폐쇄적인 실내 환경과 비좁은 수납공간, 폭력적인 승차감 등 어딘가로 멀리 떠날 때 페라리는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다. 또 서킷이나 한적한 산길을 질주할 땐 누구보다 가슴 뛰는 전율을 선사하지만, 꽉 막힌 도심에서는 거칠게 내뱉는 숨소리가 거슬리기도 한다.

 

GTC4 루쏘 T는 누구와, 언제나, 어디서나 페라리를 느낄 수 있게끔 만들어졌다. 페라리 중에서 가장 안락한 실내 공간을 지니고 있고, 승차감도 역대 페라리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여행용 캐리어는 물론이고, 뒷좌석을 접으면 서핑보드와 같은 긴 화물도 실을 수 있다.

물론 페라리를 타는 사람들에게 차가 단 한대 뿐이진 않겠지만, 고성능 세단이나 SUV는 결코 페라리의 감성을 따라올 수 없다. GTC4 루쏘 T는 ‘데일리 페라리’로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며, 페라리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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