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페라리 458 스파이더…목숨 건 와인딩을 떠나다
  • 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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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9.12 19:21
[시승기] 페라리 458 스파이더…목숨 건 와인딩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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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제정신일 수 없었다. 한여름 금요일 밤, 시뻘건 페라리 키를 들고 있는 남자가 제정신일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더욱이 주말 내내 이 순수한 야생마를 아무런 간섭없이 탈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심장이 뛴다. 일단 에너지드링크를 몇캔 샀고, 전국에서 저렴한 고급유 주유소도 살폈다. 잠을 자는 시간은 아깝고, 페라리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은 아깝지 않았다.

잠은 세시간이면 충분했다. 아직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흰색 458 스파이더는 온동네 주민을 깨우기라도 작정한듯 격한 숨을 내뱉으며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아직 주차장에 곤히 잠든 몇몇 차들이 놀란듯 경적을 울리기도 했다.

 

목적지는 강원도 화천의 ‘평화의 댐’. 자동차 마니아들에겐 유명한 곳이다. 약 20km에 달하는 산길은 결코 만만치 않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고 헤어핀과 블라인드 코너가 연속된다. 와인딩의 길이나 구성이 흡사 독일의 '녹색지옥' 뉘르부르크링과 닮았다.

다녀오는 동안 고급유 주유소가 한곳도 없기 때문에 출발전 고급유를 주유구 목구멍까지 가득 채웠다. 주행가능 거리는 600km를 넘었다. 페라리의 주행가능 거리는 운전 스타일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그러니깐 지금처럼 정속 주행만 하면 600km 정도는 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9000rpm까지 회전수를 높일 수 있는 마초적인 V8 자연흡기 엔진이 바로 등뒤에서 요동치는데. 

◆ 페라리를 타고 연비 운전이라니, 고문이 따로 없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춘천IC에서 빠져나와 46번 국도를 타고 화천으로 향했다. 이른 새벽이지만 연비 운전에 집중했다. 페라리의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는 일반적인 승용차의 것과 사뭇 느낌이 달라, 차라리 수동으로 변속하는게 연비에 더 이롭다. 엔진회전수를 끝까지 높이려는 458 스파이더 특유의 성질 때문이다.

▲ 톱을 열고 달려도, 바람이 거세게 들이치지 않는다. 윈드터널에서 정확한 공기의 흐름을 연구하고 설계한 탓이다. 윗머리가 바람에 살랑이는 정도로만 바람이 들이친다.

시속 70km 정도면 7단까지 올릴 수 있다. 이제부턴 변속을 하지 않고 회전수만 높이며 운전할 수 있다. 부드럽게 속도만 올리는거다. 정말 재미없다. 페라리를 타며 이처럼 가혹한 고문을 해야하나 생각이 든다. 변속 과정이 없으니 긴박함 넘치는 배기음도 그저 웅웅거리고 만다. 그래도 이 정도면 데일리카로도 큰 문제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페라리 탄다고 주구장창 속도를 높이진 않을테니깐. 

▲ 3개 중 가운데 머플러는 가변 플랩 시스템이 적용돼 저속에서도 고른 토크를 유지하게 한다. 또 458 스파이더를 위한 특별 소음기가 장착돼 3000~5000rpm 범위에서 실내로 유입되는 배기음의 양을 3~5dB로 맞췄다.

한국형 내비게이션은 적용되지 않았고, 오디오 시스템이나 각종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은 간소화됐다. 조작의 편의성도 그리 좋지 않은 편. 결코 친절하지 않다. 어쩌면 람보르기니와 가장 다른 점 중 하나다. 성능에 있어서는 둘다 최고라 자부하지만, 스포츠카 순수성에 있어서는 페라리가 두수쯤은 위다. 이 차는 더 빨리, 더 극적으로 달리는데만 초점이 맞춰졌다.

▲ 실내 주요 부분. 디자인이나 재질 등이 예사롭지 않다.

오직 달리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페라리는 페라리다. 본디 페라리는 레이싱을 즐기는 고귀한 부유층만을 위한 차. 실내는 무척 호사스럽다. 실내에서 플라스틱이 사용된 곳이라곤 몇몇 버튼 뿐이고, 이조차 일반적이지 않다. 가공을 어떻게 했는진 몰라도 우리가 알고 있던 플라스틱의 질감이 아니다. 나머지는 최고급 가죽과 카본파이버, 알루미늄 등으로 뒤덮였다. 바느질의 일정한 간격을 보면 기가 찬다. 다들 잘 알겠지만 주문 제작에 따라 시트의 모양, 색상은 물론 가죽 장식, 안전벨트 색상, 스티치 색상 등 모든 것을 바꿀 수도 있다.

▲ 458 스파이더의 실내. 시승한 차에는 꽤 비싼 옵션이 추가된 상태다. 실내는 카본으로 꾸며졌고, 시트의 가죽 장식 색상도 다 돈이다.

◆ 단순명료한 하드톱, 성능을 위한 몇몇 디자인

화천에 올때까지 스티어링휠 위쪽에 줄이어 위치한 변속시점 인디케이터에는 붉은점 하나 들어오는 일 없었다. 지루한 고속도로 주행은 조만간 화끈한 와인딩으로 보상받을 예정이다.

평화의 댐 진입 전, 일단 천장을 연다. 458 스파이더의 하드톱이 열리는 과정은 무척 명쾌하다. 지붕은 그대로 뒤로 젖혀져 엔진 앞공간으로 쏙 들어간다. 구조가 단순하다 보니 일반적인 소프트톱에 비해서도 가볍고, 여닫는데 걸리는 시간은 14초에 불과하다.

▲ 458 스파이더 하드톱의 개폐 과정. 지붕이 분리되면서 두 조각으로 나뉘고, 그대로 접혀 엔진 앞쪽으로 들어간다.

뚜껑이 있을 때와 없을 때는 딴판이다. 458 이탈리아가 매끈한 등판을 자랑한다면, 458 스파이더는 마치 에일리언의 등뼈처럼 우락부락하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붉은 심장을 볼 수 없게 끔 패널로 막혀있는 점인데, 옵션을 통해 폴리카보네이트 패널로 교체가 가능하다. 아무래도 슈퍼카는 잘난 엔진을 드러내야 제맛이다.

▲ 기본 모델에서는 엔진룸을 볼 수 없다. 폴리카보네이트 패널은 약 1천만원에 달한다.

미드십 슈퍼카라면 당연하게 있어야 할 옆구리 라디에이터가 458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엔진 냉각을 위한 공기흡입구는 차체 밑바닥과 리어 스포일러 앞쪽에 뚫렸다. 이로 인해 디자인의 자율성이 높아졌고, 쓰다듬고 싶을 정도로 매끈한 바디 라인이 탄생했다. 또 밑바닥의 공기흡입구로 인해 다운포스가 증대되는 일석이조의 효과까지 얻었다.

▲ 성능을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은 없다. 전부 공기역학적인 설계를 통해 만들어졌다.

사소한 디자인 하나, 성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없다. 범퍼 공기흡입구의 카본파이버 패널, 마치 스모키 화장처럼 헤드램프 안쪽으로 뚫린 구멍, 길게 뻗은 아웃사이드미러, 카본파이버로 제작된 디퓨저 등은 단순한 멋이 아니다. 공기저항과 브레이크 및 엔진 냉각을 위한 장치다. 그것이 일반적이지 않고, 458 스파이더와 하나로 잘 어우러져 멋이 난다.

◆ 간담이 서늘해지는 드라이빙, 페라리를 시험하지 마라

도로의 작은 모래 알갱이 튀는 소리마저 고스란히 들린다. 그만큼 노면에 바싹 붙어가고 있고 458 스파이더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운전석에서 모두 느낄 수 있다. 타이어가 노면을 짓누르며 안간힘을 쓰고, 쉴새없이 움직이는 피스톤의 거친 숨소리가 평화의 댐을 울린다. 

극도로 예민해진 458 스파이더는 벅차다. 덩치가 클 뿐이지 최근 몰두하고 있는 스포츠 카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원초적인 드라이빙을 보여준다. 차를 조작한다기 보다 차에 흡수된 기분이다. 이미 페라리에 열쇠를 꼽는 순간 아바타처럼 서로 연결된 것일지 모른다. 458 스파이더는 손과 발의 작은 움직임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감시를 받고 있는 기분까지 든다.

▲ ESP ECU에 포함된 E-Diff와 F1-Trac은 진화된 제어로직을 통해 상호 통신 시간이 최소화됐다. 이로 인해 빠른 반응과 높은 수준의 트랙션을 확보하게 됐다.

스로틀이 조금 열렸을 때, 완전 열렸을 때, 완전히 닫혔을 때의 미묘한 변화는 매순간 긴장하게 만든다. 코너를 돌고 있는 상황에서도 가속페달을 밟는 양에 따라 차의 자세가 급변한다. 코너의 정점에서 속도를 높이기 위해 무심코 가속페달을 세게 밟으면 휘리릭 뒤가 미끄러진다. 이때 놀라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또 다시 휘청거린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상황이지만 미끄러짐의 회복은 몹시 빠르다. 살짝 겁만 주는거지 결코 ‘나 스핀해’라고 말하는 상황은 아니다. 그 순간 이 차의 가격과 사후 처리 과정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지나가는 점이 괴로울 뿐, 어설픈 드라이버의 운전도 충분히 감내한다.

▲ 카본파이버로 도배된 엔진룸. 458 스파이더에는 4.5리터 V8 자연흡기 엔진이 장착돼 최고출력 570마력, 최대토크 55.1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희열은 이런 공포의 과정에서 더 극대화된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페라리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여전히 오른쪽 앞바퀴가 어딜 밟고 있는지 감이 오진 않지만, 운전은 과감해졌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엔진은 비명을 질러댔다. 458 스파이더의 특이점 중 하나는 톱을 닫았을때도 '윈드-스톱', 즉 뒷유리를 개방해 배기음을 고스란히 실내로 들이치도록 할 수 있다는 점이다.

▲ 저 터널을 지나면 끝을 알 수 없는 와인딩이 시작된다.

일반도로에서 밋밋하게 느껴졌던 ‘F1-Trac’ 컨트롤은 와인딩에선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열어줬다. 스포트 모드가 기본인 트랙션 컨트롤의 단계를 하나씩 높일 때마다 색다른 반응을 보인다. 레이스(Race)와 CT OFF까지. CT OFF에서 이미 충분히 짜릿하고 공포스런 순간을 보냈다. 특히 평화의 댐은 블라인드 코너가 많아 순간적인 스티어링 조작이 빈번했고, ESC OFF 모드는 엄두도 못냈다.

▲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3.4초, 시속 200km까지는 10.8초가 소요된다.

코너를 탈출할때 겪는 약간의 슬라이딩도 이젠 꽤 적응됐다. 평화의 댐을 내려올때는 속도를 더 높였다. 마치 F1에서나 볼법한 연속적인 브레이킹과 다운시프트는 온몸에 닭살이 돋을 정도로 소름끼친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카본세라믹 브레이크의 디스크는 웬만한 소형차 휠보다 크다. 내리막에서도 차체의 흔들림없이 땅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다. 페라리에 따르면 시속 100km에서 완전히 멈출때까지 32.8m가 소요된다.

▲ 숭고한 458 스파이더의 스티어링휠에는 시동 버튼, 트랙션 컨트롤, 서스펜션 디커플링, 와이퍼, 상향등, 방향지시등, 패들시프트 등이 달려있다.

델파이가 제공하는 ‘자성 유체 서스펜션(Magnetorheological Suspension System, SCM)’은 일반적인 오일로 감쇠력을 조절하는 여느 댐퍼에 비해 반응이 훨씬 민감하다. 자기장의 강도는 밀리세컨드 단위로 조절돼 언제나 달리기에 최적화된 상황을 만든다. 고귀한 페라리의 스티어링휠에는 트랙션 컨트롤과 별도로 서스펜션을 조절할 수 있는 ‘서스펜션 디커플링’ 버튼도 마련됐다. 노면을 상세하게 읽는 것도 가끔은 피곤할 때가 있으니 버튼 누르고 편안하게 즐기란 페라리의 배려다.

◆ 감히 최고라 부를 수 있는 차

하산. 격렬한 전신 운동을 한 기분이다. 연신 긴장한 탓에 어깨가 쑤신다. 차는 아직도 팔팔한데 사람이 먼저 지친다. 왕복 40km 가량의 산길을 달렸음에도 458 스파이더를 정복하지 못한 기분도 든다. 몇차례 식겁하는 순간도 있었고, 가속페달 밟는 것을 주저하기도 했으니 겁쟁이라 놀림받아 마땅하다. 그래도 와인딩은 안전하고 즐겁게 달리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되뇌며 자위했다.

▲ 평화의 댐 정상에 오른 458 스파이더.

458 스파이더는 굳이 빨리 달리지 않아도 경악과 공포를 느낄 수 있었고, 이와 동시에 상쾌한 바람과 희열이 온몸을 파고 들었다. 분명 뚜껑 열린 페라리로 산길을 오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 경험 속에서 얻은건 또 있다. 도전정신 가득한 수많은 슈퍼카 브랜드의 도전 속에서도 페라리는 왜 가장 높은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고, 왜 V8 엔진을 실은 458이 역대 페라리 중 최고 명작으로 평가받는지에 대한 답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 장점

1. 진짜 슈퍼 스포츠카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2. 뚜껑이 열린다. 그것도 매우 빠르게.

3. 길을 걷는 여성들과 계속 눈이 맞는다.

* 단점

1. 내비게이션의 부재. 스마트폰을 거치하기도 쉽지 않은 구조다.

2. 정확한 가격을 모르겠다. 그냥 엄청 비싸다는 것만 안다.

3. '초딩'들이 소리지르며 달려와 사진을 찍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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