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스마트키 장착 차, 이렇게 쉽게 훔칠 수 있다니"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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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2.15 17:00
[이완 칼럼] "스마트키 장착 차, 이렇게 쉽게 훔칠 수 있다니"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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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2.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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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은 자동차들이 스마트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멀리서 버튼 한 번 누르면 잠겨 있던 차문을 열고 다시 잠글 수 있죠. 또 시동을 거는 것도 열쇠를 꽂아 돌릴 필요 없습니다. 엔진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그만입니다. 아예 원격으로 시동까지 걸 수도 있게 됐죠. 그런데 이런 정도의 역할로 스마트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아닙니다.

 

스마트키는 차량의 각종 정보까지 담고 있는데요. 차량 검사를 위해 직영 정비소를 방문하는 경우 정비사는 자신의 책상 위에 있는 작은 홀에 고객의 스마트키를 꼽아 해당 차량의 주행거리부터 각 종 소모품 교체 시기 등, 정비 이력까지 바로 파악을 합니다. 또 스마트폰과 연동되게 해 키를 통해 내 차의 상태까지도 파악하는 그런 기술도 소개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이런 기능들에 더해 아예 열쇠를 주머니에 넣은 상태로 버튼을 누리지 않고도 차문을 열고, 발을 가져다 대 트렁크 문을 자동으로 열 수 있게 됐습니다. 흔히 키레스 고(Keyless Go) 기능이라고 부르는데 이제 주머니나 가방 안에서 열쇠를 꺼내지 않고도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 키레스 고 기능이 들어 있는 스마트키가 말썽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키레스 고 차량들이 도난 당하고 있다는 소식이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 고가 장비 이용 간단히 무장해제…초저가 장비 개발까지 이뤄져

 

이미 지난 해 한 번 이 소식을 다룬 적 있습니다만, 키레스 고는 자동차와 특정 주파수를 이용해 문을 여닫으며 시동을 끄고 켜는 것이 기본 원리입니다. 그런데 자동차 절도범들은 고가의 장비를 이용해 너무나 쉽게 차 문을 열고 유유히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처럼 차를 훔칠 수 있는 걸까요?

보통 2인 1조로 움직인다고 합니다. 키레스 고 기능의 스마트키를 소유한 운전자 옆에서 (보통 5~7미터 거리, 최대 30미터까지 가능) 한 명이 노트북 가방 같은 것에 들어 있는 주파수 증폭기를 이용 자동차 옆에 있는 공범 수신기로 신호를 보내면 바로 문을 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차량과 운전자의 거리가 400미터나 떨어져 있어도 가능하다고 하는군요. 작년 독일에서만 수백 대의 최신 자동차들이 이런 방법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 키레스 고 차량 테스트 결과 '벤츠 빼고 모두 성공'

세계 곳곳에서 키레스 고의 약점을 이용한 도난 사건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지만 현재 제조사들은 딱히 해법을 내놓지 못한 상태입니다. 최근 독일의 유력 주간지 슈피겔은 자체 TV 채널을 통해 키레스 고 자동차 도난 과정을 보여줬는데, 마치 자기 차처럼 너무 쉽게 전문가가 시연을 해 보여 황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보기가 답답했던지 독일의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빌트는 차량 보안 전문가를 섭외해 10개 브랜드의 10대의 스마트키 차량으로 자동차 도난 실험을 해봤습니다. 9대는 키레스 고 차량이었고 나머지 1대는 일반 스마트 키 모델이었습니다. 과연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도난 테스트에 참여한 차량은 아우디 A4를 비롯해 BMW 220i와 포드 쿠가, 기아차 카렌스, 마쯔다 6, 메르세데스-벤츠 C300 쿠페, 레인지로버 이보크, 르노 클리오 GT, 볼보 XC60, 폭스바겐 파사트 등 10종이었습니다.

 

결과는 10대 중 9대가 문이 열렸으며 시동이 걸렸습니다. 딱 한 대만이 도난을 피할 수 있었는데, 바로 메르세데스-벤츠 C300 쿠페였습니다. C클래스 쿠페의 경우 일반 스마트키(벤츠 역시 키레스 고 기능을 선택할 수 있음) 모델로, 엔진 스타트 버튼의 주파수가 자주 사용되는 것과는 달랐으며, 무엇보다 남다른 기능 한 가지가 추가돼 있던 것이 도난을 확실하게 막아줬던 것으로 보입니다.

메르세데스는 최근 시동버튼을 분리할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급할 때는 열쇠를 꼽아 사용하라는 비상용 기능인데 이 시동버튼 속에 주파수를 읽는 장치가 들어 있기 때문에 버튼을 빼 가지고 가면 주파수 장비만으로는 시동을 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 키레스 고 기능이 적용된 메르세데스 모델이고, 스타트 버튼이 차 안에 그대로 있는 상태였다면 벤츠 역시 쉽게 훔칠 수 있다는 게 보안 전문가의 이야기였습니다. 

 

현재 수천만 원짜리 이 도난 장비를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도록 개발하고 있는 독일의 한 IT 전문가는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은 절대로 키레스 고 기능이 들어간 스마트키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실험을 담당한 기자 또한 키레스 고 기능의 차는 완전한 해법이 나오기 전까지는 절대 옵션으로라도 넣지 않겠다며 독자들에게도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해당 잡지사는 각 제조사에게 테스트 결과를 통보했고, 그들은 간단하게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대답이 가지각색이었는데요. BMW는 자신들의 보안 컨셉이 최고 수준이라는 다소 선문답 식의 대답을 해왔고, 기아는 미래에는 내 차 정보를 운전자가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통해 도난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대답을 해왔습니다.

아우디처럼 계속 노력 중이라는 지극히 원론적인 대답을 한 곳도 있었고, 포드처럼 현재는 방법이 없다는 솔직하게(?) 대답을 한 곳도 있었습니다. VW 역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정도로 피해갔으며, 르노처럼 아예 노코멘트를 한 곳도 있었습니다. 마쯔다는 키레스 고 시스템을 비활성화하는 방법이 협력사에 의해 개발됐다고 답했고, 메르세데스 또한 다음부터 적용될 새로운 키레스 고 시스템은 주파수를 끄고 켤 수 있을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레인지 로버는 아예 고객들이 키레스 고 스마트키를 할지 아니면 일반 버튼식 스마트키를 할지 선택하면 된다는 식으로 다소 무책임한 답을 하기도 했는데요. 전체적으로 보면 지금 당장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운전자 스스로가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 이런 방법들로 도난 위험을 방지하자고?

 

그렇다면 이미 키레스 고 스마트키를 가지고 있는 분들은 절도범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현재 계속해서 얘기되고 있는 방법은 대략 4가지 정도 됩니다. 바로 알루미늄 호일 등으로 열쇠를 감싸서 가지고 다니거나 보관할 것, 냉장고 안에 열쇠를 넣어 둘 것, 창가나 벽 쪽에 열쇠를 두지 말고 집 중앙에 놓을 것, 깡통 속에 담아 둘 것 등이죠. 다소 황당한 방법들이지만, 아직까지는 이게 최선인 듯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키레스 고 기능은 매우 편리합니다. 하지만 절도범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선 안됩니다. 그러니 명쾌한 대책이 나올 때까지 선택을 자제하는 게 좋습니다. 만약 그럼에도 구매를 한다거나 이미 했다면, 위에 나온 방법들을 이용해 최대한 도난의 위험을 줄여가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제조사들이 책임 있는 자세를 갖고 빨리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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