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협력사 간 '갑질' 논란, 현대차는 정말 억울한가?
  • 신승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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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4.26 08:54
[기자수첩] 협력사 간 '갑질' 논란, 현대차는 정말 억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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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울산 및 아산 공장의 일부 생산라인이 지난 20일 가동을 중단했다. 공장이 멈춘 날은 단 하루 뿐이었지만, 언론과 SNS 등을 통해 주요 협력사 간 갈등이 대외적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협력사 관리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한편, 나름의 책임과 감독 강화를 선언했다. 과연 올바른 방향성일까.

당일 현대차가 공장을 멈춘 이유는 현대모비스로부터 콕핏 모듈을 공급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는 1차 협력사인 한온시스템과 2차 협력사인 대진유니텍의 갈등으로 인해 모듈에 필요한 부품을 적시에 납품받지 못했다.

현대차그룹 부품공급망(Supply Chain·SC)에 문제가 생기자 다양한 소식이 전해졌다. '납품 대금 고의 지연'부터 '납품사 교체설' 등이 연이어 쏟아졌다. 이 같은 내용에 대해 한온시스템은 사실무근이라며 강력히 부인했고, 대진유니텍 측은 답변을 거부했다.

하지만 "협력사 대표가 금형 부품 일부를 들고 잠적했다"는 식의 구체적인 정황이 나왔고, 이어 현대차가 관련 협력사들에게 '생산설비는 설령 부품사에서 현대차로부터 구입한 것이더라도 끝까지 현대차 소유물임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아낸 일까지 알려졌다. 적어도 당시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는 점은 분명했다.

이번 사태의 잘못은 일차적으로 한온시스템 측에 지워졌다. 매해 거듭되는 원가절감(Long-Term Agreement, 사실상 Cost Reduction) 요구와 납품 대금 지연, 그리고 물량 축소 등 갑질횡포에 대한 여론이 형성됐다. 그 과정에서 현대차그룹은 협력사 간 갈등의 일방적인 피해자로 비춰졌다.

# 현대차그룹은 정말 협력사 리스크에 노출된 것일까

▲ 현대모비스 아산공장 운전석 모듈 생산 라인.

현대차그룹의 부품공급망(SC)은 효율적 JIT(Just In Time) 시스템을 넘어 엄격한 직서열 공급(Just In Sequence·JIS) 방식이 적용 된다. 부품업체들이 현대차 공장과 하나의 벨트로 연결돼 완성차 생산에 맞춰 정확한 순서에 정확한 부품을 공급한다. 때문에 현대차그룹은 1·2차 협력사의 각종 상황을 사실상 완벽히 파악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2010년부터 경영진의 1·2차 협력사 방문 활동을 정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수직계열화 체제에서 협력사 간 관계 파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도입된 투명구매실천센터나 하도급 거래 내부심의위원회 등을 통해 구매대금 및 결제 시스템의 불공정 행위를 감시해왔다. 심지어 현대차그룹은 2·3차 협력사의 노사 문제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품업계 관계자들은 "한온시스템과 대진유니텍의 갈등에 대해 이미 현대차그룹도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들은 "완성차에서 시작된 원가절감 압박이 부품 업계 전반에 도미노처럼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완성차 업계는 환율 및 수익성 악화에 따른 심각한 원가절감 압박을 받고 있다. 그 여파로 부품 업계는 원가절감을 넘어선 '단가 후려치기'에 시달리고 있다. 계약서에 이미 납품가와 물량을 정해놓고 일방적으로 협력사에 통보하는 일이 관행처럼 퍼지고 있다.

# 현대차와 한온시스템, "계륵, 목에 걸렸나"

▲ 현대차그룹 글로벌 비즈니스센터(GBC) 조감도. GBC 건립에는 약 20조원에 육박하는 비용이 소요될 전망이다.

공조 부문에 있어 국내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한온시스템도 현대차그룹으로부터 원가절감에 대한 압박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한온시스템은 최근 현대차그룹과 관계가 그리 좋지 않다.

한온시스템은 지난 1986년 한라그룹 소속 한라공조로 첫 발을 내딛었다. 현대차그룹과 같은 범현대가의 일원으로 공고한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IMF 위기를 겪으며 회사 주인은 바뀌었지만, 현대차그룹과의 관계는 돈독했다. 바뀐 사명(한라비스테온공조)도 '한라'란 이름이 유지됐다.

현대차그룹은 한라그룹이 한라비스테온공조를 되찾길 바랐다. 한라그룹도 만도를 다시 인수(2008년)하며 자동차부품사로 재기에 나선 상황이었고, 당시 범현대가의 물밑지원도 탄탄했다.

▲ 한라그룹 정몽원 회장.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사촌 관계이며, 한라공조 초대 대표이사 겸 사장을 지냈다. 정몽원 회장은 창립 50주년(2012년) 행사에서 "한라공조를 인수해 제 2의 전성기를 이루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한라비스테온공조는 한국타이어와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의 품에 안겼다. 지난해 회사 이름도 한온시스템으로 변경했다. 그렇게 회사는 '한라'란 이름을 버렸고, 현대차그룹과 관계도 소원해졌다. 현대차그룹은 한국타이어 측에 공공연하게 섭섭함을 드러냈고, 우연의 일치처럼 제네시스 등에 납품된 신차용 타이어 품질을 문제 삼아 타이어 리콜 및 공급선을 교체했다. 

이번 협력사 간 갈등에 대해 한 현대차 임원은 "예전 한라 시절에는 생각도 못한 일"이라며 "사모펀드가 경영에 참여하며 회사가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한온시스템에 대한 현대차그룹의 최근 인식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시점에서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을(乙)에 대한 관리 감독보다 갑(甲) 스스로가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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