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북]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사건'…독일, 패닉에 빠지다
  • 독일=스케치북, 정리=전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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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9.23 10:55
[스케치북]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사건'…독일, 패닉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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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스케치북이라는 필명으로 인기리에 스케치북다이어리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완님의 칼럼입니다. 한국인으로서 독일 현지에서 직접 겪는 교통사회의 문제점들과 개선점들, 그리고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과 현지 언론의 흐름에 대해 담백하게 풀어냅니다.

 

지난주 토요일, 독일 전역에서 프랑크푸르트모터쇼를 보기 위해 박람회장으로 많은 팬들이 몰려들었다. 이른 아침부터 박람회장 주변은 모터쇼를 찾은 자동차들로 인해 정체됐고,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독일인들에게 자국 브랜드들이 주도하는 이번 모터쇼는 자부심 가득한 축제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부터 폭스바겐이 디젤차 배출가스양을 조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

이 소식은 언론에 의해 집중적으로 소개됐고, 급기야 폭스바겐 본사가 '특정 타입의 엔진을 장착한 약 1100만대의 디젤차에 조작을 위한 프로그램이 심어졌다'고 공식 발표하자 모든 언론의 1면은 이 소식으로 도배돼 버렸다. 자동차에 대한 자부심 높은 독일인들은 '메이드 인 저머니(Made in Germany)'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며 분노했다.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에 대한 독일 내 반응과 대응, 그리고 몇 가지 예상되는 내용들에 대해 살펴봤다. 

# 1. 폭스바겐,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최근 폭스바겐그룹의 골프, 아우디 A3, 비틀, 그리고 제타 등에 들어가는 TDI 디젤엔진이 공식 테스트 때와 달리 실제 주행에서 최대 40배 가까운 질소산화물이 배출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ECU 프로그램을 조작해 테스트 중에는 질소산화물이 적게 나오도록 속인 것으로, 실제 주행 중에는 배기가스 후처리장치가 꺼지도록 조작한 것이다. 미국 당국은 2008년 이후 생산된 디젤 차량 48만2000대가 이번 조작과 관련 있다며 징벌적 벌금 20조를 내라고 요구했다.

# 2. 미국 환경보호국은 어떻게 알아냈나?

이미 국제청정교통위원회(이하 ICCT)는 지난 2014년 유로6 기준에 드는 디젤차 15개 모델을 대상으로 장기간에 걸쳐 실제 도로에서 배출가스 측정(RDE, 실제도로주행배출가스측정법)을 실시했다. 이 때 1개 모델을 제외한 14개 모델이 모두 실제 유로6 기준치를 넘는 질소산화물을 배출했다. 최대 7배 이상 배출된 모델도 있었다. 불합격 모델 중에는 그나마 후처리장치로 가장 신뢰할 만한 SCR 방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발표를 주의 깊게 본 미국 환경보호국은 구체적인 조사에 들어갔고, 결국 폭스바겐이 이를 조작했다는 걸 밝혀냈다.

# 3. 그렇다면 폭스바겐 외에도 더 있을 수 있다는?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폭스바겐뿐이다. BMW와 다임러 등 독일 메이커들은 자신들은 이번 조작과 무관하다고 하고 있으나 미 환경보호국은 다른 제조사들도 이런 조작이 없었는지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ICCT는 폭스바겐만이 아닌 여러 브랜드의 차종들이 실험에 포함됐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최근 독일에서 ICCT와 독일운전자클럽 아데아체가 10개 브랜드 32개 유로6 디젤차를 대상으로 RDE 방식으로 배출가스 정도를 측정했는데 이 때 유로6 기준에 든 것은 단 10개 모델이었고 22개는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실험에 참여한 10개 제조사 중 언론을 통해 공개된 곳은 볼보(15배), 르노(9배), 현대(7배), 아우디(3배), 오펠(아우디 수준), 메르세데스-벤츠(유로6 조금 넘는 수준) 등이었는데, 당시 테스트에서는 BMW만 합격점을 받았다. 

이밖에 독일에서 실시된 RDE 측정에서도 마쯔다6와 폭스바겐 CC, 그리고 BMW 320d 왜건 등이 과도한 질소산화물을 배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 4. 이번에 적발된 폭스바겐 차량은 미국 판매용 모델만 해당되는 건가?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 판매된 폭스바겐 차량에서도 이러한 조작이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폭스바겐은 이미 미국 이외에 세계에서 판매된 1100만대의 디젤차들이 이에 해당된다고 실토했다. 미국과 독일은 물론 우리나라와 프랑스, 호주와 스위스 등이 즉각적으로 조사하겠다고 밝힘과 동시에 발표한 내용이다. 조작을 인정한 1100만대의 디젤차는 모두 특정 타입의 엔진인 'EA 189'가 장착된 유로5 모델로, 2015년 9월1일부터 생산된 유로6 엔진은 이번 스캔들과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 5. 폭스바겐은 현재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폭스바겐은 일단 미국의 발표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했다. 또, 이 문제를 독일 정부와 함께 확실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메르켈 총리도 '완벽하게 투명한 처리'를 지시를 내렸다. 독일 교통부장관 도브린트는 독일 내 폭스바겐 디젤차를 조사하기로 했고, 독일연방자동차청이 이 문제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조작사건은 세계 시장을 상대로 저지른 짓이다. 때문에 이런 대규모 조사에 어떻게 협조하고 대응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현재는 이 조작을 지시한 사람과 가담한 직원들이 어느 정도인지를 밝혀내는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 6. 이 조직적 조작사건을 빈터콘 회장은 모르고 있었다는 건가?

 

현재 폭스바겐은 이번 조작사건과 빈터콘 회장은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독일의 진보적 정론지인 쥐트도이체차이퉁은 상식적으로 회장이 이만한 조작사건을 모르고 있었다는 건 믿을 수 없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빈터콘은 사과 영상에서도 자신은 몰랐다는 뉘앙스로 이야기했는데, 이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 7. 빈터콘 회장 거취는?

이달 초, 폭스바겐그룹은 빈터콘과 2018년까지 계약을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오는 25일 진행될 최종 이사회 투표를 앞두고 터져버려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쥐트도이체차우퉁은 영상 논평을 통해 당장 빈터콘이 물러나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그가 그동안 회사에 어떤 좋은 결과를 가져왔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며, 즉각적인 사퇴가 독일 경제와 자동차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될 거라고 밝혔다. 시사주간지 슈피겔 역시 직원들 잘못으로만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으며 기업을 책임지고 대표하는 빈터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의견이다. 

반면, 빈터콘은 사과 영상을 통해 물러나지 않겠다고 밝혔고, 자신과 회사를 믿고 지켜봐 달라고 호소했다. 특히, 일부 직원들의 잘못으로 수많은 폭스바겐 직원들이 고통받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여론은 지금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 8. 독일 현지 분위기는 어떤가?

 

독일 현지 분위기는 한 마디로 충격 그 자체다. 분노를 넘어 커다란 박탈감에 빠져 있을 정도다. 앞서 말했듯 '메이드 인 저머니'가 주는 신뢰가 이번 일로 무너졌다며 괴로워하고 있다. 어떤 독일 네티즌은 'VW =Vertrauen Weg!' 이라고도 했다. 우리 말로 하면 '사라진 신뢰!' 또는 '신뢰 아웃!' 정도다. 다른 네티즌은 "상황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했나. 조작이 안 밝혀질 거라고 믿은 건가? 지금은 그 어떤 것도 거짓이고 사기인 것만 같다"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피에히 전 감독이사회 의장이 복수를 한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 페르디난트 피에히 전 의장은 빈터콘을 내보내려다가 오히려 폭스바겐 왕좌에서 쫓겨난 인물로, 포르쉐 박사의 외손자이자 지금의 폭스바겐그룹을 만든 장본인이다. TDI 엔진도 그가 아우디 사장으로 있을 때 직접 개발한 것이다. 

이번 조작 사건을 통해 피에히가 혹시라도 복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나타내는 사람도 있지만, 현재 분위기로는 쉽지 않아 보인다. 포르쉐를 이끌고 있는 마티아스 뮐러가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은 빈터콘이 물러난다는 가정하에서의 이야기다.

# 9. 음로론도 나오고 있던데

음모론도 있다.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대체로 보수 언론 쪽에서 흘리는 내용이다. 하나는 미국이 도요타 급발진 사태 때처럼 성장세에 있는 폭스바겐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것. 다른 하나는 빈터콘을 물러나게 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 것이다. 일부 언론은 빈터콘의 계약 연장이 확정되는 25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이런 사건이 터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전문가 인터뷰를 보도하기도 했다. 

# 10. 앞으로의 전망은?

폭스바겐그룹 주가가 연일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주식 가치는 2011년 이전으로 돌아갔을 정도로 끝없이 떨어지고 있다. 앞으로 예상되는 수많은 소송, 그리고 그에 따른 배상금액은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특히, 독일 내에서 가장 강력하게 반디젤차 정책을 주장하는 도이체움벨트힐페(DUH)라는 기관은 아예 법원에 디젤차 자체의 운행을 금지하는 소송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오래전부터 디젤이 질소산화물이나 분진을 많이 내뿜고 있으며 제조사들이 이를 속여왔다고 주장을 해왔다.

녹색당 등도 강력하게 조사를 요구하고 나섰으며 일부 정치인들과 언론은 특히 정부가 폭스바겐의 조작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간 유럽 내에서 조금씩 확산되고 있던 반디젤 정서에 이번 사건이 불을 지른게 됐다. 단순히 후처리장치를 조작한 것만이 아니라 후처리장치 자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따라 1급 발암물질이자 스모그의 주원인인 질소산화물은 완전히 퇴출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더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런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나 전기차의 활성화는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처리장치 자체 문제가 아니며, 폭스바겐에 국한된 사건으로 끝난다면 SUV 인기에 힘입어 디젤은 계속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호황이 계속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내의 경우 2011년과 2014년에 '자동차 질소산화물이 기준치를 초과해 배출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이 점을 명확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겠다. 환경이나 인체에 유해한 배출가스 등에 대한 규제를 구체화 시키고, 이를 어겼을 때 징벌적 배상금을 요구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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