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북 칼럼] 착한 사마리아인 법, 그리고 교통사고 목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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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4.30 17:22
[스케치북 칼럼] 착한 사마리아인 법, 그리고 교통사고 목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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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스케치북이라는 필명으로 인기리에 스케치북다이어리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완님의 칼럼입니다. 한국인으로서 독일 현지에서 직접 겪는 교통사회의 문제점들과 개선점들, 그리고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과 현지 언론의 흐름에 대해 담백하게 풀어냅니다.

 

운전자 중 사고가 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불행히도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어딘가에서는 교통사고가 났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순간의 실수로 사고를 낸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의도치 않게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연히 교통사고를 목격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이 다쳐 피를 흘리며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그냥 무시하고 가던 길을 가야 할까, 아니면 양심상 119에 신고만 하면 될까. 심폐소생술을 하는 등 적극적인 인명 구조에 나서고 싶지만, 괜히 끼어들었다가 되려 피해를 볼까 두려운 마음에 선뜻 발이 안 떨어진다. 

유럽에서는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교통사고 목격자에게 적용되는 특별한 법이 광범위하게 퍼져있기 때문이다. 바로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다. 

◆ 위험에 빠진 사람은 적극적으로 구조해야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복음서에서 유래됐다. 강도를 만난 한 유대인이 부상을 당한 채 길 위에 쓰러져 있었지만, 유대교 제사장과 레위인은 모른 척하고 지나갔다. 오히려 유대인과 대립관계에 있던 한 사마리아인이 그를 구해주었다는 것에서 시작됐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 어떤 사람이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목격했을 때 돕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윤리적 문제를 법으로 처벌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처사인가'라며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현재 프랑스를 비롯해 벨기에와 노르웨이,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이태리, 덴마크, 포르투갈, 러시아, 헝가리 등 유럽의 많은 나라가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형법으로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 없다. 대신 응급의료법에 '누구든 응급환자를 발견했을 때는 응급의료기관에 신고해야 하고, 의료관계자가 아닌데 환자를 돕다 사망이나 상해를 입힌 경우 고의성이 없고 중대한 과실이 없다면 그 행위자는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단, 환자가 죽었을 경우 완전히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라 형량을 감면하는 것으로 조절한다.

두 법의 가장 큰 차이는 적극적인 구조를 유도하는 강제성에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의 경우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목격하고도 그냥 갔을 때 처벌한다는 것이지만, 응급의료법은 구조행위를 하다가 발생한 사고에 대한 면책규정만 있다. 모른척 지나가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국민 의식도 차이가 있다. 실제로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 있는 독일은 사고자를 돕는 행위를 법적 의무로 봐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법적 의무가 아니라 도덕적 양심에 관한 문제라고 여기는 듯하다.

◆ 교통사고와 착한 사마리아인 법

그렇다면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교통사고 때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독일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빌트(Autobild)는 이 법을 이해하기 쉽도록 하나의 예를 들었다. 

교통사고 현장에 계십니까? 그렇다면 무조건 경찰에 연락을 취하는 게 우선입니다. 물론 사건이 크지 않은 가벼운 것이라면 상관없지만 인명 피해가 있거나,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라면 당신은 신고 후라도 현장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됩니다.

만약 사건을 목격하고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갔다면 당신은 나중에 경찰의 방문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옷이 더럽혀지는 게 싫어서, 아니면 약속이 있어서 라는 등의 변명을 하면 당신은 경찰로부터 벌금고지서를 발급하거나, 심한 경우 법정 출두도 각오해야 할 겁니다.

정말 도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당신은 당신 외의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 자리를 떠야 합니다. 당신이 목격자로서의 의무를 다 하다 혹시 다치거나 차량이 파손되었다면 이는 보험으로 처리하면 됩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기본적으로 보험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만약 당신 차에 있는 소화기를 이용해 사고차량의 불을 껐다면, 사용된 소화기는 피해차량 보험회사에서 새것으로 교체할 수 있도록 비용을 지불합니다. 당신이 피해자를 돕다가 실수를 하면 어쩌나 걱정되나요? 이런 경우, 만약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 어떤 법적 책임도 묻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기억해 둘 것은, 당신의 도움을 사고 피해자들이 받아들일지 먼저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들이 당신의 도움을 거부하거나 다른 방법을 요구한다면 그 의견에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현장에선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도움이 절실한 상황임에도 당신이 현장을 그냥 외면하고 지나쳤다면, 당신은 벌점 5점을 받고 1년간 집행유예, 아니면 그에 준하는 벌금을 물게 될 것입니다. 사건 현장 주변의 구경꾼들 역시 구조행위를 방해한다면, 위와 비슷한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내용은 운전면허학원 등에서 교육을 받는다. 면허 취득을 위한 가장 먼저 해야 할 과정도 응급처치 부분이고, 또 유럽의 모든 자동차에는 응급처치할 수 있는 구급키트가 모두 포함돼 있다. 또한 이 응급키트는 유통기간이 있어서 자동차 검사 때 이 부분도 함께 체크하고 현장에서 바로 새 것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 착한 사마리아인 법 적용 가능할까?

착한 사마리아인 법의 핵심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교통사고를 목격하고도 그냥 현장을 빠져나오게 될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고자를 돕다 문제가 발생했어도 그 내용을 따져 면책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는 것이다.

▲ 교통사고를 목격했을 때면 그냥 지나칠지, 119에 신고만 할지, 적극적으로 도와줄지 고민이 된다(출처 치우천황 71 블로그)

그런데 우리나라는 후자만 다루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 면책에 포함되는 행동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고, 이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되려 피해를 볼까 두려워 아예 나서지 않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됐다. 

이런 모호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착한 사마리아인 법, 혹은 그와 비슷한 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설령 착한 사마리아인 법 제정에 반대의 목소리가 더 크더라도, 국민의 관심을 모을 수 있도록 공론화시켜야 한다. 물론, 법이 만능은 아니지만, 적어도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것인지 여부는 따져 봤으면 좋겠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저줄 때마다 지갑이 없어졌다고 경찰에 신고한다면, 물에 빠진 사람의 생존율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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