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페라리 캘리포니아, 인제 서킷에서 달려보다
  • 김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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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8.11 13:17
[시승기] 페라리 캘리포니아, 인제 서킷에서 달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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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쿵떡쿵떡 뛰고 등에는 땀이 쏟아져 셔츠가 젖는다. 그런데도 자꾸만 히죽히죽 웃음이 새나온다. 비록 의사는 아니라도 도파민이라던가 아드레날린이던가 하는 마약과 다름 없는 물질들이 마구 분출 된다는건 알수 있을 정도다.

직선 도로를 달릴 때는 말 그대로 미친듯한 가속력을 보여줬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니 천둥 소리 같은 배기음과 매서운 진동이 온몸을 휘감는다. 펜스 너머의 관람객들 여럿이 스마트폰을 꺼내 연신 내가 탄 차의 사진을 찍는다. 

뭐라도 된듯 우쭐한 허영심도 잠시, 코너에 들어가기 전 주춤주춤 어설픈 급제동을 한다. 서툰 조작에도 아랑곳 않고 카본 세라믹 컴포지트 브레이크는 "쿡"하는 외마디 소리만 내고서 차를 딱 시속 100km까지 감속시켰다. 

코너 중간부터 가속페달을 밟는데, 워낙 출력이 높고 8500RPM이라는 고회전까지 사용하는 엔진이다보니 페달을 밟는 정도에 따라 그립을 잃었다 찾아왔다 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물경 3억원이 넘는 차가 그립을 잃었다 찾아올때면 마치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인제 서킷에서 노란 페라리를 타고 달리는 느낌은 그런 것이었다. 

페라리 캘리포니아를 주차한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날 제네시스 쿠페를 몰던 한 운전자가 펜스를 들이 받는 사고를 일으켰다. 이후 참가자들의 주행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 캘리포니아, 사실은 가장 페라리 다운 자동차

캘리포니아를 흔히 '페라리 답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에게, 엔진이 앞에 달렸네"라거나 "무슨 페라리가 뒷좌석이 있냐"는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페라리에 별 관심 없는 초심자로 봐도 좋겠다. 2000년대 들어 등장한 페라리 중 뒤쪽에 엔진이 달린 차라고는 360, 430, 458으로 변화 된 8기통 라인과 엔초, 라페라리 같은 소량 생산차 밖에 없기 때문이다. 태초의 페라리 250부터 앞엔진과 2+2의 넉넉한 실내 공간은 사실 페라리 스포츠카의 주류를 차지해왔다.

캘리포니아가 페라리 답지 않은 부분은 오히려 미끈한 전동식 하드톱 컨버터블이라는 점이다. 평상시는 단단해 보이다가 단 14초면 알루미늄제 뚜껑이 쓱하고 열린다. 또 직분사 엔진에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페라리에 처음 도입해 '클러치가 자주 고장나는 자동차 브랜드'라는 오명을 씻게 된 점도 캘리포니아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를 필두로 지금은 페라리 전 차종이 듀얼클러치를 사용하는데다 458 같은 경우는 캘리포니아보다 개폐가 빠른 하드톱 컨버터블을 얹기도 했다. 캘리포니아는 가장 페라리 다울 뿐 아니라 페라리의 미래 방향까지 주도하는 셈이다. 이번에도 캘리포니아T가 요즘 페라리로는 처음으로 터보엔진을 장착했고, 장차 페라리의 상당수가 터보엔진을 장착하게 될거라는걸 쉽게 유추 할 수 있다. 

◆ 캘리포니아, '남자 둘이 타는 차'

이곳 인제 서킷까지는 차를 '렉카차'에 실어 옮겨왔다. 캘리포니아가 비록 편안한 차지만, 페라리는 편안함을 위해서 운전의 즐거움을 희생하지 않는 브랜드여서다. 쉽게 말해 제 아무리 데일리카라지만 막히는 도로를 장시간 운전하려면 힘들다는거다. 

 

우선 소음도 크고 진동도 만만치 않다. 두어시간을 운전하고 나면 정신이 다 멍하다. 자동변속기지만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전진하는 크리핑 기능이 없어서 가다서다를 반복하려면 페달을 빈번하게 조작해야 할 뿐 아니라, 조금씩 울컥거림도 생긴다. 

비록 엔진도 앞쪽에 있지만 워낙 실내로 바짝 들어와 있는 프론트 미드십(FMR)구조라서 밸런스(47:53)는 좋지만 편안하지만은 않다. 엔진과 변속기에서 후끈 내뿜는 열기로 금세 실내가 더워지기도 한다. 더구나 엔진에 안방을 내준 셈이니 운전석은 뒤로 밀리고, 뒷좌석은 있는 둥 없는 둥 한다.

사실 있으나 마나한 뒷좌석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차의 활용도가 크게 넓어지기 때문이다. 짐을 트렁크가 아닌 뒷좌석에 실을 수 있으니 거주성이 훨씬 향상된다. 물론 그보다는 긴급상황에 유용한 점이 더 두드러진다. 이를테면 남자 둘이 해운대라도 놀러갔다가 갑자기 아가씨들이라도 태워야 하는 경우라면 이 공간이 정말 눈물겹게 고마울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 차는 458과 달리 의자가 뒤로 젖혀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오늘은 그저 남자 둘이었다. 더구나 인제 서킷데이에는 남자들만 수백명이 우글거려 마치 군대에 다시 온 듯 좌절감마저 든다. 차라리 여자친구를 데리고 와서 아반떼를 모는 운전자를 힐긋 쳐다보게 된다. 하지만 캘리포니아는 남자 둘이 타는게 제격인 차다. 언제고 가능성이 열린 차기 때문이다. 뭐, 그런식으로 위안하기로 했다. 

 

◆ 서킷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도로에선 최고일수도

"고오옹"하는 소리가 서킷 전체를 울려퍼지도록 가속하자면 물론 세상 최고가 된 것 같이 고조된 기분이 든다. 전체가 알루미늄 합금으로 된 탄탄하고 가벼운 차체에 얹힌 460마력 엔진은 시속 100km까지 가속을 3.9초만에 끊고 최고속도 310km/h를 넘는다. 물론 이런 수치들이 페라리에는 별 의미가 없다. 앉아서 한번 가속페달을 밟으면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관능적인 자극과 매력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물론 직선 주행 느낌은 그렇지만 코너에서의 느낌이 '최고'까지는 못되는 점은 아쉽다. 인제 서킷은 워낙 고저차가 크고 차 뒷바퀴를 미끄러뜨리면서 거칠게 도는편이 빠른 코너도 있다. 458이라면 그대로 가속하며 돌 수 있을 코너도 반드시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서야 돌아나가야 했다. 458에 비해 시트포지션이 약간 높은데다 전체 세팅도 좀 느슨한 느낌이 들어 코너에선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하지만 평상시 도로에선 좀 더 여유롭고 편안한 느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주변 사람들을 페라리에 태우면 대부분 세번은 놀란다. 너무나 편한 승차감 때문에 놀랐다고 하고, 지나치게 조용해서 또 놀랐다고도 한다. 물론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을때 가장 놀란다. 이렇게 편안한 차가 이렇게 박진감 넘치게 달린다니 놀랄만도하다. 

사실 458처럼 좀 폭력적이고 금욕적으로 레이스에 몰두하는 페라리가 아니라 완만하고 신나는 느낌의 페라리. 매일 출퇴근에 이용하고, 항상 곁에 지닐 수 있어 언제고 스포츠 주행을 즐길 수 있는 머신이라는 점이 페라리 캘리포니아의 특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장점

- 폭포수 같이 쏟아지는 풍부한 배기음과 진동

- 천장이 열리고, 뒷좌석이 있고, 젖혀지는 앞좌석 시트. 물론 그래도 안생긴다.

- 이 차, 페라리다

◆ 단점

- 조악한 내비게이션과 실내 

- 약간 높은 시트포지션과 페라리 치고는 느긋한 주행감각 

-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따갑다. 페라리 전문가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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