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벤틀리 컨티넨탈 GT V8, 최고의 끈을 놓지 않았다
  • 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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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7.16 15:52
[시승기] 벤틀리 컨티넨탈 GT V8, 최고의 끈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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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는 명차를 얘기할 때 언제나 빠지지 않는 브랜드지만 꽤나 힘든 길을 걸어왔다. 초호화, 고성능차만 고수하다보니 미국 대공황, 오일쇼크, 유럽 경제위기 등과 같은 전세계적인 경제 역풍에 휘청거리는 일이 많았고, 경쟁 브랜드인 롤스로이스에 인수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롤스로이스 밑에서 벤틀리는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다. 롤스로이스는 벤틀리를 마치 서자처럼 대했다. 벤틀리 말살 정책에 60여년간 발전은 더디기만 했고, 정체성도 점차 잃어갔다. 하지만 롤스로이스도 경제 위기를 버티지 못했다. BMW와 폭스바겐이 롤스로이스 인수에 힘을 쏟았고, 결국 폭스바겐은 롤스로이스 산하에 있던 벤틀리를 인수했다. 벤틀리에겐 새로운 기회가 온 셈이다. 더욱이 폭스바겐은 영국 공장도 사들였고, 숙련공들도 데려왔다. 

폭스바겐그룹이 벤틀리를 인수한 후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벤틀리의 전통과 역사를 되살리는 것. 같은 해 폭스바겐그룹으로 편입된 부가티와 동일한 길이다. 막강한 자본력과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복원 프로젝트는 시작됐고, 이내 벤틀리는 컨티넨탈 GT와 플라잉스퍼를 내놓았다.

 

컨티넨탈 GT와 플라잉스퍼는 누구보다 빠르고 호화로운 차를 만들던 벤틀리의 전통이 고스란히 담겼다. 비록 폭스바겐 페이톤의 플랫폼 위에서 탄생했지만 거대한 W12 엔진, 찬란했던 시대의 벤틀리 모델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과 호화로움, 장인 정신 등은 벤틀리의 신차를 더욱 빛나게 했다.

이미지 쇄신이나 판매에 있어서 벤틀리는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이제는 시대적 요구를 받아들일 정도로 여유로워졌다. 이를 설명하는 차가 신형 컨티넨탈 GT V8이다. 비록 갈수록 엄격해지는 환경규제에 엔진은 작아졌지만 벤틀리는 말한다. “W12든 V8이든 벤틀리는 벤틀리”라고.

◆ 디자인과 기술력이 조화 이룬 하나의 완성체 

잘 만들어진 공예품이 그러하듯 완전한 하나의 덩어리같다. 벤틀리의 전통적인 디자인 특징을 현대적으로 잘 해석한 점도 고무적이다. 다른 브랜드를 보면 전통만을 고집하다 최신 경향에 동떨어진 경우도 있는데 컨티넨탈 GT의 디자인은 절묘하다. 옛날 사람들이 와서 보거나 수십년이 지난 미래의 사람들이 봐도 충분히 벤틀리라 여길 정도다.

 

도로 위에서의 존재감도 확실하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LED 주간주행등과 격자 무늬가 새겨진 거대한 그릴, 너비가 무려 2미터에 조금 못미치는 거대함은 오히려 주변 운전자들의 가슴을 졸이게 한다. 원형 헤드램프와 차체의 곡선이 이전 모델과 조금 달라졌다고 하는데, 크게 와닿진 않는다. 벤틀리도 급격한 이미지 변화를 노린 것 같진 않다.

 

매끈한 루프 라인은 컨티넨탈 GT를 더욱 빛나게 한다. 최근들어 쿠페를 가장한 세단이 늘고 있지만, 엄연히 그들과 차원이 다르다. 진짜 쿠페의 아름다움이 담겨있다. 지붕 가장 높은 부분에서부터 트렁크까지 부드럽게 내려앉다 두툼한 팬더와 만나는 라인은 컨티넨탈 GT의 핵심이다.

뒷모습은 전형적인 벤틀리다. 가로로 길게 누운 타원이 포인트다. V8 모델은 머플러도 마치 누운 ‘8’자 모양으로 변경됐다. 뒷유리의 한 면을 가득 채운 제동등은 마치 '벤틀리를 앞에 두고 갈땐, 운전에 각별히 신경쓰라'고 말하는 것 같다. 

 

벤틀리는 고급도 아닌 최고급 쿠페 및 세단을 만들어 온 브랜드다. 단순히 비싼 재료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시대 최고의 기술력에 미학을 더해 차를 만들었다. 즉 예술적인 가치도 벤틀리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인 셈이다. 특히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보이는 이유는 미를 위한 기술력에서 발휘된다. 항공기 제작에 주로 사용되는 ‘슈퍼 포밍(Super Forming)’ 기술이 사용됐다. 거대한 한판의 알루미늄을 이음매 없이 찍어서 만들었다. 헤드램프 주변부터 휀더까지가 한판이다. 덕분에 조각처럼 미세한 선이나 굴곡을 연출할 수 있을 뿐더러, 웅장함과 견고함까지 발휘된다.

◆ 작은 버튼 하나까지 직접 손으로 갈고 다듬었다

엔진은 작아졌지만 벤틀리는 여전히 벤틀리다. 호화로운 실내 꾸밈만 보고도 부자들은 수억원을 지불할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몇몇 버튼을 제외하면 최고급 가죽과 얇게 자른 나무의 표면을 겹겹히 쌓아 만든 패널, 세공품처럼 정교하게 깎아놓은 알루미늄 등으로 뒤덮였다. 전통적인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최고급 소재를 사용한 실내의 감촉이나 향기, 조작감 등은 호불호를 따지는 것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감히 왈가왈부할 물건은 분명 아니다.

 

A필러와 천장, 바닥 매트 등의 감촉도 예사롭지 않다. 웬만한 세단보다 넓은 트렁크의 바닥이나 안쪽 면도 일반적이지 않다. 손을 대고 볼을 문지르고 싶을 정도로 부드럽고 폭신하다. 또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나 손이 잘 닿지 않는 부분, 이를테면 시트와 센터 콘솔 사이의 깊은 골짜기나 시트 밑바닥, 대시보드의 안쪽까지 철저하게 벤틀리식으로 마감됐다. 컨티넨탈 GT의 실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대략 10마리의 소가 필요하다고 한다.

 

손이 자주 닿는 부분은 말할 것도 없다. 묵직한 스티어링휠의 감촉이나 더듬이 같은 패들시프트, 두툼한 기어노브, 자꾸 엉덩이를 올리는게 미안하게 느껴지는 가죽 시트 등은 거주성을 높이는 일등 공신이다. 심지어 차에서 내리기 싫을 정도다. 또 주문 제작 방식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반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자유도도 높다.

계기반을 통째로 디지털화 하는 것이 최신 경향이지만, 벤틀리는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누구보다 영롱하다. 묘한 신비감마저 든다. 폰트나 세부적인 디자인, 색감 등에는 절대로 디지털이 따로 올 수 없는 멋이 있다.

 

폭스바겐의 향기가 풍기는 몇몇 부품과 디자인은 옥의 티다. 또 인포테인먼트 및 차량 설정 인터페이스는 너무 구닥다리다. 전통적인 멋도 좋지만 최첨단 기술을 도입할 필요성도 느껴진다.

◆ 풍족한 힘과 부드러움, GT의 교과서

컨티넨탈 GT에는 그동안 6.0리터 W12 엔진만 장착됐다. 새롭게 장착된 4.0리터 V8 트윈터보 엔진은 친환경을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에 발 맞추고, 저변 확대를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최고출력 507마력, 최대토크 67.3kg.m의 성능을 발휘하는 V8 엔진은 아우디가 고성능 S모델을 위해 제작한 것인데, 벤틀리가 더 풍족하게 성능을 높였고, 격렬함보다는 부드러움이 강조됐다.

 

아무리 여유롭고, 부드럽다고 한들 507마력의 최고출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시속 340km까지 적힌 계기반은 결코 허황되지 않았다. 일단 차를 출발 시키면 2톤이 훌쩍 넘는 육중한 무게는 어느새 잊혀진다. 막힘없이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제한속도까지 더없이 부드럽고 차분하게 다다른다. 비록 배기량은 낮췄지만 벤틀리의 이미지를 깎아내리지 않으면서 성능과 연료효율성을 동시에 챙겼다고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GT, 그랜드 투어링은 장거리 여행을 위해 태어났다. 먼 목적지까지 빠르게 도달하는 것은 물론이며, 긴 여정에서의 스트레스도 적어야 한다. 또 수납공간이나 화물 적재공간도 충분해야 한다. 컨티넨탈 GT는 이 시대의 GT 중에서 가장 교과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편안함에 있어서는 독보적이다. 벤틀리 중에서 가장 스포티한 모델임에도 거동은 진중하고 진동이나 소음은 극도로 정제됐다. 속도가 낮든 높든, 소음의 유입량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메르세데스-벤츠의 편안함과는 분명 질이 다르고, 페라리 캘리포니아에 비해서는 한층 성숙하다. 

그간 장착되던 6단 자동변속기가 8단으로 교체된 것도 이에 한몫한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ZF의 것을 쓴다. 에어 서스펜션을 통해 차체의 높낮이와 댐퍼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 댐퍼 강도는 4단계로 조절이 가능한데, 스포츠 모드로 설정해도 여전히 부드럽다. 급격하게 하중이 쏠리는 상황만 아니라면 그 변화를 알아채긴 힘들다.

 

조용한 실내에는 V8 트윈터보 엔진의 독특한 소리만 울려퍼진다. 벤틀리를 타면서 배기음에 매료될지는 미처 생각 못했다. 엔진 회전수에 따라 옥타브가 미묘하게 바뀌며 심금을 울린다. 무자비하게 기름을 쓰며 달리면 V8 엔진 특유의 남성미 넘치는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이와 반대로 평소에는 장엄한 소리로 품격을 높인다. 벤틀리도 엔진과 배기음에 대한 자신이 있었는지, 컨티넨탈 GT V8의 여러 특징 중에서 이와 관련된 티저 영상을 가장 먼저 공개하기도 했다.

 

운전의 재미는 그리 크지 않다. 출력만 보고 여느 스포츠카의 맛을 기대하면 적잖이 실망할 수 있다. 한계치는 높지만 민첩하거나 빠릿한 면은 분명 부족하다. 그렇다고 손가락질 당할 정도는 아니다. 단지 코너에서는 체중이 크게 느껴질 뿐, 사륜구동 시스템을 통한 안정감이나 제동성능 등도 고성능 엔진을 감당하긴 충분하다. 사륜구동 시스템은 앞바퀴 40%, 뒷바퀴 60%으로 구동력을 배분한다. ESP 버튼을 한번 누르면 다이나믹 모드가 활성화되고 노력 여하에 따라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잘 맞는 옷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또 굳이 GT를 타면서 극적으로 몰 필요가 있나 싶다.

 

◆ 거칠 것 없는 컨티넨탈 GT의 질주

마땅한 경쟁 모델이 없는 점도 컨티넨탈 GT 인기에 날개를 달았다. 메르세데스-벤츠나 BMW도 독자적인 고객 주문 생산 방식을 채용하곤 있지만 벤틀리의 자유도나 고급스러움에 비할 수준은 못 된다. 또 페라리나 마세라티, 포르쉐 등의 스포츠카 브랜드는 결코 이처럼 편안하지 않다. 

벤틀리는 해마다 역대 최다 판매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지난해엔 1만대를 돌파했고, 국내 시장에서도 164대를 판매하며 역사상 최고의 해를 보냈다. 단연 컨티넨탈 GT의 활약이 컸다. 애당초 벤틀리가 두 모델을 만들었을 땐, 플라잉스퍼가 돈을 벌고 컨티넨탈 GT가 이미지를 이끄는 것이었다. 하지만 컨티넨탈 GT에 대한 반응은 예상 외로 뜨거웠고 수익적인 측면에서도 좋은 성과를 끌어냈다.

이젠 V8 엔진을 적용해 가격 문턱까지 낮추며 더 많은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 유혹은 치명적이고 별다른 방안도 없다. 고급스럽고, 편안하며, 빠르기까지 한 쿠페를 찾는다면 답은 컨티넨탈 GT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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