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세단' 타고 서킷 달려보니…'제네시스야, 미안하다!'
  • 전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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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7.11 21:55
'제네시스 세단' 타고 서킷 달려보니…'제네시스야,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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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5m가 넘는 커다란 덩치, 2톤에 달하는 육중한 몸으로 서킷을 달리려면 얼마나 힘들까. 매 코너마다 비명을 지를게 너무 뻔했다. 엔진부터 변속기, 브레이크, 타이어까지 과연 제네시스가 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됐다. 주변을 둘러싼 선수들도 걱정이 많았다. "정말 이 차로 주행하시려구요?" 

▲ 현대차 제네시스로 인제스피디움서킷에 도전했다

그러나 미안한 마음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현대차는 제네시스의 섀시와 서스펜션을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로터스와 함께 가다듬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의욕이 불끈 솟았다. 서킷을 어디까지 소화 해낼지 궁금해졌다. 

지난달 29일 험준하기로 이름난 인제스피디움 서킷에서 열린 베스트랩 트랙데이, 그곳에 제네시스를 가지고 가서 신나게 달렸다.

◆ 험난한 인제 서킷, 스포츠카 사이의 제네시스

행사 당일,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스피드 마니아들이 최고의 스포츠카들을 몰고 인제스피디움에 모였다. 미니에서부터 M3, 로터스, 포르쉐, 람보르기니, 페라리까지... 서킷을 달리고 싶어 안달 난 150여대의 스포츠카가 함께 모인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덕분에 눈은 호강했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들었다. 과연 제네시스가 저들 사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까.

▲ 베스트랩 트랙데이에 페라리 458 이탈리아가 집결했다. 다행히 스마트 한대도 눈에 띈다. 

인제스피디움은 국내 여러 서킷 중에서도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곳이다 보니 걱정은 더욱 컸다. 약 3.96km 구간의 인제서킷은 강원도 산간지대에 만들어져 그동안 국내 서킷에서 볼 수 없던 급격한 고저차와 다양한 코너를 갖췄다. 속도가 붙을 때쯤엔 어김없이 블라인드 코너(앞이 보이지 않는 코너)가 나타나고, 대부분의 헤어핀(180˚가량 꺾이는 급코너)은 고저차가 매우 커서 단 한 순간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는다. 

▲ 인제스피디움서킷

그래도 인제서킷은 여러 번 달려본 경험이 있어 코스에는 자신이 있었다. 또, 이미 제네시스를 수천km 주행하며 차의 특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파악된 상태였다. 민폐가 될지는 모르지만, 뒷차에 길만 잘 비켜주면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제네시스에 올라탔다(3.3 AWD 모델). 

◆ 예상보다 굼뜬 가속 성능…제동력은 나쁘지 않은편

첫 바퀴는 연습 삼아 천천히 주행했다. 인제서킷의 마지막 코너는 급격한 내리막이다. 여기서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 속도를 최대한 높였다. 이 650m의 구간은 인제서킷에서 얼마 되지 않는 직선 도로로, 내리막까지 더해져 가장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곳이다. 

▲ 인제스피디움서킷에서 가장 긴 직선구간. 초반 가속력을 굼떴지만 어느새 시속 200km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나름 빠르게 코너를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차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굼떴다. 워낙 무거운 탓인지 내리막 직선 구간인데도 초반 가속력이 더디게 느껴졌다. 엔진은 상당히 신경질적으로 날카로운 소리를 냈지만, 그에 걸맞은 가속감을 보여주진 못했다. 평소 제네시스를 탈 때는 주행 성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았는데, 서킷에서 2톤의 차체를 민첩하게 움직이려니 3.3 엔진(282마력, 35.4kg·m)으로는 쉽지 않았다.  

▲ 제네시스도 쟤들처럼 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더딘 가속에도 불구하고 속력은 꽤 꾸준히 늘었다. 직선구간이 끝날쯤에는 어느새 시속 200km에 도달했다. 브레이크를 밟았을때 스포츠카처럼 제동하는건 아니었지만 꽤 안정적으로 속도가 줄어 자신있게 스티어링휠을 돌릴 수 있었다. 국산 대형 세단임을 감안하면 제동력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나 풀 브레이킹을 두어차례하니 역시 맥이 빠진다. 열을 쉽게 받아 페이드(Fade)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 첫 코너부터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차체 균형은 잘 잡아줘

분명 충분히 속도를 줄였다. 인제 서킷 첫 코너는 앞이 보이지 않는 내리막 급코너여서 제때 제동을 하지 않으면 코너에서 벗어나 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안전운전을 했다. 그런데도 타이어가 비명을 질렀다. 차가 크고 무거운 탓에 스티어링휠과 차체의 움직임에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이어지는 오르막 코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속이 굼떠 나도 모르게 가속페달을 더 세게 밟게 됐고, 덕분에 번번이 언더스티어가 발생했다.  

▲ 인제스피디움서킷. 고저차가 크고 블라인드 코너가 많아 공략이 어렵다

다음은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오른쪽 헤어핀 코너. 급히 핸들을 돌리자 어김없이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며 차가 중심을 잃는 듯 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VDC(차체 자세 제어장치)가 순식간에 차체 균형을 맞춰줬다. 출발 전 TCS와 VDC를 모두 껐지만, 기능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위험이 감지되면 강제로 개입하게 설정된 듯했다.

▲ 제네시스와 로터스 엑시지. 따라잡을 수 있을까? 포기.

이어지는 내리막 코너. 속도를 줄이면서 패들시프트로 기어 단수를 낮추고 다음 오르막 코너를 준비했다. 역시나 힘이 부족하고 가속력이 아쉬웠다. 스포트 주행 모드 상태에서 신경을 집중해 회전수를 최대 마력이 나온다는 6000rpm 정도로 맞춰 달려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무게 때문에 가속도 더디고, 코너 그립력에도 한계가 있어서 눈물을 머금고 레코드 라인에서 벗어나 뒤따르던 스포츠카들에게 길을 양보해야만 했다. 

◆ 평지에서는 기대 이상으로 뛰어나…일상 주행에서는 '굿'

그러나 평지에 들어서자 제네시스의 주행 능력은 기대 이상으로 뛰어났다. 오르막 구간을 빠져나오면 인제서킷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펼쳐진 200m 가량의 직선도로가 나오는데, 살짝 굽은 코너로 이어지지만 휘어진 각도가 그리 크지 않아 계속 가속하면서 달릴 수 있었다.

경사가 큰 내리막이나 오르막 코너와 달리 평지에선 차체 균형도 매우 잘 잡았다. 가끔 무리한 핸들링을 시도하다 차체 뒤가 흔들리기도 했지만, 전자장비가 개입해 중심을 잘 잡아줬다. 이 코스는 인제 서킷에선 가장 무난한 수준에 속하지만 일반 도로 기준으로는 무척 거친 편이다. 

▲ 인제스피디움 한편에 마련된 드리프트 연습장. 제네시스로는 도저히 무리였다

그러나 짧게 굽이진 코너를 공략하는 것은 다소 부담스러웠다. 차체가 무거운 데다가 휠베이스도 워낙 길고 넓어 민첩하게 꺾이지 않는다. 타이밍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언더스티어가 났다. 물론 스포츠카처럼 날렵한 핸들링으로 타이어 접지력을 유지하며 빠져나올 것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스티어링휠을 돌릴 때마다 타이어에서 비명을 지르고 차체 균형이 흐트러지니 불안한 마음이 들어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일반적인 도로에서 시속 80km로 코너를 돌때는 꽤 안정적이라고 느꼈는데, 그와는 전혀 다른 거동이다. 

▲ 타이어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열심히 달린 제네시스. 이젠 쉬러 가야지

이어지는 긴 내리막 코스는 제네시스를 타고 달리기에 가장 재밌는 구간이었다. 코너가 완만한 데다 제동력과 핸들링이 우수해 빠르고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었다.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아 속도를 줄이니 순간적으로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렸는데, 이때 스티어링휠을 부드럽게 돌리니 와인딩을 하듯 날렵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내리막에서 바로 오르막으로 이어지니 차체의 무게가 타이어를 눌러 그립을 도와주는 느낌도 들었다. 속도를 높일수록 회전 속도 한계가 더 높아졌다. 

▲ 제네시스의 순정 타이어인 한국타이어 S1노블2는 사이드월이 어김없이 무너지며 옆면까지 닳았다. 공기압을 조금씩 더 넣어 단단하게 만들고 주행하는게 바람직하다. 

계속된 서킷 주행에 변속 타이밍이 조금씩 늦어졌고, 브레이크 반응도 더뎌졌다. 오르막은 여전히 힘들어했고, 가속력도 굼떴다. 그러나 차의 크기와 무게를 감안하면 주행 성능이 꽤 훌륭했고, 위급한 순간에 빠르게 개입하는 전자장비의 성능도 탁월했다. 또, 스티어링휠과 서스펜션의 반응도 일관적이었으며, 차체 강성도 흔들림 없이 뛰어났다. 타이어는 아쉬웠지만, 끝까지 잘 버텨줬다.

다소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서킷에서 가혹한 주행을 해보니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제네시스의 새로운 모습을 알 수 있었다.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뉘르부르크링에서 다듬었다고 광고 했지만 그런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적어도 서킷과 어울릴 만한 스포츠 세단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이전의 국산차와는 사뭇 다르다. 브레이크나 핸들의 감각은 다른 국산차에 비해선 상당히 한계가 높은 편이다. 일반적인 운전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스포티한 느낌으로 타고 다니기에는 부족함 없는 대형 세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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