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틀리 자동차는 최고의 자동차를 만든다는 비전과 철학을 90여년간 계승해 오면서 오늘날까지 세계 최고의 명차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벤틀리의 '철학'은 압도적인 품위와 궁극의 퍼포먼스를 이상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라고 한다. 호사스러움의 극치만을 추구한 럭셔리 자동차가 아니라 궁극의 주행 성능을 발휘하면서도 최상의 안락함을 갖추는게 목표라는 설명이다. 

벤틀리의 이런 철학은 "남들이 중단한데서 우리는 출발한다(We start where others stop)"라는 생산 슬로건에서 잘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대량생산을 위해 컨베어벨트를 만들고 장인들의 개별 생산을 중단했을때 벤틀리는 역으로 수작업 방식을 더욱 강화했다는게 벤틀리의 설명이다.

소량 생산을 통해 개인 맞춤화가 고급 자동차 업계의 화두가 된 지금, 소비자의 입맞을 고스란히 맞춰주는 벤틀리 특유의 맞춤형 브랜드 '뮬리너'의 총 책임자 제프 다우딩(Geoff Dowding,54)을 만나 인터뷰 했다. 

◆ 벤틀리 뮬리너(Mulliner)는 무엇인가

▲ 벤틀리 뮬리너의 총 책임자 제프 다우딩이 "원하는 모든 색으로 가죽을 염색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색은 차를 주문했던 구매자가 갖고 있는 슈퍼카 람보르기니의 차체색이라고 했다.

인터뷰에 응한 제프 다우딩은 지난 35년동안 GM, 폭스바겐, 닛산, 포르셰, 할리데이비슨 등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에서 경력을 쌓아왔으며 지난 15년 간 벤틀리에서 활약해 오고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벤틀리 뮬리너는 국내서는 좀 생소하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 벤틀리보다 훨씬 더 역사가 긴 브랜드라고 한다. 1760년 프란체스 뮬리너라는 사람이 만들어 운영하던 코치빌더를 1900년대 들어 그의 후손인 HJ뮬리너로부터 벤틀리가 인수하면서부터 하나의 회사로 운영되게 됐다. 워낙 강한 캐릭터를 갖고 있어 영국에선 벤틀리 외의 독자적인 브랜드로 인식할 정도라고 한다.

차별화된 자신만의 벤틀리를 원하는 고객들이 증가함에 따라 뮬리너 사업부를 강화하고 있으며 잠재적 수익 가능성이 커진다고 보고 있다. 

본래 벤틀리 공장이 자리한 영국 크루(Crewe)에서는 장인들이 오랜 시간을 들여 수작업으로 차를 만드는데, 여기 비스포크(Bespoke) 방식인 벤틀리 '뮬리너' 옵션을 이용하면 원하는 이상과 취향대로 고객이 원하는 차를 만들 수 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벤틀리는 외관 페인트 컬러, 휠, 인테리어트림, 베니어, 시트, 벨트, 카펫 등 선택 가능한 요소들을 모두 조합하면 10억가지 이상의 조합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오더 메이드 프로세스는 주문 후 고객에게 인도까지 약 5~6개월이 소요된다. 고객은 차량을 결정한 후 각종 옵션을 선택하게 된다. 차량의 컬러에서부터 카페트의 종류와 색깔은 물론 시트를 꿰맨 실의 색상까지도 지정할 수 있다.

▲ 벤틀리 뮬리너 옵션으로 선택 가능한 옵션들의 예
 

벤틀리의 플래그십 모델인 '뮬산'을 예로 들면, 기본으로 제공되는 외관 페인트 색상만 총 114가지다. 인테리어에 사용되는 가죽은 총 24가지, 베니어 색상은 9가지, 카펫은 21가지가  기본 선택 가능하다. 고객은 해당 색상 및 재질의 샘플을 직접 보면서 원하는 색상의 조합을 선택하게 되며, 만약 본인이 원하는 특정한 재질 또는 컬러가 기본 구성에 없을 경우는 별도의 맞춤 오더를 통해 주문할 수 있다. 

▲ 벤틀리 뮬리너 옵션으로 선택 가능한 옵션들의 예

'원하는건 뭐든 만들어준다'는 정책 때문에 웃지 못할 헤프닝도 생긴다고 했다. 한 여성 구매자는 자신이 사용하는 매니큐어 색으로 차체를 칠해달라고 했고, 샘플을 달라고 하자 말없이 작업자의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고 그대로 가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작업자는 손톱의 매니큐어 색이 변하지 않도록 며칠동안 손도 제대로 못씻고 색을 분석해야 했다고 한다. 그만큼 '안되는건 없다'고 벤틀리 측은 강변한다. 

◆ '럭셔리'에서 가장 중요한건 '품질'

벤틀리의 품질에 대한 집념은 해도 너무하다 싶은 수준이다. 우선 벤틀리에 사용되는 가죽은 모두 장인들이 일일이 손으로 작업한다. 한명이 바느질을 한다면 한차량을 바느질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무려 37시간이나 된다.

가죽은 당연히 최고급을 사용하는데 벤틀리에 사용되는 가죽은 몇가지 조건이 더 따라 붙는다. '세미 에닐린'이라고 해서 가죽에 코팅이나 무늬를 찍지 않고 땀구멍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가죽만을 사용한다. 그러다보니 스칸디나비아 반도 등 추운 지방에서 자란 황소 가죽만을 사용해야 한다. 모기가 살 수 없을만큼 날씨가 추운 곳에서 자란 황소여야 벌레 물린 자국이 거의 없어 깨끗한데다 가죽이 탄력을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방목된 소만을 사용한다 울타리에 찔리면 역시 가죽에 상처가 남기 때문이다. 

모든 시트의 가죽 뿐 아니라 자동차의 핸들의 바늘땀까지도 장인의 손길을 거친다. 장인들은 독특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데, 일부는 전통적으로 음식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포크를 이용해서 구멍을 내는 방식을 고수하기도 할 정도다.

벤틀리의 제프 다우딩이 "자개를 이용한 소나무 그림까지 넣을 수 있다"면서 내장용 베니어를 들어보이고 있다.  

벤틀리는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풍부한 가죽 냄새를 고객들이 더 선호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특수 가죽 태닝 공법을 적용해 고유의 향기를 되살리기도 했다. 

뮬리너 옵션을 통해 맞춤 제작 된 경우는 더 엄격한 품질 기준을 내세운다. 우선 구매자의 옵션 및 색상의 선택이 완료되면 해당 자료는 영국의 크루 공장으로 전달돼 제작에 들어간다.

모든 작업들이 수작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한대를 완성하는데 300시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된다. 이 중 약 170시간이 인테리어 작업에 사용된다. 하루 8시간씩 작업한다고 가정했을 때 차량 완성까지는 40일에 가까운 시간이, 인테리어 작업에는 20일이 넘는 기간이 소요 된다. 또, 고객이 원할 경우 영국 본사인 크루 공장을 방문해 자신의 벤틀리가 제작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차량이 완성되면 검사 및 테스트 절차를 거치게 된다. 모든 차량에 대해 전문 인스펙터가 주문한 사항과 달라진 점은 없는지, 혹은 미세한 결함은 없는지 등을 살핀 후 최종 인도에 나서게 된다. 한국의 경우에는 한국 도착 후 다시 한번 세밀한 검사 과정을 거치게 되며, 최종 고객에게 인도가 된다고 한다. 

제프 다우딩은 "'럭셔리' 제품이란 대량생산이 아닌 '소수의 제품'이라는 인식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서 "대량 생산라인에 몇개 안되는 조합만 내놓고 '럭셔리'를 표방하는것은 옳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고급'이라면 당연히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적절하게 헤아려 내놓는 정성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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