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와 메르세데스-벤츠의 전동화 전략은 다르다. 벤츠가 EQ라는 별도 브랜드를 내세워 차별화를 시도했다면, BMW는 내연기관과 동일한 뼈대와 디자인을 갖춘 전기차를 만든다. 정답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누가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지 지켜보는 맛이 쏠쏠하다.

이번에 만난 i7 역시 BMW의 전략 그대로다. 신형 7시리즈를 똑닮아 얼핏 봐서는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다. 반대로 말하면 내연기관이든 전기차든 상관없이 7시리즈라는 것이다. 적어도 아이덴티티라는 관점에서 보면 BMW의 승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BMW i7 xDrive60
BMW i7 xDrive60

거대한 그릴과 각진 차체 디자인, 시원하게 뻗은 휠베이스 등 차가 커보일 수 있는 디자인 포인트를 잔뜩 품었다. 5.4m에 달하는 거구라는 것을 알고 봤음에도 거대함이 느껴졌다.

시승차는 투톤 컬러를 적용했다. 차체를 가로지르는 측면 캐릭터라인을 기준으로 상단부는 짙은 회색, 하단부는 검은색이다. 과거 마이바흐와 롤스로이스 등 초호화 세단에서나 볼 수 있었던 컬러 옵션이다. 커다란 덩치와 어우러져 더욱 고급스러워 보이는 효과를 준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i7의 진가는 더욱 드러난다. 뭔가 대접받는 기분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들이 다 럭셔리하다. 진정 플래그십이라면 이래야한다.

도어 캐처 옆에 까만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문을 열어준다. 바로 옆에 사람이나 차가 있더라도 걱정할 필요 없다. 차량 하부에 위치한 초음파 센서가 장애물을 파악하고 적절히 열어준다. 닫는 것도 자동이다. 대시보드에 있는 버튼을 가볍게 터치하기만 하면 된다. 문을 닫기 위해 허리를 숙이고 손을 뻗을 필요가 없다. 자동문은 전좌석에 적용됐다.

내부로 들어서면 화려한 앰비언트 라이트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BMW가 무드등에 인색하다는 주장을 비웃는듯 실내 곳곳을 화려한 앰비언트 라이트로 가득 채웠다. 최신 모델부터 적용되는 인터랙션바는 무드등과 어우러져 더 황홀한 실내를 연출한다. 손 닿는 곳 대부분은 고급 가죽을 둘렀고, 대시보드 일부를 리얼우드로 마감했다.

시트는 고급 직물 소재가 쓰였는데, 저가형 차량에 적용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캐시미어로 짠듯 부드러운 촉감이 일품이다. 가죽이 아닌데 이렇게 고급스럽게 만들수 있다는 점에 다시금 놀랍다. 소파에 앉는 듯 푹신한 착좌감도 무척 만족스럽다. 여기에 열선과 통풍은 물론 마사지 기능까지 빠짐없이 챙겼다.

가속 페달을 살며시 밟고 차를 움직였다. 엄청난 방음이 만들어내는 정숙성이 인상적이다. 전기차는 엔진음과 배기음이 없다 보니 주변의 소음과 풍절음, 노면 소음 등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들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i7은 두터운 방음재를 잔뜩 두르고 전체 유리를 모두 이중접합으로 마감해 조용하다. 좀 진부하더라도 '세상과 단절됐다'는 표현을 쓰고 싶을 정도다.

승차감은 두말하면 입아프다. 에어 서스펜션과 푹신한 시트가 만들어내는 최상급 승차감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무게 중심도 낮아 요철 등을 빠르게 지나갈 때도, 급격한 코너를 만났을 때도 전혀 불안하지 않다. 굳이 단점을 찾자면 무게인데, 시승하는 동안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유유자적 여유롭게, 진짜 플래그십을 누리고 있다는 안정감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BMW의 DNA는 여전히 살아있다. 시종일관 운전자의 눈과 귀를 압도한다.

당장 드라이브 모드를 변경할 때마다 인터랙션 바가 요동친다. 각 테마에 맞춰 매끄럽게 변경되는데, 단순히 앰비언트 컬러만 바뀌는게 아니라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디자인까지 짝을 맞춰 일체감을 준다.

아이코닉 사운드는 평소에 거의 들리지 않다가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독특한 전자음으로 나타난다. 드라이브 모드에 따라 톤이 조금씩 다르다. 노멀 모드에서는 가볍고 편안한 사운드를, 스포츠 모드에서는 극적이고 강렬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개인적으로 '익스프레시브' 테마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웅장한 영화 OST를 연상하는 스트링 사운드를 내 발끝에 맞춰 지휘할 수 있다.

뒷좌석 만족도도 100점이다. 긴 휠베이스(3215mm) 만큼 광활한 공간을 확보했다. 굳이 시트를 조작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머리, 무릎, 발밑 모두 여유롭다. 센터콘솔 조작부는 각 도어 패널에 있는 터치패드가 대신한다. 시트 조절은 물론 수많은 종류의 마사지를 세밀하게 조절할 수도 있다.

라운지 버튼을 누르면 항공기 1등석과 같은 공간을 만들 수 있다. 먼저 조수석이 움직인다. 의자가 앞으로 끝까지 밀려날 뿐 아니라 레일을 벗어나며 한단계 더 넓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키가 큰 사람도 발이 앞 좌석에 닿아 불편할 일은 없겠다. 이어 뒷좌석 등받이가 눕고 다리받침이 올라오고, 발받침이 튀어나오고. 이런 과정이 우아하게 이어진다.

2열에서도 직물 시트는 빛을 발한다. 푹신한 승차감에 잠이 스르륵 온다. 팔걸이를 올리고 소파처럼 눕고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화룡점정은 'BMW 시어터 스크린'이다. 지금까지 봤던 태블릿 사이즈와는 차원이 다르다. 도어 디스플레이에 있는 시어터 모드 버튼을 한번만 터치하면 뒷좌석의 모든 블라인드가 올라가며 프라이빗한 영화관으로 변신한다.

글래스 루프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디스플레이는 32:9 비율의 31.3인치 사양으로, 무려 8k 해상도를 지원한다. 5G e심을 적용해 끊김없는 콘텐츠를 즐길 수 있고, 터치를 지원해 콘텐츠 검색도 무척 쉽다. 35개에 달하는 바워스&윌킨스 다이아몬드 4D 시스템이 1965W급 출력으로 환상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정말 아쉽게도 시승차는 인터넷이 개통되지 않아 제대로 써볼 수 없었다. 그림의 떡이란 이런 것인가. i7 오너가 부러울 뿐이다. 

대형차의 연료탱크가 큰 것처럼 i7의 배터리 용량도 105.7kWh에 달한다. 덕분에 2750kg에 달하는 덩치로 455km를 달릴 수 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국내에서 저정도의 거리를 인증 받은 것은 대단한 일이다.  

시승하는 동안의 배터리 효율은 4.8km/kWh를 기록했다. 막히는 시내와 고속도로를 고루 달렸고, 일교차가 큰 탓에 냉방과 난방을 적절히 사용했다. 굳이 연비 운전을 하지 않더라도 500km를 넘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듯하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시승이었다. 고급진 승차감과 알찬 상품성에 더 바랄 게 없다. 이번 i7에는 BMW의 많은 고민이 엿보인다. 라이벌을 억지로 따라가기 보다는, 자신들이 잘하는 것들로 꼭꼭 채운 정성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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