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나긴 여정의 끝이 보였다.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5개의 정규 교육 프로그램 중 마지막 과정인 '현대 N 마스터즈'를 수강할 차례다. 코너 하나하나를 정복하고 자신의 한계를 찾아내며, 이를 돌파하는 게 최종 목표다.

현대차에 따르면 N 마스터즈는 모터스포츠로의 입문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 과정이다. 그만큼 페이스가 빠를 뿐 아니라 긴 호흡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참가자의 집중력과 체력 관리가 요구된다.

현대 아반떼 N=현대차
현대 아반떼 N=현대차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지레 겁을 먹었다. 직전 교육인 N 어드밴스드가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갑자기 빨라진 페이스도 부담이지만, 반복적으로 서킷을 주행하는 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꽤 큰 부담이다. 더군다나 최상위 레벨의 교육 시간은 이보다 훨씬 길다.

괜한 걱정이었다. 다행히도(?) N 마스터즈는 훨씬 긴 호흡으로 진행됐다. 짧은 시간에 바짝 달리기보다는, 휴식과 주행의 완급을 적절히 조절하며 이뤄졌다. 중식을 포함해 총 460분에 달하는 종일 교육이었지만, 부담은 오히려 적었다. 특히, 참가자가 2명으로 제한돼 인스트럭터와 더 많은 피드백을 주고받는 장점도 있다.

어김없이 이론 교육부터다. 최상위 교육이지만 차량 정보와 코스 설명 등 앞서 배운 내용의 반복이 이뤄진다. 마지막으로 안전에 대한 당부를 끝으로 차량에 탑승하면 본격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현대 아반떼 N R튠
현대 아반떼 N R튠

최종장의 파트너는 레벨3부터 함께한 아반떼 N DCT 모델이다. 차이가 있다면 대회용 스펙으로 꾸려진 'R튠' 차량이라는 점이다. 한국타이어의 고성능 '벤투스 RS4' 타이어와 대회용 브레이크 패드 '윈맥스 W5', 여기에 6점식 안전벨트가 장착된 버킷 시트, 롤 케이지 등이 추가됐다. 뿐만 아니라 각종 주행 데이터를 수집하는 전자 장비들이 곳곳에 추가돼 마치 진짜 레이스카를 보는 것 같다. 다만 엔진 성능은 일반적인 아반떼 N 차량과 동일하다.

자동차만 강화하는 것이 아니다. 참가자는 헬멧과 버킷 시트, 6점식 안전벨트에 더해 목베개처럼 생긴 특수한 장치도 장착해야 한다. '한스(HANS, Head and Neck Support)'라 불리는 것으로,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추돌했을 때 운전자의 목이 과도하게 꺾이는 걸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생명과 직결된 장치인 만큼, 포뮬러 원이나 랠리카 등 일부 프로 모터스포츠에서는 의무적으로 착용하고 있다.

장비를 다 착용하면 차량의 문조차 제대로 닫기 어려울 만큼 거동이 제한된다. 답답하고 불편했지만, 안전만큼은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결투에 나가는 검투사가 된 기분이다.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서킷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서킷

정찰 랩을 한 바퀴 돌았다. 이때 중간에 내려 코스 상태를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다. 참가자들은 육안으로 트랙 레이아웃을 살펴보고 노면 상태도 확인할 수 있다. 서킷 한가운데 두 다리로 설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짧은 순간일지라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이후 본격적인 주행이 시작된다. 별도의 몸풀기 없이 바로 서킷을 달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도 느린 페이스로 출발해 점차 빠르게 높여갔다.

한국타이어 RS4 타이어
한국타이어 RS4 타이어

R튠 차량의 성능이 놀랍다. 살살 달리는 것만으로도 아반떼 N 기본 모델과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브레이크 성능이 확실한데, 페달을 살살 밟더라도 생각 이상의 강력한 제동이 이뤄진다. 또한 빠른 속도에서도 전혀 불안한 거동 없이 깔끔하게 차량을 잡아세우는 모습에서 차량에 대한 믿음이 더욱 높아졌다.

여기에 N 어드밴스드에서도 맛봤던 고성능 하이그립 타이어까지 맞물린다. 경주용 차량이 만들어내는 퍼포먼스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몸소 깨닫는 순간이다.

아반떼 N R튠 차량을 통해 수집한 주행 데이터. 주황색이 인스트럭터, 파란색이 A참가자, 초록색이 B 참가자의 그래프다. 주황색 그래프와 일치할수록 주행 라인이 완벽해진다는 뜻이다.
아반떼 N R튠 차량을 통해 수집한 주행 데이터. 주황색이 인스트럭터, 파란색이 A참가자, 초록색이 B 참가자의 그래프다. 주황색 그래프와 일치할수록 주행 라인이 완벽해진다는 뜻이다.

수차례 반복 주행 후 피트로 복귀했다. 여기서는 차량에 부착된 데이터 로거를 통해 수집된 주행 패턴을 인스트럭터가 상세하게 분석해 준다. 그래프에는 스티어링 휠의 각도, 가·감속 페달 전개량, 중력가속도 등이 구체적으로 나와 어떤 지점에서 어떤 개선이 필요한지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피드백 과정이었다.

여기서 인스트럭터의 꿀팁이 마구 방출됐다. 모든 움직임은 저항이므로 최소한의 무빙을 통해 서킷을 공략해야 한다, 가속·브레이크·조향 이 세 가지가 각각 타이어의 한계를 나눠가져야 한다(강력한 제동과 과도한 스티어링이 동시에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스티어링 휠은 당기는 것보다 미는 게 더 세밀한 조작이 가능하다 등등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 깊이 와닿는다.

젖은 노면을 달리는 아반떼 N DCT=현대차
젖은 노면을 달리는 아반떼 N DCT=현대차

조언을 곱씹으며 다시 차량에 올랐다. 이번에는 젖은 노면을 달릴 차례다. 배수량이 적은 고성능 타이어로 젖은 노면을 빠르게 달리니 차의 주행 라인이 심하게 흐트러진다. 인스트럭터가 불안한 거동을 눈치챈 듯 "평소보다 브레이크를 일찍 잡고 스티어링 조향도 더 신경 써야 한다"는 무전을 날렸다. 

드라이 컨디션 타이어로 속도를 높이는 게 쉽지 않았다. 웻 타이어를 장착하고도 빗길을 빠르게 달리는 레이서가 새삼 존경스럽다. 프로의 세계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겸손하게 깨닫는다.

이어진 동승 주행에선 인스트럭터가 조수석에 앉아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해준다. 많은 도움이 됐는데, 특히 일부 코너에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스티어링 타각을 훨씬 더 많이 줘야 한다는 걸 배웠다. 또, 스티어링 휠은 고정한 채 가속 페달만으로 코너 탈출 각도를 조절하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쓰라는 조언도 들었다. 

HMG 고속 주회로
HMG 고속 주회로

점심을 먹고 다시 서킷에 올랐다. 배도 부르고, 나른해지는 날씨 탓에 졸음이 몰려올 때쯤 인스트럭터의 무전이 날아온다. "이 시간대가 집중력이 흐트러지며 사고가 날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휴식 시간에 스트레칭도 하고 맑은 공기도 마시면서 끝까지 집중해 주세요"

한차례 주행을 마친 뒤, 시원하게 뻗은 4.6km의 5차선 오벌 트랙을 달릴 기회가 주어졌다. 경사각이 최대 42도에 달하는 고속 선회주로는 그저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운전자를 압도한다. 워밍업 주행을 하며 점차 속도를 높여갔다. 최상위 교육답게 레벨3보다 더 높은 1.5차선까지 올라간다. 최고속도를 낼 수 있는 선회 구간에 들어서 계기판을 보니 속도계가 230km/h를 넘어섰다. 대각선 고속주행이라는 짜릿한 감각이 새롭다.

초고속 영역에서는 아주 작은 움직임도 큰 결과로 다가온다. 앞차에서 날아든 작은 파편에 놀라 아주 살짝 스티어링 휠을 조작했을 뿐인데 차가 크게 라인을 벗어났다. 고속 주행에서는 단 한순간도 방심해선 안 된다.

HMG 데이터 분석 영상. 각종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HMG 데이터 분석 영상. 각종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정비를 마치고 드디어 마지막 세션이다. HMG 서킷을 자신이 달릴 수 있는 최고의 페이스로 달려야 한다. 그간 배웠던 모든 스킬과 노하우, 인스트럭터의 조언을 상기하며 트랙에 올랐다. 페이스를 점점 높여가며 어택 랩(최고 기록을 내기 위한 주행)에 돌입했다. 숱하게 배웠던 공략법을 매 순간 떠올리며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빠르게 나아갔다.

가능한 모든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 덕분일까, 평소 어렵게 느껴지던 일부 구간도 다행히 큰 무리 없이 돌파했다. 최종 기록은 1분51초. 고속 연속 코너가 아쉬웠지만 그간 달렸던 그 어떤 세션보다 가장 빠르고 깔끔한 주행을 마쳤다. 쿨링랩을 돌며 서킷을 빠져나왔다. 얼른 끝내고 싶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미련이 남았다. 더 완벽하게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현대 아반떼 N=현대차
현대 아반떼 N=현대차

5개월에 걸친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를 마쳤다. 국산차 브랜드가 제대로 된 드라이빙 교육 시설과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교육에서 배운 스킬들은 단순히 서킷 주행뿐만 아니라, 일상 영역에서도 많은 도움을 준다. 교육을 마친 뒤 일반 도로를 달릴 때도 더 안전한 주행을 하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가장 추천하는 교육은 레벨2와 N 마스터즈다. 레벨2는 '자동차로 즐기는 액티비티'라는 초점에 가장 잘 어울리는 프로그램이다. 부담 없이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았다. N 마스터즈는 자신의 한계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N 어드밴스드와 달리 시간도 여유로워 몸도 마음도 보다 편하게 달릴 수 있다. 자신의 실력을 더 키우고 싶다면 어드밴스드보다는 마스터즈를 반복 수강해서 듣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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