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기차 등록대수가 30만대를 돌파했다. 첨단기술과 친환경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앞세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도 만만찮다. 짧은 주행거리와 충전의 불편함이란 제품적 불만이 있겠고, 전기를 만드는 과정부터 앞으로 쏟아질 폐 배터리 처리 문제 등을 이유로 친환경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최근에는 전기차의 무게도 새로운 걱정거리로 등장했다. 배터리가 너무 무거워 다양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다. 

현대차그룹 전기차전용 플랫폼 'E-GMP'. 차량 중심부를 배터리가 가득 채우고 있다.
현대차그룹 전기차전용 플랫폼 'E-GMP'. 차량 중심부를 배터리가 가득 채우고 있다.

전기차는 동급 내연기관차보다 무겁다. 현대차 쏘나타의 공차중량은 1435~1465kg인데, 동급 전기차인 아이오닉6는 1930kg로 500kg가량 더 나간다(이하 롱레인지 기준). 제네시스 G80 역시 전동화 모델(2265kg)이 가솔린 3.5 터보 AWD(1960kg)보다 300kg 이상 무겁다. 아이오닉5(1945kg)를 비롯해 기아 EV6(1945kg)와 테슬라 모델3(1830kg), 폴스타 2(2040kg) 등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전기차의 평균 공차중량은 2000kg에 가깝다.

무거운 이유는 배터리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의 77kWh 용량 배터리 무게는 약 450kg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2.0리터 가솔린 엔진은 평균 150kg 내외다. 변속기를 합치더라도 250kg을 넘지 않는다. 엔진과 변속기 등 내연기관의 수많은 부품이 빠졌음에도 배터리로 인한 무게 증가가 훨씬 크다. 

충전중인 제네시스 G80 전동화모델
충전중인 제네시스 G80 전동화모델

요즘은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 배터리 용량을 더 키우는 분위기다. 당연히 무게도 함께 늘어나고, 그만큼 에너지 효율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111.5kWh 배터리가 장착된 BMW iX는 2575kg, 107.8kWh 배터리가 탑재된 메르세데스-벤츠 EQS는 2590kg에 달한다. 참고로 S클래스의 무게는 사양에 따라 2090~2285kg이다. 300~500kg가량 더 나가는 셈이다. 

일단, 무거운 전기차는 각종 시설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주차장을 예로 들어보자. 내연기관차보다 약 300~500kg 정도 무겁다고 가정할 경우, 1000대 이상이 주차하는 대형 건물에 가득 차면 300~500톤이 더해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건축·설계 전문가들은 "대형 마트 주차장의 경우 자동차 같은 활하중(고정되지 않은 물체의 무게)의 무게를 3~5톤 정도로 잡기 때문에 당장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평소보다 100톤이 넘는 무게가 더해진다면 건물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안전 규제를 충족하지 못한 오래된 건물이라면 더 조심해야 한다"면서 "전기차가 늘어나는 것에 대비해 건축물에 대한 새로운 안전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울의 한 기계식 주차장. 허용 총중량이 1850kg에 불과하다.

전기차 무게 문제는 이미 기계식 주차장에서도 드러났다. 국토교통부 주차장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대형 기계식 주차장은 총중량 2200kg, 중형은 1850kg까지 허용한다. 이는 성인 5명(65kg*5)을 포함한 총중량 기준으로, 공차중량으로 따지면 허용 수치는 훨씬 줄어든다.

덕분에 2000kg에 달하는 대다수의 전기차들은 기계식 주차장을 이용하지 못한다. 아예 파란색 번호판을 달고 있는 전기차는 출입을 금지하는 기계식 주차장도 생겨나고 있다. 가뜩이나 화재 문제로 인해 전기차를 통제하는 주차장도 있는데, 무게로 인한 페널티까지 생긴 것이다. 

도로 환경에도 좋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무거운 차량이 많이 다닐수록 노면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져 재포장 등 유지·보수에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어간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상용트럭의 과적을 단속하는 이유 중 하나다. 

전기차 전용 타이어를 장착한 현대차 아이오닉5
전기차 전용 타이어를 장착한 현대차 아이오닉5

타이어 소비량도 늘어난다. 차량 무게로 인해 부하가 커지기 때문이다. 전기차용 타이어는 내구성을 보강해 일반 타이어보다 20~30% 정도 비싸다. 그럼에도 교체 주기는 2~3년 안팎으로, 통상 4~5년인 내연기관 타이어에 비해 짧다. 게다가 타이어 마모도 심해 더 많은 분진을 내뿜는다. 환경을 위해 태어난 자동차인데, 소모품을 자주 교체하며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상황이 발생한다.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공차중량 1500kg인 승용차의 무게를 10%가량 줄이면 연비는 4~6%, 가속성능은 8% 향상된다. 제동거리 단축, 조향능력 강화, 섀시 내구수명 연장, 배기가스 감소 등 다양한 효과도 나타났다.

결국 전기차도 다이어트가 필수지만, 배터리 무게를 줄이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같은 용량으로 더 멀리가기 위해서는 에너지 밀도를 높여야 하는데, 기술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당장 드라마틱한 발전이 어려울 뿐더러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상업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물론, 그때까지 판매된 전기차들은 여전히 무거운 덩치를 이끌고 도로를 누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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