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시승기] 볼보 신형 XC90, "예전의 볼보는 잊어라"
  • 전승용 기자
  • 좋아요 0
  • 승인 2016.06.24 22:02
[영상 시승기] 볼보 신형 XC90, "예전의 볼보는 잊어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엠블럼만 없으면 그 누구도 이 차가 예전의 그 촌스러웠던(?) 볼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앞으로 볼보의 역사는 신형 XC90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파격적인 변화다.

2010년, 볼보가 중국 지리(Geely) 자동차에 넘어갔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볼보는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볼보가 내세우는 '스웨디시 럭셔리'와 '중국'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 거대 자본의 힘은 예상보다 막강했고, 볼보는 불과 5년 만에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와 당당히 겨룰 수 있을 정도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줬다.

# 볼보, 이젠 디자인 때문에 산다

개인적으로 신형 XC90의 가장 큰 변화는 디자인이라 생각된다. 그동안 볼보는 안전 때문에 디자인을 포기해는 차였는데, 이제는 디자인 때문에 사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모습이다.

중국에서 흘러온 넉넉한 자금을 바탕으로 볼보는 능력 있는 디자이너들을 대거 끌어모았다. 2012년 폭스바겐에서 영입한 토마스 잉겐라트(Thomas Ingenlath)를 정점으로, 외관 디자인은 토마스와 함께 볼보로 건너온 맥스 미쏘니(Max Missoni)가, 실내 디자인은 벤틀리 출신의 로빈 페이지(Robin Page)가 맡았다. 

덕분에 신형 XC90은 기존의 촌스러웠던 옷을 벗어 던지고 말끔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외관은 매끄러운 라인을 잘 살려 '튀지 않는 고급스러움'을 추구했는데, 토르의 망치 주간주행등을 비롯해 그릴과 엠블럼, 범퍼 등에 새로운 디자인을 적용해 적절하게 포인트를 줬다. 테일램프도 콘셉트카인 XC 쿠페의 디자인 요소를 잘 유지해 세련된 느낌이다.

▲ 볼보 신형 XC90의 실내

실내는 파격적으로 깔끔하고 고급스럽다. 센터페시아 가운데에 9인치 모니터를 설치해 대부분의 기능을 터치로 이용하도록 했다.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각 기능을 직관적으로 배치하고 조작 단계를 최소화해 사용이 어렵지 않았다. 곳곳에 사용된 소재의 고급감과 감촉도 기대 이상인데, 상위 트림은 짐을 싣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트렁크까지 고급스럽다. 

# 비싸다고? 최첨단 기술이 모두 기본

신형 XC90의 가격은 8030~1억1020만원으로, 디젤 모델인 D5 AWD는 8030~9060만원, 가솔린 모델인 T6 AWD는 9390~9550만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인 T8은 1억1020만원이다(4인승 엑설런스는 1억3780만원). 

일부에서는 '볼보치고' 너무 비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구형 모델(D5)의 가격인 6920~7330만원과 단순 비교를 하면 1120~1730만원이나 올랐기 때문이다. 

▲ 볼보 신형 XC90의 실내

그러나 이 가격은 볼보가 자랑하는 최첨단 안전·편의 사양이 기본 장착됐기 때문이다. 이는 안전을 위한 볼보의 철학과 고집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신형 XC90은 새로운 플랫폼, 실내외 디자인 및 소재의 변화, 파워트레인 개선 등 여러가지 가격 인상 요인도 있었다. 높아진 가격을 생각하면 새로운 안전·편의 사양은 고급 트림에 옵션으로나 적용할만 한데, 볼보자동차코리아는 국내에 판매되는 모든 모델에 동일한 안전 사양을 모조리 집어넣었다. 

▲ 볼보 신형 XC90의 반자율주행시스템인 파일럿 어시스트Ⅱ 

이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기능은 반자율주행기술인 파일럿 어시스트Ⅱ(Pilot AssistⅡ)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 이탈 방지 시스템이 결합된 형태로, 시속 130km 이하에서는 스티어링휠 및 페달 조작 없이도 앞차와의 간격을 적절히 유지하며 주행을 이어나간다. 완전 멈춤 및 출발이 가능하고, 웬만큼 급한 코너가 아니라면 차선을 벗어나는 일도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 단단한 차체, '믿고 타는 볼보'…전기차까지 고려한 설계

XC90은 충돌테스트계에서 전설적인 모델이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조차 줄줄이 낙제점을 받던 미국 IIHS의 스몰오버랩 테스트에서 나온지 10년도 더 된 구형 XC90이 최고점을 받은 사건은 아직도 회자되는 일화다. 

▲ 안그래도 단단한 볼보가 더 튼튼해졌다

그런데 신형 XC90은 이보다 더 단단해졌다. 볼보가 새롭게 개발한 모듈형 플랫폼인 SPA를 사용해 만들어졌는데, 이전 모델에 비해 인장강도 80kg/㎟ 이상의 초고장력 강판(UHSS)이 5배 넘게 사용됐다. A필러와 B필러, C필러를 비롯해 탑승 공간을 감싸는 형태로, 후방 충돌을 대비해 트렁크 밑바닥 등에도 초고장력 강판이 들어갔다.

▲ 볼보 신형 XC90 T8

특히, 신형 XC90은 아직 나오지도 않은 전기차까지 고려해 차체 중앙에 배터리 공간을 만들어놨다. 볼보 측은 뒷좌석 탑승객의 시야 확보를 위해 뒤로 갈수록 시트 포지션이 높아지는 '극장식 배치'를 도입했다고 했는데, 배터리 공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뒤가 높아지도록 설계됐을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 볼보 신형 XC90. 3열 7인승 구성이다

# 엔진까지 모듈형…2.0리터급 엔진으로 무려 400마력

플랫폼뿐 아니라 엔진까지도 모듈형이다. 배기량 2.0리터급 4기통 엔진으로 디젤 모델도 만들고, 가솔린 모델도 만들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도 만든 것. 여기에 싱글터보와 트윈터보, 터보차저와 슈퍼차저를 적절히 조합해 다양한 엔진 라인업을 완성했다.

D5는 2.0 디젤 엔진에 트윈터보를 추가한 모델이다. 해외에는 싱글터보가 들어간 190마력의 D4도 있지만, 국내에는 235마력의 D5만 출시됐다. T8에는 T6에 들어간 320마력의 2.0 가솔린 트윈차저(터보차저+슈퍼차저) 엔진에 80마력의 전기 모터가 추가돼 총 400마력의 힘을 낸다.

▲ 볼보 신형 XC90

아무리 고출력 모델이지만, 아무래도 배기량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 주행 성능에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차의 무게는 무려 2155~2355kg. 오히려 육중한 덩치를 제대로 달리지 못할까 걱정됐다. 

그러나 예상보다 매끈하게 잘 달렸다. 막힘 없이 부드럽게 속도를 올렸는데, 저속에서의 발진감과 중고속에서의 재가속력, 고속으로 밀어붙이는 힘 등은 배기량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느낌이다. 물론, 고배기량의 경쟁 모델에 비해 달리기 능력은 다소 부족하지만, 8단 자동변속기가 엔진의 한계치를 효과적으로 끌어내면서 능숙하게 움직였다.

▲ 볼보 신형 XC90 디젤 모델의 파워펄스 시스템

우선, 디젤 엔진의 경우 지능형 연료분사 기술인 'i-ART'가 적용돼 최적의 연료량을 분사하도록 했다. 각 인젝터마다 달려있는 인텔리전트칩이 연료 분사 압력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이를 조절하는 것이다. 여기에 파워펄스 시스템을 통해 터보랙을 줄이면서 터보차저의 역할을 극대화시켰다. 공기 필터에 미리 2리터가량의 공기를 압축해놨다가 저속에서 급가속을 할 때 즉각적으로 터보차저를 돌리는 방식이다.

▲ 볼보 신형 XC90 T8. T6에 들어간 트윈차저 엔진은 앞바퀴를, 전기 모터는 뒷바퀴를 돌리는 사륜구동 시스템이다

T8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은 320마력을 내는 2.0 가솔린 트윈차저 엔진이 앞바퀴를, 80마력의 전기 모터가 뒷바퀴를 돌린다. 도요타와 렉서스에서 사용하는 e-4와 비슷한 것으로, 전기 모터가 엔진을 도와주는게 아니라 독립적으로 뒷바퀴 구동력을 제어하는 사륜구동 시스템이다. 트윈차저 엔진의 경우 저속에서는 슈퍼차저가, 고속에서는 터보차저가 작동해 엔진의 힘을 극대화 시킨다.

R-디자인 모델에는 전자적으로 자동 제어되는 에어서스펜션도 달렸다. 에코, 컴포트, 다이내믹, 오프로드, 인디비쥬얼 등 5개 주행 모드에 따라 서스펜션 높이를 조절하는데, 위아래로 최대 90mm까지 오르락내리락한다. 에코·컴포트·다이내믹 모드에서는 차체를 낮춰 공기 저항을 줄이고, 오프로드 모드에서는 차체를 높여 주행 안정성을 향상시킨다.

▲ 볼보 신형 XC90

그동안 볼보는 '안전'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디자인과 편의 사양 등에는 소홀한 면이 있었다. 안전은 자동차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지만, 소비자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볼보가 2000년대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신형 XC90을 타보니, 어쩌면 볼보가 중국 길리에 인수된 것은 엄청난 전화위복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집스럽게 지켜온 안전을 이제는 더욱 멋진 포장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형 XC90의 세계적인 성공은 앞으로의 볼보에게 매우 희망적인 메세지다. XC90이 잘 팔리는 만큼, 앞으로 나올 S90과 V90, XC60, V40, XC40 등의 성공 가능성은 더 높아지는 법이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