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한대도 안팔린 자동차'들...사연도 다양하네
  • 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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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6.23 19:19
비운의 '한대도 안팔린 자동차'들...사연도 다양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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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창대하고 끝은 미약한 경우도 있다. 기대를 한몸에 받고 한국땅을 밟았지만, 아예 빛도 못보고 사라진 경우도 많다. 인기는 돌고 도는 거라지만, 그 주기는 명확하지 않다. 단종되기 전까지 그 차례가 한번이라도 찾아온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올해 국내서 단 한대도 판매되지 않은 ‘비운의 차’. 각기 다른 그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 아우디 A1 “차가 없습니다”

A1은 아우디의 비밀병기였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는 A1과 같은 세그먼트의 초소형차를 만들지 못했다. 물론 별도의 소형차 브랜드를 갖고 있긴 하지만 A1이 주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알고보면 아우디는 소형차 만들기에 있어서 둘째라면 서러운 브랜드기도 하다.

 

아우디에서 가장 작고 저렴한 차가 A1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디자인은 몹시 매력적이고, 실내에선 프리미엄 분위기도 물씬 풍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반적인 소형차와 비교를 거부하는 탄탄한 주행성능이 백미다.

많은 매력을 갖고 있는 A1이지만, 사실 우리나라 실정에는 잘 맞지 않았다. 경차만한 차의 가격이 3천만원이라는 것을 납득할 소비자들은 매우 적었다. 또 이왕이면 비슷한 가격에 조금 더 큰 상급 모델로 눈을 돌리기도 쉬웠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디젤 게이트’가 터졌다. 하루라도 빨리 팔아치워야 할 판인데, 검찰은 평택 PDI에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던 A1을 전부 압수했다. 약 300여대. 이로 인해 A1은 올해 단 한대도 판매되지 않았다. 

# BMW 5시리즈 투어링 “여러 대안을 준비했다”

BMW는 2012년 일찍이 525d 투어링을 선보였다. 5시리즈가 절대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고, 다양한 레저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시기였다. 이 당시엔 정말 다양한 5시리즈를 만날 수 있었다. 세단, 투어링, GT 등이 전부 팔리던 때다. 또 엔진 라인업도 무척 세밀하게 나뉘어져 있어서 내게 꼭 맞는 5시리즈를 선택할 수 있었다. BMW는 520d 투어링도 출시하며, 프리미엄 왜건 시장을 키워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인기절정의 5시리즈도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굳은 심지를 꺾지 못했다. 5시리즈 투어링은 계속 기대 이하의 판매를 기록했다. 520d 투어링은 지난해 4월부터 ‘0’의 행진이 진행되고 있다. 525d 투어링도 9월부터 단 한대도 팔리지 않았다. 지난해 두 차종의 총 판매대수는 11대. 가장 인기 있는 수입차 브랜드에게 왜건은 계륵이었다.

 

결국 BMW는 5시리즈 투어링을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인기도 없지만, 5시리즈가 세대 교체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인기 있는 차’라는 좋은 이미지만 이어가는게 중요한 상황이다. 그래서 5시리즈 투어링의 판매를 중단했지만, BMW는 여전히 3시리즈 투어링으로 프리미엄 왜건 시장에 계속 발을 걸치고 있다. 또 5시리즈 GT가 꾸준하게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에 그리 낙심한 상황도 아니다.

#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디젤 하이브리드 “존재 자체가 큰 의미”

알고보면 모든 신차가 잘 팔리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벌어다주는 ‘캐시카우’도 있고, 그 존재만으로 브랜드의 가치를 높여주는 차도 있다. 랜드로버의 레인지로버 & 레인지로버 스포츠 하이브리드가 그렇다.

 

랜드로버는 ‘세계 최초’의 ‘프리미엄’ 디젤 하이브리드 SUV라고 이 차들을 강조했다. 사실 그동안 랜드로버가 하이브리드를 강조한 브랜드가 아니기 때문에 굳이 ‘프리미엄’이란 수식을 붙여가면서까지 세계 최초임을 알렸다.

이론적으로는 디젤 하이브리드가 성능과 효율이 양립하는 최고의 조건 같다. 하지만 막상 무엇하나 극단적이지 않은게 단점이다. 레인지로버 하이브리드 역시 어느 쪽 하나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고, 전체적인 성능과 효율이 아주 미미하게 높아졌을 뿐이다. 그러면서 가격은 상위 모델보다 높으니 판매가 저조한 것은 당연하다. 

 

올해 레인지로버 하이브리드는 2대가 팔렸고, 레인지로버 스포츠 하이브리드는 한대도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랜드로버는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레인지로버 하이브리드는 브랜드의 기술력과 이미지, 청사진 등을 제시해주는 것으로 제역할을 다 한셈이다.

# 지프 체로키 디젤 “기다려라, 인증”

체로키 디젤은 지프의 주력 차종이다. 체로키 디젤은 지난해 1412대가 판매됐다. 지프 중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 소형 SUV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에서 지프란 브랜드가 주는 정통성과 신뢰감, 강력함과 효율성을 모두 갖고 있는 디젤 엔진 등은 체로키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그러던 체로키 디젤의 판매가 올해 뚝 끊겼다. 정확하겐 지난해 12월부터 판매가 중단됐다. FCA코리아에겐 큰 타격이다. 체로키 디젤의 판매가 중단된 원인은 ‘유로 6’ 때문이다. 

그동안 판매되고 있던 체로키 디젤은 유로 5 배출가스 기준을 만족시키는 디젤 엔진이 장착됐다. FCA코리아는 서둘러 유로 6 배출가스 기준을 만족시키는 체로키 디젤의 인증을 준비했지만, 올해부터 유독 까다로워진 인증 절차와 엄격한 기준 때문에 공백이 생겼다.

 

가뜩이나 현재 국내에는 유로 6 디젤 엔진의 인증을 진행할 수 있는 기관이 턱 없이 부족한데, 인증을 기다리고 있는 차량은 워낙 많아서 체로키 디젤의 공급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FCA코리아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 인피니티 QX60 하이브리드 “단종은 아닙니다”

인피니티는 Q50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공격적인 가격 정책과 뛰어난 상품성은 소비자들의 굳게 닫힌 지갑을 여는데 성공했다. 이 기세를 몰아 인피니티는 지난해 3월 7인승 대형 SUV QX60을 출시했다. QX60은 약 700만원이나 가격을 낮춘 채 판매가 시작됐다. 하지만 올해 QX60 하이브리드는 단 한대도 판매되지 않았다. 그나마 가솔린 모델은 매월 30대 정도 판매되고 있다. 

 

QX는 아직 우리에게 생소하다. QX는 JX의 바뀐 이름이다. JX는 닛산 패스파인더의 인피니티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패스파인더마저 생소하다면, 비싸고 큰 SUV라고 막연하게 떠올리면 된다.

QX60 하이브리드는 2.5리터 슈퍼차저 엔진과 전기모터가 결합됐다. 그래서 큰 덩치와 성능을 감안하면 연비도 충분히 수긍할만하다. 하지만 소형차에 비해 하이브리드가 갖는 장점이 적은 것은 분명하고, 무엇보다 7040만원이라는 가격이 소비자들을 망설이게 한다. QX60 하이브리드가 비싸다기 보단, 이 가격대에서는 선택의 가지수가 넓다. 

 

QX60 하이브리드는 사는 사람이 없을 뿐 판매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디젤 엔진에 대한 인식이 흔들리고 있는 요즘, 어쩌면 QX60 하이브리드에게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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