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포르쉐 카이엔 디젤...'적절한 출력'이 주는 매력
  • 김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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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6.08 18:14
[시승기] 포르쉐 카이엔 디젤...'적절한 출력'이 주는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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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카이엔 터보. 이 차를 몰때면 비현실적인 느낌에 기분이 아득해지는 일이 여러번 있었다. 거대한 차체를 밀어붙이는 괴물같은 가속력, 그럼에도 와인딩로드를 달릴때면 소형스포츠카처럼 이리저리 파고드는 느낌이 기묘하게 느껴졌다. SUV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고개를 젓게 만드는게 바로 이 차의 특징이다. SUV 중 가장 다이내믹한 운동성능, 가장 고성능을 자랑하는 모델은 단연코 포르쉐 카이엔이란 점에 수긍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카이엔’이라는 이름은 넓고도 다양하게 쓰인다. 최고 모델인 카이엔 터보S(1억7680만원)도 있지만 기본형인 디젤(9440만원)까지 5가지다. 터보는 언감생심 엄두 낼 가격이 아니지만, 그나마 ‘카이엔 디젤’이라면 큰 맘먹고 살펴볼만도 했다. 한가지 걱정되는건 이 모델에도 ‘포르쉐 SUV’의 매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굳이 이 차를 시승 해보기로 했다. 

어렵게 차를 구해 단 1박2일의 시승을 했다. 간만에 하는 포르쉐 시승이건만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시승차를 받는 순간부터 쉬지 않고 이틀간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포르쉐 카이엔의 4륜구동 시스템 

# 젖은 노면, 눈길, 산길…거침은 없다

물론 카이엔 디젤을 타는게 처음은 아니다. 대략 6년전 쯤 구형 카이엔의 디젤 모델을 탔는데, 당시는 좀 출렁이는 느낌의 느긋한 차라는 기억이 남았을 뿐이었다. 포르쉐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부족한게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번 카이엔은 완전히 딴판이다. 디자인부터가 칼을 간듯 깔끔하고 든든하다.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부터 ‘이건 스포츠카’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262마력으로 고성능 스포츠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밟는 순간부터 굵직한 토크감으로 달려가는 점이 인상적이다. 더구나 조금 더 밟으면 꽤 강력한 사운드도 울려퍼진다. 어지간한 디젤엔진에서 만족스런 사운드를 느끼기는 쉽지 않은데, 역시 포르쉐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빗길에서도 불안감이 적다. 앞뒤로 기울어짐(피칭)이나 좌우로 기울어짐(롤링)이 극도로 억제된 점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꽤 높은 시트포지션이라는 점으로 인해 SUV라는건 분명하게 느껴진다. 

마른 노면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서킷에서 타보면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포르쉐 카이엔 터보를 서킷에서 여러 차례 타본 만큼, 극한에서 비교 해보면 차이를 명확히 느낄 수 있을것만 같았다. 하지만 공도에서 주행하는 동안에는 둘의 차가 그리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 

물론 최고 엔진을 갖춘 SUV는 아니다. 그럼에도 가속력은 충분하고, 브레이크는 단단했다. 무엇보다 코너링이나 고속주행에서도 안정감이 넘쳐났다. 코너에선 후륜으로 힘의 대부분이 전달되면서 더욱 샤프한 코너링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카이엔 터보처럼 와일드하고 공격적인 느낌은 아니라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강했다. 출력과 세팅이 전혀 다른 차인데도 묘하게 비슷한 감각을 느끼게 하는 점은 포르쉐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포르쉐 카이엔의 프론트 서스펜션. 더블위시본 서스펜션에 에어스프링과 가변 댐퍼가 가득 장착돼 있다. 

# 외관에서 새 나오는 매력

예삿차가 아니라는 점은 외관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포르쉐 브랜드의 전 차종은 외관의 상당부분을 일일히 개인화(Customize)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이 시승차는 카이엔 디젤 기본형 모델이지만 실내외 디자인만큼은 카이엔 터보가 부럽지 않게 세팅 돼 있었다. 대략 훑어보니 옵션만 수천만원어치는 붙은 것 같다. 20인치 휠이 장착됐고 인테리어는 거의 대부분이 가죽으로 둘러져 있었다. 굵직한 듀얼 머플러는 이 차가 디젤 모델이라는걸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할 정도다. 

 

요즘은 마칸 같이 작은 SUV가 인기를 끄는 시대인데다 마칸과 카이엔의 디자인이 서로 닮아가면서 얼핏보면 구분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다. 하지만 실제로 눈앞에 두고 보면 커다란 차체만이 가질 수 있는 존재감이 확연하다. 기분이 뿌듯해지는 덩치, 안에 탔을때의 든든함이 대단하다. 

 

이전의 카이엔과는 달리 2열의 등받이 각도도 꽤 기울어져 편안한 착좌감을 준다. 5명이 탔을때 불편하지 않은건 물론이고, 그 상태에서 트렁크에 어지간한 유모차를 접지 않고 넣을 수 있을 정도다. 다시 말해 모든 면에서 여유로운게 이번 카이엔의 특징이다. 

# 파워트레인, 8단 자동변속기는 계속

요즘 포르쉐 전차종에 추가되는 터보에 거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디젤은 애초부터 터보였다. 워낙 더욱 순수하게 가다듬어진 디젤엔진은 저회전과 고회전에서 두루 매력을 냈다. 

포르쉐 카이엔의 뒤쪽 서스펜션. 더블위시본 서스펜션으로 스포티한 세팅을 했다. 

섀시에는 가변 댐핑 시스템인 PASM(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장착됐고, 에어 서스펜션을 더할 수 있다. PDCC(포르쉐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 시스템)과 전자 제어 리어 디퍼렌셜, 브레이크를 제어해 코너링 바깥쪽에 더 많은 토크를 보내는 ‘토크 벡터링(Toque Vectoring)’시스템 PTV플러스 등 기능을 나열하면 한이 없다.

 

포르쉐의 전 차종이 DCT변속기로 변경됐지만 포르쉐 카이엔만큼은 여전히 8단 자동변속기를 이용하고 있다. 바위가 많은 산길이나 사막에서는 DCT의 급작스런 반응이 좋지 않고, 토크컨버터의 부드러운 반응이 더욱 유리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차로 산길을 달리게 될지는 모르지만 차의 방향성만큼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 편안함과 다이내믹함의 조화…"정말 좋은차구나"

하늘도 야속하게 폭우가 쏟아졌다가 다시 맑았다를 거듭해 영상 촬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하지만 빗길에서 차를 이리저리 미끄러뜨리면서 달리는건 꽤 매력적인 일이었다. 표시 연비는 10.8km/l였는데 어지간히 밟아도 9km/l 이하로 낮아지지 않았고, 수시로 표시연비를 넘어섰다. 

물론 9천만원이 넘는 이 차는 어떤 면에서건 '경제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정도 퍼포먼스의 호화 SUV가 이 정도 가격과 연비라니 좀 놀랍다. 

포르쉐 카이엔의 엔트리모델이 가진것이라고 보기엔 퍼포먼스가 꽤 인상적인데, 단순히 빠르기 만한 것이 아니라, 높은 안정감을 바탕으로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스포츠 SUV’라는 장르를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건 힘이 아니라 밸런스라는걸 보여주는 것 같다.

이렇게 다이내믹하면서도 일상 주행에서도 불편하지 않고 편리하게, 또 원한다면 그대로 서킷이나 산으로 달려 올라갈 수 있는 자동차가 바로 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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