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서 시승기] 도요타 86…'손맛이 그리운 당신에게'
  • 최하림 객원기자
  • 좋아요 0
  • 승인 2013.09.09 17:50
[레이서 시승기] 도요타 86…'손맛이 그리운 당신에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굳이 차에 관심이 많지 않더라도 남성들이 모이면 자연스레 자동차 이야기가 시작된다. 특히, 한 번이라도 성능 좋은 차를 타 본 사람들은 과장된 목소리로 ‘차가 생각한대로 움직여’, ‘나도 모르게 계속 가속페달을 밟게고 있었어’ 등 짜릿했던 운전 경험을 침을 튀어가며 이야기 한다.

과연 운전 재미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괴물같은 엔진 성능으로 시속 300km까지 거뜬히 달리는 스포츠카를 연상한다. 그러나 단순히 빨리 달릴 수 있다고 운전이 재밌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운전의 재미는 자신의 의지대로 차를 움직이면서 차가 갖추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뽑아낼 수 있어야 비로소 느껴지는 것이다.

▲ 도요타 86의 엠블럼

이런 면에서 도요타 86은 그야말로 진정한 운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차다. 잠시만 주행을 해봐도 차의 밸런스가 몸으로 직접 느껴져 자꾸만 가속 페달에 힘을 주게 되고, 스티어링 휠을 쉴세없이 조작하는 등 살짝 흥분된 상태가 되어버린다.

한 번 느낀 손맛에 시승 내내 잠을 설쳤던 차, 도요타 86(수동변속기)의 소감을 적어봤다.

◆ 실망스런 내·외관 디자인…스포츠카 맞아?

처음 외관을 보면 살짝 실망감이 든다. 도요타 86의 디자인은 스포츠카라고 하기엔 심심할 정도로 단조롭다. 뭔가 임팩트 있는 디테일 보다는 전체적인 균형에 더 많이 신경 쓴 듯하다.

그러나 전체적인 디자인은 낮은 무게중심의 차체, 롱 노즈·숏 오버행 등 전형적인 스포츠카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실제로 86의 높이는 겨우 1285mm밖에 되지 않아 노면에 바짝 붙어있는 느낌이다.

▲ 도요타 86

스포츠카의 화려한 실내를 기대했다면 더욱 실망스럽다. 그냥 차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것만 대충 채워넣은 모습이어서 디자인과 상품성은 절반 가격에 판매되는 국산차만도 못하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봐도 어느 하나 썩 마음에 드는 곳은 없다.

▲ 도요타 86의 리어 스포일러

라디오·CDP, USB·AUX 단자를 기본 제공하는 오디오 시스템도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고, 각종 조작 버튼들의 편의성과 조작감도 도저히 최근에 출시된 차라는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아날로그 감성이야말로 86을 타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향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실망은 금물, 달리기에 최적화된 실내…차와 한 몸이 된 듯한 시트

실내외 디자인에 실망한 것도 잠시, 막상 주행을 시작하려 하니 운전에 필요한 사양들은 기능성에 최적화 됐다는 것이 느껴졌다. 가죽으로 마감된 스티어링 휠은 잡는 느낌이 매우 좋았고, 절도 있게 움직이는 수동변속기는 사용이 편리했다. 또, 사이드 브레이크는 운전자에 최대한 가깝게 위치했고, 알루미늄으로 화려하게 마감된 페달에는 고무를 입혀 조작이 수월하도록 했다.

▲ 도요타 86의 실내

수동으로 조절되는 시트도 매우 만족스럽다. 시각적으로 투박해 보이지만 막상 앉으면 몸을 잘 잡아주고 허리도 잘 지지해준다. 시트는 앞·뒤와 등받이 조절만 가능하지만, 차와 하나가 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앉은 느낌이 좋아 굳이 전동 시트의 필요성은 들지 않는다. 86은 수동 변속기 모델에는 직물 시트, 자동 변속기 모델에는 가죽 시트가 적용된다.

실내 공간은 전형적인 2도어 쿠페답게 앞좌석의 경우 175cm가량의 성인 남성도 편하게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다. 반면 뒷좌석은 무릎 공간과 머리 공간이 모두 좁아 성인이 이용하기에는 불편하다. 예전에 탔던 현대차 투스카니 뒷좌석이 연상될 정도니 2열은 없다고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겠다.

◆ 스바루 박서 엔진 이식…낮게 깔리는 주행감

86에는 스바루의 수평대향 4기통 2.0리터 DOHC 엔진과 도요타의 직분사 기술인 D-4S이 결합된 FA20 엔진이 탑재됐다. 최고출력은 203마력(7000rpm), 최대토크는 20.9kg·m(6400~6600rpm)로 고회전 엔진에 속한다. 가속 성능은 폭발적으로 쭉 치고나간다기 보다는 꾸준한 힘으로 원하는 속도에 도달하는 느낌이 더 강하다.

물론 출력이 높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최근 출시되는 동급 터보 엔진에 비해 제원상 성능이 뛰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자연흡기 엔진으로 ‘리터당 100마력’을 달성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고, 86의 무게가 1240kg에 불과할 정도로 가벼워 운전자가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다루기엔 전혀 모자라지 않다.

▲ 도요타 86의 엔진룸

86에 스바루의 수평대향 엔진이 탑재돼 시트 포지션이 낮아진 것 이외에도 엔진 소리가 듣기 좋게 걸걸해졌다 장점도 있다. 분명 다른 차를 시승하면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아니다. 낮은 회전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고회전으로 갈 수록 걸걸한 소리가 실내를 뒤덮는다. 물론 가속페달 조작에 따라 엔진 흡기음을 실내에 직접 전달해주는 사운드 크리에이터의 영향도 있다.

▲ 도요타 86의 기어노브

변속기는 도요타 계열사인 아이신 AI와 아이신 AW가 공동 개발한 6단 수동변속기가 탑재됐다. 일반적으로 6단 수동변속기는 5단에서 최고속도가 나오고 6단은 이 속도를 꾸준히 유지하기 위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86의 경우는 6단에서 최고속도가 나온다. 그만큼 기어비를 잘개 쪼깼고, 가속에 더 신경을 쓴 것이다.

도요타 측에 따르면 86의 최고속도는 221km/h,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도달 시간은 7.7초(수동변속기 기준)지만, 체감 성능은 이보다 조금 낮은 느낌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86은 가속 성능보다는 운전의 재미를 강조한 모델이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었다.

◆ 완벽에 가까운 차체 밸런스…'내가 이렇게 운전을 잘 했나'

본격적으로 86을 주행해보니 최근에 판매되는 차들과 비교해 가벼운 공차중량과 전후 53:47의 완벽한 밸런스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확연히 비교될 정도로 움직임이 경쾌하며, ‘경량화’ 만큼 위대한 기술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운전자를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든다. 또, 하중을 어떻게 이동시키느냐에 따라 차의 움직임이 극적으로 달라지고 운전자의 조작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턱-인(무게중심을 이동시킴으로서 언더스티어를 잡는 현상)이 무척 쉽게 이뤄진다는 것은 매우 만족스럽다.

▲ 도요타 86의 계기판

스티어링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직하게 움직여 언제든 차의 거동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특히, 86의 낮은 무게중심은 코너를 돌아나갈 때와 고속 주행을 할 때를 모두 만족시킨다. 다만, 속도를 높여 코너를 돌 때는 차의 후미가 틀어진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주행안정장치인 VSC가 켜진 상태에서 미끄러질 일이 없다. 처음에는 차의 반응이 너무 기민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한 번 적응한 이후에는 자꾸만 빠른 속도로 코너를 돌게 만들었다.

▲ 도요타 86의 스티어링휠

브레이크는 가볍게 밟히지만 제동 성능이 매우 뛰어나다. 보통 초반부터 묵직하게 밟히며 멈춰서는 국산차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독특한 매력이 있다.

◆ 다양한 주행 보조 기능들…'재밌는 주행을 즐겨라'

86에는 토센 LSD(구동력 조절 장치)가 기본으로 적용되는데, 주행에 개입하는 느낌이 확실하게 전달될 정도로 성능이 뛰어나다. 구비진 산길과 원선회 주행에서도 꾸준히 개입해 충실히 제 역할을 수행한다.

VSC(주행안정장치)는 VSC ON, VSC 스포트, VSC OFF 등 세 가지 모드로 구성됐는데, VSC가 작동되는 상황에서는 절대 운전자를 위급한 상황에 빠뜨리지 않는다. 물론, 처음부터 VSC가 개입할 상황까지 차를 극단적으로 움직이기는 어렵겠지만, 적응이 된다면 VSC의 자상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VSC 스포트 모드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86이 가볍다는 점은 자연스럽게 뛰어난 실연비로 이어졌다. 연비를 생각 않고 약 1000km를 주행했는데, 시내에는 줄곧 리터당 10km가 넘는 연비가 나왔고, 고속도로에서는 리터당 18km에 달하는 높은 연비를 냈다.

▲ 도요타 86

도요타 86을 타보니 운전 경험이 많은 사람이건 적은 사람이건 간에 '운전의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3890만원이란 다소 높은 가격이 구입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최근 86처럼 운전의 재미를 강조한 신차는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생각하는 자동차 회사만 있다면 86 같은 차는 앞으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도요타 86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Good : 대부분 차들을 오징어로 만드는 최고의 운전 재미, 뛰어난 실연비, 만족도 높은 앞 좌석
Bad : 높은 신차 가격, 심심해보이는 디자인, 가격표를 다시 찾아보게 만드는 밋밋하기 그지없는 실내

시승차 정보 및 가격 : 2012 토요타 86 수동, 국내 공식 판매 가격 3,890만원

 

▲ 도요타 86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