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은 언제나 교묘하게 균형을 맞춘다. 올해 역시 수입차 시장은 독일차 일색으로 재미없게 흘렀지만, 곧 다가올 변화를 예고하는 듯한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됐다.

 

독일차는 여전히 70%에 달하는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올해 이들의 브랜드 신뢰도에는 상당한 균열이 생겼다.

아우디·폭스바겐은 ECU를 조작해 배기가스 배출량을 속였고, BMW는 갑자기 엔진룸에서 불이나 차량이 다 타버렸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주행 중 갑자기 시동이 꺼져 화가 난 운전자가 골프채로 차량을 부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속이고, 불나고, 멈추는 등 일련의 악재가 이어지면서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독일차에 대한 믿음에 금이 간 것이다. 

이를 기다렸다는듯 대항 세력들은 그동안 묵묵히 길러온 힘을 드러냈다. 독일 프리미엄을 위협하는 강력한 경쟁자들이 속속 등장해 소비자들에게 높은 지지를 얻은 것.

특히, 재규어와 랜드로버가 전년 대비 각각 37%, 42%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볼보도 40%나 늘어나는 등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이들은 독일차를 능가하는 우수한 상품성을 바탕으로 독일차에 부족한 갈증을 해소시키며 독자적인 영역을 넓혀 나갔다.

# 재규어 XE, 3시리즈 잡는 만능 '스포츠 세단'

 

재규어 XE는 그야말로 '물건'이다. BMW 3시리즈를 소유한 기자들마저도 하나같이 '재규어가 제대로된 스포츠세단을 내놨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세련스러운 전면부와 스포티한 후면부 등 전체적인 디자인 완성도가 높은 데다가 실내도 깔끔하고 고급스럽게 꾸몄다. 특히, 단단한 차체와 쫀득한 서스펜션, 성능 좋은 엔진·변속기 등에 돈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졌다. 그럼에도 동급 경쟁 모델보다 저렴하다. 

사실, XE가 발을 담그고 있는 엔트리 프리미엄 세단 시장은 그 누구에게도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BMW 3시리즈와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 아우디 A4 등 쟁쟁한 독일 브랜드가 포진해 있어 감히 다른 브랜드들이 넘기 힘든 불가침의 영역이다. 그러나 XE는 달랐다. 이들 사이에서도 나름대로의 강력한 존재감을 보인 것이다. 아직 절대적인 판매량은 독일차보다 적지만, 입소문이 퍼지면서 9월 179대, 10월 213대, 11월 239대 등 판매량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독일차를 능가하는 XE의 장점은 우선, 동급 최초로 알루미늄을 사용한 모듈형 플랫폼이 사용됐다는 것이다. 차체 75%가량을 알루미늄으로 만든 것인데, 무게를 줄이면서도 강성을 높여 안전성을 향상시켰을뿐 아니라 50:50의 무게 배분과 역대 재규어 중 가장 낮은 공기저항계수까지 갖췄다. 

서스펜션에도 높은 점수를 줘야겠다. 특히, 후륜에 멀티링크를 사용하는 경쟁 모델과 달리 이보다 한 단계 높은 인테그럴링크를 탑재해 이들보다 능숙한 차체 거동 능력을 발휘했다. 속도와 요철 등 도로 상황에 따라 서스펜션의 감쇄력을 최적으로 조절해주면서 부드러운 승차감을 유지했는데, 말 그대로 쫀득했다. 확실히 서스펜션과 스티어링휠의 조화, 고속에서의 안정성은 3시리즈와 C클래스, A4보다 한 수 위다.

 

재규어의 자랑인 인제니움 디젤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의 궁합도 매우 뛰어나다. 최고출력은 180마력, 최대토크는 43.9kg·m로 스포티하게 달리기에 충분하다. 엔진 느낌이나 속도를 높이는 능력도 동급 프리미엄 디젤 엔진에 비해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게다가 동급 모델에는 없는 340마력의 고성능 모델이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 볼보 V40, '해치백' 시장의 기대주

 

국내 해치백 시장은 폭스바겐 골프를 제외하고는 살아남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곳이다. 국산차인 현대차 i30조차 월 200~300대가량 팔릴 정도니,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라 해도 결코 쉽지 않은 노릇이다. 실제로 메르세데스-벤츠 A클래스와 아우디 A3 스포트백은 월 100대가량 팔리며, 그나마 BMW 1시리즈가 월 280대 정도 판매될 뿐이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V40은 월 80대라는 놀라운 판매량을 기록했다. 80대가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볼보와 독일 3사의 판매량이 10배가량 차이 나는 것을 고려하면 매우 우수한 성적이다. 특히, 볼보 전체 판매량의 약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V40은 국내에 출시된 해치백 중 가장 매끈한 자태를 자랑한다. 전형적인 해치백 스타일인 A3 스포트백, 몽뚱한 느낌의 A클래스, 투어링 스타일의 1시리즈와 달리 날렵한 왜건을 매끈하게 다듬어 강렬하면서도 스포티한 자태를 완성했다. 최근 볼보는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디자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신형 XC90 및 신형 S90으로 이어지는 최신 디자인의 시작은 누가 뭐래도 V40이라 할 수 있겠다.

가격은 경쟁 모델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갖추고 있는 상품성은 꽤 경쟁력이 높다. 새롭게 만든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은 150마력, 32.6kg·m의 뛰어난 동력 성능과 리터당 17.1km/l의 우수한 연비를 갖췄다. 깔끔하게 꾸민 인체공학적인 실내에는 한글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까지 탑재됐다. '안전의 볼보'는 너무 식상한 표현이지만 다이내믹 스태빌리티 트랙션 컨트롤과 코너 트랙션 컨트롤 등 주행 안정장치를 비롯해 시티 세이프티와 보행자 에어백, 충돌 경고, 사각지대 경고, 차선 유지 경고, 액티브 하이빔 등 동급 최고 수준의 다양한 안전 사양이 모조리 탑재됐다. 

# 레인지로버 이보크, '프리미엄 소형 SUV'의 최강자

 

레인지로버 이보크는 참 신기한 차다. 동급 독일차보다 가격대가 높은데도 더 많이 팔리는 몇 안되는 차다. 올해 BMW X1은 월 50대 팔렸는데, 이보크는 3배가량 많은 월 141대가 판매됐다. 메르세데스-벤츠 GLK는 월 70대, 아우디 Q3는 월 110대 팔렸을 정도니 이보크를 프리미엄 소형 SUV의 최강자라 부르는데 이견은 없겠다. 

이보크는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남성미를 폴폴 풍기던 랜드로버가 깔끔한 슈트 차림으로 변화를 시도한 모델이다. 파격적인 변신은 우려와 달리 여성 및 젊은 세대에게 성공적으로 어필했고, 이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판매량을 늘렸다. 실제로 이보크 판매량은 출시 당시인 2012년 월 42대에서 올해 141대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이보크의 가장 큰 매력은 오픈카를 만들 정도로 매끈한 디자인의 SUV라는 점이다. 랜드로버 특유의 육중한 하체를 유지하면서 허리 라인을 날렵하게 위로 추켜올렸고 지붕 라인은 후면부로 갈수록 낮아지게 만들었다. 또, 휠을 최대한 바깥쪽으로 밀어내 하체의 안정감도 돋보인다. 차를 정면에서 볼 때와 측면, 후면에서 볼 때의 느낌이 각기 다르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또, 취향에 따라 3도어 모델과 5도어 모델, 가솔린 모델과 디젤 모델을 선택할 수 있다. 

최근에는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상품성을 더욱 향상시켰다. 외관은 굵은 선을 사용했으며, 그릴을 비롯해 각종 램프와 범퍼 디자인에 변화를 줘 남성적인 느낌을 조금 더 강조했다. 실내에 큰 변화는 없지만, 고급 소재를 사용하고 마감에 신경써 품질을 향상시켰다. 여기에 8인치 터치스크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전자동 지형반응 시스템(ATPC), 차선이탈 방지 시스템 및 긴급 제동 시스템, 운전자 졸음 경보 시스템, 제스처 테일게이트 등이 탑재됐다.

 

파워트레인도 달라졌다. 디젤 모델의 경우 재규어랜드로버가 자랑하는 2.0리터급 인제니움 디젤 엔진이 적용됐다. 이 엔진은 연비 좋은 저출력 버전과 성능 좋은 고출력 버전이 있는데, 이보크 페이스리프트에는 최고출력 180마력의 고출력 버전이 탑재된다(저출력 버전은 150마력). 가솔린 모델에는 최고출력 240마력, 최대토크 34.7kg.m를 내는 2.0리터급 4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이 장착됐다. 변속기는 모두 9단 자동 변속기가 조합됐으며, 풀타임 사륜구동 시스템이 탑재됐다.

# 렉서스 ES300h, '하이브리드카'의 성공적인 틈새 공략

 

렉서스 ES300h는 5시리즈와 E클래스, A6 등이 치열하게 경쟁을 펼치는 중형 프리미엄 세단 시장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틈새 공략에 성공한 모델이다. 특히, 디젤 모델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곳에서 하이브리드라는 새로운 장르를 안착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ES300h의 올해 1~11월 판매량은 4199대로, 5시리즈와 E클래스의 가솔린 모델보다 많이 팔렸다.

ES300h의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한 가격에 렉서스 특유의 고급스러움과 정숙성, 안락함을 담았다는 것이다. 도요타 캠리·아발론의 뼈대를 사용해 원가를 낮추면서도 고장력 강판 사용량을 늘리고, 구조용 접착제를 사용해 차체 강성을 높였다. 특히, 실내는 비슷한 가격대의 독일차는 도저히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고급스럽게 꾸몄다. 여기에 장인이 다듬은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서스펜션 및 스티어링휠 세팅과 함께 시종일관 최적의 주행감을 발휘한다. 진동·소음도 잘 잡아서 장시간 주행해도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다. 

 

ES300h도 최근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한층 젊어졌다. 렉서스 특유의 스핀들 그릴은 크기가 커지고 마무리도 날카로워졌는데, 날렵한 LED 헤드램프·안개등과 화살촉 모양의 주간주행등 등의 디자인 변화를 통해 세련된 느낌을 준다. 또, 플래그십인 LS에나 적용됐던 스크래치 복원 페인팅 기술도 적용됐다. 실내 역시 스티어링휠과 기어노브 디자인을 바꾸고 우드트림과 스티치 등을 새롭게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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