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스케치북이라는 필명으로 인기리에 스케치북다이어리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완님의 칼럼입니다. 한국인으로서 독일 현지에서 직접 겪는 교통사회의 문제점들과 개선점들, 그리고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과 현지 언론의 흐름에 대해 담백하게 풀어냅니다.

 

스위스 의회에서 최근 새로운 교통법을 통과시켰다. 편도 3차로 이상인 고속도로의 1차로, 즉 추월차로에서는 시속 100km 이하로 달리지 못하게 법으로 규정한 것. 추월차로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1차로의 정체는 교통사고를 유발하고 차량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한다. 가끔 1차로를 천천히 달리는 운전자 때문에 우측 차로를 이용해 추월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엄연히 불법이다. 스위스 의회는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추월차로 최저속도법을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스위스 고속도로 길이는 총 1350km로, 이 중 편도 3차로 이상 구간은 전체의 7% 수준에 불과하다. 이번에 만든 최저속도법이 당장 스위스 도로에 큰 변화를 주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그러나 스위스 정부는 편도 3차로 이상 구간을 꾸준히 늘린다는 계획이다. 앞으로 스위스 고속도로에서는 제한속도 100km/h 이하의 관광버스나 캠핑카는 1차로에 진입할 수 없으며, 1차로를 전세 낸 듯 천천히 달리던 승용차 운전자들도 점차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 '아우토반의 나라' 독일의 반응은?…"우린 필요 없는데"

스위스의 이번 결정에 대해 이웃 국가인 독일은 어떤 반응일까? 참고로 독일은 무려 1만3000km에 달하는 아우토반이 있는 나라다. 중국과 미국, 스페인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긴 도로로, 독일 전역을 촘촘하게 연결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이용자가 많다.

이런 이유로 1차로 최저속도법은 오히려 독일에서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현재까진 반대 목소리가 더 크다. 굳이 법으로 강제하지 않더라도 1차로를 추월차로로 잘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 최대 자동차 클럽인 아데아체(ADAC)도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도로 정체가 심하거나 눈과 비가 내려 고속 주행이 불가능할 때가 있는데, 무조건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려야 하는 것은 오히려 운전자를 위험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독일에서 이 법이 큰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다. 모든 운전자들이 1차로를 비워두고 앞지르기를 해야 할 경우에만 이용한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독일 고속도로에서도 차로별 최저속도 구간이 있다. 대부분은 최저속도가 없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자주 나타나는 일부 아우토반(A8, 독일 뮌헨-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는 1차로 최저속도 100km/h, 2차로 최저속도 60km/h라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 도로에서조차 최저속도를 지키는 자동차를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독일인 스스로 '유일한 자유공간'이라 말하는 아우토반의 교통 흐름이 저속주행을 허락지 않기 때문이다.

◆ 우리나라 고속도로가 더 문제…제한속도 변화 필요

굳이 스위스와 독일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제한속도는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현제 대부분의 고속도로의 최고속도는 100~110km/h로, 경찰청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일부 구간에서만 120km/h까지 달릴 수 있다. 최저제한속도는 편도 2차로 고속도로 기준 50km/h다.

1차로를 추월차로로 규정한 이상, 1차로에서만큼은 최저제한속도를 높여야 하겠다. 법으로는 오른쪽 차로 추월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뻥 뚤린 교통 흐름과 관계 없이 1차로를 느긋하게(?) 달리는 운전자 때문에 오른쪽 추월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1차로 최저속도를 최고속도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정확한 이용법을 숙지시킬 수 있도록 면허교육 과정을 개선해야 한다.

가끔 '1차로를 최고제한속도에 맞춰 달리는 것'에 대한 찬반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결론만 말하자면 1차로를 제한속도 이상으로 과속하거나, 추월차로를 주행차로로 여기고 천천히 달려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것 모두 불법이다. 도로교통법에는 제한속도법과는 별개로 '더 빠른 뒤차에게 1차로를 양보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위반할 경우는 범칙금 4~5만원과 벌점 10점을 받는다. 만일 1차로 차를 그대로 놔두고 오른쪽으로 추월하는 경우라면 더 큰 위반이어서 범칙금 6~7만원에 벌점 10점을 받는다. 

당신이 모르는 국내 운전 법규. 1차로에서 비켜주지 않는건 불법. 우측 추월은 더 큰 범죄다. 

◆ 1차로는 추월할 때만 이용하자

독일 아우토반의 경우 절반 이상은 최고속도가 130km/h다. 하지만 이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제한속도가 아니라 권장속도다. 이 권장속도 구간, 일명 무제한 구간에서는 1차로에서 180km/h 이상으로 달리는 차들이 수두룩하다. 이렇게 달릴 수 있는 것은 1차로 이용법에 대한 정확한 실기와 이론 교육이 이루어졌고, 운전자가 이 약속을 철저히 지키기 때문이다. 

독일처럼 운전 문화가 잘 자리를 잡은 곳이라면 1차로 최저제한속도는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1차로를 추월 시에만 이용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든지, 최저속도를 높여 1차로를 교통 흐름이 방해받지 않도록 하든지 '오른쪽 차로 추월'이라는 잘못된 풍경이 우리나라에서 하루빨리 개선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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