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북 칼럼] 독일 운전자들에게는 '노란 천사'가 있다
  • 정리=김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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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19 16:53
[스케치북 칼럼] 독일 운전자들에게는 '노란 천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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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schuldigung. Wissen Sie, welche Farbe der Engel hat?" "Natuerlich. Gelb!" 

"실례합니다. 천사가 무슨 색인지 아십니까?" "당연하죠. 노란색입니다!"

독일 고속도로나 길 위에서 한 번이라도 이들에게 도움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위의 대화가 뭘 얘기하는지 잘 알 것이다. 바로 노란천사(겔버 엔겔, Gelber Engel) 아데아체(ADAC) 이야기다.

아데아체 (ADAC-Allgemeiner Deutscher Automobil-Club)는 '독일인 자동차 클럽'의 줄임말로, 유럽에서 가장 큰 자동차 관련 단체다. 회원 권익을 대변하는 그런 순수한 운전자들 모임으로 회원수가 자그마치 1,800만 명 이상(2014년 3월 기준 1,897만명)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이 자동차 클럽의 출발은 하지만 자동차가 아닌 오토바이였다. 1903년 25명의 오토바이 드라이버들이 친목형 모임을 만든 것이 시작이었고, 1914년에서야 지금처럼 그 성격이 자동차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 현재는 이 클럽에서 일하는 임직원들만 9천 명 가까이 될 정도로 독일, 아니 유럽을 대표하는 자동차 관련 조직이 되었다.

이 조직을 유지하는 힘은 회원들이 내는 회비에 있다. 연 50유로 수준의 일반 회원과 70유로(8만 5천 원) 수준의 플러스 회원으로 구분 되는데, 전체 회원의 50% 이상이 플러스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1년에 회원들이 내는 회비만 약 1조 5천억 원 정도가 되고, 여기에 정부에서 보조해주는 수백 억 수준의 지원금까지 있어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사진1>아데아체 본사 전경 / 사진=ADAC

 

# 아데아체가 하는 일

그렇다면 아데아체는 어떤 일을 할까? 가장 기본이 되는 업무는 긴급출동 서비스다. 운전 중 차에 문제가 있을 때 '노란천사'라는 별명의 출동차와 기사를 호출하게 되는데, 이들의 한 해 출동하는 횟수는 4백만 번 이상이 된다. 현장에서 바로 수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출동기사들의 정비능력이 좋은 편이고, 출동 차량에는 웬만한 정비소 못지않은 장비들이 갖춰져 있다. 2013년 기준으로 출동해 문제를 해결한 비율이 85%가 넘을 정도로 현장에서의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

현장출동 모습 / 사진=ADAC

특히 위에 언급했던 플러스 회원들의 경우,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을 커버하는 응급 헬리콥터 서비스와 제트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교통사고로 시간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 빠진 회원들을 위해 아데아체의 50대가 넘는 헬기는 언제나 대기 중이며 1년에 약 5만 번 정도의 출동이 이뤄진다.

헬기 출동 장면 / 사진=ADAC

 

제트기도 위급 상황에서 출동한다 / 사진=ADAC

긴급출동 서비스가 아데아체의 핵심 서비스라면 두 번째로 중요한 일은 각 종 자동차 관련 테스트다. 아데아체의 주요 업무이자 또 자랑거리로 신차에 대한 꼼꼼한 분석, 그리고 1년에 150대 이상의 자동차의 충돌 테스트를 통해 차에 대한 안전을 점검하고 이 자료들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다.

충돌 테스트 외에도 에코 테스트, 타이어 테스트, 바이크와 스쿠터 테스트, 어린이 카시트 테스트 등 다양한 테스트를 하고 있는데, 이런 기본적인 것 외에도 정비소 비교테스트, 터널 테스트, 고속도로 휴게소 비교 평가, 자전거 헬멧 테스트, 자동차 각종 첨단 장치 테스트, 주차장 테스트, 주유소 테스트 등, 이동 수단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시험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고 있다.

심지어 어느 해변가의 모래 상태가 어떻다느니, 어느 지역 도로가 어떻다는 등의, 시시콜콜한, 하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세부적인 내용들까지도 점검하고 있다. 그 외에 어린이 교통안전 교육의 경우 1년에 30만 명 이상의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고, 자동차 주행안전 교육에도 연 20만 명 이상의 운전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또 장년층 회원들을 위해 노인 운전자들이 운전하기 편한 차를 특수 장비를 갖춰 테스트해서 호응을 얻고 있으며, 각 종 교통 사고 사례에 대한 연구와 법적 상담, 교통 관련 제도 개발 등도 하고 있다.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이들의 빼놓을 수 없는 업무이고, 중고차 구매와 관련한 정보 제공과 다양한 모터스포츠 개최 및 후원 등도 주요 사업이다.

카브리오 전복 테스트 모습 / 사진=ADAC

물론 수익사업도 벌이고 있다. 150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아데아체 신용카드 사업을 비롯한 금융, 또 고속버스 사업, 출판, 지도, 자동차 보험, 자동차 용품 온라인 쇼핑몰, 유료 강좌, 통신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독일 정부조차 교통 정책을 개발할 때 아데아체의 도움을 구하거나 아니면 이들의 눈치를 살필 정도로 정책 부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최악의 스캔들 터지다

사실 앞서 언급한 것들 외에도 아데아체는 많은 일을 하고 있다. 특히 회원들을 위한 월간지 '모터벨트'는 월 1,300만 부 이상 발행되고 있어 그 파급력이 대단하다. 발행부수만으로도 일단 어떤 자동차 매체도 경쟁이 안되는 수준을 보인다. 그런데 이 잡지를 그간 이끌어 왔던 편집장의 부정으로 2014년 시작과 함께 아데아체 전체 조직은 커대란 위기를 맞게 된다.

아데아체는 모터벨트를 주축으로 해 '겔버 엔겔 트로피'라는 자동차 트로피를 매년 제조사들에게 주고 있다. 올해의 브랜드, 올해의 기술, 부분별 최고의 차 등을 선정해 시상을 하고 있고, 내로라하는 자동차 업계의 인사들 모두 이 트로피를 쥐기 위해 빠지지 않고 이 시상식에 참여했다.

그런데 내부자 고발로 그동안 투표 참여자수가 부풀려졌고, 순위까지 일부 조작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됐다. 독일 브랜드에 좋은 점수를 주었고, 조작된 순위와 투표수 등은 시상식 후 모두 폐기되었다. 이 모든 일을 주도한 것은 모터벨트 편집장이었는데, 결국 부인하던 그는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도망가듯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파장은 컸다. 제조사들은 여론의 비난을 두려워한 나머지 트로피를 반납해버렸고, 불똥은 경영진 전체로 튀었다. 이후 아데아체 회장이 구급용 헬기를 사적으로 이용한 사실이 드러나며 비난 여론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특히 특정 업체 자동차 배터리를 수리기사들에게 판매하게끔 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폭로되면서 아데아체 100년 이상 역사 중 최악의 위기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

카니발 퍼레이드에서 조롱당하고 있는 아데아체 / 사진=위키피디아

많은 회원들이 탈퇴를 하고, 단체의 존립 자체까지 위태로울 수 있을 거라는 예측들이 난무했지만 생각 보다 그 여파는 크지 않았다. 50만 명이라는 엄청난 회원이 탈퇴를 하긴 했지만 예상했던 수백만 명 탈출 러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문제가 있는 경영진들이 물러나거나 경찰 조사를 받는 등, 개혁조치가 바로 단행되면서 급한 불을 껐다.

회원 탈퇴가 적었던 것을 두고 여러 말들이 나왔다.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아데아체의 질높은 서비스에 있었다. 뛰어난 출동 서비스와 그외 다양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받은 회원들이 단칼에 이를 외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본부의 개혁 노력을 지켜보자는 쪽으로 흐름이 잡혔다.

하지만 어떤 면에선 정부가 내놓는 데이터 보다 더 신뢰를 받던 그들의 각 종 자료들이 완전히 신뢰를 받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설득력 있는 개혁 작업이 이뤄진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이번 스캔들은 거대한 조직이 엄청난 자본과 영향력을 만나 벌어진 일이었다. 오랜 세월 내부의 감사 기능이 마비된 상태에서는 이런 단체도 예외 없이 썩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1800만 명의 회원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조직이 완전히 새로워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 한국의 아데아체를 꿈꾼다

비록 부끄러운 일들이 연이어 터지며 체면을 구기긴 했어도, 아데아체는 여전히 독일과 유럽을 대표하는 자동차 클럽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이 클럽이 만들어 온 길은 결코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준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회원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도 자동차 2천만 시대를 맞았다. 더 이상 자동차는 일상과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생활의 도구가 되었다.

오래도록 아데아체의 역할을 지켜보면서 한국에도 이런 회원들에 의한, 회원들을 위한, 회원의 자동차 관련 클럽이 하나쯤 생겼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동차 커뮤니티 수준을 뛰어넘는, 체계적이고 소비자 중심의 힘 있는 단체가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생각한다.

제조사나 수입사에 맞서 버거운 싸움을 하는 운전자의 든든한 지원자로, 또 잘못된 정책에는 힘을 모아 소비자의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그러면서도 독일 아데아체 스캔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투명성이 강조되는 그런 건강한 조직이, 우리에게도 이제는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독일서 흔히 보는 아데아체 긴급출동차량 모습 / 사진=스케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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