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열린 '2015 아우디 R8 LMS컵' 4라운드. 대한민국 대표로 출전한 유경욱 선수가 3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하자 팀아우디코리아 관계자들의 손이 번쩍 올라가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3번의 도전 끝에 국내 대회에서 포디움에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1위였던 토마스 조드비치가 반칙으로 30초 패널티를 받자 두번째로 높은 곳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사실 유경욱은 전날 열린 3라운드에서 3위로 질주하던 중 미션 문제로 실격(retire)해 관계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유독 국내 대회와 인연이 없던 유경욱의 징크스가 또다시 재현될까 우려됐던 것. 그러나 그 누구보다 영암 서킷을 잘 알고 있는 유경욱은 푸시 투 패스(push-to-pass) 기능을 적절히 사용하는 등 특유의 노련한 드라이빙을 선보이며 국내 레이싱팬들의 성원에 보답했다. 

◆ 유경욱, 3번째 도전 끝에 안방 '포디움'

유경욱이 아우디 R8 LMS컵에 출전한 것은 2013년 아우디코리아가 만든 자체 레이싱팀인 '팀아우디코리아'에 영입되면서부터다. 아우디코리아 마케팅 총괄 요그 디잇츨 이사는 "모터스포츠 팀을 꾸리려면 좋은 선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유경욱 선수와 전홍식 매니저 팀을 발견한 것은 행운이었다"면서 "2012년 열린 상하이 LMS컵에 참가한 유경욱 선수의 인상적인 활약(3등)을 지켜본 후 팀아우디코리아로 데려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유경욱은 작년 대회(4라운드)에서 3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팬들의 기대에 비해 인상적인 활약은 펼치지는 못했다. 특히, 홈경기 어드밴티지가 있는 국내 대회의 경우 2013년은 첫 바퀴 첫 코너에서 리타이어를 했고, 작년에는 15대의 차량을 앞지르는 '추월쇼'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4위에 머무르는데 그쳤다. 

덕분에 올해 대회는 그 어느 때보다 유경욱에게 부담스러운 경기였다. '이제는 보여줘야 될 때가 됐지 않냐'는 주변 시선이 큰 중압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유경욱 역시 "누구보다 많이 타 본 영암 서킷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대표인 나에게 쏠려 있는 시선은 부담스럽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나 유경욱은 이번 4라운드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2위를 차지하며 이런 부담감을 말끔히 씻어냈다. 전날 열린 3라운드에서 미션 문제가 없었다면 이틀 연속 포디움에 올랐을 정도로 좋은 컨디션과 기량을 유지했다.

유경욱은 "3라운드는 아쉬웠지만, 4라운드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면서 "시즌 마지막까지 최고의 기량으로 그동안 보내주신 많은 분들의 응원에 보답할 것"이라 말했다. 

◆ 팀아우디코리아, 유일한 수입차 브랜드 레이싱팀

유경욱이 이렇게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팀아우디코리아의 역할이 크다. 모터스포츠의 불모지인 대한민국에서 수입차 브랜드로서는 유일하게 레이싱팀을 창단한 것은 물론, 한 선수에게 이렇게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예상보다 저조한 성적에 조바심이 날만도 한데, 흔들리지 않고 드라이버 교체 없이 유경욱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실제로 팀아우디코리아의 분위기는 '즐기다 보면 성적은 따라오기 마련'이라고 말하는 듯 놀라울 정도로 화기애애하다. 이번 3라운드에서 미션 문제로 리타이어했을 때도 잠깐의 안타까움이 있었을 뿐,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팀아우디코리아 관계자가 "유경욱 선수가 우승을 못하면 늙어 죽을 때까지 같이 할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생각해보면 2013년 인제에서 열린 5라운드에서 유경욱이 첫 바퀴의 첫 코너에서 리타이어를 했을 때도 아우디코리아 요하네스 타머 대표는 "그냥 하나의 레이스가 끝났을 뿐이야"라며 '쿨'한 모습을 보였다.

처음 아우디코리아가 팀아우디코리아를 창단하며 '수입차 브랜드로서 국내 모터스포츠 산업에 기여함과 동시에 우호적인 브랜드 이미지·인지도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밝혔을 때는 그저 마케팅 수사에 불과하다고 여겼는데, 이제는 말 그대로 믿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에 대해 요그 디잇츨 이사는 "아우디의 DNA는 모터스포츠라 할 만큼 아우디는 레이싱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특히, R8 LMS컵은 일반 도로를 달리는 차를 가지고 진행되는 경기여서 그만큼 의미가 있고 재미도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즐길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페라리 챌린지와 포르쉐 카레라컵 등 다른 원메이크 대회와의 차이점은 일단 참가 브랜드 중에서 R8이 가장 빠르다는 것"이라며 "페라리나 포르쉐는 순수 스포츠카를 만드는 브랜드여서 모터스포츠 대회를 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아우디처럼 다양한 차종을 만드는 브랜드에서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아우디 R8 LMS 머신, 원메이크 레이싱카 중 가장 빠르다 

 

아우디 R8 LMS컵은 R8 LMS 머신으로만 경주를 치르는 아우디의 유일한 원메이크 국제 대회로 원메이크 레이스 중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 특히, 국제 GT3 경주에 적합하도록 경주에 참여하는 R8 LMS 차량의 튜닝을 엄밀히 제한하기 때문에, 순수하게 드라이버의 역량과 전략이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는 대회로 명성이 높다.

 

아우디 R8 LMS(Le Mans Series) 머신은 R8을 기반으로 GT3 경주에 맞춰 후륜구동으로 설계됐다. 아우디의 초경량 설계를 통해 차체 무게를 소형차 수준인 1290kg으로 줄이면서도 차체 강성은 높였다. 파워트레인은 5.2 V10 FSI 가솔린 직분사 엔진과 6단 시퀀셜(세미오토매틱) 변속기가 탑재됐다. 최고출력은 560마력, 최대토크는 54.1kg∙m으로, 후면부의 대형 윙과 미쉐린 슬릭타이어(전륜 27/65R18, 후륜 31/71R18) 등을 새롭게 장착해 더욱 빠르고 다이내믹한 주행 성능을 발휘한다. 유경욱은 "윙과 타이어를 바꾼 것만으로도 영암 서킷 랩타임을 2초가량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작년부터 도입된 푸시 투 패스(push-to-pass)는 R8 LMS컵의 백미다. 평소에는 최고출력 510마력으로 달리다가 이 버튼을 누르고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순간적으로 스로틀이 100% 열리면서 50마력이 추가돼 10초간 총 560마력을 낼 수 있다. 주로 직선 코스에서 사용되는데, 각 트랙에 따라 사용 횟수가 제한된다. 영암 서킷의 경우 12랩 동안 총 12번을  쓸 수 있다. 

또, 이전 라운드에서 1~3위를 차지한 차량은 밸러스트(ballast)를 얹어 무게를 늘린 다음 경기에 참가하는 핸디캡 웨이트 시스템도 도입돼 순위 다툼이 더욱 치열하다.

 

실내는 불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없애 구조를 간소화했으며, 안전을 위해 롤케이지를 장착하는 등 레이싱을 위해 최적화시켰다. 스티어링휠에는 패들시프트와 서킷 미니맵이 붙어 있을 뿐이고, 인스트루먼트패널에도 주행 및 안전 사양과 관계된 몇 개의 버튼이 있을 뿐이다. 

또, 화재를 대비해 위험 상황 시 총 17군데에서 소화액이 분출되도록 했으며, 차체가 45도 이상 기울어져 전복이 감지되는 상황에서는 저절로 작동한다.

 

유경욱이 타고 출전하는 R8 LMS 레이싱 머신은 아우디가 작년 실시한 '아우디 R8 LMS컵 랩핑 디자인 공모전' 우승 디자인으로 랩핑됐다. 태극 문양에 아우디 컬러를 접목한 것으로, ‘단순한 것이야말로 아름다움의 핵심’ 이라는 아우디의 디자인 철학과 태극기의 디자인 요소를 경주차 곳곳에 잘 활용해 강인하면서 단단한 R8 LMS 카의 디자인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아우디 신형 R8의 탄생으로 R8 LMS 모델도 바뀐다. 아우디는 현제 뉘르부르크링 등에서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특히, R8 LMS컵 등 모터스포츠를 통해 얻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설계 디자인을 바꾸고 차체를 더 낮게 만드는 등 레이싱에 더욱 적합한 모델로 탄생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내년 대회부터 신형 R8 LMS 모델이 사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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