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중국에 빼앗긴 이름...싼타페, 티볼리, K9
  • 상하이=김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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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4.24 13:54
[기자수첩] 중국에 빼앗긴 이름...싼타페, 티볼리, K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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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타페와 투싼, ix25는 현대차의 중국 대표차종이다. 지금은 ix25가 가장 많이 팔리지만, 최근 커져가는 중국의 SUV 시장을 감안하면 싼타페는 더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대차는 중국서 싼타페를 '셩따페이(圣达菲, 미국 싼타페 지역의 중국 표기)'가 아닌 '셩다(胜达)'로 판매한다. 국내선 '짝퉁 싼타페'로 알려진 중국 화타이자동차가 이 이름을 선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짝퉁'이라고 치부하기엔 현대차와 화타이 자동차의 관계가 복잡하다. 

▲ 화타이자동차 셩따페이

현대차와 화타이의 관계는 1998년, 현대차 테라칸의 부품을 가져다 화타이가 현지에서 조립 생산하면서부터 시작됐다. 2004년 본격적인 SUV 생산 제휴를 맺었고 2005년부터 싼타페를 CKD(부품수출 현지생산) 생산 판매해 왔다. 계약에 따라 중국산 싼타페는 1년에 2만대씩 판매됐다.

하지만 이후 현대차는 "화타이 자동차 측이 로열티도 제때 지급하지 않았고, 장사를 잘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했다. 화타이자동차는 현대차와의 계약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계약 해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 쌍용차 최종식 사장, '짝퉁 싼타페' 총책임

쌍용자동차 신임 최종식 사장. 한때는 화타이자동차에서 '짝퉁 싼타페'를 만들어 파는데 일조했다. 

갖은 회유에도 현대차의 입장이 확고하자 화타이자동차는 '다른 방법'으로 싼타페를 계속 생산하기로 했다. 어차피 현대차에 납품하는 부품 업체들이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으니 못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중국에 판매 되던 유일한 '싼타페'인만큼 적어도 중국에선 자신들이 오리지널이라 주장했다. 이 무렵 현대자동차 미국 법인장이던 최종식씨를 영입해  부총재로 앉혔다. 최종식씨는 지난달 우리나라 쌍용자동차의 사장이 된 바로 그 인물이다. 

화타이와 계약 만료와 함께 북경현대차는 한국서 생산한 싼타페를 직접 수입해 중국에 판매했다. 하지만 모양과 기능이 유사한데다 30% 넘는 막대한 관세까지 지불하면 중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화타이자동차 셩따페이에 비해 가격 경쟁력에서 불리했다. 더구나 계약을 해지하면서 싼타페의 중국 이름인 '셩따페이'를 빼앗겼기 때문에 새 이름도 지어야 했다.

현대차 중국 관계자는 "2004년 현대차가 화타이자동차와 CKD 생산을 계약하던 당시 현대차는 단순히 부품만 공급 할 뿐 판매에 대해선 관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차에 대한 이름을 짓는데 적극적으로 관여하거나 상표권을 등록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름에 대한 권리 또한 주장할 수 없다는 말이다.

최근 화타이모터스는 짝퉁 디자인에서 벗어나 나름의 디자인을 더한 신형 싼타페(新圣达菲)이라는 새 차까지 내놓고 있지만 현대차는 속수무책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소송을 해서 이길 가능성도 없고, 괜히 중국인들에게 밉보일 가능성이 있어 소송은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 중국에 판매되는 현대차 그랜드 싼타페. 

현대차가 새로 지은 싼타페의 중국 이름은 '셩다', 신형 싼타페는 '취엔신셩다(全新胜达)'로도 쓴다. 성공에 도달한다는 뜻으로 의미는 좋다. 관계자는 "'셩따페이'라는 이름은 발음만 같을 뿐 별다른 뜻도 없으니, 화타이자동차가 아니었어도 그런 식으로 짓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잘라말했다. 빼앗긴게 아니라 애초 그런 이름은 생각도 안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중국 판매 차량을 보면 영문으로는 'Santafe'라고 쓰고 한자로는 '셩다'라고 함께 쓰여 있는데 이 점은 누가 봐도 좀 이상하다. 최소한 발음이 싼타페와 유사하거나, 쓰지는 않더라도 이름을 소유하고 있었어야 설득력이 있겠다. 반면 신형 투싼은 '투셩(途胜)'이라는 이름으로 일관성 있게 지었다. 

# 현대차, 쌍용차...최소한 브랜드는 지켜야

현대차로부터 '셩타페이'를 가져간 쌍용차 최종식 사장도 중국서 이름을 빼앗겼다. 중국GM이 미리 상표권을 등록해놨기 때문에 수출 전략 차종인 티볼리의 이름을 '띠웨이란(蒂维兰, Tivolan)'으로 바꿔야 했다.

사실 '티볼리'는 중국인이 좋아하는 루이비통 가방의 이름이기도 해서 중국에서 티볼리라는 이름이 상표 등록 돼 있는건 당연했다. 애초 이름을 지을때 이 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건 의외다. 최종식 사장은 "100개국에 티볼리의 이름을 상표 등록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세계 최대 시장 중국에 등록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 티볼리의 이름을 뺐긴 쌍용차 티볼란

그리 크지 않은 자동차 회사인 화타이자동차도 엔지니어, 디자이너, 설계사, 생산관리자 등 다양한 분야의 한국인 직원을 100여명 가량 보유하고 있다. 막대한 자본력을 등에 업은 중국 회사들이 필요하면 언제고 한국이나 유럽에서 전문가들을 영입해온 결과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독일, 일본 부품회사들도 중국 자동차 회사에 납품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격차는 그만큼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아직 기술 격차가 있다며 비웃는 이도 많지만 불과 2~4년전 상하이모터쇼의 차들과 비교해보면 중국의 기술 수준은 더 이상 웃을 수 없는 수준이다. 

▲ MINI 디자이너를 영입해 만든 코로스 2 SU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기아차는 K9의 수출명을 큐오리스로 등록했지만 코로스와의 소송에 패소해 이름을 바꿔야 했다.

인력과 부품 제휴사를 뺐기더라도 잃지 않고 지킬 수 있는건 브랜드 뿐이다. 이번 모터쇼에서 유럽과 미국 회사들은 하나같이 역사적인 올드카들을 함께 전시했다. 차별화된 역사와 전통을 내세워 값비싼 프리미엄 이미지를 입겠다는 의미다. 여기에 배워야 할 점이 있다.

현대차도 최근 ix35의 수출명을 '투싼'으로 통일하는 등 세계 시장서 단일 명칭을 쓰는게 중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세계가 단일 생활권으로 묶인 글로벌, 인터넷 시대인만큼 세계적으로 단일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키워나가는게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본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제 이름부터 지켜나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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