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국내엔 없는 '폭스바겐 비틀' 타고 '아우토반' 달리다
  • 독일 뤼벡=전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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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8.22 21:18
[시승기] 국내엔 없는 '폭스바겐 비틀' 타고 '아우토반'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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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이 이렇게 잘 달리는 차였어?" 서울에서 시승할때도 워낙 잘달리는 차라고 생각은 했지만, 독일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비틀은 얼핏보면 흡사 포르쉐를 연상케 할만큼 도발적이고 짜릿했다. 역시 핏줄은 못속인다. 

이곳에 온건 유럽 최대의 비틀 축제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의외의 매력으로 가는 여정이 더 흥미롭게 여겨졌다. 동그란 눈망울의 비틀은 한대만도 예쁜데, 형형색색 비틀 틈에서 달릴때는 묘한 자부심과 동질감도 느껴졌다. 수십년 된 오리지널 비틀과 최신 기술의 비틀이 나란히 해안 도로를 달리는 것은 시대를 넘나드는 것 같은 기분도 들게 했다.

더구나 행사에 참가한 비틀 오너들은 반짝이는 새 비틀을 탄 우리 일행을 보고 무척 반가워했다. 어쩐지 싸이를 닮은 동양인들이 패밀리에 합류했다고 여기는 것만 같았다. 어떻든 좋다. 우리 차가 지날 때면 다들 경적을 울리고 손을 흔들며 반겨주니 시승이 더 즐거워졌다. 

시승 모델은 더 비틀 1.4 TSI와 2.0 TSI 카브리올레, 2.0 TDI 카브리올레로, 모두 국내에서 판매되지 않는 모델들이다.

▲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가 열린 트라베뮌데 해변. 500여대의 비틀이 한 자리에 모였다

◆ 더 비틀 1.4 TSI…사.기.캐.릭.터.

6세대 골프 1.4 TSI를 시승할 때도 그랬지만, 폭스바겐의 1.4리터급 TSI 엔진은 그야말로 '사기'다. 이 작은 엔진으로 어찌 이렇게 잘 치고 나갈 수 있는지 신기하다. 기본적으로 슈퍼차저와 터보를 함께 장착해 출발할때는 슈퍼차저가, 가속해서는 터보가 힘을 쓴다. 신형 골프 1.4 TSI는 슈퍼차저 없는 터보로 바뀌었기 때문에 좀 아쉬워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비틀에 여전히 이 엔진이 장착됐다니 무척 반가웠다. 이 1.4 TSI 엔진은 비틀에서도 진가를 톡톡히 발휘했다. 국내의 괴상한 배기가스 규제 때문에 폭스바겐코리아는 2.0 TDI 모델만 판매하고 있는데, 어서 1.4 TSI 모델도 들여와 주길 바랄 뿐이다. 

▲ 국내에는 팔지 않는 더 비틀 삼총사를 타고 볼프스부르크 아우토슈타트에서 뤼백으로 출발했다

아우토반에 진입하자마자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날카로운 엔진음과 함께 차가 쭉 뻗어나는 맛이 제법이다. 본능적으로 속도계를 봤는데, 얼마 되지 않아 바늘은 시속 180km를 넘었다. 그 이후부턴 앙칼진 소리를 내며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래도 꾸준히 속도계 바늘을 돌리더니 시속 210km까지 도달했다. 

시승 전에는 막연히 골프 1.4 TSI보다는 둔할 것이라 생각했다. 60kg 가량 무거운 차체 무게와 공기저항을 많이 받는 디자인이 주행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란 편견 때문이다. 그러나 트윈차저 시스템과 7단 DSG 변속기는 저속에서 고속까지 꾸준히 힘을 이어줬고, 차체 움직임도 스티어링휠 조작에 따라 민첩하게 반응했다.

▲ 카브리올레를 탈까 고민하다가 쿠페를 타기로 했다. 정말 다행스런 선택이었다

변속 모드를 S로 바꾸니 주행은 더 과격해졌다. 변속 타이밍을 늦추며 160마력의 최고출력과 24.5kg·m의 최대토크를 모조리 뽑아냈다.

DSG의 변속 속도는 재빨랐지만 7단 기어비가 워낙 촘촘해 업시프트나 다운시프트를 할 때 극단적인 맛은 좀 부족했다. 부드러워 불만이라는건 그저  비틀 1.4 TSI의 성능이 기대치를 높인 것이고, 차 자체로서는 전혀 아쉬움이 없었다. 

▲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비가 내렸다. 커버를 씌운 탓에 속도를 줄이고 소프트톱을 닫을 수도 없는 노릇. 결국 카브리올레를 탄 일행은 갓길에 차를 세워야만 했다. 행복했다

고속 안정성도 매우 뛰어났다. 이전 모델보다 차체가 커지고 무게중심이 낮아진 덕분이다(길이 +150mm, 너비 +90mm, 높이 -15mm). 또, 고속에서도 생각보다 조용했고, 서스펜션이 차의 출렁임을 잘 잡아줘 불안함도 들지 않아 만족스러웠다. 

▲ 독일 아우토반에서 더 비틀 1.4 TSI의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시속 210km까지 달릴 수 있었다

◆ 더 비틀 2.0 TSI 카브리올레…반.칙.캐.릭.터

더 비틀 2.0 TSI는 1.4 TSI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골프 GTI를 통해 검증받은 2.0리터급 TSI 엔진이 탑재돼 최고출력 211마력, 최대토크 28.6kg·m의 동력 성능을 발휘한다.

초반에 치고 나가는 능력은 1.4 TSI 모델과 그리 큰 차이가 없었지만, 고속에서 속도를 높이는 능력은 확실히 1.4 TSI보다 빠르고 부드러웠다. 그러나 이 정도 차이에 불과하다면 굳이 값비싼 2.0 TSI를 살 이유는 없어 보였다.

▲ 더 비틀 2.0 TDI 카브리올레(앞)와 1.4 TSI(뒤)

그런데 변속기를 S모드로 바꾸자 차가 완전히 달라졌다. 낮게 그르렁거리며 강렬한 배기음을 토해내더니 과격하게 튀어 나갔다. 등이 시트에 파묻혔고, 나도 모르게 스티어링휠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 운전에 집중하게 됐다. 

특히, 2.0 TSI는 6단 DSG가 장착돼 운전이 더욱 다이내믹했다. 변속할 때마다 차의 움직임이 극단적으로 변하며 아우토반을 시속 220km로 달렸다. 비틀에 2.0 TSI 엔진을 장착한 것은 일종의 '반칙'처럼 느껴졌다. 

▲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에 모인 다양한 비틀들이 단체 주행을 했다. 중간에 범인이 있다

◆ 더 비틀 2.0 TDI 카브리올레…원.츄.캐.릭.터.

더 비틀 2.0 카브리올레는 현재 국내에 판매되는 2.0 TDI 쿠페에 소프트톱이 추가된 모델이다. 소프트톱은 열리는데 9.5초, 닫히는데 11초가 걸리며 시속 50km 이하의 속도에서도 작동한다. 비틀은 둥그런 지붕이 포인트지만, 소프트톱을 연 비틀의 자태도 만만치 않게 매력적이다. 

▲ 더 비틀 2.0 TSI 카브리올레. S모드에서의 주행 성능은 반칙이다

비틀 2.0 TDI는 주행 성능에 초점을 맞춘 2종의 TSI 모델과 달리 성능과 효율을 모두 만족시킬수 있도록 적절히 균형을 맞췄다. 최고출력은 140마력, 최대토크는 32.6kg·m로 부족하지 않은 데다가 복합 연비도 15.4km/l로 우수한 편이어서 비틀 중에서는 가장 현실적이면서 실용적인 모델이다. 작년 출시된 7세대 골프에서도 2.0 TDI의 판매량이 1.6 TDI를 압도하는 이유다.

▲ 다 큰 남자 둘이 비틀을 타고 뚜껑을 여니 뭔가 애잔하다. 시승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기가스 규제 때문에 가솔린 모델 라인업을 확대하기 어려운 폭스바겐코리아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비틀 2.0 TDI 카브리올레는 3종의 모델 중 국내에 출시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모델이다. 특히, 지붕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독일 해변 도로를 달려보니 국내에도 비틀 카브리올레가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 세련된 모습으로 변한 '더 비틀'…클래식한 디자인 유지했으면

▲ 폭스바겐 더 비틀 1.4 TSI. 한 마디로 사기다

더 비틀은 뉴 비틀의 귀여운 디자인에서 탈피해 보다 세련된 모습으로 변했다. 앙증맞은 뉴 비틀은 여성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아무래도 남성들이 몰고 다니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디자인이었는데, 이제 남녀가 화합해 적당한 선을 찾은 듯 하다. 폭스바겐 입장에서는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겠지만, 비틀 특유의 클래식한 개성이 줄어든 것은 조금 아쉽다. 

반원형 지붕 라인은 A필러를 직선으로 세우고 수평 라인을 사용해 과감하게 눌렀고, 휀더 부분에 볼륨감을 줘 남성적인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범퍼는 앞으로 길쭉하게 뽑았으며, 크롬 라인을 적용하고 안개등 디자인을 바꿨다. 특히, 원형 테일램프를 가로모양으로 변화를 주고 휀더 상단으로 위치를 바꿨으며, 트렁크와 뒷유리가 만나는 지점에 스포일러를 장착해 엉덩이를 추켜올린 효과를 줬다. 폭스바겐의 최신 패밀리룩이 적극적으로 활용된 모습이다. 

▲ 3세대 더 비틀의 실내는 2세대 뉴 비틀에 비해 동그란 디자인이 많이 사라졌다

실내 디자인의 전체적인 레이아웃은 6세대 골프와 비슷하다. 2세대 뉴 비틀의 경우 송풍구와 스티어링휠, 계기반 등이 외관과 마찬가지로 모두 동그랬는데, 3세대 더 비틀은 인스트루먼트패널 부분에 네모난 디자인을 사용했다. 대시보드 위에는 오일 온도, 크로노미터 기능이 포함된 타이머, 압력게이지 부스터 등이 적용됐다. 세련된 느낌과 과거의 향수를 함께 느끼게 한다. 비틀은 앞으로도 특유의 클래식함을 유지하면서 소재나 마감 등을 더욱 고급스럽게 하는 방향으로 바꾸면 좋겠다. 

▲ '2014 더 비틀 선샤인 투어'에는 1세대 오리지널 비틀부터 2세대 뉴 비틀, 3세대 더 비틀까지 500여대의 개성 넘치는 비틀들이 모였다

이제는 도로에 수입차가 넘쳐난다. 엔트리 수입차들의 위상도 찬란했던 과거를 위안 삼아야 할 정도로 희미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도로에서 비틀과 마주하면 여전히 과거의 향수가 불러 일으켜진다. 대학 때 여자 동기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동경하던 그 광경, '국민학교'때 '딱정벌레차'를 구경하자고 우르르 달려갔던 그 추억. 그런 즐거웠던 기억을 일순간 생생하게 끄집어 내는 힘이 이 차에는 실려있다. 그러니 이 차는 그저 모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거다. 이 차를 타는 사람이라면 어쩐지 친구 같고, 가족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면서도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한 사람일것만 같다. 이게 바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비틀의 가치고, 많은 사람들이 비틀을 사랑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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