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메르세데스-벤츠 신형 G클래스…"아이코닉의 새로운 도전"
  • 프랑스 카르카손=김상영
  • 좋아요 0
  • 승인 2018.05.22 19:35
[시승기] 메르세데스-벤츠 신형 G클래스…"아이코닉의 새로운 도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1979년 2월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고대 요새인 ‘카르카손(Carcassonne)’에서 G클래스의 첫번째 글로벌 행사를 진행했다. 카르카손은 기원전부터 고대 로마인들의 군사적 요충지였던 유서 깊은 도시다. 오랜 역사 동안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카르카손을 지배했었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곳을 증축하며 카르카손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이름을 떨쳤다. 그 기운이 G클래스에게 전해지길 바라듯, 메르세데스-벤츠는 G클래스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겪은 ‘더 뉴 G클래스’를 끌고 다시 카르카손을 찾았다.

30여명을 태운 전세기는 프랑스 남부의 ‘페르피냥(Perpignan)’ 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은 동서울터미널보다 작았다. 우리 일행만으로도 북적댔다. 아주 짧게 시승 코스에 대한 브리핑을 듣고 곧바로 더 뉴 G클래스의 스마트키를 건네받았다. 공항 야외 주차장에는 십여대의 G클래스가 오와 열을 맞춰 서있었다. 멀리서 차문을 열자 G500은 ‘철컥’ 큰소리를 내며 반겼다. 나도 모르게 다가가는 동안 계속 문을 열고 닫았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더 뉴 G클래스를 개발하면서 절대 바꾸지 말아야 할 것을 몇 개 정해뒀다. 각진 실루엣과 보닛 위에 볼록 솟은 턴시그널 램프, 돌출된 경첩, 트렁크 도어에 장착된 스페어타이어, 독립적인 3개의 디퍼렌셜 락 등이 그것이다. 또 특유의 감성적인 부분도 유지하려 애썼다. 예를 들면, 도어 힌지와 손잡이는 알루미늄으로 새롭게 만들어졌지만, 두꺼운 철제 금고문를 여는 듯한 느낌은 그대로 남겨뒀다.

그 문을 여니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어리둥절할 만큼 세련돼졌고, 저절로 손이 갈 정도로 더 뉴 G클래스의 실내는 고급스러워졌다. 많은 부분은 수작업으로 만들어졌다. 더 뉴 G클래스는 메르세데스-AMG, 메르세데스-마이바흐, 두 서브 브랜드의 장점을 모두 흡수했다. 투박하고, 진부했던 모습은 전부 사라졌다. S클래스의 것을 대부분 공유하며, 오프로더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디자인 요소는 현대적으로 재해석됐다.

더 뉴 G클래스의 또 다른 핵심적인 변화는 출발과 동시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동안 경험했던 G클래스의 거동과 조작감각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도심에 적합한 모노코크 SUV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극심했던 스티어링의 유격은 사라졌고, 몸동작은 경쾌했다. 코너를 돌아도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지지 않았다. 하중이동을 완전히 감출 순 없었지만 예전 모델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차이였다.

메르세데스는 더 뉴 G클래스의 날쌔고 진중한 거동을 위해 몇가지 마법을 부렸다. 먼저, 앞뒤 모두 리지드 액슬이었던 서스펜션을 바꿨다. 특히 이 작업은 메르세데스-AMG가 앞장섰다. 이제 메르세데스-AMG는 전반적인 신차 개발 초기 과정에도 관여하고 있다. 메르세데스-AMG는 전륜 리지드 액슬 대신 견고한 더블 위시본을 이식했다. 이와 함께 불필요한 서브 프레임도 빼버렸다. 그리고 정강이뼈보다 크고 두꺼운 로어 위시본을 프레임에 바로 붙였다. 덕분에 도로나, 험로에서의 유연성이 크게 증가됐고, 더 적극적으로 타이어가 땅을 긁을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오랫동안 고수했던 유압식 스티어링 시스템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으로 변경됐다. 속도와 주행모드에 따라 반발력은 자연스럽게 변했고, 무엇보다 최신 트렌드인 ‘차선 유지 어시스트’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여전히 수많은 벌레가 앞유리에 그대로 부딪혀 죽었다. 바람 소리가 들이치는 시점이 뒤로 미뤄졌을 뿐, 시속 130km가 넘어서면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G클래스는 공기역학에 반하는 디자인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도 더 뉴 G클래스는 그나마 성의라도 보였다. 헤드램프 부근을 약간 비스듬하게 만들었고, 아웃사이드 미러의 한쪽 면에는 에어핀도 돋았다.

바람과 정면으로 맞서면서도 속도는 쉽게 높아졌다. 이 과정이 더없이 깔끔해졌다. 9단 변속기는 아주 신속하게 명령을 내렸고, 힘이 넘치는 엔진은 신속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최고출력 422마력, 최대토크 62.2kg.m의 힘은 G500을 가겹게 이끌었다. 고속주행 안정성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덩치가 커졌고, 이와 함께 바퀴 간의 거리가 멀어졌다. 좋은 체격에서 좋은 자세가 나온다.

G500에 장착된 올시즌 타이어는 코너마다 비명을 질렀다. G500은 스스로의 한계가 높아진 것을 거칠게 표현했다. G클래스를 위한 시승 코스가 맞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와인딩이 길었다. 낭떠러지를 옆에 끼고 한참을 달린 끝에, 오프로드 주행을 위한 베이스 캠프가 마련된 ‘랑그독-루시옹(Languedoc-Poussillon)’에 도착했다. 랑그독-루시옹은 포도주로 유명한 곳답게 햇볕은 쨍했다. 연강수량이 400ml에 불과해 건조한 기운도 충만했다. 먼발치로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더 뉴 G클래스가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 산중턱을 엉금엉금 기어오르는 더 뉴 G클래스도 보였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아직 시차적응도 끝내지 못한 우리를 산꼭대기로 데려갈 심산이었다.

안그래도 대적할 이 없었던 오프로드 성능은 조금 더 향상됐다. 지상고가 높아짐에 따라, 피지컬적으로 우수해진 부분이 있었다. G500의 진입각은 31도, 이탈각은 30도, 뱅크각은 26도다. 유연해진 서스펜션 덕에 35도로 기울어진 사면을 달릴 수 있고, 45도의 경사로도 손쉽게 오를 수 있다. 지상고가 241mm로 높아져서 70cm의 강을 건널 수 있다. 트레일링 암들은 여러 각도로 뒷차축을 잡고 있고, 리어 스프링은 82mm로 수축했다가 142mm까지 연장된다. 웅덩이를 만나면 발을 쭉 뻗어 디딜 곳을 찾는다.

여느 SUV와 가장 큰 차별점은 3개의 디퍼렌셜 락과 새롭게 추가된 ‘G모드’였다. 더 뉴 G클래스는 별도의 로우 기어 레버가 없다. 대신 G모드를 통해 로우 레인지 기어를 사용하게 된다. 또 통합적으로 서스펜션의 댐핑이 달라지고, 스티어링, 파워트레인 등이 조절된다. G클래스의 상징과도 3개의 디퍼렌셜 락은 G모드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오프로드만 1시간 코스였다.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시켜주겠다던 인스트럭터의 설명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바위산을 타고 오르고, 비포장길에서 뒷바퀴를 미끄러트리며 달렸다. 수많은 오프로드를 경험했지만, 손과 등에서는 땀이 났고, 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인스트럭터에게 이 방향이 맞냐고 계속 되물었다. 언제나 맞다, 그냥 가라는 한결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3개의 디퍼렌셜 락을 모두 작동시킨 더 뉴 G클래스는 길이 아닌 곳만 골라다니며 길을 만들었다.

흙먼지가 잦아들기도 전에, G63에 올랐다. G클래스는 독특하게 스탠다드 모델보다 AMG가 더 많이 팔린다. 그래서 이번 글로벌 시승행사에는 메르세데스-AMG의 임직원들이 대거 출동했다. 그만큼 메르세데스-AMG가 공들여 만들었다는 얘기다. G500도 놀라움의 연속이었는데, G63은 그걸 다 잊게 만들 정도였다. 도무지 무거운 프레임 바디를 지닌 SUV의 움직임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G63은 G500과 설계부터 다르다. 겉모습, 크기만 다른게 아니라, 좌우 바퀴 사이의 거리도 다르다. 트레드가 16mm 더 넓다. 사륜구동 시스템은 40:60으로 뒷바퀴에 더 많은 힘을 보낸다. G500에서는 옵션으로 제공되는 전자 제어 서스펜션이 기본으로 탑재됐다. 22인치 휠에는 접지력이 충분한 타이어가 적용됐다. 또 스포츠+를 선택할 수 있고, 단계적으로 차체 자세 제어 시스템도 설정할 수 있다.

더 잘달리기 위한 여러 기반이 마련된 만큼, G63은 더 극적이었고, 자극적이었다. 차체 양쪽 옆면에 각각 달린 2개의 바주카포는 연신 입김을 뿜으며, 주변을 기죽였다. 등 뒤가 아닌, 어깨 옆에서 들리는 파열음은 이색적이었고, 중독성이 강했다. 가변 배기 시스템이 활성화되면, 강렬한 소리의 힘이 차체를 흔든다. 스로틀이 살짝만 열려도 낮게 깔리는 저음의 울림이 몸으로 전달됐다.

감성만 충분했던 예전 G63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G500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코너를 돌았다. 노면에 착 달라붙었다는 느낌이 확연했다. G500에 비해 하중이동도 더 적게 느껴졌고 전자 제어 서스펜션의 변화도 컸다. 여러 부분에서 한계치가 높아졌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크고 무거운 덩치가 주는 부담은 전혀 없었다. 서킷에서 달려보고 싶을 정도였다. 메르세데스-AMG는 서스펜션의 위치가 여러 링크를 밀리미터 단위로 옮기며, 최적의 주행성능을 찾아냈다고 했다.

오른발에 조금만 힘을 줘도 몸이 시트에 파묻힐 정도로 G63은 거세게 반응했다. 4.0리터 V8 바이터보 엔진은 2.5톤이 넘는 G63을 아주 가벼운 존재로 만들었다. G63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4.5초만에 도달할 수 있는데, 실제론 그보다 훨씬 더 빠르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앞차의 트렁크를 내려다 봤다. 최고속도가 안전의 이유로 비교적 낮게 설정됐지만, 그 속도까지는 거침없이 속도를 높였다. 그 과정도 격정적이었다. AMG 스피드쉬프트 9단 변속기는 변화무쌍했다.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통해 기어 변속은 더 날카롭고, 빨라졌다. 속도를 줄일 땐, 번개처럼 스스로 기어를 두세단 낮추기도 했고, 속도를 높일 땐, 6000rpm 넘게 엔진회전수를 끌어올렸다. 여러 방면에서 G63은 ‘역동’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얻었다.

오랜 숙제였던 고속안정성도 한결 나아졌다. 무게 중심을 낮추기 위한 설계가 이뤄졌고, 가볍고 튼튼한 소재를 사용하면서 더 견고한 차체를 만들었다. A필러와 B필러에는 하중을 지탱하기 위한 뼈대 중 가장 강력한 고강도 강철이 사용됐다. 또 프레임, 바디 쉘, 차체 마운트의 비틀림 강성은 약 55% 향상됐다. 이와 함께 무게는 최대 170kg 가량 줄었다. 프레임 바디를 유지하면서도 최적의 다이어트와 강성 강화를 이뤄냈다.

G클래스는 매력지수가 매우 높은 차다. 시간을 초월한 한결같은 디자인과 그 모습이 만든 강인한 이미지는 지금까지 수많은 추종자들을 만들었다. 또 막강한 오프로드 성능은 G클래스를 여느 도심형 SUV와는 확연히 다른 존재로 각인시켰다. 하지만 군용차라는 태생적 한계도 그대로 남았다. 빌딩숲에서 타기엔 그리 편안하지 않았다. 스티어링이나 엔진의 반응은 언제나 반박자 늦었고, 승차감은 상용차보다 조금 더 세련된 수준이었다. 마치 슈퍼카처럼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차였다.

그랬던 G클래스가 확 달라졌다. 시대의 흐름, 소비자들의 요구도 충분히 수용했고, ‘더 나은 아이코닉’이 되기 위한 노력을 더 했다. 그동안 전통, 정체성을 중시하며 손해를 감수했던 부분을 거의 전부 해결했다. 39년전의 원형, 아이코닉함을 유지하면서도 놀라운 변화를 추구한 점은 무척 고무적이다. 약점이 없어진 더 뉴 G클래스는 자신만의 길을 더욱 견고하게 다졌다. 더 뉴 G클래스를 개발한 담당자에게 물었다. 이젠 수많은 럭셔리 SUV가 쏟아지고 있다고. 그는 자신있게 말했다. 그들의 도전을 환영한다. 경쟁자가 더 많아질수록 G클래스가 독보적인 존재인 것을 더 쉽게 알 수 있을 거라고.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