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용 칼럼] 수입차 시장 망치는 벤츠와 BMW의 치킨게임
  • 전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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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4.23 17:56
[전승용 칼럼] 수입차 시장 망치는 벤츠와 BMW의 치킨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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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판매 재개한 아우디가 욕을 먹습니다. 뒤이어 나온 폭스바겐도 욕을 먹습니다. 나온 지 얼마 안 된 차를 1000만원이나 할인해 준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믿고 기다린, 나오자마자 제값 주고 산 소비자들을 바보로 만든 나쁜 처사라고 손가락질을 당합니다.

아우디와 폭스바겐을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왜 이렇게 비상식적인 처사를 해 욕을 사서 먹는지 궁금할 정도로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그들의 행태가 이해되기도 합니다. 아우디와 폭스바겐이라고 깎아주고 싶어 깎아줬겠습니까. 먹고 살려면, 한 대라도 더 팔려면 이 방법 이외에는 답이 없었을 겁니다.

수입차 브랜드들의 할인 경쟁은 도를 넘은 지 오랩니다. BMW 3시리즈가 1000만원 이상 할인해줘 쏘나타나 그랜저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놀랄 일도 아닙니다. 물론, 이는 비단 3시리즈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죠. 소비자 입장에서는 고급 수입차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해 좋을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할인을 앞세운 비정상적인 성장은 매우 위태로워 보입니다.

가장 큰 주범(?)은 벤츠와 BMW입니다. 정확히는 벤츠코리아와 BMW코리아라고 하는게 맞겠네요. 수입차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는 이들이 오히려 가장 많은 할인을 해주며 시장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판매량이 줄어든 것도 아니고, 아우디와 폭스바겐의 판매 중단으로 경쟁 환경은 더 나아졌는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수입차 관계자들은 이들의 과열 경쟁을 수입차 시장 망치는 치킨게임이라며 우려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우디와 폭스바겐이 빠진 사이 벤츠와 BMW의 수입차 시장 점유율은 크게 늘었습니다. 올해 1~3월 벤츠와 BMW의 점유율은 각각 32.1%, 27.6%나 됐습니다. 20%가 채 안 되던 2016년과 비교하면 벤츠는 약 13%, BMW는 약 8%가량 늘었네요. 둘을 더하면 무려 60%입니다. 25여개 브랜드가 경쟁하는 수입차 시장에서 두 브랜드 점유율이 60%라는게 믿어지나요? 특히 지난달 벤츠 판매량은 7954대로, 르노삼성(7800대)과 한국GM(6272대)보다 많았죠. BMW 역시 7053대로, 한국GM을 제쳤습니다.

BMW 5시리즈

BMW의 경우, 벤츠에 빼앗긴 수입차 1위 자리를 되찾기 위해 무리하게 할인을 합니다. 원래 BMW가 벤츠에 비해 많이 해줬지만, 요즘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풀체인지를 앞둔 3시리즈만 1000만원 이상 할인해주는게 아니라, 나온 지 1년도 안 된 5시리즈도 1000만원 넘게 해주고 있네요. E클래스를 최대한 따라잡으려는 의도로 보이는데, 이러다가 가랑이가 찢어지겠습니다.

벤츠는 BMW와 격차를 벌려 수입차 1위 자리를 굳히기 위해 할인을 합니다. 일부에서는 드미트리 실라키스 사장이 임기 중에 벤츠 일본 판매량을 넘긴다는 목표로 판매 압박을 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BMW 정도는 아니지만, 확실히 보수적이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할인 시기도 더 빨라졌을뿐 아니라 차종 및 비율도 더 늘어났습니다.

예전에는 페이스리프트나 풀체인지 등 모델 변경을 앞둔 차종 위주로 할인을 해줬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나온 지 얼마 안된 신차도 해당됩니다. 방법도 더 다양해지고 더 교묘해졌습니다. 현금은 기본으로, 자사의 금융프로그램을 이용한 할부 및 리스에는 더 많은 할인을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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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이 최근 신차 5종을 선보이며 국내 시장 복귀의 신호탄을 날렸다

시장이 이렇게 돌아가니 아우디와 폭스바겐 역시 나오자마자 할인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가뜩이나 디젤게이트 및 인증 문제로 이미지가 안 좋은데, 가격까지 비싸면 누가 사겠습니까. 새마음 새뜻으로 야심 차게 신차를 내놓고도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을 낮춘 거죠.

특히, 이는 아우디와 폭스바겐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벤츠와 BMW의 치킨게임은 전체 수입차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팔리는, 그것도 콧대 높은 ‘프리미엄’ 브랜드가 이렇게나 많이 할인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른 브랜드들의 진입장벽은 더 높아지고, 생존 자체가 어려운 환경이 되겠죠. 살아남으려면 최소한 벤츠나 BMW에 준하는 할인을 해야 할겁니다.

아예 처음부터 가격을 낮추고 팔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죠. 나중에 수입차 시장이 더 커지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시장이 워낙 작다 보니 초기 투자 비용이 그만큼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판매 및 AS망도 깔아야 하고 다양한 마케팅 활동도 해야 합니다. 벤츠와 BMW나 월 6~7000대씩 팔지, 한 달에 1000대도 못 파는 수입차 브랜드가 수두룩한데 무슨 여력이 있어 가격을 낮출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기본적으로 차량 가격 자체는 해외 본사 입김이 강하게 작용해 국내에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닙니다.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소비자 입장에서도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닙니다. 당장은 저렴한 가격에 비싼 수입차를 구매해 기쁠 수도 있지만, 언제 이런 할인의 피해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신차와 중고차 가격이 역전되는 현상뿐 아니라, 나중에 중고차로 팔 때 가격 폭락으로 땅을 치며 후회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죠. 특히, 이런 파격적인 할인은 땅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각 브랜드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겁니다. 당연히 할인하는 만큼, AS에 신경 쓸 여력이 줄어듭니다.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기 어렵다는 겁니다. 수입차 관련 기사 댓글에 AS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죠. 

브랜드 입장에서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죠. 계속 이렇게 깍아준다면, 누가 제값주고 차를 사겠습니까. 수입차 시장에 더 커지려면 중고차 시장이 안정돼야 하는데, 과연 도움이 될까요. 그리고 이런 무리한 프로모션은 딜러사 및 영업사원에게 엄청난 부담이 됩니다. 과열경쟁으로 인한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겠죠. 

벤츠와 BMW는 판매 1, 2위를 다투는 회사답게 수입차 시장의 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해야 합니다. 국내에 판매된 수입차 10대 중 6대가 벤츠와 BMW라는데, 마땅히 책임감을 느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양적 성장에 치우쳤다면 앞으로는 질적 성장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이미 충분히 잘 팔고 있습니다. 적당한 수준의 할인을 유지하면서 판매망과 AS 등 인프라에 투자하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해야 합니다. 벤츠와 BMW라는 명성에 걸맞은 이름값을 행동으로 보여주길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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