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용 칼럼] 기아차 신형 K9이 또?…애매한 포지셔닝 '성공할 수 있을까'
  • 전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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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20 10:20
[전승용 칼럼] 기아차 신형 K9이 또?…애매한 포지셔닝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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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3월20일)은 기아차가 미디어를 대상으로 신형 K9 비공개 프리뷰 행사를 진행하는 날입니다. 저희 모터그래프에서는 김한용 편집장이 대표로 참석해 신차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예정입니다. 정식 공개는 이달 말 미국에서 열리는 '2018 뉴욕모터쇼'고요, 국내에는 4월 중 출시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 굳이 프리뷰 행사를 가지 않더라도 신형 K9이 어떻게 나올지는 대략 예상 가능합니다. 이미 렌더링과 스파이샷 등을 통해 실내외 디자인이 공개됐고, 파워트레인을 비롯해 탑재된 첨단 안전·편의사양 등 신형 K9에 대한 정보가 거의 다 나온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남은 것은 가격과 옵션뿐이었죠. 

드디어 어제 기아차 홈페이지를 통해 신형 K9의 가격과 옵션표가 유출(?)됐습니다. 서둘러 삭제해 지금은 못 보지만, 어쨌든 기아차 홈페이지에 올라왔으니 불법 유출은 아니네요. 아마 사전 계약을 위한 브로셔 PDF 파일을 실수로 업로드한 듯합니다.

 

주력 모델의 가격과 세부 트림 등을 보는 순간 '기아차 K9이 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네시스(DH)와 에쿠스 사이에 껴 고전을 면치 못한' 1세대의 실패가 반복될 수도 있겠다는 슬픈 예감이 들었습니다. 저도 제가 틀렸으면 좋겠습니다만, 노래 가사에도 있죠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신형 K9이 너무 욕심을 부리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가격이나 상품 구성을 보면 제네시스 G80과 EQ900을 동시에 잡으려는 시도가 보입니다. 잘 되면 '대박'이겠지만, 잘못되면 이전 모델처럼 '쪽박'을 면치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선, 3.3 GDi가 주력인 G80과 달리 신형 K9은 3.3 GDi를 제외하고 3.8 GDi를 주력으로 잡았습니다. G80보다 '윗급'으로 포지셔닝해 G80에 부족함을 느끼는 소비자들을 끌어오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그러나 덕분에 주력 모델의 가격이 5490~7800만원으로 G80(4880~5860만원)보다 한참 올라갔습니다(옵션 제외). G80에도 3.8 GDi(6390~7190만원)가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판매량이 적은 '최고급 트림'입니다. 그렇다고 EQ900 3.8 GDi(7500~1억900만원)을 잡는다고 나서기도 애매합니다. 

 

대신 신형 K9은 3.3 트윈터보 모델을 EQ900 수준으로 확대했습니다. '스포츠' 단 1개 트림인 G80과 달리 마스터즈2, 마스터즈3, 그랜드 마스터즈 등 3개 트림을 운영합니다. 럭셔리, 프리미엄 럭셔리, 프레스티지 등 3개 트림인 EQ900과 비슷한 구성입니다. 가격은 6650~8280만원으로 EQ900(7900~1억1300만원)보다 저렴하니, 충분히 공략 가능하다고 분석한 듯하네요. 그러나 EQ900 판매량 중 3.3 트윈터보 모델의 비중은 매우 낮아 판매량을 장담하기도 어렵습니다.

이전 모델과 달리 출시와 동시에 5.0 GDi(9330~9380만원)도 함께 나왔지만, 이 역시 판매량 자체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신형 K9이 철저히 G80을 겨냥해 만들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Q900은 배제하더라고요. 그러나 아쉽게도 기아차는 플래그십 모델이라는 상징성 때문인듯 가격 및 상품 구성을 G80보다 EQ900에 맞춘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EQ900급 플레그십 세단 시장은 월 2000대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 중 절반인 1000대는 EQ900 등 국산차가, 나머지 절반은 S클래스와 7시리즈 등 수입차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결국, 신형 K9은 월 1000대 수준인 국산차 시장에서 EQ900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시장은 특성상 수입차에서 국산차로 넘어오기가 굉장히 어려운 곳이죠. 많이 팔고 싶어도 팔 수가 없다는 겁니다. 

 

반면, G80급 준대형급 세단 시장은 월 1만대가 훌쩍 넘는 곳입니다. 2013년 11월에 나온 G80(당시 제네시스 DH)가 아직까지 월 3000~4000대를 팔 정도로 수요가 많습니다. 수입차의 경우도 E클래스와 5시리즈만 월 5000대가 팔립니다. EQ900급에 비해 가격 민감도가 높은 만큼, 가격 경쟁력과 상품성만 어느 정도 갖춘다면 성공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그리고 K9은 충분히 그런차 입니다. 

2012년 나온 1세대 모델도 애매한 포지셔닝이 문제였습니다. 기아차는 '제네시스(DH)보다 좋고, 에쿠스보다 저렴한 모델'이길 원했지만, 소비자들에게는 '제네시스(DH)보다 비싸고, 에쿠스보다 안 좋은 모델'이라고 받아들여진 듯합니다. 출시 당시 최고급 5.0 모델이 나왔냐 안 나왔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덕분에 기아차는 K9을 출시한지 5달 만에 '새 차 교환'이라는 초강력 프로모션을 진행했고, 2013년형 모델을 내놓을 때는 헤드업디스플레이 등 사양을 대폭 강화하면서도 가격을 300만원이나 낮췄습니다. 그래도 판매량은 더욱 떨어졌고, 회복 불가 상태까지 이어졌습니다. 

게다가 K9의 가장 직접적인 경쟁자인 G80과 EQ900은 '제네시스'라는 고급 브랜드로 '밸류 업' 됐습니다. 소비자들이 받아들이는 브랜드 이미지에 점점 격차가 생긴다는 겁니다. 듣기로는 스팅어와 G70을 고민하는 소비자 중에 '그래도 프리미엄 브랜드가 좋겠지'라며 G70을 고르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기아차에서 스팅어와 신형 K9을 별도의 고급 브랜드로 분리할 것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보다 명확한 포지셔닝을 통해 K9이 경쟁 모델과 함께 소비자들의 선택지에 올라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아직 뚜껑을 열기 전에 재를 뿌리는게 아닐까 걱정도 되지만, 전작의 실패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업계 관계자로서 신형 K9도 같은 전철을 밟을까 우려되는 것은 어쩔수 없네요. 

물론, 이렇게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도 어디까지나 신형 K9이 매우 좋은 차이기 때문입니다. 브로셔를 대략 살펴봐도 반자율주행 기술인 '드라이브 와이즈'를 비롯해 LED 헤드램프와 9에어백 시스템을 기본 적용하는 등 상품성을 대폭 향상시켰습니다. 생각해보면 구형 K9도 상품성만 따지자면 결코 부족하지 않은, 오히려 가격 대비로는 경쟁 모델에 비해 매우 우수한 모델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우습지만, 제발 신형 K9이 저의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뚫고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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