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기산에서 본 풍경

겨울산 정상에서 내려본 풍경은 말 그대로 끝내줬다. 하얗게 눈 덮인 산자락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마을,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떠 있는 구름과 바람에 흩날리는 눈꽃들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뤘다. 추운 날씨에 굳이 먼 길을 떠나 오토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비로소 이해가 됐다. 

지난 7일, 오토캠핑을 직접 경험해 보기 위해 지인 4명과 함께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태기산으로 떠났다. 안그래도 최근 캠핑에 부쩍 관심이 생긴 터였고 때 마침 눈 소식도 있는데다 우리에겐 4륜 구동 자동차도 있었고, 심지어 아웃도어 용품 회사에서 캠핑용품까지 대여 해준다고 했다. 이 정도면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착착 맞물린 듯 했다. 

서울에서 출발해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는 거리는 약 160km. 이 정도면 1박2일 코스로 딱 적당한 거리다. 

▲ 서울시 양재동에서 출발해 강원도 평창 태기산에 도착했다 

출발 당일 강원도에 눈이 내린다는 소식에 내심 기뻤다. 눈이 없는 겨울산이라면 앙상한 나무들만 구경했을텐데 눈 쌓인 겨울산은 상상만해도 장관일 듯 했다. 캠핑 마니아를 자처하는 일행들과 단단히 챙긴 겨울용 캠핑 장비, 제네시스의 사륜구동을 믿고 즐거운 마음으로 강원도로 향했다. 

◆ 오토캠핑이야, 맛집탐방이야?…뜨끈한 해물탕, 시원한 메밀국수 '환상 조합'

“여기 메밀국숫집 맞아요?” 

뭐니뭐니해도 지역 맛집을 찾아가는 것은 여행에 빠질 수 없는 필수 코스. 지루한 고속도로를 두 시간가량 달려 일차 목적지인 평창의 한 맛집에 도착했다. 이곳은 '미가연'이란 메밀국숫집인데, 지인이 평창에 올 때마다 찾는다는 맛집이라며 적극 추천했다.

▲ 평창에 있는 메밀국수 전문점 미가연

그런데 웬일인가. 문을 열자마자 뜨거운 열기로 안경에 하얗게 김이 서렸다. 가게를 가득 메운 100여명의 사람들이 모두 메밀국수가 아니라 해물탕을 먹고 있는게 아닌가. 메밀국수 맛집에서 이게 뭐하는 건가 싶었다. 주인아주머니께 물어보니 마을 단체 회식을 위해 오늘만 특별히 만든 메뉴라 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메뉴 선택에 고민이 생겼다. “날도 추운데 뜨거운 해물탕을 먹자”라는 온건파(?)와 “메밀의 고장 봉평에 왔으면 당연히 메밀국수를 먹어야 한다”는 강경파(?)로 갈렸다. 나름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고, 결국 점심값을 내겠다고 나선 물주님의 은혜(?)로 뜨끈한 해물탕으로 배도 채우고 시원한 메밀국수로 입가심까지 할 수 있었다. 메밀국수도 맛있지만 뚝딱 만들어낸 신메뉴도 이렇게 훌륭하다니, 역시 '맛집' 소리 들을만 하다. 

◆ 겨울산, 우습게 보면 낭패…순식간에 얼어붙어

▲ 제네시스 사륜구동을 타고 강원도 태기산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고 태기산으로 향했다. 날씨가 영상권에 머물러 있고 햇볕도 따듯해 산 초입에 쌓인 눈이 대부분 녹아 질퍽거렸다. “뭐야. 눈을 볼 수나 있는 거야?”라며 투덜거렸는데, 지인은 “이 상태면 정상까지 오르기 힘들겠다”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지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곧 알 수 있었다. 산 위로 올라갈수록 찬 바람이 거세져 녹은 눈이 순식간에 얼어 붙었다. 그늘진 곳은 대부분 빙판길이어서 웬만한 차로는 올라가기가 힘든 상황. 실제로 산길 언덕 입구에는 차를 세우고 올라갈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갈 수 있는데 까지는 가보자'란 생각에 다시 차를 출발했다. 

▲ 앞서 달리던 전륜구동 차(이스타나)가 빙판길에서 움직이지 못해 사람이 뒤에서 밀고 있다

지인의 차 이스타나는 역시 눈길에 취약했다. 비록 전륜구동이긴 하지만 무게 대부분이 뒤에 실리는 승합차라 그리 힘을 쓰지 못하나보다. 빙판길에선 미끄러져 후진과 전진을 반복했고, 사람이 뒤를 밀어줘야 겨우 올라갈 수 있었다. 

사실 힘들게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내심 좀 비웃었다. 제네시스 사륜구동을 타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우리차가 훨씬 안정감 있게 올랐다. 경사가 심한 빙판에서도 한 번 받은 탄력을 그대로 유지하니 별다른 어려움 없이 올라갔다.  

◆ 겨울철 오토캠핑, 겨울용 타이어 필수…사륜구동도 안심 못해

▲ 제네시스 사륜구동도 빙판길에서는 제어가 되지 않고 뒤로 미끄러졌다

"어, 차가 제대로 안 움직여요. 옆으로 미끄러지고 있어요!" 
 
길을 비켜주려는데, 차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기어를 R로 놓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니, 차가 옆으로 미끄러져 낭떠러지 쪽으로 흘러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봤지만 차는 여전히 절벽을 향했다. 

그때 갑자기 지인 한명이 슈퍼맨처럼 나타나 차 뒷부분을 옆으로 밀어 사고를 막았다. 급박한 상황에서 인간의 힘이란! 2톤짜리 자동차도 바로 세울 수 있는 힘을 지닌 걸까. 경이로움과 함께 진땀을 흘리며 후진으로 빠져나왔다. 

▲ 사륜구동 차도 만능은 아니다. 겨울철 오토캠핑을 하려면 겨울용 타이어가 꼭 필요하다

잘 달리던 차가 갑자기 왜 이러나 생각해보니 앞차를 기다리는 동안 타이어와 바닥이 얼어 접지력을 잃어버린 듯했다. 

아찔한 경험을 해보니 사륜구동이라고 무조건 믿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타이어 가격이 아무리 비싸도 차 문짝 하나 값도 안된다는걸 감안하면 겨울 여행에는 겨울용 타이어가 필수다.

◆ 작고 가벼워지는 겨울용 캠핑 장비…바이크 캠핑족도 늘어

▲ 최근에는 바이크를 타고 즐기는 오토캠핑도 늘었다

더 이상 올라가는 것은 위험하다 판단해 일단 인근의 경치 좋은 공터에 차를 세웠다. '생애 첫 오토캠핑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난 것인가'란 투덜거림도 잠시, 눈앞에 펼쳐진 경치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이곳은 대형 풍력 발전기가 이색적인데, 주위를 둘러보니 굽이진 산자락에 모여있는 마을과 그 위에 내려앉은 구름이 장관을 이룬다. 비록 차가 미끄러지는 돌발사건으로 진이 빠졌고, 차가운 바람이 머릿속까지 얼리는 듯 추웠지만, 이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없이 겨울산이 만든 한 폭의 그림에 푹 빠져들었다.

▲ 겨울 오토캠핑용 등산 장비들

눈은 호강하지만 억울한 마음도 든다. 뭐하러 이렇게 싸왔나 싶은 캠핑 장비가 한 짐이다. 아직 상표도 뜯지 않은 등산화와 가방, 보온병, 등산스틱들이 애처롭다. 한번 써보지도 못한채 고스란히 반납해야겠다.

요즘 대부분 캠핑 장비들이 휴대가 간편하고 수납이 편리하도록 만들어졌는데, 겨울용 장비는 더 간소하고 기능성이 강화됐다. 아무래도 겨울짐이 더 많고 부피가 커서 보다 작게 줄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인 듯 하다. 특히, 최근에는 바이크를 이용한 오토캠핑족들도 생겨나 장비의 소형화·간소화는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 한적한 산등성 작은 캠핑장…겨울산의 황홀한 커피믹스

“캠핑 마니아라며, 근처에 오토캠핑하는 사람 있나 연락해봐”

비록 계획했던 캠핑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쉬워 함께 간 지인에게 말을 건넸다. 주변 인맥을 총동원해 캠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했고, 다행히 가까운 거리에 3명이 함께 오토캠핑을 즐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합류했다. 

▲ 경치 좋은 산자락에 소형 텐트를 펴고 나름 오토캠핑을 즐겼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달려 산 중턱에 자리한 작은 팬션에 도착했다. 멋진 경치가 보이는 마당에는 랜드로버 레인지로버와 두 개의 작은 텐트가 있었고, 그 앞에는 캠핑용 의자와 선반이 아기자기하게 배치돼 있었다. 조그만 주전자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는데, 겨울산에서 마시는 커피믹스의 맛은 일품이었다. 

◆ 오토캠핑, 낯선 곳 낯선 사람과의 행복한 만남

▲ 저녁 먹거리를 사기 위해 평창 재래시장에 왔다

갑자기 불어난 인원 탓에 캠핑 인원들도 야외취침을 포기하고 모두 팬션에서 묵기로 했다. 미안한 마음에 장보기를 자청했다. 약 20km 떨어진 평창 재래시장을 찾았다. 오래된 건물에는 연탄들이 세워져 있었고, 길게 뻗은 연통에는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지역 특성에 맞게 메밀전과 전병을 파는 집들이 많았다. 전통시장을 적극적으로 이용해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현금이 충분치 못해 대부분을 인근 대형 할인마트에서 살 수 밖에 없었다.  

▲ 서울로 떠난 아들이 성공해 제네시스를 타고 고향집에 돌아온 느낌이다
▲ 낯선 사람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저녁 만찬

숙소에 도착하니 작은 난로에 나무가 타닥타닥 타며 운치 있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온 음식과 함께 가볍게 술잔을 기울였다. 아직은 서먹했던 지인들과 보내는 밤이지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오히려 오래된 친구들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쉽게 맛볼수 없는 동질감과 벽이 허물어지는 듯한 느낌은 캠핑 초보자에게 매우 놀라운 경험이었다. '캠핑'이란 시원한 공기와 멋진 경치, 맛있는 음식과 좋은 사람들. 단지 일상에서 빠져나왔다는 잠깐의 일탈일 뿐 아니라,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을 '힐링' 시켜주는 멋진 쉼터였다. 

▲ 태기산에서 촬영한 제네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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