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용 칼럼] 한미 FTA 개정 '트럼프, 하고 싶은거 다 해'…명분 주고 실리 얻고
  • 전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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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27 16:15
[전승용 칼럼] 한미 FTA 개정 '트럼프, 하고 싶은거 다 해'…명분 주고 실리 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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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미 FTA 개정 협상이 진통 끝에 마무리됐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철강을 지키고 자동차를 내줬다'라는 평가를 내렸더군요. 우려가 컸던 철강 문제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관세 폭탄을 피했지만, 대신 자동차에서 손해 보는 협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철강이든 자동차든 나쁘지 않은 결과를 냈다고 봅니다. 최선은 아니지만, ‘최선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선택한 차선’이라고요. 트럼프 대통령의 비위를 잘 맞추면서 줄건 주고 얻을건 얻은 그런 협상을 했다고 판단됩니다.

이번 한미 FTA 개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는 철저히 트럼프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합니다. 트럼프의 가장 큰 목적은 미국 내 일자리를 늘려 인기를 얻고, 정계의 주도권을 잡은 후 재선에 성공하는 것이었죠. 

도출된 결과 역시 이른바 '러스트 벨트(Rust Belt)'라 불리는 디트로이트 인근의 자동차·철강 노동자들의 표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마 트럼프는 이들에게 "자동차와 철강을 잘 흥정했어, 얘네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공장을 세우고 더 많은 자동차를 만들 거야, 그러면 너희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겠지? 나 잘했으니 다시 찍어줘"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겁니다.

 

이번 개정에서 트럼프는 얻어갈 것을 대부분 얻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손해만 봤냐, 딱히 그런것도 아닙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의 '불합리한 위치에서 진행된 무역'임을 고려하면 오히려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선, 철강의 경우 수출 물량을 평년의 70%(약 270만톤) 수준으로 줄이는 조건으로 관세 폭탄은 피했습니다. 미국 철강 수출 물량이 30%나 줄어든 점은 아쉽지만, 어쨌든 안정적인 수출 물량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선방했다고 생각됩니다. 높은 관세를 내며 불안정한 수출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물량이 줄더라도 안정적으로 수출하는게 기업 입장에서는 더 이로운 일이겠죠.

자동차 분야에서는 크게 두 가지 이슈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화물차(픽업트럭) 관세를 연장하는것, 다른 하나는 미국 자동차 수입량 제한을 두 배 늘리는 것입니다.

 

픽업트럭 개정안을 살펴보면 2041년까지 미국에 수출하는 픽업트럭에 25%의 관세를 붙이는 조항이 추가됐습니다. 원래는 2021년까지 단계적으로 0%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20년이나 더 늘어난 것입니다. 한마디로 '2041년까지 미국에 픽업트럭을 수출할 생각은 꿈도 꾸지마'라는 겁니다.

이 결정이 현대기아차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예상이 있습니다. 현재 현대기아차의 미국 점유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인데, 이를 만회할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픽업트럭 등 화물차 시장 진출이 꼽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픽업트럭 시장은 미국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약 18%를 차지할 정도의 큰 시장입니다. 현대차 역시 2015년 콘셉트카인 산타크루즈를 선보이며 픽업트럭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국내에서 차량을 생산해 수출할 계획이었다면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해졌다는 것이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현대기아차가 미국 픽업트럭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입니다. 이 시장은 포드와 쉐보레, 램(RAM) 등 미국 브랜드 3곳이 80% 이상을 독점하는 곳으로, 수입 브랜드가 이 두꺼운 벽을 뚫고 성공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죠. 도요타, 닛산, 혼다 등 미국에서 잘 나가는 일본 3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이 개정 결과가 나오기 몇 년 전부터 미국 언론들은 현대차가 미국에 새로운 공장을 짓고 픽업트럭을 생산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현대차의 공식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애당초 국내 생산이 아니라 현지 생산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입니다. 미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점은 아쉽지만, 생각해보면 현대차 입장에서도 픽업트럭의 주력 시장인 미국에서 생산·판매하는게 장기적으로 유리해 보입니다.

 

무엇보다 현재 대미 자동차 무역은 현재 14조원(약 130억달러)에 달하는 흑자를 보는 곳입니다. 전체 미국 무역 흑자의 7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높은 수치라고 하네요. 이런 관점에서 '관세 부활' 및 '미국산 부품 의무 사용' 등 우려했던 독소 조항들을 막아내고, 최대한 현재 상태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픽업트럭 수출에 목숨 거는 것 보다는요.

미국산 자동차 수입 문제도 당분간은 괜찮아 보입니다. 미국 안전 기준만 충족하면 업체별(브랜드별) 5만대까지 수출 가능하도록 바꿨는데(기존 2만5000대), 애초에 미국산 차량은 브랜드별로 1만대를 넘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국내에 잘 안 팔리는 포드, 링컨, 크라이슬러, 지프 등 미국 브랜드뿐 아니라 미국에 공장이 있는 BMW, 벤츠, 폭스바겐 등의 다양한 브랜드의 차량까지 포함해서 말이에요. 

결국 트럼프가 챙기려는 명분은 충분히 주면서 우리가 챙길 실익은 잘 챙긴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말했듯 세계 최강국인 미국, 그것도 자국우선주의자인 트럼프 대통령과의 불합리한 위치에서의 협상임을 고려하면 꽤 성공적인 거래였다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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