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쉐보레 볼트…“순결한 전기차 아니어도 괜찮아”
  • 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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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0.20 15:16
[시승기] 쉐보레 볼트…“순결한 전기차 아니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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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는 순수한 전기차는 아니다. 보닛을 열면 엔진이 있다. 결국 기름을 먹고, 배출가스를 내보낸다. 하지만 충전만 제때하면 엔진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더욱이 전기모터와 배터리 만으로 89km나 갈 수 있다. 우리나라 하루 평균 자동차 주행 거리가 약 40km인 것을 감안하면, 내일 퇴근할때까지도 엔진소리를 듣지 못하는 일이 태반이다. 

 

충전이 귀찮다면, 혹은 여의치 않은 환경이라면 충전을 안하면 그만이다. 그래도 볼트는 멈추지 않는다. 잠자고 있던 엔진이 결국 앞바퀴를 돌린다. 환경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인근 충전소를 검색하지 않아도 된다. 

볼트는 비록 순수한 전기차는 아니지만, 탁월하다.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넘나들며 뛰어난 효용성을 갖는다. 배터리 기술이 발전하면서 막강한 성능을 가진 전기차가 늘고 있는 시점이지만, 볼트보다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차는 없을 것 같다.

# 기름기가 빠졌다

1세대 볼트는 허세가 가득했다. ‘난 미래에서 왔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때만 해도 전기차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과 같은 미래지향적인 차가 드물었으니, 나름 전략이 잘 통했다. 디자인에 대한 반응은 좋았다. 소비자들은 콘셉트카를 타고 있다는 약간의 우월감도 얻었다.

 

이에 반해 2세대 신형 볼트는 기름기가 쏙 빠졌다. ‘나 여전히 신기한 차야’라고 티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래지향적 분위기를 풍겼다. 고수는 구태여 티내지 않는 법. 몇년 숙성된 볼트는 무척이나 성숙했다. 

유려한 패스트백 디자인만으로도 주위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현대차 아이오닉과 레이아웃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윈도우 벨트라인이나 C필러가 주는 긴장감은 사뭇 달랐다. 

 

대개 전기차는 그릴이 막혀있다. 엔진이 없으니 산소 공급이나 냉각이 굳이 필요없다. 공기가 잘 흐르도록 매끈하게 만드는게 최선이다. 하지만 볼트는 자신의 성격처럼 여느 전기차와 달랐다. 듀얼포트 그릴의 윗부분은 완전히 막혔지만, 아랫부분은 얕은 숨고르기를 위한 틈새가 있었다. 볼트는 반쯤 냉혈한의 분위기도 풍기지만 결국 숨을 쉬며 달리는 전통적 자동차의 면모도 지녔다. 

# 미래에서 현실로

1세대 볼트의 과한 설정은 실내가 정점이었다. 첨단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무진장 애썼다. 부담스럽게 새하얀 하이그로시 플라스틱에 온 시선을 뺏기게 된다. 너무 과도 했다는 평가와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졌는데, 그걸 이제서야 도요타가 신형 프리우스를 통해 다시 꺼내들었다. 1세대 볼트가 시대를 앞서간 것인지, 둘다 ‘헛다리’를 짚은 것인지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이에 반해 신형 볼트는 역시나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이젠 ‘날 색안경끼고 보지 말아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디자인이나 소재 등은 대부분 신형 말리부에서 가져왔다. 계기반이나 기어노브와 센터콘솔, 송풍구 등의 디자인만 조금 다를 뿐 거의 똑같다. 그래서 친숙했다. 버튼이 어디있을까 고민하며 손가락을 허공에 놀리는 일이 없었다.

 

계기반의 구성은 크게 달랐다. 실내에선 친환경차의 느낌을 찾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다. 8인치 컬러 클러스터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너무 많았다. 엔진의 정보와 배터리에 대한 정보가 함께 표시되면서 단번에 많은 것을 보여줘야 했다. 약간의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센터페시아의 모니터를 통해서는 실시간 에너지 흐름을 살펴볼 수도 있었다.  

 

사실 신형 볼트의 실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컬러 클러스터도 아니었고, 스마트폰 무선 충전 시스템, 애플 카플레이도 아니었다. 소재나 마감이 그간 쉐보레의 소형차와는 차원이 달랐다. 괜히 신형 크루즈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다.

# 하이브리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시동버튼을 누르면 ‘슝’하는 효과음이 들렸다. 유치했지만 중독성이 있었다. 마치 스타워즈의 ‘랜드스피더’의 시동을 켜는 느낌이랄까. 전원이 켜졌단 신호음이 들린 후에는 한참동안 정적이 흘렀다. 가속페달을 밟아도 시동은 켜지지 않았다. 하이브리드와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배터리가 어느 정도 충전된 상태에서는 엔진의 개입이 없다고 봐도 된다. 그야말로 전기차다. 급가속을 하든, 고속주행을 하든 전기모터와 배터리가 바퀴를 굴린다. BMW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도 이처럼 엔진의 개입을 선택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BMW는 시속 125km를 넘어서면 엔진이 자동으로 개입하게 된다. 볼트는 그렇지 않았다. 속도에 상관없이 배터리 눈금이 바닥을 칠때까지 전기모터로만 달렸다. 여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도 본질적으로 달랐다.

 

신형 볼트의 막힘없는 전기 주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배터리의 막대한 용량 때문이다. 신형 볼트의 리튬 이온 배터리 용량은 18.4kWh. BMW X5 40e의 배터리 용량은 9kWh. 닛산 리프 초기형 모델의 배터리 용량은 24kWh다. 볼트의 배터리 용량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아닌 전기차에 더 가깝다. 

큰 배터리를 작은 차체에 넣기 위해서 T자 형태로 밑바닥에 깔았다. 덕분에 뒷좌석엔 높은 센터터널이 생겼고, 궁색한 5인승 구조를 갖게 됐다. 뒷좌석이 좁지만 얻는게 더 많으니 참아야 한다.

 

볼트를 볼트답게 만드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대폭 달라졌다. 아주 총명해졌다. 두개 모터는 유기적으로 동작한다. 혼자서 바퀴를 돌리기도 하고, 둘이 힘을 합쳐 바퀴를 굴리기도 한다. 상황을 판단해 하나의 전기모터는 발전기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런 보이지 않는 기술 덕에 신형 볼트는 배터리가 가득찬 상태에서 최대 89km까지 달릴 수 있다. 또 배터리와 가솔린이 가득 찬 상태에서는 최대 676km까지 갈 수 있다. 

# 배터리가 전부 소진된 볼트는 다른 차였다

배터리와 가솔린이 가득 찬 볼트는 마치 ‘신세기’ 자동차 같았다. 전기모터로 달리는 느낌은 매우 산뜻했고, 약 3만rpm까지 회전하는 전기모터의 순간적인 토크는 입꼬리를 올라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기 고갈에 대한 정신적 부담이 없었다. 

 

피곤함이 들이 닥친 것은 배터리가 전부 소진됐을 때였다. 엔진이 앞바퀴를 굴리는 일이 잦아지더니, 나중엔 거의 모든 주행을 엔진의 힘으로 하게 됐다. 패들시프트처럼 스티어링휠에 붙은 ‘리젠’ 버튼을 눌러 열심히 배터리를 충전했지만, 거대한 크기의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직분사 시스템, 가변 밸브 시스템,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여러 부품 등을 통해 완성된 신형 엔진이지만, 박력은 없었다. 조용했던 실내에 불쾌한 엔진 소음이 유입됐다. 간헐적으로 전기모터가 개입하기도 했지만, 빠르게 돌고, 빠르게 사라졌다. 이때부터 일반적인 하이브리드로 전락했다. 

 

신형 볼트의 참신함을 되찾기 위해 충전이 시급했다. 신형 볼트는 ‘DC 콤보’을 사용한다. BMW i3와 같은 방식이다. 근처에 ‘이마트’가 있다면 어렵지 않게 충전소를 찾을 수 있다. 마땅히 쇼핑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마트를 한시간 가량 구경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40분 정도 지났을까. 조급한 마음에 충전을 멈췄다. 기대감에 시동버튼을 눌렀다. 배터리는 고작 두칸 찼다. 이마저도 주차장을 빠져나오자 한칸이 줄었다. 나머지 한칸도 아주 빠르게 소멸했다. 

 

급속 충전이 가능한 전기차는 30분만 충전해도 배터리가 절반 이상 찬다. 신형 볼트는 급속 충전이 지원되지 않기 때문에 주된 충전 장소는 집이나 회사가 될 것 같다. 220V를 사용하면 되지만,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에서 이웃들이 이를 이해해줄 것인가는 미지수다.

# Boys, be ambitious

쉐보레 볼트(Bolt)가 개발되면서 볼트(Volt)의 전기차 논란은 끝났다. 쉐보레는 여전히 ‘주행거리 연장 전기차(Extended Range EV, EREV)’라고 신형 볼트를 설명하지만, 신형 볼트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에 더 가깝다. 그래서 막대한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순 없다. 쉐보레 입장에선 치명적일 수 있다. 

 

그래서 일단 쉐보레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신형 볼트를 팔지 않는다. 롯데렌터카와 그린카 카쉐어링 서비스를 통해서만 만나볼 수 있다. ‘볼트는 전기차도, 하이브리드도 아니다. 볼트는 볼트’라고 당당히 말하던 GM의 자신감은 어디로 갔을까. 

신형 볼트는 충전에 대한 게으름만 없다면 엄청난 효율을 얻을 수 있고, 디자인, 고급스러움, 편의 및 안전장비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다. 지금까지 수많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쏟아졌지만, 신형 볼트는 가장 진취적이고, 발전적이며, 현실적이다. 전기차가 아니라도 좋다. 신형 볼트는 그 정도로 충분히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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