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용 칼럼] 제네시스 G80을 시승해보니, "고급차 도전, 반신반의"
  • 김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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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9.09 11:37
[김한용 칼럼] 제네시스 G80을 시승해보니, "고급차 도전, 반신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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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G80. 좀 혼란스러울 수 있겠다. 현대차 제네시스가 아니라 왜 갑자기 이 차를 제네시스 G80이라고 하는가. 여기엔 살펴볼만한 과거가 있다.

지금 현대자동차는 세계에서 5번째로 차를 많이 파는, 실로 엄청난 자동차 회사지만 1960년대 현대차는 포드 코티나를 가져와서 조립 생산하는걸로 시작된 회사다. 코티나는 코티나 마크3에 해당하는 뉴코티나로 이어지다 후엔 줄여서 '마크 파이브'라고 불리기도 했다. 

74년형 코티나 광고

70년대 중반 들어서야 자체 모델인 소형차 포니를 만드는게 주력이 됐지만, 당시도 고급차 '포드 그라나다(Ford Granada)'라고 하는 차를 생산했다. 그라나다는 당시 은마아파트 한채 값으로, 판매량이 높지는 않았지만 부유층의 상징이라 불릴 정도로 차별화 된 관심을 끌어 모았다.  

포드 모델을 가져와 현대차가 생산한 포드 그라나다

그라나다는 80년대 들어서 그랜저(Grandeur)로 바뀌는데 이 차는 일본 미쓰비시의 데보네어를 들여와 만든 차다. 여기에다 쏘나타, 스텔라 같은, 당시로선 고급인 자동차까지 두루 만들었으니 현대차는 당시도 확실히 고급차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있던 셈이다. 

 

# 90년대...비로소 대형차로의 도전

인기의 여세를 몰아 90년대는 고급화를 높인 대형차로도 도전을 하게 되는데, 그 첫번째 차가 바로 다이너스티다. 이 차도 역시 미쓰비시와 같은 플랫폼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디자인은 오히려 우리가 주도 했다. 그랜저는 우리나라에선 불티난듯 팔렸지만 미쓰비시에선 거의 팔리지 않았던 차종이기 때문이다. 

이후 나온 초대 에쿠스도 미쓰비시의 엔진과 변속기를 가져다 썼는데,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거대 전륜 구동 자동차를 만들어 내서 큰 차를 선호하는 국내서 큰 인기를 끌었다. 반면 미쓰비시는 같은 차를 프라우디아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팔아봤지만 역시 그리 인기는 끌지 못했다. 

현대차는 국내 시장과 해외 시장이 2:8 비율로 팔리는 만큼 해외 시장에서 고급차도 어느 정도 팔릴 필요가 있다. 그 때문에 여러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90년대 후반 들어선 아제라를 미국시장에 팔아보겠다고 노력했다가 고전했다. 그만큼 현대차 엑셀의 신화는 대단한 사건이었고, 부족했던 품질은 두고두고 발목을 잡았다. 그랜저와 쏘나타도 일본시장에서 된서리를 맞았다. 작은 차만 팔리는 일본 시장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탓이었다. 

# 고급차 도전의 성공, 제네시스

현대차는 엑셀이나 아반떼, 쏘나타 같은 저가 차종을 싼 가격에 판매하며 성장해온 회사지만 항상 고급차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었다. 그 중 처음으로 성공한 고급차는 뭐니뭐니해도 제네시스부터다. 2009년 제네시스가 미국서 '북미 올해의 차(NACOTY)' 상을 수상하면서 현대차도 고급차를 만들 수 있다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

▲ "올해의 차의 후보가 된 것만도 영광입니다" 현대차는 후보가 됐을 때 보도자료를 이렇게 내보냈다. 설마 올해의 차가 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이같은 상황을 보면 현대차가 왜 갑자기 고급차 브랜드를 론칭했는가는 궁금 할 이유가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현대차 브랜드가 너무 저가 위주 자동차 브랜드라서다.

세계 어떤 브랜드도 대중 브랜드가 대형 고급차를 만들어 해외에서 성공한 적이 없다. 폭스바겐은 페이톤을 만들어서 실패했고, 다양한 메이커들이 노력하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도요타가 렉서스를 분리한 것이나 닛산이 인피니티를 분리한 것처럼 현대차도 럭셔리 브랜드를 완전히 분리해야만 어느 정도 높은 가격표를 붙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현대차는 북미에서 처음 성공한 고급차 이름을 브랜드 이름으로 정했다. 현대차는 작년 제네시스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기존 제네시스를 G80으로, 에쿠스를 제네시스 G90으로 이름을 바꿨다. 내년엔 제네시스 G70이라는 스포츠세단이 또 나오게 된다. 4년 후까지는 SUV를 비롯해 총 6대가 제네시스 브랜드로 나온다.

# 제네시스 G80 시승해보니...아직은 '반반'

현대차가 '제네시스' 브랜드를 성공시킬 수 있을지 여부는 여전히 반신반의다. 시기적으로 렉서스가 등장 할 때는 미국의 성장세가 너무도 거세 흥청망청 할 때였고, 지금의 미국은 그때와 달리 침체된 분위기여서다. 렉서스는 89년 미국서 론칭할때는 1조원 이상의 비용을 들이고 6년 이상을 추진해 론칭했지만 지금의 제네시스 브랜드는 그 정도는 아닌걸로 보인다. 

'현대차' 브랜드와 '제네시스' 브랜드는 디자인이나 매장 등 물리적인 연결 관계가 지나치게 높아 렉서스처럼 별개 브랜드로 분리해 생각하기도 쉽지 않다. 현대차는 라인업을 갖춘 후에야 매장을 분리한다고 하는데, 실은 도요타도 단 하나의 제품으로 렉서스를 분리 시켰던걸 생각해보면 이렇게 느긋하게 기다리는게 마땅한 일인지 모르겠다. 

이번 제네시스 G80을 시승하면서 기존 현대차와 차별화 된 무언가를 보여줄거라 기대했는데, 그 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페달과 핸들의 감촉은 분명 이전과 달라졌지만 실내외나 운동 성능 모두 여전히 '현대 느낌'을 갖고 있다. 놀랄만한, 이른바 '와우 팩터'도 찾기 힘들었다. 제네시스 팀이 현대차 내부에 아직은 작은 조직으로 있으니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적어도 다음 제네시스 첫모델이 될 G70(IK)가 이보다는 훨씬 독특하고 개성있게 만들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제네시스가 현대의 옷을 벗지 못한 것에 더해 현대차가 내놓는 신차들도 제네시스 G80과 닮아도 너무 닮아가고 있다. 아반떼나 i30도 그렇지만 신형 그랜저의 앞모습은 제네시스를 그대로 축소시킨 느낌마저 든다. 현대차와 분리 돼야 할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가 오히려 신차가 나올 수록 현대차와의 연결고리를 굳건히 하는 셈이다. 

물론 세계 시장이 양극화 되면서 중형차 판매는 줄면서도 소형차와 럭셔리카 판매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제네시스 브랜드가 그나마 발전하던 '현대차' 브랜드를 축소시키는 결과만 낳게 될지 혹은 기대한 것처럼 고급 이미지로 자리잡고 현대차 이미지까지 견인하게 될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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