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이 3일, 쉐보레 크루즈의 연비를 하향 조정하고 보상에 나섰지만 일부에선 '오차의 절반만 보상하는 꼼수'라며 소송에 나섰다. 연비 오차를 기준으로 보상금액을 정한 것이 아니라 연비의 허용 오차(-5%)와의 차이를 기준으로 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 보상금 액수, 실제 피해액의 절반

한국GM은 크루즈 세단의 연비를 11.3km/l로 9.13% 하향 조정했고, 해치백 모델은 11.1km/l로 10.49% 낮췄다. 

▲ 한국GM 쉐보레 크루즈의 연비보상 비밀

두 연비 차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크루즈 세단의 보상금은 약 90만2000원, 해치백은 약 108만5000원이 된다(주행거리 1만1571km, 연료비 1986원, 보상 기간 5년 기준). 이 경우 8만2000대의 총 보상금 규모는 600~700억원 수준이 된다. 

하지만 한국GM은 세단 43만1000천원, 해치백(크루즈5) 61만4000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보상금 총 규모도 절반 이하인 300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한국GM은 "국토부 규정에서 '허용된 오차' 범위를 벗어난 오류로 인한 5년치 유류 대금 차액만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연비는 10%가량 줄었지만, 보상 금액은 4~5%에 그치게 된다.

또 한국GM의 보상 기준에서 연평균 주행거리는 1만1571km에 불과하다. 앞서 보상한 현대차 싼타페(1만4527km 기준)에 비해 26% 가량 적은 거리다. 

▲ 네이버 연비 집단소송 카페에 크루즈 1.8 모델이 추가됐다

이에 대해 한국GM 세르지오 호샤 사장은 "한국 법규가 허용하는 만큼을 보상하는 것으로, 실제 배상 금액은 그 이상"이라며 "중고차 거래를 한 소비자에게도 보상하기 때문에 전체 금액은 커진다"고 설명했다. 

◆ 한국GM, 국토부 조사 나서자 서둘러 크루즈 연비 수정

일부에서는 한국GM이 크루즈의 연비가 과장됐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국토부의 연비 조사 대상으로 선정되기 전까지 이를 숨겼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GM은 지난 4월경 크루즈가 '2014 자기인증적합조사' 대상 차종으로 선정된 것을 알고 난 후부터 이번 연비 정정을 준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마디로, 조사가 시작되자 부적격 판정을 예상하고 재빨리 연비를 고친 후 보상에 나섰다는 것이다. 

▲ 한국GM이 쉐보레 크루즈 1.8 모델의 연비가 과장됐다며 소비자들에게 300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만약 크루즈가 조사 대상 차종이 아니었더라도 한국GM이 자체 조사를 실시하고 자발적 보상을 실시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면서 "국토부로부터 연비 부적합 판정을 받으면 수백억의 보상금뿐만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신뢰도에 심각한 타격을 받기 때문에 서둘러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GM의 이번 연비 조정으로 크루즈는 국토부 조사에서 일종의 면죄부도 받았으며, 최대 10억원의 과징금을 물지 않아도 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자체 측정해 연비를 정정한 크루즈의 시험은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면서 "하향 조정한 연비를 기준으로 조사를 실시하고, 그래도 부적합 판정을 받을 경우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계획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 국토부·산업부의 허술한 연비 검증 체계…강제 조정 필요

업계에서는 국내 연비 검증 체계가 허술해 이같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국토부와 산업부가 제조사에 연비 부적격 판정을 내리더라도,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현대차의 경우 지난 8월, 국토부로부터 싼타페(2.0 2WD) 연비 부적합 판정을 받고 연비를 하향 조정했다. 그러나 국토부가 측정한 연비인 13.2km/l가 아니라 자체 측정한 13.8km/l로 바꿨다. 우리나라 연비 인증은 신고제여서, 국토부의 허용 오차 범위인 5% 안에만 들면 상관없기 때문이다. 또, 소비자에게 지급하는 40만원의 보상금 역시 자체 측정 연비를 기준으로 설정했다. 

게다가 현대차와 함께 국토부로부터 부적합 판정을 받은 쌍용차는 아직까지도 코란도스포츠 연비는 문제가 없다고 소명하고 있는 상태다. 또, 산법부의 부적합 판정을 받은 아우디와 폭스바겐, 지프, 미니 등 수입차 업체들은 산업부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는 등 정부의 연비 부적합 결정에 대한 후속 조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다.

▲ 소비자 연비 과장광고 집단소송 대상 모델

업계 한 관계자는 "연비 신고제는 어쩔수 없이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사후 검증 시스템은 강화돼야 한다"면서 "특히, 잘못을 저지른 제조사에게 또다시 재측정을 맡기는 현행법은 너무도 안일한 처사"라고 말했다.

또, "만약, 부적합 판정을 받으면 소비자 보상을 의무화 하거나, 국토부 측정 연비를 그대로 적용하게 하거나, 판매 중단 명령을 내리는 등의 강제적인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강제력은 부족하지만, 싼타페·코란도스포츠 연비 부적격 판정 이후 각 업체들이 자체 검증을 강화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앞으로 예산이 허락하는 한 검사 차종을 늘려나가고 더욱 엄격하게 검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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