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국내 자동차 업계는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다. 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만한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대부분은 내년까지 같은 흐름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현재진행형'인 이슈들이 많다. 2023년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 발생했던 주요 사건들을 월별로 정리했다. 

#1월, 테슬라 기가팩토리 한국 유치전

테슬라 기가팩토리는 새해 초부터 지역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지난 11월 윤석열 대통령이 일론 머스크와 회동하며 한국 투자를 요청했고, 이 과정에서 머스크가 우리나라를 '최우선 투자 후보'라고 언급한 데 따른 결과였다. 

테슬라 상하이 기가팩토리
테슬라 상하이 기가팩토리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음에도 지방자치단체들의 유치 경쟁은 과열 양상을 띄었다. 서울과 제주를 제외한 사실상 모든 지자체가 경쟁에 뛰어들었고, 대부분은 물류망과 풍부한 수요를 앞세웠다. 공급망 안정성, 특화 산업단지와의 시너지 효과를 내세운 곳도 있었으며, 천억 원대의 세금 인센티브까지 약속하는 곳까지 나타났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알 수 있듯, 테슬라 기가팩토리 유치와 관련된 이야기는 올해 들어 잠잠하다. 태국과 인도가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외신 보도만 있을 뿐, 우리나라가 기가팩토리 설립과 관련해 진전이 있었다는 뉴스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정치권이 김칫국부터 마신 대표적인 사례로 남겠다. 

#2월, 헌법재판소 민식이법 합헌 결정

헌법재판소가 도입 초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민식이법'이 헌법 가치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벌써 3년째 시행 중인 민식이법은 어린이 교통안전을 확보하고 스쿨존 내 교통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서울 서초구 '스쿨존 532' 조감도(자료=서울시청 홈페이지)
서울 서초구 '스쿨존 532' 조감도(자료=서울시청 홈페이지)

헌재는 판결문을 통해 "우리나라는 보행 중 사망자의 비율이 매우 높은 편에 속하고 어린이보호구역에서도 교통사고가 지속해서 발생하는 등 차량 중심의 후진적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어린이의 통행이 빈번한 초등학교 인근 등 제한된 구역을 중심으로 어린이보호구역을 설치하고 엄격한 주의의무를 부과해 위반자를 엄하게 처벌하는 것은 어린이에 대한 교통사고 예방과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혔다.

물론 부당함을 지적하는 소수 의견도 있었다. 반대 의견을 낸 이은애 재판관은 "운전자의 경미한 과실에 의해서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며 "어린이 교통사고 방지를 위한 시설을 설치하거나 새로운 교통 체계 설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형벌 강화에만 의존해 죄질이 비교적 가벼운 유형에까지 일률적으로 가중처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3월, 쌍용자동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쌍용자동차가 KG모빌리티(KGM)로 새롭게 출발했다. 쌍용자동차라는 이름이 사라지는 건 1988년 이후 35년 만의 일이다. 

쌍용차 평택공장
쌍용차 평택공장

KG모빌리티는 새로운 이름이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와 판매에 국한하지 않고 전동화, 자율주행, 커넥티비티 등 미래지향적인 기술 개발과 적용,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이동성 서비스 제공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맞춰 앞으로 EV 전용 플랫폼, 자율주행차, AI 등 모빌리티 기술 분야에 집중할 계획이다.

KG모빌리티는 사명 변경과 더불어 2025년까지 3종의 전기차를 내놓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인증 중고차 및 특장 사업 등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도입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 4월,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화재

한밤중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연기를 흡입한 근로자 10명과 소방대원 1명이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타이어 완제품 21만개가 모두 불에 탔다. 발화 원인은 아직도 규명되지 못했다. 

대전 시내에서 목격된 한국타이어 공장 화재(독자 제보)
대전 시내에서 목격된 한국타이어 공장 화재(독자 제보)

불똥은 곳곳에 튀었다. 타이어 공급에 차질이 생김에 따라 완성차 업체들이 다른 브랜드 제품을 급히 투입했다. 한국타이어가 후원해왔던 아트라스 BX 레이싱팀은 올해 국내 모터스포츠 시즌 출전을 고사해야 했다. 아시아 최대의 GT 레이스 슈퍼 다이큐 시리즈엔 한국타이어 대신 브리지스톤이 공급되기도 했다. 

문제는 불에 탄 2공장 복구 여부가 불투명 하다는 점이다. 한국타이어는 화재가 발생한지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2공장 재건 개확을 확정짓지 못했다. 2공장에서 근무하던 근로자들의 처우 문제는 물론, 인근 주민들에 대한 보상책도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는 조현범 회장의 부재와 경영권 분쟁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 

#5월, 돌아온 포니 쿠페

이탈리아 레이크코모에서 복원된 포니 쿠페가 공개됐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와의 협업을 통해 8개월간의 복원작업을 거쳐 완성된 자동차다. 당초 포니 쿠페 콘셉트는 1974년 공개 이후 양산 직전까지 개발이 진행됐지만, 도면과 차량이 유실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 '비운의 차'다. 

현대차 포니 쿠페 콘셉트
현대차 포니 쿠페 콘셉트

현대차가 포니 쿠페 복원을 결정한 건 현재까지 다양한 디자인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오닉5의 원형이었던 45 콘셉트를 비롯해 지난 7월 공개된 N 비전74가 포니 쿠페를 통해 파생됐다. 특히 N 비전74는 포니 쿠페를 오마주한 파격적인 스타일로 주목받으며 많은 이들이 양산을 요구하고 있는 차다. 

정의선 회장은 이날 포니 쿠페 양산 가능성을 묻는 말에 "못 할 것도 없다"며 "주지아로가 포니 쿠페를 꼭 양산했으면 한다고 했다"고 말해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두지만은 않았다. 

#6월, '기사님들 원픽' 쏘나타 택시 단종

오랜 기간 생산되며 명맥을 잇던 쏘나타(LF) 택시가 전격 단종됐다. 8세대 쏘나타(DN8)를 출시하면서도 계속 생산된 모델이었지만, 노후화로 인한 부품 수급 부담이 커지며 단종이 결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 쏘나타 택시
현대차 쏘나타 택시

예상대로 업계의 충격은 컸다. 쏘나타 택시는 2021년 K5 택시 단종 이후 유일하게 남아있던 중형 택시였기 때문이다. 한 체급 위인 K8이나 그랜저를 선택할 경우 980~1540만원 가량의 추가 금액을 부담해야 하는 데다, 배기량이 커져 유지비가 상승하는 만큼, 택시업계는 쏘나타 택시 생산을 지속해서 요구해 왔다.

결국 현대차는 '중국산 쏘나타'를 대안으로 꺼내 들었다. 가동률이 떨어진 북경현대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리고, 높은 가격 경쟁력을 이용해 택시 시장 수요를 받아낼 수 있어서 일석이조다. 다만 해외 생산 물량을 국내로 들여온다는 점을 들어 노조의 반발은 불가피하다.

#7월, 사상 처음 멈춰 선 수입차 서비스센터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최대 딜러사 한성자동차 근로자들이 파업했다. 수입차 서비스센터에서 파업이 발생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2일 인천 서비스센터에서 진행된 한성자동차 노조 파업 집회 (한성자동차 노조 제공)
2일 인천 서비스센터에서 진행된 한성자동차 노조 파업 집회 (한성자동차 노조 제공)

이들은 한성자동차가 모기업 레이싱홍에 배당한 금액은 4000억원에 달한 반면, 근로자 임금인상 총액에 반영된 금액은 100억원 남짓이라고 주장했다. 근로 환경 전반이 열악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하며 처우 개선을 요구해 왔다.

결국 양측이 합의하며  논란은 일단락된 것 같았지만,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영업직 근로자들이 인센티브 문제로 갈등 중이고, 다른 수입차 딜러사들 사이에서도 노조가 결성되고 있다. 새해도 올해 못지않은 잡음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8월, 현대기아 전기차 품질 논란

현대차 아이오닉5, 기아 EV6를 포함한 현대차그룹 전기차 전반에서 주행 중 멈춰설 수 있는 문제점이 발견됐다.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지만, 리콜이 아닌 '무상 수리'가 이뤄졌다는 점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고,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차에서도 결함이 나오며 품질 문제가 제기됐다.

기아 EV9 GT라인
기아 EV9 GT라인

문제의 원인은 현대차그룹의 통합 충전 시스템 'ICCU'다. 고전압 배터리와 보조배터리를 모두 충전하도록 개발된 제품으로, 일시적인 과전류 현상으로 소자가 손상되고, 보조배터리가 방전되는 문제가 확인됐다. 이 경우 차량 내 경고등 및 경고음이 발생하고 속도 제한이 걸렸다가 결국 멈춰 서게 된다.

당시 갓 출시된 기아 EV9은 후륜 모터 제어장치 소프트웨어 설계 오류로 리콜됐다. 통신 불량이 발생하고, 모터에 전원공급이 차단되어 주행 중 차량이 멈춰 서는 문제점이다. 이에 따라 이미 공급된 물량은 물론 공장에서 출고를 기다리던 모든 차가 리콜되어야 했다.

#9월, 에디슨모터스, KGM에 '역인수'되다.

KGM이 에디슨모터스를 인수했다. 당시 쌍용자동차였던 KGM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던 상황과 비교하면 상황이 정반대로 역전된 셈이다.

에디슨모터스 함양 공장을 둘러보는 곽재선 회장=KG그룹
에디슨모터스 함양 공장을 둘러보는 곽재선 회장=KG그룹

KGM이 에디슨모터스 인수를 결정한 건 '잠재력' 때문이다. 백오더 물량이 많이 쌓여있는 데다, 해외 진출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는 여건도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KGM과 연구개발 및 구매소싱 분야 협력을 강화해 수익성과 시너지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KGM은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에디슨모터스에 긴급 운영자금을 지원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곽재선 회장은 인수 직전 에디슨모터스 함양공장을 직접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10월, 현대차그룹, 인증 중고차 사업 진출

현대차, 제네시스, 기아가 인증 중고차 사업을 본격화했다. 진출을 선언한 지는 1년 10개월 만이다.

현대차 인증중고차 양산센터 옥외=현대차그룹
현대차 인증중고차 양산센터 옥외=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은 중고차 시장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던 판매자와 소비자들 간의 정보 비대칭 해소에 집중하는 한편, 5년 10만km 이내 무사고 차량만 판매해 신뢰성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모든 구매 과정은 온라인화해서 접근성도 강화했다.

기아는 이와 별개로, 전기차 특화 프로그램도 내놨다. 중고 전기차의 배터리 성능·상태 정보를 공개한 게 대표적이다. 전기차만의 품질검사 및 인증 체계를 마련하고, 배터리 등급과 1회 충전 주행거리 등급을 종합한 최종 EV 품질 등급을 부여하는 등, 최소 성능 기준에 해당하는 3등급 이상의 판정을 받은 차량만 판매하고 있다.

#11월, 테슬라 슈퍼차저, 국내서도 전격 개방

테슬라가 한국에서 슈퍼차저를 일반 차량에 개방했다. 테슬라 앱(버전 4.2.3 이상)을 이용해 충전소를 이용하고 요금을 지불할 수 있다. 일반 전기차의 충전 규격(CCS)이 테슬라(NACS)와 다른 만큼 함께 설치된 어댑터를 이용하면 된다.

아이오닉6와 모델Y가 슈퍼차저에서 나란히 충전 중이다
아이오닉6와 모델Y가 슈퍼차저에서 나란히 충전 중이다

다만, 일반 전기차주들이 실제로 슈퍼차저를 이용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일반 차량 충전 요금은 kWh당 404원으로, 환경부 급속 충전기(347.2원)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여기에 충전이 완료됐는데도 차를 옮기지 않을 경우 1분당 1000원의 점거 수수료까지 내야 한다.

한편, 테슬라는 지난 2021년 11월 이후 전 세계에서 슈퍼차저를 개방하고 있다. 현재 개방된 국가는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등 22개국이다.

#12월, 한국 전기차의 '유럽 위기론'

프랑스 정부가 이른바 프랑스판 IRA(인플레이션감축법)로 불리는 녹색산업법 시행을 발표했다. 자동차 생산 및 운송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량도 줄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개편안에 따르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한국 전기차는 유럽에서 생산되는 코나 일렉트릭이 유일하다. 다른 차들은 우리나라에서 전량 생산돼 수출되는 만큼, 운반 거리가 길어 탄소 배출량이 많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탈리아도 프랑스와 비슷한 규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핵심 원자재의 유럽 내 생산 비중을 높이는 내용을 담은 CRMA(핵심 원자재법)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CRMA는 리튬, 니켈, 알루미늄 등 핵심 광물을 EU 내에서 일정 비율 이상 가공하도록 규제한 법안으로, 자동차 업계엔 사실상 현지 배터리 공장 설립을 강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프랑스 정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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