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는 적막함만이 가득했다. 공기도 찬데, 바람까지 불었다. 지난 여름의 뜨거운 햇빛, 관중의 환호와 굉음을 내는 레이스카가 달렸던 풍경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스피드웨이는 적막함만이 가득했다.
스피드웨이는 적막함만이 가득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피트 안에선 참가자들이 이런 저런 장비가 달린 아이오닉5를 점검하기에 바빴다. 여느 모터스포츠의 광경이나 다름없었다. 현대차그룹이 주최한 2023 자율주행 챌린지는 적막했지만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이렇게 빠른 자율주행차라니

여느 모터스포츠 대회와 달리, 출발은 그리 요란하지 않았다. 참가 차량들이 모두 전기차여서 소음이 발생하지 않았고, 첫 바퀴는 30km/h 속도 제한이 걸린 채 이뤄졌기 때문이다. 추월이 허용되어있었지만, 모두가 30km/h로 달리는 상황에서 추월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출발은 그리 요란하지 않았다.
출발은 그리 요란하지 않았다.

첫 랩을 돌고 난 뒤, 제한속도가 100km/h로 상향되기 시작하자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선두를 달리던 건국대학교 차량이 재빠르게 속도를 올렸고, 2위 카이스트 차량도 질세라 속도를 높였다. 인하대학교 차량은 비교적 천천히 가속하고 있는 장면이 관찰됐다. 

속도가 높아지자 비슷해보였던 자율주행차들의 움직임은 눈에 띌 정도로 달라보였다. 건국대학교 차량은 마치 프로 레이서가 운전하는 차량처럼 아웃-인-아웃으로 자신만의 라인을 그려나가며 서킷을 주파했다. 

전반적으로 빠르고 공격적인 페이스를 이어간 건국대와 달리, 카이스트와 인하대는 이보다는 안정적인 주행에 집중했다. 일부 코너를 탈출하자마자 차량이 급격하게 가속하는 듯 한 모습을 보여주며 다소 불안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결국 격차는 점점 벌어졌다.

#자율주행차의 추월, 모두가 환호했다

건국대의 아이오닉5가 추월을 시도했고, 이 순간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건국대의 아이오닉5가 추월을 시도했고, 이 순간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최고속도가 120km/h로 상향된 5랩째. 건국대의 아이오닉5가 한 바퀴 차이를 벌리며 3위 인하대의 뒤에 바짝 붙어섰다. 추월을 위해 여러 차례 고민하는 듯 한 모습이 관찰됐고, 인하대 팀이 이를 방어하려는 것인지 건국대 차량의 진로를 막아서는 모습도 관찰됐다.

두 학교의 싸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카이스트가 건국대의 뒤를 바짝 따라붙은 순간, 건국대의 아이오닉5가 추월을 시도했고, 이 순간 중계석과 관객석은 물론, 기자실과 각 대학의 피트에서는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건국대는 전반적으로 빠르고 공격적인 페이스를 이어갔다.
건국대는 전반적으로 빠르고 공격적인 페이스를 이어갔다.

카이스트는 건국대의 추월 이후 마주한 인하대의 아이오닉5와 마주하자 급제동을 전개했다. 차간거리가 그리 가깝지는 않았지만, 충돌 상황을 대비해 소프트웨어를 제법 보수적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였다.

이후 추월을 허용한 인하대의 자율주행차는 마지막 코너를 앞두고 펜스를 들이받으며 멈춰섰다. 사이드에어백이 전개됐고, 우측이 파손된 게 중계 화면으로도 관찰됐다. 

대회는 경기 내내 주도권을 놓지 않았던 건국대의 승리로 끝났다
대회는 경기 내내 주도권을 놓지 않았던 건국대의 승리로 끝났다

명장면은 마지막까지도 끊이질 않았다. 주차 구역에 세워야 하는 마지막 미션에선 인하대가 깔끔한 정차에 성공한 데 이어, 곧바로 들어온 카이스트 차량이 바로 옆에 ‘칼주차’로 멈춰섰다. 실제 주차구역이었다면 인하대 차량이 문을 열기 어려워보이는 모습이었던 만큼,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렇게 대회는 경기 내내 주도권을 놓지 않았던 건국대의 승리로 끝났다. 1위를 차지한 건국대 팀 나유승 팀장은 "라이다·레이더·카메라 등 센서류 위치를 최적화하고 공격적인 주행을 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를 설정한 덕분"이라며 "수고해 준 팀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이들에겐 우승상금 1억원과 현대차그룹의 미국 연구시설 투어, 채용 특전 등이 제공됐다.

# 시상식이 끝나고 난 뒤

“저희가 그 팀 맞습니다.”

1위 건국대와 2위 카이스트의 피트
1위 건국대와 2위 카이스트의 피트

2위를 차지한 카이스트 팀 피트에서 혼자 중얼거린 이야기에 이대규 씨(카이스트 박사과정)가 맞장구를 쳤다. 이들은 지난 2023 CES에서 나스카 트랙을 시속 200km/h를 넘나드는 자율주행차를 선보인 그들이었다.

CES에서 외신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는데, 2위에 그친게 아쉽지 않냐는 질문에는 “후배들이 다음 대회에서 더 멋진 모습 보여주겠죠”라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올해 졸업을 앞두고 있다고도 말했다. 

피트의 분위기는 제각각이었다. 우승팀 건국대학교는 왁자지껄한 분위기속에서 서로를 격려하느라 바빴고, 차를 쓰다듬으며 기념 촬영을 하기에 바빴다. 사고로 출전이 좌절된 충북대 학생들이 묵묵히 아이오닉5에서 센서류를 탈거하고 있는 모습과 대비를 이뤘다.

우승을 차지한 건국대학교 
우승을 차지한 건국대학교 

모든 일정이 끝난 후 진지했던 참가자들은 여실없이 ‘학생’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시험을 걱정하고, 대회 직후 맞는 주말임에도 학교에 나가야 한다며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이 유쾌해보였다.

현대차·기아 연구개발기획조정실장 성낙섭 상무는 이들에게서 가능성을 봤다는 입장이다. “다양한 변수의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짜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며 “대학생들이 이런 로직을 짰다는 점에서 큰 박수를 보내고 싶고, 개인적으론 2년 뒤 대회가 매우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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