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버리고 차분하게 달리세요. 그게 더 나은 기록을 보여줄 겁니다"

한 달 만에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를 다시 찾았다. 기초 교육의 마지막 단계인 레벨3를 듣기 위해서다. 레벨1과 2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들었다면, 레벨3부터는 조금 더 긴장해야 한다. 전반적으로 높아진 난이도와 함께 더 복잡하고 더 빠른 코스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레벨1에서는 차량 조작의 기본, 레벨2는 역동적인 액티비티를 통한 차량의 성능을 주로 체험했다. 이제 레벨3에서 '무게 중심을 통한 차량의 거동 제어'를 배울 차례다.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전문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상위 교육 과정으로 올라가려면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교육 시간도 1시간씩 늘어난다. 레벨1은 120분, 레벨2는 190분, 레벨3는 260분 등 쉬는 시간을 포함하면 70분씩 길어지는 셈이다. 특히 레벨3부터는 반나절에 가까운 시간 동안 교육이 진행되는 만큼, 입장 전 끼니를 든든하게 챙겨 먹기를 추천한다.

함께 달릴 차량은 현대 아반떼 N이다. 최근 부분변경을 거쳤지만 국내엔 아직 출시하지 않은 관계로 기존 모델을 사용한다. HMG 드라이빙 센터의 아반떼 N은 범용성을 위해 수동 변속기가 아닌 8단 듀얼 클러치(DCT)를 사용한다. 외관에는 커다란 두 개의 머플러와 순정 윙, 실내는 로고에 불이 들어오는 세미 버킷 시트가 매력 포인트다.

시트 포지션을 잡고 본격적인 교육에 나섰다. 첫 번째 코스는 몸풀기로 제격인 짐카나다. 다만 이번에는 구성이 조금 달랐는데, 슬라럼과 급제동+긴급 회피에 '8'자 선회 구간이 추가됐다. 연습 삼아 천천히 달려봤다. 코스가 길어져 조금은 복잡했지만, 대부분은 지난 과정과 비슷하다. 

연습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타임 어택에 들어갔다. 복잡한 코스를 되뇌면서 공략을 시도했다. 첫 번째 도전에는 53초가 나왔다. 이어 52초, 51초… 50초대 벽을 깨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과욕은 금물이랬던가. 욕심을 내니 자꾸만 실수가 반복된다. 제동 포인트를 놓치는가 하면, 러버콘을 쳐서 페널티를 받기도 했다. 지난 교육에서는 잘 해냈는데, 8자 선회 하나 추가됐다고 체감상 난이도는 3배 이상 늘었다.

보다 못한 인스트럭터가 "욕심을 버리세요. 빠를수록 차분해야 합니다"라며 한 마디 거든다. 충고를 마음에 새기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고, 깔끔하게 모든 코스를 주파할 수 있었다. 속으로는 너무 느린 거 아닌가... 생각이 들었는데, 오산이었다. 아무런 페널티를 받지 않고도 49초대에 들어왔다.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서는 드라이버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다음 교육은 '트레일 브레이킹'이다. 코너의 꼭짓점(CP)까지 브레이크를 물고 들어가는 제동 방법으로, 차량의 무게 중심을 활용해 타이어의 그립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끌어낼 때 사용한다.

코너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갑작스럽게 떼면 하중이 뒤로 이동하면서 순간적으로 앞타이어 그립이 줄어든다. 이때 아반떼 N과 같은 전륜구동 차량은 구동축의 접지력이 감소한 만큼 가속력도 떨어지는데, 이는 탈출 시간이 늦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반면, CP까지 미세하게나마 브레이크를 유지하는 '트레일 브레이킹'을 사용하면 하중을 흐트리지 않으면서 네 바퀴의 접지력을 고르게 가져갈 수 있다. 이때도 차분함의 미학은 계속된다. CP에 도달해 내가 나아갈 길이 보일때까지 브레이크 페달을 놓지 않는 끈기와 인내심이 요구된다.

코너를 도는 과정에는 시선 처리가 정말 중요하다. 나아갈 길을 정확히 바라보지 않으면 정확한 제동 시점과 CP를 놓쳐 거동이 불안해진다. 기본적으로 운전자의 시선은 브레이킹 시작과 동시에 CP를 향해야 한다.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먼 곳을 바라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연습만이 살길이라고, 반복해서 달리다보면 어느새 CP를 쫓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다음은 일종의 쉬어가는(?) 코스인 고속 주회로다. 시원하게 뻗은 4.6km의 왕복 4차선 오벌 트랙을 마음껏 달려볼 차례다. 스티어링 휠과 페달을 바쁘게 조작해야 하는 다른 코스와 달리 그저 앞차만 보고 따라가면 된다. 물론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만큼, 방심은 금물이다.

드래그 레이스처럼 직선 주로만 달렸던 기아 레벨2와 달리, 이번에는 경사각이 최대 42도에 달하는 고속 선회주로까지 포함됐다. 워밍업 주행을 하며 점차 속도를 높여갔다. 최고속도를 낼 수 있는 선회 구간에 들어섰을 때 계기판을 확인하니 무려 205km/h다. 일반 도로의 2배가 넘는 빠르기로 엄청난 경사면을 훑고 지나간다. 안전을 위해 가장 높은 1차선 대신 2~3차선 사이를 달리지만, 대각선 고속주행이라는 짜릿한 감각이 새롭다.

주행이 끝나면 차량을 멈추고 경사로를 직접 올라설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든 엄청난 경사로인데, 이런 곳을 200km/h가 넘는 속도로 질주했다니 왠지 모를 정복감이 든다.

다음은 웻 컨디션을 체험하는 젖은 노면 서킷과 젖은 원선회 코스다. 트랙이 흠뻑 젖어 코너의 경계면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뿐더러 제대로 된 그립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반복된 주행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쯤 인스트럭터가 차체제어장치를 끄고 급가속 해보기를 권했다. 그다지 빠른 속도가 아니어서 자신 있게 가속 페달을 밟았는데, 바로 직후 만난 코너에서 차량 후미가 미끄러지는 오버스티어가 발생했다.

일반 도로였다면 간담이 서늘해질 상황이지만, 통제된 상황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자신 있게 카운터 스티어를 넣었다. 또 다른 코너에서는 일부러 과속 진입해 언더스티어를 유도해 보기도 했다. 휘청이는 차체를 바로 잡는 재미가 쏠쏠하다. 페이스는 느렸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코스였다.

젖은 원선회 코스에서는 전자식 차동 제한장치(e-LSD)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인 전륜구동 자동차는 원형을 그리면서 달릴 때 속도가 빨라질수록 바깥으로 밀려나는 성향이 있다. 바깥 타이어의 접지력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e-LSD가 작동하면 그립이 부족한 안쪽 타이어에 동력을 보내면서 차량을 코너 안쪽으로 밀어 넣어준다. 현대차가 이 기술에 'N 코너 카빙 디퍼렌셜(코너를 파고드는 차동기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를 단숨에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서킷 주행이다. 레벨1·2는 태안 서킷을 절반씩 나눴다면, 레벨3는 16개 코너 3.4km의 전체 구간을 모두 달린다. 고저차가 거의 없는 평지 서킷이지만, 난이도는 생각보다 높다. 트랙 연석이 없어 레코드 라인 파악이 쉽지 않고, 대부분의 구간이 높은 수준의 드라이빙 스킬을 요구하는 테크니컬 코너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레벨3는 서킷 주행에만 1시간을 할애하는 만큼 코스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일은 없겠다.

서킷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면서 점차 페이스를 높였다. 트랙에 러버콘으로 제동 시점과 CP를 표시해 비교적 쉽게 외울 수 있다. 그저 시선을 멀리 바라보면서 내가 갈 라인을 잘 찾기만 하면 된다. 앞서 배운 트레일 브레이킹과 시선 처리를 생각하며 서킷을 하나하나 공략해나갔다. 하지만 속도가 점차 높아질수록 난이도는 높아졌다. 생각한 만큼 깔끔한 라인을 그려내기가 무척 어려웠다.

다행히 인스트럭터 인솔 하에 속도와 드라이브 모드를 조절하며 다양한 라인을 공략해 볼 수 있었다. 특히, e-LSD를 켜면 라인이 완전히 바뀌는데, CP를 찍고 탈출하는 속도가 차원이 달랐다. 버튼 하나만으로 다른 차량을 모는 듯 색다르다. 

레벨3의 대미는 인스트럭터의 시범 주행이다. 조수석에 올라 프로 드라이버의 속도와 기술을 경험할 수 있다. 직접 운전했을 때는 나도 꽤 빠르다고 느꼈는데, 프로의 세계는 상상 그 이상이다. 같은 차로 같은 서킷을 달린 게 맞나 싶을 만큼 정확하고 빠르게 코너를 공략해갔다. 순식간에 끝났다. 나도 이렇게 달리고 싶다는 욕심이 솟구쳤다. 마치 '이렇게 달리고 싶다면 더 높은 레벨인 어드밴스드와 마스터즈를 수강하라'라고 유혹하는 듯했다. 

모든 교육이 끝났다. 확실히 전반적인 교육 난이도가 높아졌다. 레벨1·2는 즐기는 자세로 참여했다면, 레벨3는 도전자의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인스트럭터에 따르면 레벨3가 부담돼 레벨2를 반복 수강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다만 상위 프로그램인 드리프트, 어드밴스드, N 마스터즈 등을 수료하기 위해서는 레벨3 이수가 필수다. 운전에 자신 있다면, 또는 상위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싶다면 꼭 도전해 보도록 하자.

여담으로, 운 좋게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 기자 가운데 TOP2에 선정됐다. 두 달 뒤 심화과정인 현대 어드밴스드, 그리고 10월 마지막 주 대망의 N 마스터즈에 참가할 예정이다. 상위 프로그램은 별도 체험 코스 없이 오직 서킷만 달린다. 체험 아닌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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