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WRC] 이탈리아 랠리…현대차 멈추고, 뒤집히고
  • 김상영 기자
  • 좋아요 0
  • 승인 2014.06.10 13:15
[2014 WRC] 이탈리아 랠리…현대차 멈추고, 뒤집히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탈리아 랠리는 올 시즌 현대차 WRC팀에게 가장 아찔한 순간이었다. 경기 초반 선두를 달리던 유호하니넨은 코스 파악 미숙으로 랠리카가 전복되며 경기를 포기해야 했다. ‘에이스’ 티에리누빌은 서스펜션 이상으로 20여분의 시간을 도로에서 허비하며 상위권에서 멀어졌다.

현대차 WRC팀은 이번 이탈리아 랠리를 통해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랠리카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하지만 허망하게 끝난 것만은 아니다. 현대차 WRC팀은 신생팀으로는 이례적으로 세컨드팀을 선보였다. 세컨드팀의 정식 명칭은 ‘현대 모터스포트 N’이며 호주 출신의 젊은 드라이버 헤이든파든은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펼치며 완주에 성공했다.

 

이번에도 우승은 폭스바겐팀이 차지했다. WRC가 점차 폭스바겐의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것 같다. 폭스바겐팀의 세바스찬오지에와 야리마티라트발라는 서로 우승컵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다. 이번 우승으로 폭스바겐팀은 WRC 역사상 최초의 10연승을 기록했다.

◆ 이탈리아 랠리, "더위와 흙먼지를 견뎌라"

5일부터(현지시간), 3박4일의 일정으로 이탈리아에서 두번째로 큰 섬인 사르데냐(Sardinia)에서 2014 WRC 6차전이 열렸다. 이탈리아 랠리는 총 17개의 스페셜스테이지(SS)로 구성됐으며 경기 구간은 364.5km에 달한다. 사르데냐섬은 30도를 웃도는 더위로 땅이 건조하고 메마르다. 그래서 유독 흙먼지를 많이 일으킨다. 앞차와의 간격을 좁혀도 시야가 흐려져 추월하기도 쉽지 않다. 

 

특히 59.13km에 달하는 장거리 스페셜스테이지가 두번이나 있기 때문에 승부의 향방을 더욱 알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 첫째날, SS1 “현대차 WRC팀, 언제나 시작은 좋다”

이탈리아 랠리의 SS1은 일명 슈퍼 스페셜 스테이지(SSS)’로 불린다. WRC 관람객을 위한 일종의 이벤트다. 도심에 마련된 간이 서킷에서 진행됐는데, 두대의 랠리카가 동시에 출발해 승부를 겨룬다. 특히 이번 슈퍼 스페셜 스테이지는 야간에 진행됐으며 살인적인 헤어핀과 슬라럼 등으로 관람객들을 흥분시켰다. 

 

누빌은 압도적인 실력을 뽑내며 2위에 올랐다. 1위와는 불과 0.2초 차이. 하니넨도 4위에 오르며 쾌조의 출발을 보였다. 1위는 M스포트팀의 미코히르보넨이 차지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히르보넨에게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를 아무도 알지 못했다.

◆ 둘째날, SS2~SS9 “하니넨의 첫번째 스테이지 우승…그리고”

본격적인 랠리가 시작된 6일(현지시간), 현대차 WRC팀은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SS2에서는 누빌이 1위를 차지했고, 하니넨은 2위에 올랐다. 현대차 WRC팀의 다섯번째 스페셜스테이지 우승이다. 폭스바겐팀의 오지에는 9위, 라트발라는 10위에 머물렀다. 

 

SS3에서도 현대차 WRC팀은 계속 선두를 유지했다. 이번엔 하니넨이 1위에 올랐고, 누빌이 2위가 됐다. 누빌은 지난해 이탈리아 랠리에서 종합 2위를 차지한만큼 이번 랠리에서 현대차 WRC팀의 큰 기대를 받았다. 

 

SS4에서 M스포팀 히르보넨의 피에스타 RS가 불길에 휩싸였다. SS3를 끝내고 SS4로 향하는 도로 섹션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랠리카는 완전히 전소됐다. 누빌은 여전히 좋은 성적으로 종합순위 1위를 지켜나갔다.

 

SS5는 현대차 WRC팀에겐 악몽과도 같았다. 선두를 달리던 누빌의 i20 WRC가 멈춰섰다. 이번에도 고질적인 머신 트러블이 발생한 것. 다행히 지난번 랠리에서 겪었던 끔찍한 엔진 트러블이 아닌 서스펜션의 문제였다. 누빌과 그의 코드라이버는 이를 수리하기 위해 도로에서 23분이나 허비했다. 덕분에 누빌은 단숨에 1위에서 꼴찌로 내려앉게 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하니넨의 i20 WRC는 전복되며 나무 사이에 처박혔다. 다행이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랠리카가 완전히 파손돼 하니넨은 경기를 포기해야 했다. 하니넨은 “사전 답사에서 코스 분석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며 “순조로웠던 이번 랠리를 이렇게 마무리해서 무척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대차 WRC팀이 난항을 겪는 사이, 폭스바겐팀은 점차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SS6에서 라트발라와 오지에는 나란히 1위, 2위에 올랐다. 서스펜션을 손 본후 경기에 들어선 누빌은 5위에 올랐지만 종합순위에서는 이미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SS7에서도 폭스바겐 듀오는 순위를 유지했다. SS8도 마찬가지. 단 오지에가 라트발라를 1.6초 차이로 앞지르며 스테이지 우승을 차지했다. SS9에서도 폭스바겐의 집안 싸움은 계속됐고 이번엔 라트발라가 1위에 올랐다. 한편 누빌은 SS5에서 종합 47위까지 떨어졌지만 SS9에서는 27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리는 저력을 발휘했다. 

◆ 셋째날, SS10~SS13 “계속되는 폭스바겐 듀오의 집안 싸움”

셋째날은 59.13km에 달하는 장거리 SS가 두번이나 배치됐기 때문에 극적인 드라마를 기대해볼만 했다. 특히 누빌에게는 선두를 따라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폭스바겐 듀오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SS10에서도 폭스바겐 듀오는 나란히 1위, 2위에 올랐다. 올 시즌 들어 가장 집안싸움이 격하다. SS11에서는 오지에가 1위에 올랐다. 장거리 구간인 SS11에서 오지에는 종합 1위를 달리고 있는 라트발라와의 격차를 크게 좁혔다. 누빌도 종합 순위를 21위까지 끌어올렸다. 이 기세라면 충분히 10위권으로 진입할 가능성도 높다.

 

SS12에서도 오지에가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신입 드라이버 파든은 안정적인 경기 운영으로 어느새 종합순위 8위에 올랐다. 하지만 그에게도 불운이 닥쳤다. SS13에서 파든의 i20 WRC는 물웅덩이를 지나면서 엔진에 물이 들어갔다. 이로 인해 포인트 획득은 물건너갔지만, 다행히 랠리2 규정에 의해서 랠리카를 수리한 후 마지막날을 준비했다.

 

◆ 마지막날, SS14~SS17 “누빌과 파든의 완주”

마지막날 코스는 대체로 짧은 구간이기 때문에 현대차 WRC팀의 포인트 획득은 힘든 상황이었다. 누빌은 컨디션을 끌어올리며 개별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는 마지막 스테이지를 염두에 뒀다.

똑똑한 오지에도 똑같은 전략을 썼다. 타이어를 아끼기 위해 페이스를 조절했다. 그래서 SS14에서는 시트로엥팀의 매즈오스트버그가 1위에 올랐다. 누빌은 4위, 파든은 5위를 차지했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이상 이미 결과는 정해졌기 때문에 모두들 안정적인 운영을 펼쳤다. 단 종합 2위 싸움은 여전히 치열했다. 라트발라가 SS15에서 1위에 오르며 마지막까지 열을 올렸다. 그는 SS16에서도 1위를 차지했지만 오스트버그와는 14초나 차이가 벌어졌다. 

1위부터 3위까지 개별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SS17에서는 모두 총력전을 펼쳤다. 누빌도 이때만을 노렸다. 하지만 아쉽에 누빌은 4위에 그쳤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누빌과 파든은 완주에 성공했다. 현대차 WRC팀의 미쉘난단 감독은 “값진 교훈을 통해 팀이 성장했다”며 “여전히 i20 WRC에 대한 취약점을 보완하고 있으며 완주하는 횟수는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랠리 종합 1위를 폭스바겐팀의 오지에가 차지했다. 그의 기록은 4시간2분37초. 누빌과 약 27분 차이다. 누빌이 서스펜션 이상으로 시간을 허비하지만 않았어도 승부는 어찌 됐을지 모른다.

2014 WRC 7차전은 26일(현지시간) 폴란드에서 열린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