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신형 8시리즈 쿠페에 스며 있는 BMW의 85년 전통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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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19 17:36
[이완 칼럼] 신형 8시리즈 쿠페에 스며 있는 BMW의 85년 전통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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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1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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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BMW가 신형 8시리즈 쿠페를 정식으로 공개했습니다. 1990년대 판매된 적이 있던 8시리즈 쿠페가 거의 20년이 다 돼서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 것인데요. 독일 전문지들은 포르쉐 911, 그리고 메르세데스 AMG GT 등과 경쟁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뉴 8시리즈 쿠페 / 사진=BMW

이곳 현지 소비자 반응도 대체로 호의적입니다. 디지털화된 실내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면도 있지만 적어도 익스테리어는 큰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성능 스펙을 떠나 과연 이 쿠페가 얼마나 세계 곳곳에서 팔려 나갈지 그것부터 당장 예상해보게 되는데요. 그만큼 잘 나왔다는 얘기겠죠?

뉴 8시리즈 쿠페 / 사진=BMW

# 303을 아십니까?

그런데 8시리즈 쿠페를 보면서 저는 85년 전에 나왔던 BMW의 자동차 한 대가 떠올랐습니다. BMW 303이 그 주인공으로, BMW는 영국 오스틴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하고 차를 만들던 딕시라는 자동차 회사를 인수해 이를 기반으로 3/15라는 차를 처음 내놓게 됩니다.

좋은 판매량을 보였던 3/15였지만 아쉬움이라면 온전한 BMW산 자동차가 아니라는 것이었죠. 오랜 준비 끝에 1933년 BMW 303을 공개합니다. BMW 첫 고유의 플랫폼을 통해 나온 자동차였죠. 그리고 이 303에는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BMW의 특징 3가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BMW 303 / 사진=BMW 

# 1. 키드니 그릴이 적용된 첫 모델

누구나 BMW 하면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키드니 그릴이죠. 이 그릴이 처음 적용된 모델이 바로 BMW 303입니다. 사람 콩팥 모양과 닮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키드니 그릴 없는 BMW를 생각할 수 있을까요? 지난 4월 말, 순수 전기 SUV iX3의 콘셉트카가 공개됐는데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변형된 그릴에 쏠렸습니다. '기아차가 됐다'는 얘기부터 '누가 차에 선글라스를 씌워놓았느냐?'는 등의 조롱이 가득했죠.

내연기관 SUV와는 뭔가 차별화를 꾀하고 싶었던 거 같은데 현재까지 반응은 아주 차갑습니다. 2020년 양산형에도 이 그릴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다시 한번 거세게 비판받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일부에서는 그릴이 BMW 디자인에 제약을 준다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8시리즈 쿠페에서 보듯 키드니 그릴은 충분히, 여전히 매력적인 BMW만의 디자인 요소입니다.

iX3 콘셉트카 / 사진=BMW

그런데 말이죠. 예전부터 언론을 포함, 많이 나오는 얘기 중 하나가 바로 키드니 그릴이 일레(Ihle)형제에 의해 디자인되었다는 소문입니다. 자동차 마이스터였던 일레 형제는 1930년 회사를 세웁니다. 자동차 튜닝 회사로 보면 될 거 같은데요. 주문 생산도 하고 경주용이나 유명한 스포츠 중고차 등을 사서 이것을 새롭게 만들어 판매하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그리고 일레 형제가 거래하던 회사 중 BMW가 있었는데 그들이 그릴에 변화를 줬고 그것을 BMW가 그대로 적용했다는 설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일레 형제의 손을 탄 로드스터는 1934년, 그러니까 BMW 303이 등장한 이듬해에 처음 만들어졌기 때문에 시기상 맞지 않습니다.

# 2. 직렬 6기통 첫 적용 모델

BMW 303 / 사진=BMW

두 번째 특징이라면 직렬 6기통 엔진이 303에 처음 적용됐다는 점입니다. 흔히 BMW의 가솔린 직렬 6기통 엔진을 실키식스라고 부르죠. 부드럽고 성능 좋은 엔진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별명으로 여러 제조사가 충돌 안전 문제 등으로 인해 이 엔진을 회피했을 때도 BMW는 계속 적용하고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303에 들어간 직렬 6기통 엔진 / 사진=BMW

이번에 공개된 8시리즈 쿠페의 가솔린 엔진은 V8 트윈파워 터보이지만 디젤의 경우는 직렬 6기통으로 해서 나올 예정입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4기통 터보 등으로 다운사이징이 되면서 실키식스를 경험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연 흡기가 아닌 터보 엔진 시대가 되어 버린 요즘, 과연 85년 역사의 직렬 6기통 엔진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 3. 브랜드 최초의 경량화 모델

BMW 303은 또 한 가지, 자동차 경량화에 신경을 쓴 BMW 최초의 모델이기도 했습니다. 엔진의 무게와 차체의 무게를 몇백kg까지 줄였고 이 덕에 엔진은 평균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죠. 또한 무게 감량 기술은 수많은 경주 대회에서 우승한 328 같은 자동차가 탄생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BMW 328 / 사진=BMW

신형 8시리즈 쿠페 역시 경량화에 역점을 둔 모델이라는 게 BMW의 설명이었는데요. 곳곳에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을 적극 활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동차가 세대교체 될 때마다 얼마나 무게를 줄였느냐를 중요한 기술의 잣대로 보고 있는데 이미 85년 전부터 이런 고민이 있었다니, 좋은 기술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 그럼에도 전통은 이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1933년에 나온 BMW 303의 세 가지 특징에 대해 이야기해봤습니다. 이 키드니 그릴이 적용된, 직렬 6기통 엔진이 들어간, 가벼운 중형 모델은 이후 328을 낳았고 다시 3시리즈라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세단 탄생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303을 통해 마련된 BMW의 특징은 그대로 최근에 나온 8시리즈 쿠페로까지 이어지고 있죠.

8시리즈 쿠페 / 사진=BMW

시대의 요구이니 엔진은 변하거나 어쩌면 훗날 사라지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6기통 엔진의 역사도 언젠간 막을 내리겠죠. 그와는 반대로 차체 경량화 노력은 자동차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계속되리라 봅니다. 문제는 키드니 그릴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일부에서는 이 그릴의 불필요성을 언급합니다. 하지만 엠블럼이 아닌 자동차의 특정 디자인이 브랜드 정체성을 일깨우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저는 계속 이 상징이 남았으면 합니다. BMW가 전기차에 적용하려는 못난 그릴이 아닌, 전통적 키드니 그릴 그대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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