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뻥 연비 잡은 것은 결국 '법'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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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1.20 16:57
[이완 칼럼] 뻥 연비 잡은 것은 결국 '법'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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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1.2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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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청정 운송 협의회(ICCT)는 폭스바겐이 미국에서 불법 프로그램으로 연비와 배출가스를 속였다는 것을 밝혀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입니다. 이 기관은 매년 제조사가 밝힌 공인연비와 실연비의 차이를 연구해 공개하고 있는데요. 올해는 독일 자동차 매체 아우토빌트와 아우토모토운트슈포트의 자체 실연비 테스트 내용부터 영국과 네덜란드 벨기에 등, 8개 나라 14개 기관과 전문지의 데이터가 활용됐습니다.

 

ICCT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개인용 자동차의 경우 실연비와 공인연비의 편차가 39%, 법인 등에서 쓰인 업무용 자동차는 편차가 45%나 됐습니다. 평균 42%였으니 유럽 공인연비 방식(NEDC)이 얼마나 허점이 많은지 알 수 있죠? 그나마 2016년 결과는 분석을 한 이후 처음으로 실연비와 유럽 공인연비의 편차가 줄었다니, 다행이라고 해야겠군요.

# 꾸준한 언론과 기관의 문제 제기

이처럼 유럽에서 팔리는 자동차의 연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것은 제도 때문이었습니다. 1992년부터 실시된 유럽 연비 측정법(NEDC)은 적용 이후 연비와 이산화탄소 배출량 등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죠. 자동차 전문 매체들은 자체 테스트 결과와 공인연비와의 차이를 나란히 놓고 끊임없이 비판했습니다.

▲ ICCT의 실연비와 공인연비 편차표 / 자료=ICCT

또 연비나 배출가스를 측정하고 연구하는 기업과 환경단체들도 실험 결과를 내놓으며 제조사는 물론 허술한 측정법 개정해야 한다며 유럽연합과 정부 등을 압박해 나갔고, 결국 유엔 산하 유럽 경제위원회가 주도해 오랜 진통 끝에 신연비 측정법(WLTP)이 올 9월 1일부터 적용되었습니다.

# 제조사들의 적극 대응을 끌어내다

EU 외 우리나라 등, 비 유럽 28개국이 이 새로운 연비 및 배출가스 측정법을 완전, 혹은 일부 적용하기로 했고 일본도 적용할지 검토 중에 있습니다. 다만 미국은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했다가 중간에 발을 뺀 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처럼 여러 나라에서 적용하게 된 신연비 측정법에서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실제 도로를 달리며 연비와 배기가스 배출 정도를 측정하는 RDE 방식이 적용되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 실험실에서 연비 및 배기가스 측정 중인 모습 / 사진=tued-sued

30분에 걸쳐 23km 이상의 거리를 때로는 시속 130km/h가 넘는 속도로 달리는 등, 실제 도로를 달릴 때 맞닥뜨리게 되는 조건을 가급적 테스트에 많이 담았습니다. 제조사들이 최대한의 연비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던 기존의 실험실 조건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된 것이죠.

업계의 강력한 로비에 조금은 물러선 느낌도 있지만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새로운 제도로 인해 자동차 회사들은 엄청난 투자와 노력을 하게 됐습니다. 푸조-시트로엥 그룹은 본격적으로 신연비 측정법이 시행되기 전, 약 1년 반의 긴 기간에 걸쳐 외부 기관과 협력해 자체적으로 RDE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 시트로엥의 RDE 테스트 장면 / 사진=PSA

총 60대의 자사 자동차가 430개의 도로에서 총 4만km 거리를 주행했고, 여기서 나온 결과는 소비자에게 공개됐습니다. 연비에 대한 자신감이자 투명하게 배기가스 배출량을 공개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적 대응이었다고 볼 수 있을 텐데요. 독일 폭스바겐도 철저하게 준비를 한 모양입니다. WLTP 대응을 위해 테스트 시설과 장소 6곳이 추가로 공사에 들어갔다고 독일 언론이 전하기도 했습니다. 바뀐 제도가 제조사들을 적극적으로 연비와 배출가스 문제에 나서게 한 것이죠.

# 좋은 법이 좋은 시장을 만든다

자동차 회사들은 늘 문제가 있다면 법을 만들어 해결하라고 말합니다. 뒤집어 보면, 법에 규정되지 않은 문제는 자동차 회사 스스로 나서 해결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됩니다. 유럽의 공인연비 역시 그간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제조사들은 영리하게 대응해왔습니다. 허점이 있어 그것을 이용한 것일 뿐, 누구도 불법을 저지른 것은 아닙니다.

그러다 법이 바뀌었고, 그들은 이제 바뀐 상황에 충실히 대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냉정한 속성을 우리가 이해한다면 좀 더 소비자, 시민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될 수 있도록 정치권에 요구하고 압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디어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이 비판을 독자들은 유권자의 목소리로 변환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 RDE 테스트 중인 아테온 / 사진=폭스바겐

2021년이 되면 자동차 회사들은 브랜드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95g/km로 맞춰야 하죠. 어기게 되면 그 위반되는 배출량만큼 엄청난 벌금을 내야만 합니다. 만약 감당할 수준의 벌금이라면 굳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는 노력과 투자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환경, 그리고 시민 보건을 위해 타협 없는 정책을 편 입법 및 행정 역량이 만든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두고 목소리를 높이는 만큼 법이 소비자 권리를 위해 싸워줄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법이 바뀌기까지 늦은 감은 있었지만 새로운 연비 및 배기가스 측정법을 통해 뻥 연비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그리고 배기가스 문제의 실질적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된 점에 대해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 박수를 보내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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