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문재인 정부의 징벌적 손해배상, 자동차까지 가능할까?
  • 전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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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01 10:42
[기자수첩] 문재인 정부의 징벌적 손해배상, 자동차까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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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현대차 티뷰론이 중앙선을 침범해 마주 오던 차량과 충돌, 탑승자 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3년 후 미국 몬태나 연방지방법원은 현대차가 피해자 유가족에게 248만6000달러(약 28억원)을 보상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사고 원인이 현대차의 제조 결함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국내에서는 상상도 못할 엄청난 금액이다. 

이런 보상이 가능한 이유는 미국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민사재판에서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배상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참고로 국내에는 피해에 상응하는 액수만 보상하는 전보적 손해배상이 적용된다.

 

다행히 최근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강화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5개 정당이 공통으로 약속한 44개의 공약을 우선적으로 진행한다고 밝혔는데, 이 중에는 공정거래와 관련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포함돼 있다.    

사실, 국내에도 이미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2011년 하도급법을 시작으로 2015년 개인정보보호법, 2016년 대리점법 등 총 7개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이 제도들은 대부분 기업과 협력사·직원과의 불합리한 거래 및 소비자 정보의 악용·유출 방지를 위해 만든 제도여서 아쉬움이 있었다. 소비자들이 받는 실질적인 피해에 대한 보상이 부족했던 탓이다. 

▲ 제조물책임법 개정안

올해 들어서 겨우 소비자 보상과 관련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시작됐다. 지난 4월부터 시행된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으로, 제조업자가 제품 결함을 알면서도 조처를 하지 않아 생명과 신체에 중대한 손실을 입혔을 경우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런 움직임은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망 및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등 일련의 사건에서 소비자들이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친기업 정책을 펼쳤던 이명박·박근혜 정권하에서 진행된 소비자들의 집단 소송들은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많은 소비자들이 문재인 정부에서는 소비자 권익이 강화되는 사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공약으로 내세웠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자동차 분야까지 이어지면서 그동안 쌓아왔던 소비자들의 불만이 크게 해소될 것이란 기대감도 높다. 

▲ 2014년 6월. 국토부가 현대차 싼타페와 쌍용차 코란도투리스의 연비가 부적격하다고 최종 결론을 내리자 한 포털 사이트의 '연비부당광고 집단소송' 카페에 소비자들이 급속도로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징벌적 손해배상이 자동차까지 적용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제조물책임법에 나와 있는 것처럼 배상을 받으려면 제조사가 일부러 그런 잘못을 저질렀다는 '고의성'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 소비자들에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이다. 

최근 논란이된 현대차 내부고발자 이슈, 부랴부랴 억지 리콜를 하는 세타2 엔진 결함 등 제조사들은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은폐하거나 축소·왜곡하려고 한다. 대부분의 정보 공개 요구 역시 '기업 기밀'이라는 핑계로 이뤄지지 않는다. 자동차라는 복잡한 기계 덩어리에서 발생한 문제를 일반 소비자들이 밝혀내기도 어렵지만, 설사 밝혀냈다고 해도 제조사가 고의로 결함이 생기도록 만들었다는 증거를 찾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덕분에 제조사들은 에어백이 터지지 않아도, 차가 녹슬어도, 스티어링휠이 잠겨 사고가 나도 '차에는 문제가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정부 관련 부처 역시 이를 옹호했고, 결국 모든 피해는 온전히 소비자들에게 돌아갔다. 

▲ 현대차 투싼ix가 대형 사고에도 에어백이 터지지 않아 논란이 됐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설사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업체들의 반발이 워낙 거센데다가, 제조사에 가벼운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제대로 실행될지 기대하기 어렵다. 사문화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가, 피말리는 소송 끝에 배상을 받더라도 제조물책임법처럼 피해액의 3배가 최대치다. 

법리적 다툼도 있을 수 있겠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영미법과 달리 우리나라는 대륙법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징벌’이라는 단어에 형사적인 요소가 들어있는데, 이를 민사소송에 포함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국토부의 '2013 신차 안전도 평가'에 따르면 커튼 에어백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중상 가능성이 90%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커튼 에어백 장착을 의무화하려는 움직임은 지금까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 수십~수백억배의 징벌적 배상은 아니더라도 제조사들의 일방적인 전횡을 제한할 수 있는 법적 조처가 필요하다. 미국 정부는 안전벨트 착용이 의무화되지 않은 소수의 주(states)를 위해 아예 연방법으로 에어백 장착을 의무화시켰다. 또, 스몰오버랩 등 더욱 강화된 충돌테스트 기준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가장 강력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있는 미국이 오히려 안전 기준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이런 제도 장치 마련에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대부분 리콜 등의 다소 소극적인 사후 조처에 그쳤다. 항상 미국은 예외적인 나라고, 무역 협정상 우리나라에서 선도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말만 반복했다.  

소비자 권익을 지켜주기 위한 사회 분위기를 마련하면서 제조사들이 더욱 안전한 차를 만들게 하는 적극적인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안전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최소한의 위험 가능성까지도 줄이기 위한 노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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