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가 13일, G4 렉스턴의 가격을 결정하고 사전 계약을 시작했다. 기아차 모하비보다 수백만원 저렴한 수준으로, 차 자체의 상품성 및 대형 SUV 시장 상황을 고려했을 때 성공 가능성이 꽤 높아 보인다. 물론, 소비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다만, 렉스턴W는 걱정이다. 쌍용차 측은 G4 렉스턴과 렉스턴W은 차급이 다르다며 당분간 함께 판매한다는 계획인데, 두 모델의 차체 크기와 성능, 가격 등 겹치는 부분이 워낙 많아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 G4 렉스턴, 모하비·싼타페 둘 다 노린 가격

쌍용차는 최근 티볼리의 절묘한 가격 정책을 통해 톡톡히 재미를 봤다. 엔트리 모델의 가격을 1600만원대로 맞춰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높인 것. 사실, 좀 탈만한 차를 사려면 2000만원이 훌쩍 넘고, 최고급 모델은 옵션을 제외하고도 2500만원에 달하지만, 어쨌든 진입 가격을 낮춘 덕분에 소비자들에게 저렴하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G4 렉스턴에도 티볼리에 사용된 정책이 그대로 적용됐다. 가격은 트림에 따라 3335~4520만원 수준으로, 차급에 비해 매우 저렴하다. 사양이 달라 절대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모하비(4110~4850만원)와 비교해 기본 모델은 약 775만원, 최고급 모델은 330만원가량 낮다. 특히, 모하비뿐 아니라 싼타페·쏘렌토(2695~4035만원) 등 중형 SUV 소비층을 흡수하기에도 충분한 가격대다.

 

다행인 점은 3335만원의 기본 모델도 상품성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쌍용차에 따르면 G4 렉스턴에는 8인치 미러링 스마트 멀티미디어를 비롯해 운전석&동승석 통풍시트와 LED 안개등 및 LED 코너링 램프, EPB(전자식 파킹 브레이크, 오토 홀드 포함), 앰비언트 라이팅, 220V 인버터, 고성능 에어필터 등의 사양이 기본으로 장착됐다.

이는 쌍용차가 작정하고 G4 렉스턴을 만들었다는 방증이다. 쌍용차의 주장(또는 소망)처럼 '랜드로버 디스커버리와 포드 익스플로러 등 수입 대형 SUV와 경쟁하는 프리미엄 SUV'까지는 아니지만, 모하비와는 제대로 붙어도 승산이 있어 보인다.

#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더 좋다

세그먼트 전략도 나쁘지 않은 듯하다. 당초 업계에서는 G4 렉스턴이 렉스턴W 후속으로 나와 월 2만대가량 팔리는 중형 SUV 시장에서 경쟁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쌍용차는 과감히 한 등급 높여 월 2000대 수준에 불과한 대형 SUV 시장을 선택했다. 이미 포화된 시장에서 쌩쌩한 싼타페·쏘렌토와 경쟁하는 것보다는 노후화된 모하비를 제압하고 시장을 키우는게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이다.

게다가 SUV 시장은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당연히 더 크고, 더 고급스러운 모델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대형 SUV 시장 규모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쌍용차 송영한 부사장은 "중형 SUV 시장은 국내에서 가장 큰 세그먼트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 뛰어드는 것보다는 상위급 SUV로 넘어가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을 공략하는게 더 효과적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아직 대형 SUV 시장은 매우 작지만, 최근 추세를 보면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좋은 차가 없어서지, 수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 렉스턴W, 자연스러운 단종 절차?

그러나 한 가지 걸리는게 있다. 바로 렉스턴W의 존재다. G4 렉스턴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다 보니 판매가는 점점 낮아졌고, 결국 렉스턴W와 상당 부분 겹치게 됐다. 물론, 차급끼리 가격이 겹치는 것은 어느 브랜드에서나 있는 일이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다르다. 모하비를 상대할 때의 돋보였던 G4 렉스턴의 장점들이 렉스턴W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기 때문이다.

우선, 가격부터가 애매하다. 렉스턴W의 가격은 2870~3948만원으로, G4렉스턴(3335~4520만원)과 그리 큰 차이가 없다. 특히, 최고급 트림인 H/DLX(4480~4520만원)을 제외하면 G4 렉스턴의 나머지 모든 트림(STD 3335~3375만원, DLX1 3590~3630만원, DLX2 3950~3990만원)을 렉스턴W 가격에 살 수 있다.

 

차체 크기도 거의 비슷하다. 길이는 렉스턴W 4755mm, G4 렉스턴 4850mm로, 불과 95mm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휠베이스 역시 렉스턴W 2835mm, G4 렉스턴 2865mm로 30mm 차이날 뿐이다.

파워트레인도 2.2리터급 LET 디젤 엔진에 벤츠 7단 자동변속기 조합으로 같다. 렉스턴W의 경우 최고출력 178마력, 최대토크 40.8kg·m를 내는데, G4 렉스턴은 차의 성격에 맞게 이를 조금 더 개량해 탑재할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G4 렉스턴은 엔트리 트림부터 다양한 사양이 기본으로 탑재되는 등 상품성이 우수하다. 새로운 실내외 디자인과 사양이 탑재된 G4 렉스턴을 놔두고 렉스턴W를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쌍용차 관계자는 "새로운 세그먼트를 개척하는 만큼 G4 렉스턴의 경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면서 "렉스턴W는 시장 상황에 따라 판매 추이를 살핀 후 자연스럽게 단종시킬 수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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