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공산품의 원산지 논쟁은 무의미하다. 당신이 사용하고 있는 아이폰는 전부 중국에서 생산된다. 나이키 운동화는 말할 것도 없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도 당연히 독일에서 생산되지 않는 모델이 많다. 그렇다고 이를 두고 분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슈퍼카라면 얘기가 다르다. 슈퍼카는 단순한 공산품이 아닌 예술품에 가깝다. 그야말로 장인정신이 깃든 명품이다. 아무리 가격이 저렴해진다고 한들, 동남아의 허름한 공장에서 생산되는 페라리는 상상하기도 싫다.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는 당연히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지고, 벤틀리와 롤스로이스는 오직 영국에서만 생산돼야 가치있는 법이다. 

덕분에 브랜드를 대표하는 위대한 차는 으레 그들의 본거지에서 각별한 관심 속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들의 세계에도 OEM(주문자위탁생산)은 있다.

# 포드 GT…캐나다에서 만들어지는 미국의 자존심

 

포드 GT는 페라리도 때려잡았던 포드의 전설적인 레이스카 ‘GT40’을 기념하기 위해 탄생한 미드십 스포츠카다. 미국, 미국의 모터스포츠, 포드 등 수많은 상징을 등에 업은 GT는 미국 미시간 윅솜 공장에서 생산됐다. 하지만 근 10년만에 부활한 2세대 GT는 미국이 아닌 캐나다에서 생산된다. 그것도 포드가 아닌 캐나다의 부품 업체 ‘멀티매틱(Multimatic)’이 GT를 만든다. 

 

그런데, 실망할 필요는 없다. 멀티매틱은 단순한 부품 업체가 아니다. 레이스카를 직접 만들기도 하고, 여러 자동차 브랜드와 함께 슈퍼카를 만들어 온 회사다. 한국의 슈퍼카로 불리는 ‘드 마크로스 에피크 GT1’, 애스톤마틴 원-77, 쉐보레 카마로 Z/28 등의 개발과 생산을 주도했다. 또 F1 레이스카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는 아주 유능한 회사다.

# 애스톤마틴 라피드…영국 대표 슈퍼카, 오스트리아서 위탁 생산

영국 게이든에 위치한 워릭셔(Warwickshire)에는 애스톤마틴의 본사와 공장이 있다. 브랜드 특성상 생산대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해외에 별도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애스톤마틴의 라인업이 점차 다양해지고 판매 성장도 뚜렷해지면서 위탁업체가 필요하게 됐다.

 

애스톤마틴이 선택한 업체는 오스트리아의 ‘마그나 슈타이어(Magna Steyr)’. 마그나 슈타이어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애스톤마틴의 4도어 GT ‘라피드’를 위탁생산했다. 그리고 2012년 애스톤마틴 영국 공장의 효율성과 유연성이 크게 높아지면서 생산지를 영국으로 옮기게 됐다.

 

그런데 의외로 마그나 슈타이어가 생산하던 라피드를 애타게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많은 프리미엄 브랜드가 줄을 설 정도로 그들의 생산 능력은 뛰어나기 때문이다.

# 혼다 NSX…미국으로 건너간 일본의 슈퍼카

 

전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혼다의 슈퍼카 NSX는 많은 서양인들에게 일본, 혼다에 대한 환상과 동경을 갖게 했다.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 치밀함, 집요함 등에 많은 이들이 매료됐고, NSX는 그들을 충분히 만족시킬 성능을 갖고 있었다. 1세대 NSX는 일본 토치기, 스즈카 등에서만 생산됐고 혼다는 ‘메이드 인 재팬’을 내세웠다.

 

10년만에 부활한 NSX는 애석하게도 미국 오하이오 공장에서만 만들어진다. 혼다 특유의 정교함을 원하던 소비자들에겐 썩 달갑지 않은 얘기다. 그래도 혼다는 기존 생산라인이 아닌, 스포츠카 제작을 위한 ‘퍼포먼스 매뉴팩츄얼 센터(PMC)’를 새롭게 세웠고, 전문 생산 직원, 첨단 로봇 등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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