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911 하고 같은데 문이 네개 달렸어!” 지난달 15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한 선배가 마치 황소를 보고 온 개구리 마냥 기겁을 하며 말했다. 파나메라를 잘못 보신거겠지 했더니 아니라며 손사레를 쳤다. “헤드룸이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911 루프 라인이야 너무 멋있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보다 하루 앞서 열린 폭스바겐그룹나이트 현장. 많은 기자들이 깜짝 놀랐다. 포르쉐의 신형 자동차가 소리소문도 없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비록 아직은 콘셉트카였지만 행사장 무대까지 꽤 빠른 속도로 과감하게 달려 올랐다. 파워트레인이나 서스펜션, 조향장치 등 많은 부분이 이미 개발 완료 됐다는 뜻이었다. 

 

마티아스뮐러, 당시 포르쉐 사장이 이 차를 선보였다. 마티아스뮐러는 작년 2월 취임 했으니 홈그라운드 대규모 무대엔 처음 올라선 신출내기 CEO였다. 취임시기가 비슷했던 하랄드크루거 BMW 사장은 오전 프리젠테이션 도중 뒤로 넘어져 버리는 헤프닝이 있었는데, 그와 달리 꽤 진중하게 행사를 치뤘다. 

알다시피 보름 남짓 후 그는 폭스바겐 디젤 사태로 인해 공백상태가 된 폭스바겐 그룹의 CEO가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이 자리 앉은 누구도, 꿈에도 몰랐다. 

 

# 파윤(Pajun), 포르쉐의 새 식구 될까

당시 마티아스뮐러는 “미션-E를 디자인하면서 포르쉐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보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했다”고 밝혔다.

그룹의 회장이 된 지금 그는 디젤 중심 친환경 정책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압박과 차세대 친환경 전략 등을 고민해야 한다. 이로 인해 그가 처음 론칭한 미션-E는 어께가 매우 무거운 차가 됐다. 

포르쉐 파나메라보다 작은 파윤(파나메라 주니어를 줄여 쓴 Pajun을 독일식으로 읽은 것, 미국선 '파준'이라고도 한다)이 서서히 공개될 예정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런식으로 등장할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세계의 기자들이 노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꽁꽁 감춰놓고 있었는지 놀라울 정도다. 

 

실제로 보니 예상보다 작았고 기대보다 더 멋졌다. 파나메라의 뚱뚱한 라인을 그대로 축소할까 우려했는데, 결코 그렇지 않았다. 루프라인은 네명이 타는 자동차라고 믿어지지 않을만큼 섹시하고 날렵했다. 

전동 파워트레인을 적용하면서 뒷좌석 하단에 있어야 할 배기파이프나 연료통, 구동축 등을 모두 없앤 덕분이다. 이로인해 뒷좌석 시트 포지션도 운전석과 마찬가지로 낮출 수 있어 4명이 모두 바닥에 붙은 양 달릴 수 있게 됐다. 

 

이 차는 카본과 알루미늄합금 차체로 구성돼 있다. 전후륜 축에 전기모터를 하나씩 장착해 4륜 구동을 구현한 100% 전기차다. 콘셉트상으론 600마력을 내고 있어서 포르쉐 911 터보S보다 강력하다. 시속 100km까지 불과 3.5초에 도달한다고 한다. 

 

더구나 한번 충전으로 500km까지 주행할 수 있고 불과 15분만에 80%를 충전할 수 있다고 마티아스뮐러 CEO는 주장했다. 포르쉐 답게 무려 800볼트 전기로 화끈하게 충전 해버린단다.

이게 모두 사실이라면 보통 혁신이 아니다. 테슬라가 벌벌 떨만한 상대다. 60년전부터 진정한 스포츠카만 줄곧 만들던 포르쉐가 칼을 갈고 덤비는건 경쟁 전기 스포츠카 제조사들에겐 최악의 악몽이다. 

뮐러 CEO는 심지어 BMW의 i3나 i8에 대해선 별다른 평가조차 내리지 않았다. 뮐러 CEO는 “우리는 테슬라를 높게 평가한다”면서 “시장에 나온 전기차 가운데 진지하게 지켜봐야 할 '유일한' 브랜드가 바로 테슬라”라고 평했다.

 

이 차가 양산될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연말까지 결정한다고 하는데, 만약 양산 계획이 확정되고 일반적인 생산 일정을 따르면 2019년부터 도로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인들에게 호감받는 포르쉐 브랜드가 친환경 전기차를 내놓는건 폭스바겐그룹 분위기 전환용으로도 아주 바람직한 일이기 때문에 조만간 이 차의 양산 계획이나 조기 생산 계획 등 다양한 기사거리가 나올걸로 보인다. 

# 모두 터보엔진을 장착한 포르쉐 911

포르쉐는 페이스리프트를 하면서 911의 모든 엔진에 바이터보차저를 장착했다. 포르쉐 터보만 누리던 독특한 기술을 모든 포르쉐가 나눠 갖는다는 의미도 되지만, 포르쉐 팬들은 이게 과연 괜찮은걸까 반신반의한다. 터보차들은 다루기 까다롭고, 사운드가 약해진다는 단점이 있어서다. 

본래 포르쉐 911 터보는 특이한 차다. 일반적인 터보엔진은 압력을 높이는데 집중하곤 하는데, 포르쉐 엔지니어들은 최근(996 이후) 포르쉐 911 터보의 압력을 낮추는데 집중해왔다. 지나친 터보압은 토크 그래프를 너무 가파르게 만들기 때문에 차를 다루기 힘들어지고, 위험해진다는게 그들의 주장이다. 

포르쉐의 신형 6기통 터보엔진도 같은 이유에서 그리 높은 터보압을 쓰지 않는다. 현장에서 만난 포르쉐 엔진 개발 엔지니어는 "토크가 증가하는 각도가 가파르지 않고, 사운드도 충분하고, 최대 엔진 회전수도 같아서 자연흡기와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라더니 "반면 성능은 뛰어나서 자연흡기와 쉽게 구분할 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에이 그래도 터보는 터보 아닌가, 정말 자연흡기와 완전히 똑같은가라고 짓궂게 캐물으니 일단 시승을 해보면 그런 얘기를 못할거라 한다. 자신감이 흘러 넘쳐 보였다. 

 

포르쉐는 참으로 복받았다. 마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SUV를 누구보다 먼저 내놨고, 전기 스포츠카, 다운사이징 엔진을 시기 적절하게 시장에 내놨다. 모든걸 미리 예습 해놓은 얄미운 모범생 같다. 선두에서 폭스바겐 그룹을 이끄는 기함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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