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볼보 트럭 세계 연비왕 대회(World Fuel Watch) 행사장. 세계에서 연비 운전을 가장 잘하는 트럭 운전사를 뽑는 자리다. 세계 최고의 영예를 얻겠다는 자존심 싸움은 둘째로 하더라도 1등에게는 호주 오클랜드 왕복항공권과 1200만원 가량의 부상이 주어지니 경쟁이 만만치 않다.

가뜩이나 불꽃이 튀는데 주최측은 이 행사를 취재온 기자들까지 연비 운전 대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손사레를 치는데도 꼭 한번은 이 트럭을 몰아봐야 한다고 등을 떠민다. 하긴 나도 승용차에선 연비왕 대회 우승을 몇번이나 차지한 적이 있는 실력이긴 하니 용기를 내본다. 

▲ 기자가 볼보 FH750 트레일러 트럭의 조수석에 오르려 하고 있다. 이 차에는 20톤 목재가 3개, 총 60톤이 실려있었다. 

차 앞에 서긴 했지만, 휴우. 승용차를 운전한다는 것과 트럭을 운전하다는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올려다보는데만도 목이 뻣뻣해진다. 운전석이 까마득하게 느껴지고 사다리 같은 계단을 올라야 한단다. 왜 내가 또 이걸 한다고 했을까. 

지금 탄 트럭은 볼보에서도 가장 큰 FH다. 이론적으로 짐은 70톤까지 실을 수 있고 120톤 이상 견인할 수 있는 차다. 엔진이 강한 모델은 출력이 750마력에 토크가 286kg-m에 달한다. 공회전(900rpm)때 토크가 그렇다는 얘기고, 1050rpm에선 366kg-m에 달한다. 배기량은 1만6000cc.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700마력 67.3kg-m)는 애들 장난감처럼 느껴질 정도다. 

▲ 볼보 트럭과 슈퍼카의 출력 비교

이번에 대회에 나온 차는 이보다 조금은 대중적인 차로, 540마력짜리 모델이다. 두어 단계 낮은 출력인데도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페라리 캘리포니아의 마력과 비슷하고 토크는 훨씬 높다. 어떤 면에서 보나 괴물 같은 트럭임에 틀림없다. 대형 면허증도 없는 내가 감히 이런 차를 몰아도 되는걸까. 

승용차는 대부분 차만 신경쓰면 되고 짐이야 어찌되든 크게 고려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트럭은 상황이 뒤바뀐다.  이 차 무게는 5톤 정도인데 기다란 트레일러에 실린 짐이 25톤이다. 이번 대회는 원래 40톤을 싣고 치르지만 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라서 봐준거란다. 그럼에도 어지간한 승용차의 20배 가까운 무게다. 과연 이렇게 어마어마한걸 끌고 갈 수 있을까. 내심 떨리는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 차를 몰아보면 의외성에 놀란다

실내에 들어오니 좀 의외다. 공간이 넓을 뿐, 트럭을 탄다는 부담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승용차 같은 실내 디자인에 반신반의하게 되는데, 시동을 걸어보면 더 안심이 된다. 비슷한 출력의 페라리나 포르쉐를 탈때는 우렁찬 시동소리에서부터 고출력을 느낄 수 있어 불안감이 더해지는데, 이 차는 괴물같은 심장을 얹고도 그저 얌전한 쪽이다.

▲ 볼보 FH 트럭의 실내.

그도 그럴것이 볼보의 디자인 스튜디오의 치프디자이너인 리카드오렐(Rikard Orell)은 트럭을 설계하면서 무엇보다 부담감을 주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트럭이 도심 한가운데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위협이 아니라 주변과 어울어지도록 편안하게 디자인했단다. 볼보는 편안함과 안전이라는 철학을 지향점으로 모든 것을 만드는만큼 디자인도 그런 부분을 주안점으로 삼았다는게 그들의 설명이다. 손밸듯 날카로운 디자인이 난무하는 승용 디자인도 여기서 배울점이 있겠다. 

가만 보니 핸들이며 페달이며 변속레버며, 승용차와 다를바가 없다. 자동변속기인 i-shift를 A에 놓고 그저 가속페달만 지긋이 밟으니 차가 출발한다. 계기반을 보니 출발할때 기어는 이미 3단에 들어가 있다. 무려 12단 자동변속기인데 스스로 3단에서 6단으로, 8단으로 마음대로 바뀐다.

▲ 코스 중간에는 짧은 오프로드도 있었다. 험로에서도 핸들엔 반발이 없고 보타를 전혀 하지 않아도 곧게 달리도록 만들어졌다.

핸들부터가 그나마 다른 트럭에 비해선 승용차와 비슷하게 구성되었지만여전히 가마솥 뚜껑만큼 커다랗게 느껴진다. 그런데  돌리는 느낌이 너무나 희한하다. 트럭인데도 승용차보다 훨씬 부드럽게 돌아가는 느낌이다. 더구나 노면이 기울어있거나 울퉁불퉁한 경우도 완전히 올곧게 달리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운전자는 보타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볼보의 다이내믹 스티어링(VDS)라는 기능인데, 운전자는 느낄 수 없지만 내부적으로는 바퀴가 쏠리는 반대 방향으로 모터가 동작해 어느쪽으로도 쏠리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 기능덕에 험로 주행은 물론 장거리 주행에도 편안하다고 한다.

브레이크는 밟았다 뗄때 마다 "슈욱 슈욱"하고 공기 들어가는 소리가 나는 점이 승용차와는 좀 다르긴 하지만 나머지는 큰 차이가 없다. 뒤에 트레일러까지 주렁주렁 매달았는데도 꽤 가뿐하다. 이렇게 쉽다면 바로 트럭운전으로 전업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 기자가 볼보트럭 트레일러를 몰고 연비 코스를 주행하고 있다.

너무 신기해서 속도를 좀 높여봤다. 커브가 계속되는 도로에서도 시속 60km를 넘어서니 옆에 앉은 스웨덴 볼보 트럭 직원이 "처음 운전한다며 이렇게 빨리 달려도 괜찮은거냐"고 묻는다. "볼보 트럭은 세계에서 제일 안전한 차니까 괜찮을거야"라고 대답해줬더니 웃었다. 

◆ 볼보는 안전이다

짐을 실은 트럭 관성은 상상을 넘는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고도 1킬로미터는 족히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감이 없으니 감속을 충분히 못했다. 정지 표지판 코앞에 도달한 속도가 거의 시속 50km. 차를 급제동 했다. 잔소리 좀 듣겠구나 싶었는데, 어 생각보다 차가 잘 선다. 차 무게까지 총 30톤이나 되는게 이렇게 한번에 선다는건 말도 안되는 기분마저 든다. 

볼보트럭 직원은 친절하기도 하지. 핸들 옆에는 와이퍼 스위치 처럼 생긴 브레이크 막대(VEB;Volvo Engine Brake+)가 있는데, 이걸 작동 시키면 자동으로 엔진브레이크와 배기브레이크를 해줘서 불필요한 브레이크 과열을 막을 수도 있다고 했다. 막대를 통해 감속되는 정도를 3단계로 정할 수 있고 여기도 '오토(A)' 모드가 있어서 브레이크 페달만 밟아도 알아서 엔진브레이크와 배기브레이크가 작동한다. 운전자는 걱정말고 그냥 핸들만 돌리고 페달만 밟으라는 얘기다.

▲ 스토라홀름(Stora Holms) 서킷 한편에 붙어있던 코스 소개.

이 서킷은 '스토라 홀름(Stora Holm)'이라는 곳으로 볼보트럭이 만들어 시험주행용으로 사용하다가 최근 신규 시험장이 생기면서 지방 정부에 단돈 1크로네(145원)에 팔았다. 지금은 지역에서 각종 안전 테스트 혹은 행사나 운전면허 심화 시험용으로도 사용된다. 이곳 운전자들은 이곳에서 순간 회피를 하는 엘크 테스트와 위급상황에서 드리프트와 유사한 미끄러짐까지 극복해야 정식 운전면허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대회용 서킷이 아니다보니 도로 가장자리에는 잔디와 흙이 있고, 군데군데 패인곳도 있어 자칫하면 굴러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트럭은 특성상 앞부분이 코너 안으로 들어왔다 해도 꼬리가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밀러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볼보 트럭의 백밀러는 사각지대가 극도로 적을 뿐 아니라 테두리를 모두 없애고 유리 면적을 늘렸다. 4개의 백밀러가 모두 전동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모든게 안전을 위해서다. 

◆ 최고의 연비 운전법...첫째, 볼보트럭을 믿으라

연비를 향상 시키기 위해선 '퓨얼컷(Fuel cut)' 기능은 물론 흔히 '프리 휠(Free wheel)'이라고 하는 기법도 잘 이용해야 한다. 

엔진브레이크를 사용할때는 엔진에 연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 '퓨얼컷' 상태가 된다. 연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상태로 차를 감속할 수 있으니 연료가 전혀 들지 않은채 차가 움직여지는 샘이다. 다만 금세 감속되니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가속페달을 밟아야 한다. 다시말해 감속해야 할 상황이 아닌데 엔진브레이크를 사용한다면 오히려 연비가 나빠진다. '연비 운전'은 어쨌거나 가속이나 브레이크 페달을 가능한 밟지 않고 멀리 가는게 관건이다. 

볼보트럭은 '에코롤(eco-roll)'이라는 기능이 내장돼 있는데, 이 기능을 켜두면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도 변속기가 중립에 들어간것과 유사하게 동작한다. 엔진 브레이크가 전혀 작동되지 않고 관성으로 최대한 먼거리를 주행하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급한 내리막 같이 감속해야 할 상황에선 안전을 이유로 엔진브레이크가 스스로 동작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물론 에코롤 기능이 동작할때는 공회전을 위한 최소한의 연료가 들어가니 곧 감속해야 할 상황인지, 관성으로 먼거리를 가야 하는 상황인지를 멀리 내다보고 미리 파악하며 전략적으로 운전해야 한다. 

▲ 볼보 FM 덤프 트럭도 전시돼 있다. 이날 오프로드 코스에서는 덤프 부문 연비대회도 치뤄졌다.

볼보트럭의 자동변속기(i-Shift)는 GPS와 연동해서 해당 지역의 노면저항이나 비탈을 기억했다가 다음번 주행에서는 이를 활용해 연비 효율이 우수하게 주행할 수 있도록 한다. 심지어 남이 주행한 내용도 인터넷을 통해 클라우드에 저장돼 있어 처음 가는 길이라도 앞서 주행한 트럭 운전사의 주행기록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 정도면 운전자 실력보다 차가 다 알아서 해주는 것만 같아서 좀 허무해지기도 한다. 

또 하나 중요한건 자동차가 원심력(횡G)을 잘 견디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볼보트럭은 대형트럭으로는 유일하게 전륜 서스펜션을 좌우 독립식으로 설계해 코너링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처음에는 코너에서 매번 감속을 했는데 점차 익숙해지니 시속 50km에서도 감속하지 않고 코너에 진입할 수 있었다. 더 빠른 속도에서도 충분히 버텨줄 것만 같았다. 믿을 수 있는 차여야 최고의 연비도 낼 수 있을 듯 했다. 

두번째 주행을 마치고 나니 함께 볼보트럭의 이안 싱클레어가 다가와 "첫번째에 비해 너무나 큰 향상이 있었다"면서 "가속페달을 한번만 밟고 나머지 코스는 거의 모두 탄력 주행을 했다"면서 놀라워했다. 사실 한국에서 이정도 연비운전은 별게 아닌데, 좀 쑥스러웠다. 

▲ 기자가 볼보 아시아 총책임으로부터 연비운전 상패를 받고 있다

결과를 말하자면 볼보트럭을 믿고 연비 주행 한 결과 세계에서 모인 15명의 기자들 중 '연비 개선'부문의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다만 기자 부문은 상패만 제공하고 별다른 부상은 제공하지 않는다고 해서 좀 아쉬웠다. 우리나라 참가자는 볼보 덤프트럭 부문에서도 우승을 차지해 호주행 항공권과 숙박권을 거머쥐었다. 우리나라는 연비왕 대회 종주국인 동시에 우승도 벌써 5년째다. 

◆ 최대한 더 안락하고 연비가 좋아야…'프리미엄 트럭'의 의미

프리미엄 트럭이라는건 일반인의 시각에서 보면 좀 이상했다. 트럭이라는건 비즈니스의 도구다 보니 그저 싼 가격에 사서  많은 거리를 운송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워서다. 그런데 볼보트럭은 경쟁모델에 비해 수천만원이 더 비싸니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좀 이상하다. 

볼보 트럭을 가진 오너들의 생각은 좀 다르다. 차 한대 연료비를 매달 700~800만원 정도 쓰는데 연비가 좋은 차로 매달 100만원 정도만 절약하면 1~2년만에 차값을 뽑게 된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볼보트럭은 실내 공간도 경쟁사에 비해 월등히 편안하고, 침대와 냉장고, 전기장판, 히터, 시동 없이 작동 가능한 에어컨, 전동식 암막커튼 등도 갖췄다. 운전자가 편히 쉬어야 작업 효율도 높아지고 안전운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라고 한다. 결국 편안한 실내가 경제적으로도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이날 만났던 볼보 트럭 운전자들 중 상당수는 차를 한대 운영하는게 아니라 여러대의 차를 갖고 있는 기업체 사장이었다. 적게는 2~3대에서 많게는 70~100대 가량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장을 포함해 누가 몰아도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만드는게 볼보 트럭의 목표다. 프리미엄 트럭이라는 것은 이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 단점
- 너무 비싸다. 곧 유로6가 도입되면 더 비싸진다. 
- 부품도 비싸다
- 대형트럭이 다 그렇지만, 너무 커서 길가에 주차할때는 가로수까지 고려해야 한다. 
장점
- '승용차 못지 않다'는게 아니라 승용차보다 훨씬 편하다. 사실 어지간한 모텔보다도 편하다.
- 운전 포지션이 높아 시야가 트인다.
- 연비 성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기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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