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페라리 이기려 만든 페라리 ‘빵밴’의 숨은 이야기
  • 독일 프랑크프루트=이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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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17 15:41
[이완 칼럼] 페라리 이기려 만든 페라리 ‘빵밴’의 숨은 이야기
  • 독일 프랑크프루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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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1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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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상하게(?) 생긴 경주용 자동차 이야기는 페라리 250 GTO로부터 시작됩니다. ‘250 GTO라면 세상에서 가장 비싸게 경매되는 그 차?’ 네. 맞습니다. 지난 8월 25일 미국 캘리포니아 몬터레이에서는 이틀에 걸쳐 RM소더비가 주최한 클래식 자동차 경매가 열렸습니다. 여기서 페라리가 만든 1962년형 250 GTO가 4840만5000 달러에 낙찰됐죠. 

경매 최고가에 낙찰된 250 GTO / 사진=페라리

우리나라 돈으로 약 540억원에 팔려 공식 경매 기준으로 가장 높은 가격이었는데요. 이전 기록 역시 약 3800만 달러에 낙찰된 페라리 250 GTO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RM소더비 측은 최대 6000만 달러까지도 기대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자동차는 어떤 매력이 있어서 이렇게 천문학적 금액에 팔려나가는 걸까요? 1962년에 공개된 이 GT 레이스를 위한 승인용 모델(GTO)은 1964년까지 단 36대만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경주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죠. 

이번에 경매된 250 GTO 모델만 하더라도 총 15회에 걸쳐 우승을 차지했으니까요. 거기다 만들어진 대수가 너무 없어도 문제, 너무 많아도 문제인데 250 GTO는 거래되기에 최적(?)의 대수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레이싱 성적, 페라리 명성, 그리고 적당한 희소성 등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었다고 봐야겠습니다.

#250 GTO의 아버지 조토 비짜리니

페라리 역사에 아주 중요한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이 250 GTO는 조토 비짜리니(Giotto Bizzarrini) 주도로 만들어졌습니다. 대학에서 엔지니어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한 그는 졸업 후 알파 로메오에 입사하게 되는데요. 1957년 엔초 페라리의 권유에 의해 페라리로 옮기게 됩니다. 

비짜리니는 자동차 설계뿐만 아니라 직접 테스트 드라이버로 활동하기도 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페라리의 전설이 된 250 GTO는 비짜리니의 이런 설계 능력과 운전 능력이 빚어낸 결과물이었던 것이죠. 자동차 하나를 개발하는 게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려운 일이지만 적어도 250 GTO의 경우 조토 비짜리니에 전적으로 의존했다는 것에 이견이 없습니다.

그런데 참 세상일이라는 게 모르는 것이, 자신이 개발을 끝낸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인 1961년 그는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궁전반란’ ‘위대한 퇴직’ 등으로 불린 사건 때문이었죠. 어떤 일이 있었기에 페라리는 이 최고의 엔지니어를 잃게 되었던 걸까요?

경매 최고가에 낙찰된 250 GTO / 사진=페라리

#엔초 집안과의 갈등

엔초 페라리는 아들 알프레도 페라리(디노라는 별명으로 불린)를 잃고 경영에서 조금 물러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인 라우라가 회사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죠. 당시 페라리는 여전히 각종 경주 대회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었지만 운영은 쉽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조토 비짜리니 같은 이들은 미드십 엔진 스포츠카를 만들어 회사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고,판매를 총괄하고 있던 지롤라모 가르디니는 회사의 조직을 개편해야 한다며 사실상 라우라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엔초와 라우라는 이런 요구를 듣지 않았고 오히려 가르디니를 해고하게 됩니다. 가르디니를 지지하던 주요 임원 몇이 다음 날 회사를 나오지 않았는데 그것이 조토 비짜리니의 페라리 5년 경력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자신이 만든 차와 경쟁해야 했던 비짜리니

페라리를 나온 주요 인물 6명은 이후 ‘AUTOMOBIL TURISMO E SPORT(이후 ATS)’라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당시 레이싱 팀을 운영하고 있었던 조반니 볼피는 이들을 지원하고 고용하게 되죠. 이 소식을 듣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엔초 페라리는 조반니 볼피가 주문한 250 GTO 2대의 판매를 승인하지 않습니다.

볼피는 당시 페라리의 핵심 고객 중 한 명이었지만 엔초는 개의치 않았죠. 문제는 조반니 볼피였습니다. 자신의 레이싱 팀을 이끌고 250 GTO로 각 종 대회에 참가할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다른 기회가 찾아옵니다. 250 GT SWB(숏휠베이스) 중고 모델 하나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리고 250 GTO를 만든 조토 비짜리니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복원된 250 GT SWB / 사진=페라리

#빵 모양의 경주용 자동차?…6개 대회에서 2번 우승

비짜리니는 중고 250 GT SWB를 경주에 적합하게 개조합니다. 그런데 이 경주용 자동차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그 희한한(?) 스타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건, 혹은 밴을 연상시키는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이를 보고 한 영국 기자가 ‘Breadvan(빵밴)’이라고 불렀고, 이 별명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생긴 것은 투박해 보였지만 공기역학에 탁월한 능력이 있던 비짜리니는 250 GTO와 경쟁이 될 수준으로 차를 바꿔놓습니다. 보기에는 그래도 후방이 각이 진 경우 와류 발생이나 항력 등으로 인한 고속 주행 안전성과 주행 성능의 불이익을 줄일 수 있습니다. 비짜리니의 일관된 공기역학 관심은 이후 자동차 회사들에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250 GT SWB Breadvan / 사진=페라리

 

이 빵밴 경주용 차는 1962년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에 처음 모습을 선보입니다. 당시 페라리 팀의 GTO 보다 빠르게 잘 달리던 ‘빵밴’은 하지만 기계적 고장으로 리타이어를 하게 되죠. 이후 5번의 다른 대회에서 2번의 GT 클래스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도 맛봅니다.

비짜리니의 이런 활약상은 엔초 페라리에 굴욕을 당한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의 귀에 당연히 들어갔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페라리를 능가하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었던 람보르기니에게 그만한 적임자는 없었고, 그에게 12기통 엔진 설계를 의뢰합니다. 실제로 비짜리니가 세운 12기통 엔진 틀은 최근까지도 람보르기니에서 이어졌습니다.

250 GT SWB Breadvan / 사진=페라리

‘빵밴’으로 불린 개조된 250 GT SWB를 페라리는 자신들 역사의 한 자락으로 직접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250 GTO와 경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까지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불편한 뒷이야기는 여전히 제외돼 있습니다.

비짜리니에 의해 만들어진 가장 유명한 페라리 250 GTO, 그리고 그 차와 대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독특한 ‘빵밴’의 이야기는 비짜리니라는 뛰어난 엔지니어 이름과 함께 페라리의 흥미로운 뒷이야기로 계속 전해질 것입니다. 참, 조토 비짜리니 씨는 아흔을 넘긴 나이이지만 지금까지 건강하게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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