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디자인 총괄 ‘이안 칼럼’과의 대화…”꿈을 그리다”
  • 김상영 기자
  • 좋아요 0
  • 승인 2016.12.05 16:57
재규어 디자인 총괄 ‘이안 칼럼’과의 대화…”꿈을 그리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규어코리아가 진행한 '제 1회 재규어 카 디자인 어워드'를 위해 재규어 디자인 총괄 디렉터 이안 칼럼(Ian Callum)이 한국을 찾았다.

▲ 재규어 카 디자인 어워드 현장.

이안 칼럼과 한 테이블에 앉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예상보다 훨씬 친절했고, 친근했다. 답변하기 곤혹스러운 질문도 아주 유쾌하게 받아 넘겼다. 흔히 말하는 ‘영국 신사’ 같았다고 할까. 그의 영국식 억양조차 굉장히 부드럽다고 느껴졌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아이’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재규어에 대해, 자동차 디자인에 대해 얘기할 땐 그의 푸른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서 자신이 그린 스케치를 들고 무작정 재규어를 찾아간 14살의 이안 칼럼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 자동차를 말할 때 그는 여전히 소년처럼 순수했고, 꿈을 꾸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현시대의 자동차는 수많은 장르의 집합체다. 포드가 모델T를 찍어내던 시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고, 재규어가 장인정신을 발휘하며 E-타입을 만들던 때와도 다르다. 많은 것을 아울러야 한다. 디자인이 단순한 겉모습만은 아닌 시대다. 여러 기준이 엄격해지고, 전기차, 자율주행차와 같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동차 디자인은 급변하고 있다. 

▲ 이안 칼럼은 매일 F-타입을 탄다고 한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안 칼럼은 디자인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유럽 같은 경우 보행자 안전 기준을 맞추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혁신을 발견할 수 있죠. 어떻게 하면 최대한 규제를 만족시키면서 디자인적 완성도를 추구할지 노력하는게 디자이너의 임무입니다.”

참고로 이안 칼럼은 자신의 스튜디오에 복원한 E-타입을 세워놓고, 보행자 안전 규정을 어떻게 맞출 수 있는지에 대한 스터디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 재규어 2014년 복원한 ‘뉴 라이트웨이트 E-타입(New Lightweight E-Type)'. 오리지널 모델과 소재가 조금 다르다. 알루미늄이 대폭 적용됐다.

E-타입 얘기가 나와서 최근 재규어가 열심인 클래식카 사업에 대해 물었다. 재규어는 2014년에 ‘뉴 라이트웨이트 E-타입(New Lightweight E-Type)를 공개하고 6대를 생산해 판매하기도 했고, 지난달 열린 ‘2016 LA 오토쇼’에서는 19554-1956년까지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에서 재규어에서 우승컵을 안긴 D-타입의 로드카 모델 XKSS를 부활시키기도 했다. 

“복원사업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지만, 이를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클래식카는 구체적인 기술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 자료를 복원하는 부서가 별도로 존재하고, 전체적인 차를 스캔해 컴퓨터로 문서화하는 작업을 거칩니다. 그후 거기에 들어가는 컬러, 소재 등을 도출하고 클래식카를 부활시키게 됩니다.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죠.”

재규어의 클래식카 복원사업은 ‘스페셜 비히클 오퍼레이션(SVO)’가 주로 담당하는데, 이들은 클래식카를 재해석하기 보단, 거의 원형 그대로 남들어 낸다. 일부 소재가 바뀌기도 하지만, 그때의 감성과 사운드, 감촉 등을 유지하기 위해 대부분을 바꾸지 않는다.

▲ 재규어 카 디자인 어워드 현장.

이안 칼럼의 손길이 더 해져 현대적인 감각이 추가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친 김에 클래식카에 대해 더 물었다. 그는 어떤 차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을까.

“전 1960년대 이탈리아 차를 좋아합니다. 특히 1961년식 페라리 250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안은 큰 고민없이 얘기했다. 의외였다. E-타입을 제외해달란 꼬리가 붙었지만 페라리가 나올 줄이야. 이안은 “E-타입이 역시 더 아름답고, 심미적인 가치가 높지만, 250은 자신감과 순수함이 강하게 느껴집니다”라고 말했다.

▲ 페라리 250 GTO. 누구나 한번쯤은 페라리와 사랑에 빠지는 것 같다.

분위기가 조금 편안해지자 조금 난처한 질문이 쏟아졌다. 그런데 오히려 이안은 이런 상황을 매우 즐겁게 받아들였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이안 칼럼을 크리스 뱅글, 피터 슈라이어 등과 함께 ‘세계 3대 디자이너’로 치징하는데 이를 알고 있는지, 이것에 대한 견해는 어떤지,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는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는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이안은 통역사가 질문을 전달할 때부터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이안은 “정말인가요? 몰랐습니다. 어쨌든 굉장히 감동 받았습니다. 참, 그리고 모레이 칼럼(Moray Callum)도 훌륭한 디자이너입니다”라고 말했다. 참고로 모레이 칼럼은 이안 칼럼의 동생이며, 현재 포드의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다. 

▲ 이안 칼럼이 재규어 카 디자인 어워드에 참가한 학생의 작품을 평가하고 있다.

가정적인 이안은 “굳이 3대 디자이너를 꼽자면, 60년대 GM의 차를 디자인했던 빌 미첼(Bill Mitchell)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그는 정말 천재적인 디자이너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디자인한 차를 보면 특별한 디자인 요소가 많고, 굉장히 우아한 부분도 많습니다. 또 제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디자이너로는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가 있고,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도 굉장히 좋아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현재 포르쉐 디자인을 총괄하는 마이클 마우어(Michael Mauer), 볼보의 피터 호버리(Peter Horbury) 등도 뛰어난 디자이너라고 평가했다.

딱 세명의 디자이너만을 뽑긴 어려웠던 것 같다. 시간이 많았다면 계속 얘기할 기세였다. 하지만 더 곤혹스러운 질문이 등장했고 그는 머리를 쓸어올리고, 한손으로는 입가를 매만졌다. 

“자신이 디자인했던 차 중에서 가장 최악의 디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안은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다른 질문과 다르게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모든 디자인마다 각 디자인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딱히 후회하는 디자인은 없습니다. 다만, 애정이 덜 가는 차는 있습니다. 굳이 꼽자면 로버 75 왜건입니다. 실용성이 강조되다 보니, 흥미롭진 않았습니다. 그냥 괜찮은 수준이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마 위스키가 한잔 들어갔다면, ‘괜찮다’는 표현이 더 격해졌을 것 같았다.

▲ 연식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로버 75 왜건은 일단 이렇게 생겼다.

이안은 어릴적 2015년 쯤이면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닐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 다양한 발상을 집어넣어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가 ‘미래에는 이런 차가 나올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렸던 그림은 I-페이스 콘셉트와 가장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I-페이스에 대한 애정은 남다릅니다. 제가 꿈꾸던 자동차입니다. 더 미래지향적이고, 더 자유로운 자동차 디자인의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인 전기차 플랫폼 위에 다양한 디자인과 패키지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전기차가 등장하면서 많은 디자인 변화가 생길 것이고, 이런 트렌드는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칠 것 입니다”라고 말했다. 

▲ 이안 칼럼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I-페이스 콘셉트. 아마 양산 모델도 이와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동시에 현재와 미래의 디자인을 설명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순수해 보였다. 환갑을 넘은 나이지만 그의 열정은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보다 더 뜨겁게 느껴졌다. 굉장히 많은 질문을 준비했지만, 절반도 꺼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좋은 시간이었다.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보다 더 좋은 에너지를 받은 기분이었다. 이런 에너지가 앞으로도 계속 재규어에서 느껴질 수 있길 바라며, 이안 칼럼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 이안 칼럼이 14살때 그렸던 스케치. 난 14살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