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서킷에서 만난 GS F…렉서스의 냉정과 열정 사이
  • 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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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7.08 08:25
[시승기] 서킷에서 만난 GS F…렉서스의 냉정과 열정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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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음과 함께 GS F는 맹렬하게 속도를 높였다. 순식간에 아득하게 보이던 앞차의 꽁무늬를 물었다. GS F는 속도를 줄일때도 격렬하게 반응했다. 스스로 기어를 낮추며 재가속이 가장 원활한 지점으로 계기바늘을 옮겼고, 엔진회전수가 치솟을때 발생하는 날카로운 사운드는 헬멧을 뚫고 들어왔다. 

GS F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렉서스와는 많이 달랐다. 속도에 대한 갈증과 열망의 산물같았다. V8 자연흡기 엔진은 쉴새없이 쿵쾅거렸지만, 내 심장은 이상하게도 엔진에 맞춰 뛰지 않았다. GS F는 열정이 넘쳤지만 서킷을 도는 내내 냉정했고, 차가웠다. 

# 렉서스의 변화에 앞장선 GS

렉서스는 독일 ‘빅3’를 따라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가 가장 파격적인 브랜드다. 렉서스는 ‘조용한 차’란 이미지가 고착되는 것을 경계했다. 이런 위기 의식 속에서 비교적 젊은 엔지니어들과 디자이너들이 의기투합해 만든게 4세대 GS다.

 

그리고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만난 모델은 4세대 GS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 이달 초 부산모터쇼를 통해 우리나라에 최초로 공개됐다. 새로운 세대의 렉서스가 추구하는 바가 더 또렷하게 담겼다. 

스핀들 그릴은 윤곽이 더 선명해졌고, 트리플 빔 LED 헤드램프와 LED 주간주행등으로 구성된 눈매는 매섭게 정면을 노려봤다. 또 미간엔 굵은 주름이 잡혔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온순하기 그지없던 렉서스가 독기를 가득 품었다. 4세대 GS를 디자인한 이나토미 카츠히코(Inatomi Katsuhiko) 수석 디자이너의 말처럼, GS는 보는 이를 움찔하게 만드는 인상을 갖고 있었다. 

 

겉은 아주 날카롭지만 속은 무척 단아했다. 렉서스가 추구하는 편안함이나 안락함 등은 여전했고, 특유의 장인정신까지 엿볼 수 있었다. 특히 페이스리프트지만 실내의 세부적인 디자인과 소재가 대대적으로 변경됐다. 여전히 사용하기 쉽고 간결하며, 각 파트가 맞닿은 부분은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꽉 짜였다.

 

페이스리프트 모델이지만 차체를 보강했단 점도 고무적이었다. 전체적인 강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스팟 용접과 레이저 및 레이저 스크류 용접을 대폭 늘렸고, 차량용 접착제의 사용도 22.5m 확대했다. 또 서스펜션도 개선해 승차감과 주행 성능을 높였다. 

 

그래도 아직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렉서스라 요즘 같은 원가절감 시대에서도 페이스리프트 모델에 꽤 많은 투자를 했다. 새로운 엔진도 넣었다. NX와 IS를 통해 선보인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이 장착된 GS200t와 BMW M, 메르세데스-AMG 등과 경쟁할 GS F가 추가됐다. 

이 루키들은 서킷에서 GS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줬고, GS에게 더 다채로운 이미지를 부여했다. 

# GS200t “예상밖의 밸런스”

몇년새 렉서스는 많은 것이 변했고, 이젠 확실하게 방향을 정했다. 처음 4세대 GS를 탈때만 해도, 정교한 움직임이 어색했는데 이젠 GS에게 당연히 기대하는 것이 됐다.

GS200t는 GS250에 비해 한결 경쾌해졌다. 비록 서킷이란 공간이 터보 차저의 굼뜸을 느끼기 힘들게 ‘풀악셀’을 강요하긴 했지만, GS200t는 자연흡기 엔진이 장착된 GS250처럼 아주 일정하게 반응했다. 출발과 동시에 빠르게 뒷바퀴를 돌렸고, 코너를 빠져나올땐 35.7kg.m의 최대토크를 아낌없이 쓸 수 있었다. 

 

용인 스피드웨이는 총 16개의 코너로 구성됐다. 급격하게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오르막을 오르고 곧바로 내리막에서 오른쪽으로 꺾이는 코너, 몇개의 헤어핀을 제외하면 속도를 낼 수 있는 곳이 많다. 특히 고속코너가 많아 차를 벼랑 끝으로 몰아부칠 수 있다.

GS200t는 열심히 페이스카로 사용된 RC200t를 쫓았다. 바퀴를 거듭할수록 인스트럭터는 코너의 한계 속도를 높였다. 페이스카의 인스트럭터는 시속 90km를 유지하며 코너를 돌자고 했다. 하지만 이미 그 전부터 GS200t는 그보다 빠른 속도로 코너를 달리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앞바퀴는 의도한대로 정확하게 방향을 틀었다. 빠른 속도에서도 코너 위에 눈으로 그려넣은 레코드라인을 벗어나지 않았다. 언더스티어가 크게 발생하지 않았다. GS200t는 한쪽으로 쏠리는 하중을 무리없이 견뎠다. 타이어도 울부짖지 않았다.

차체와 섀시는 2.0리터 터보 엔진의 성능보다 훨씬 한계가 높았다. 특히 무더운 날씨 속에서 연거푸 서킷을 돌았지만 브레이크 시스템은 마지막 바퀴까지 일관적인 성능을 유지했다. 헤어핀을 앞에 두고, 최고속도에서 풀브레이킹을 하는 과정도 매끈했다. 불안하게 흔들리지 않았다.

서킷의 특징과 차의 한계를 면밀히 조사한 인스트럭터들이 계획한 노선을 따라갔기 때문도 있지만, GS200t는 서킷에서 한없이 냉정했다. 치밀한 계산으로 완성된 기계같았다. 

 

다만 최고속도를 낼 수 있는 직선구간에서는 인간적인 면모도 조금 느낄 수 있었다. 시속 150km를 넘어서면 엔진은 서서히 힘이 빠졌다. 신기하게 한계선을 넘어서면 눈에 띄게 가속이 답답해졌고, 풍부했던 토크도 느껴지지 않았다. 호쾌함이 떨어지니 엔진 사운드가 유독 듣기 거북해 졌다. 서킷을 잘 달릴 수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재밌게 달리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다. 서둘러 GS F를 타고 싶었다. 

 

# GS F “흥분을 고조시키는 요소는 무엇인가”

GS F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한층 인상이 험상궂었다. 더 거대해진 스핀들 그릴과 GS F 전용 19인치 단조 알루미늄휠이 분위기를 확 바꿔놨다. 카본 파이버로 제작된 리어 스포일러와 F 모델만의 특징인 세로형 쿼드 머플러도 색다른 이미지를 연출했다. 

 

이런 디자인 요소가 차를 타기 전부터 흥분을 고조시켰다. 문을 열었을땐 거대한 버킷 시트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시트의 주름은 마치 등근육의 형상을 보는 것 같았다. 몸은 시트에 쏙 파묻혔다. 시트포지션이 다소 높긴 했지만 버킷 시트는 몸을 단단히 고정시켰고, 팔꿈치가 걸리적거리지도 않았다.

 

가장 고성능 모델이면서 가장 고급스러운 모델이기 때문에 실내 소재도 사뭇 달랐다. 고성능 모델과 잘 어울리는 카본 파이버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GS200t에 비해 더 많은 부분이 가죽으로 감싸졌다. 디지털 계기반은 전투적인 GS F의 성격을 단번에 보여줬다. 엔진회전계가 중앙에 위치했고, 주행 모드 변경에 따라 색상과 세부적인 디자인은 더 또렷하게 변했다.

 

시인성이 무척 뛰어난 계기반이었지만 막상 서킷을 달릴 땐, 그것을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GS F는 큰소리로 자신의 상태를 알렸다. 

엄청나게 날카로운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앞 스피커는 엔진 소리를, 뒷 스피커는 배기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마치 헤드폰을 쓰고 레이싱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아주 잘 만들어진 소리였지만, 이질감이 들었다. 서킷을 달리는 동안 엔진과 머플러가 내뱉는 진짜 소리가 듣고 싶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순수하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고속구간이 많은 용인 스피드웨이마저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GS F는 빨랐다. 오른발에 조금만 힘을 줘도 금새 앞차를 따라잡았다. 자연흡기 엔진의 감각은 확실히 매력적이었다. 독일 브랜드에서 이제 쉽게 만날 수 없기 때문에 그 장점이 더 부각될 것 같았다. 변속기도 자연흡기 엔진의 즉각적인 반응에 동조했다. 망설임없이 변속이 이뤄졌고, 킥다운도 활발했다. 다소 과도한 느낌이 들 정도로 변속 시점이 빨랐다. 속도가 조금만 낮아져도 스스로 기어를 낮추고 계기바늘을 레드존 근처로 옮겼다. 재가속이 용이하긴 했지만, 잦은 변속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도 분명 있었다.

 

파워트레인의 조합은 훌륭했지만, 큰 엔진 탓에 앞머리가 조금 둔했다. 경쾌한 느낌은 거의 없었다. 어떤 순간에서도 속도를 빠르게 올릴 순 있었지만, 코너에서는 전자 장비가 슬며시 개입하기도 했다. GS200t의 섀시가 파워트레인을 압도했다면, GS F는 파워트레인이 섀시를 압도하고 있었다. 이를 전자 장비와 토크 벡터링을 통해 어느 정도 보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빠르고 운전도 쉬웠지만 드라이버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았다. 인공적인 사운드와 전자장비의 엄격한 통제 때문에 자유도는 급격히 낮았다. ‘드라이버를 만든다’는 도요타 86과 대조적이었다. 

 

# 렉서스의 두근거림

‘두근거린다’의 일본어 ‘와쿠도키’. 렉서스가 최근 가장 강조하고 있는 단어다. 렉서스는 이를 모토로 체질 변화를 진행하고 있다. 디자인은 어느 정도 과도기를 벗어나 렉서스의 정체성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엔지니어링은 여전히 기존 렉서스의 성격이 많이 남았다. 

새로운 플랫폼이나 신형 엔진에 대한 필요성도 느껴지고,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에 준하는 신소재 사용이나 경량화도 체질 변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 같다. 또 GS F와 같은 원초적인 고성능 모델은 여전히 뿌리 깊은 보수적인 성격을 더 덜어내야 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렉서스가 이미 우수한 제조 시설과 전문 인력을 보유하고 있고, 렉서스가 애초부터 갖고 있던 정숙성, 실내 소재나 마감 등도 더 발전시키고 있다. 지금 과도기에서 겪고 있는 소소한 성장통을 잘 극복한다면, 독일 브랜드를 가장 위협할 수 있는 브랜드로 떠오를 잠재력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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