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렉서스의 레이싱 머신 CCS-R…'신세계로의 초대'
  • 전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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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2.11 12:21
[시승기] 렉서스의 레이싱 머신 CCS-R…'신세계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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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가 지난달 18일 후지스피드웨이에서 개최한 '렉서스 퍼포먼스 모델 테스트 드라이브'에서 렉서스의 레이싱 머신 CCS-R을 시승했다.

CCS-R의 첫인상은 그다지 친절하진 않았다. 롤케이지(강성을 높이기 위해 장착한 쇠 파이프)로 둘러싸인 실내에 불편하게 몸을 구겨 넣어야 했고, 차에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불쾌한 기계음에 귀에 따가울 지경이었다. 딱딱한 레이싱 버킷시트와 몸을 꽉 조이는 6점식 벨트, 머리에 쓴 헬멧도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 렉서스 CCS-R

그러나 가속페달을 살짝 밟아보니 낮고 강하게 으르렁거리는 배기음에 온몸의 신경이 짜릿하게 곤두섰다. 배기음 자체는 얼마 전 시승했던 메르세데스-벤츠 SLS AMG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소리를 대하는 운전자로서의 마음가짐은 무척 달랐다. SLS AMG의 경우 강렬한 사운드를 즐기면서 어느 정도 여유를 느낄 수 있었던 반면, CCS-R은 당장에라도 달려나가지 않으면 차가 터질 것 같이 과격해 모든 정신을 운전에 집중해 할 것 같았다.

▲ 렉서스 CCS-R

이 차를 제대로 다룰 수 있을까란 걱정도 잠시. 첫 번째 코너를 돌자마자 CCS-R의 진가가 곧바로 느껴졌다. 스노우보드를 타고 카빙을 하듯 날렵한 선을 그리며 조금의 오차도 없이 코너를 빠져나왔다. 속도를 꽤 많이 줄였음에도 가속 능력이 매우 뛰어나 코너를 탈출한 뒤 순식간에 최고속도를 향해 거침없이 차를 몰아붙였다. 제동 성능도 워낙 우수해, 첫 바퀴를 달릴 때는 의도치 않게 너무 빨리 속도가 줄어들어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CCS-R에 믿음이 생기자 눈앞에 신세계가 펼쳐졌다. 레이싱카를 처음 타 본 탓도 있지만, 워낙 ‘달리고, 서고, 도는’ 차의 기본기가 탄탄했기 때문에 다른 차로는 할 수 없었던 극단적인 주행을 너무도 쉽게 할 수 있었다. 또, 전에 탔던 IS F, LFA와 달리 CCS-R의 핸들이 왼쪽에 있어 익숙했고, 패들시프트가 핸들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 조작도 편했다.

첫 박퀴를 돌고 차에 익숙해진 후 본격적인 주행을 시작했다. 차체가 가볍고 토크가 우수해 치고나가는 맛이 일품이었고, 아무리 빨리 달려도 예상했던 지점에서 확실하게 속도를 줄였다. 일부로 브레이크를 조금 늦게 밟고 언더스티어가 예상될 정도로 빠르게 코너를 돌아봐도 별일 아니라는 듯 운전자의 의도대로 차의 방향을 정확하게 바꿔냈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쏟아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렉서스 CCS-R의 실내

CCS-R은 렉서스의 고성능 모델인 IS F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5.0리터급 V8 엔진이 장착돼 제원상 동력 성능은 IS F와 같은 최고출력 423마력, 최대토크 51.6kg·m를 낸다. 그러나 보닛을 비롯해 프런트 휀더, 프런트 스포일러, 윙 렛, 리어 스포일러, 도어 핸들, 대시보드, 센터 콘솔 등에 모두 탄소섬유(카본파이버)를 사용해 차체 무게는 IS F보다 290kg이나 가볍다. 덕분에 1400kg에 불과한 무게로 가볍고 빠른게 움직인다.

여기에 앞뒤에 레이싱 서스펜션과 두꺼운 세미-슬릭 타이어(전륜 245/40R18, 후륜 255/40R18), 브렘보 레이싱 브레이크, 레이싱 브레이크 패드, 브레이크 쿨링 시스템, 엔진·변속기·디퍼런셜 오일 쿨러, 기계식 LSD 등이 장착돼 더욱 강력하면서도 안정적인 주행 성능을 발휘한다.

▲ 렉서스 CCS-R

마지막 코너를 빠져나온 후 맞이한 후지스피드웨이의 1475m 직선 구간. 일부러 속도를 줄인 다음 풀 가속을 시도했다. 광폭한 엔진·배기음이 심장을 때리며 회전계가 순식간에 레드존으로 치달았다. 전방의 LED 경고등에서는 어서 빨리 기어 단수를 높이라고 신호를 보냈다. 정신없이 8단까지 변속하다 보니 속도계는 어느새 시속 290km를 향하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첫 번째 코너를 맞았지만, 두 번째 바퀴를 돌 때보다 조금 더 늦은 타이밍에 브레이크를 밟아봤다. 역시나 별다른 흔들림과 미끄러짐 없이 안정적으로 속도가 줄어들었다. 이어 브레이크에 조금 여유를 남기고 빠른 속도로 과감하게 핸들을 돌려봤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차체가 완벽한 균형을 잡아낸다. 빠르던 느리던 상관 없이 어떤 코너에서도 날렵한 라인을 그려내는 능력은 발군이다.

솔직히 이런 괴물 같은 차는 처음이었다. 분명 지금까지 탔던 그 어떤 차보다도 빠르고 강력하게, 무리를 해가며 운전하고 있는데도 CCS-R는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거칠게 몰아붙여 보라는 듯 지면과 딱 달라붙은 상태로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거침없이 달렸다. 더 빨리 달리고 싶은 욕망이 불끈 솟아올랐을 뿐이었고, 천천히(?) 달리며 앞길을 막고 있는 차가 답답할 지경이었다. 잔뜩 흥분한 상태로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새 앞 차와 닿을 듯 거리가 가까워져 번번이 간격을 유지하라는 인스트럭터의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 렉서스 퍼포먼스 모델 테스트 드라이빙 행사

사실 CCS-R은 렉서스가 작년 7월 열린 '파이크스 피크 인터내셔널 힐 클라임'에 참가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레이싱 머신이다. 이 대회는 미국 로키산맥 자락에 있는 고도 4301m의 파이크스 피크 산에서 열리는 것으로, 총 156개의 코너로 이뤄진 약 20km의 산길을 가장 빠르게 달리는 차와 드라이버가 우승을 차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경사가 높은 산길 오르막 구간과 험한 각도로 휘어진 다양한 코너를 주행하는 대회기 때문에 CCS-R에도 당연히 단단한 하체와 확실한 제동력, 날렵한 핸들링과 뛰어난 가속력 등이 종합적으로 잘 갖춰졌다. 

렉서스 역시 CCS-R에 꽤 만족한 듯했다. 렉서스는 '파이크스 피크 인터내셔널 힐 클라임' 대회 참가 이후에도 다양한 레이스 대회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또, 생산을 늘려 소량이지만 레이서들에게도 CCS-R을 판매하고 있다. CCS-R 제품개발 담당인 유키히코 야구치는 "CCS-R은 일본에서 2000만엔(약 2억2000만원)의 가격에 판매되며, 지금까지 17대가 팔렸다"면서 "100% 레이싱카로, 일반 도로 주행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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