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재규어 XF 20d, 확고한 정체성이 만든 '섹시함'
  • 여수=김상영 기자
  • 좋아요 0
  • 승인 2016.04.04 13:08
[시승기] 재규어 XF 20d, 확고한 정체성이 만든 '섹시함'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세대 XF는 많은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엔트리 모델로 재규어의 전체적인 판매를 끌어올리기도 해야 했고, 재규어 특유의 고급스러움이나 스포티함까지 표현해야 했다. 어깨가 무거웠다. 또 공개되자마자 재규어는 포드에서 인도 타타그룹으로 인수되는 격변의 시기까지 보냈다.

독특한 디자인과 특유의 고급스러움은 독일차에 싫증난 소비자들에게 좋은 탈출구를 제공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크게 내세울 것이 없었고, 특히 실내 거주성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형편없었다. 결국 XF는 독일차에 밀려 주류가 되진 못했다.

하지만 타타그룹의 전폭적인 지원과 XE 개발을 통해 XF는 많은 짐을 덜게 됐다. 부담이 적어지니 몸은 가벼워졌고, 시야는 넓어졌다. 단점으로 지목받던 기술적인 부분에서 괄목할 발전을 거뒀고, 디자인은 더욱 세련돼졌다.

8년만에 풀체인지된 2세대 XF를 전라남도 여수에서 시승했다. 고속도로와 산길을 오르내리며, 꼬박 반나절을 달렸다. 총 주행거리는 약 330km에 달했다.

# 매력적인 첫인상

김포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금세 남해바다 위를 날았다. 여객기 창문으로 보이는 여수는 이미 봄꽃으로 물들어 있었다. 여수는 외투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들은 얘기지만 갑자기 기온이 올라가면서 하루 만에 벚꽃이 활짝 피었단다.

개나리와 매화, 벚꽃이 가득한 길을 지나 시승 행사가 열리는 여수 엠블 호텔에 도착했다. 시승을 위해 준비된 XF가 도열해있었고, 호텔 입구에는 300마력의 디젤 엔진이 장착된 XF 30d 포트폴리오가 전시돼 있었다.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인데 낯설지 않았다. XE와 XJ의 디자인이 절묘하게 들어있었다. 꽤 많은 부분이 다듬어졌고, 재규어의 최신 디자인까지 반영된 모습이었다. 또 자세히 보면 XF만의 특징도 많았고 이전 세대 모델과 비교하면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한눈에 봐도 신형 XF는 훨씬 커졌다. 차체는 길어졌고, 휠베이스가 늘면서 측면 비율도 더 매력적으로 변했다. 오버행은 짧아진 점은 한층 역동적인 성격을 부여했고, 루프 라인은 트렁크까지 매끈하게 이어지면서 XF를 누구보다 섹시하게 만들었다. 이런 과감한 레이아웃은 독일차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것이었다.

# XF의 기술적 특징

짧은 만남을 뒤로 한채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우니, XF의 상품설명이 이어졌다. 신형 XF의 구조 및 기술적인 특징은 크게 몇가지로 꼽을 수 있었다.

알루미늄 인텐시브 모노코크 구조는 재규어의 큰 특징 중 하나다. 차체 알루미늄 비율은 75%에 달한다. 동급 최고 수준이다. 재규어와 오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알루미늄 제조 업체 ‘노벨리스(Novelis)’에게 공급받은 알루미늄을 통해 차체 중량은 최대 190kg 가벼워졌고, 차체 강성은 28% 이상 향상됐다.

 

보닛과 프론트 휀더 등의 외부 패널도 알루미늄으로 제작됐고, 고장력 강판의 비율도 크게 늘었다. 또 차체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크로스 빔은 마그네슘 알루미늄 합금이 사용됐고, 차체 뒷부분엔 초고장력 ‘보론스틸’이 적용됐다.

재규어의 특징 중 하나인 서스펜션 구조도 대부분 알루미늄으로 제작됐다. 후륜 인테그럴 링크는 재규어의 특징 중 하나다. 컨트롤 암과 토우 링크를 연결하는 작은 인테그럴 링크가 상하, 좌우의 충격을 더 효과적으로 흡수하고, 항상 바퀴를 노면에 붙어있게 한다. 전륜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은 F-타입의 기술이 적용됐다.

 

직렬 4기통 모듈러 엔진인 ‘인제니움’도 XF의 특징이다. 하나의 엔진 구조에서 가솔린과 디젤 등을 모두 만들 수 있다. 볼보의 드라이브-E 엔진도 동일한 개념이다. 인제니움 엔진은 주요 부품은 알루미늄으로 제작됐으며, 가솔린과 디젤의 보어 및 스트로크는 모두 동일하고, 실린더의 용량도 500cc로 같다. 밸브 타이밍, 오일 펌프, 냉각수 펌프 등은 전부 컴퓨터를 통해 제어된다. 재규어는 인제니움 엔진 개발을 위해 약 700억원을 투자했다.

# 거센 바람에 맞서라

재규어의 시승행사는 언제나 스펙터클하다. 이번 XF 시승행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330km에 달하는 시승코스는 고속도로와 산길이 섞여 있었고, 총 주행시간은 4시간 40분에 달했다.

 

고급 트림인 XF 20d 포트폴리오에 먼저 올랐다. 트림에 따라 편의장비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인 고급스러운 구성 차이는 없었다. 대시보드 상단까지 천연가죽으로 감쌌고, 촘촘한 바느질로 선을 그었다. 재규어가 메르세데스-벤츠나 BMW에 비해 우위를 선점하고 있는 것이 몇가지 있는데, 고급 소재나 분위기가 그중 하나다. 

 

간결한 디자인은 세련되면서도 차분한 느낌을 줬다. 특히 새롭게 장착된 10.2인치 터치스크린은 수평구조 레이아웃과 조화를 이뤘다. 소재나 디자인은 나무랄 곳이 없었다. 

시동 버튼을 누르니 드라이브 셀렉터가 솟았고, 12.3인치 TFT LCD 디지털 인스트루먼트 패널은 화려하게 빛났다. 재규어는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클래식한 감성이 꽤 남아있었는데, 이젠 최신 장비로 수놓인 차가 된 것 같았다.

 

여수 시내를 벗어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곧바로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렸다. 여수는 지형 특성상 교각이 많았다. 다리 밑으로는 골짜기가 펼쳐져 있었고, 이로 인해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XF는 거센 바람을 아주 유연하게 지났다. XF는 재규어 중에서 가장 뛰어난 0.26Cd의 공기저항 계수를 갖고 있었다. 바람은 유려한 차체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창문을 열면, 그제야 바람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강한 바람은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동승자의 안경을 잡아채버렸다.

 

고속도로에서 빠른 속도로 앞차를 뒤쫓았다. 차의 뒷모습은 어딘가 어색했다. 좌우 뒷바퀴의 거리인 ‘윤거’가 유독 좁아 보였다. 실제로 신형 XF는 이전 세대 모델에 비해 뒷바퀴 윤거가 11mm 줄었다. 너비는 넓어졌는데 윤거가 줄었고, 낮은 트림인 ‘프레스티지’의 경우 뒷바퀴 타이어의 폭도 10mm 줄어들었다. 결코 이상적인 차체 비율은 아니었다.

 

시각적인 불안감은 있었지만 고속으로 달리는 XF는 한없이 평온하기만 했다. 디젤 엔진은 속삭이듯 목소리 냈고, 서스펜션은 사뿐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차체를 지탱했다. 순간적인 가속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회전은 부드러웠고, 힘은 꾸준했다. 평탄한 도로를 시속 80km로 달릴때 엔진회전수는 1700rpm에 머물렀다. 시속 100km에선 1900rpm, 시속 110km에선 2000rpm에 머물렀다. 에코 모드도 큰 변화는 없었다.

# 예상 밖의 움직임, 예상 밖의 엔진

동승자의 시력은 마이너스 5. 안경이 없으면 눈 뜬 장님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운전자 교대를 하지 못했다. 혼자 모든 코스를 소화해야 할 것 같았다. 두번째 코스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던 ‘오도재’가 포함된 와인딩 로드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업 힐’ 구간이었다.

 

전반적인 섀시의 기술적인 완성도나 도로 위에서의 움직임은 독일차 못지않았다. 전트림에 기본으로 장착된 토크 벡터링과 독일 보쉬에게 공급받은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은 의도한 방향으로 앞머리를 돌렸다. 뛰어난 강성의 차체는 코너의 정점에서도 부담감을 드러내지 않았고, 인테그럴 링크 서스펜션은 차체를 더욱 안정적으로 떠받혔다. 예상보다 로드 홀딩이 뛰어났고, 빠른 속도에서도 거동은 침착했다.

 

다이내믹 모드는 엔진과 변속기를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속도에 따라 다르지만 엔진회전수를 500~1000rpm 정도 높였다. 변속 시점은 최대한 뒤로 미뤄졌다. 패들시프트를 사용하며 산길을 오르는데, 약간의 아쉬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속적으로 엔진회전수가 높아지니, 풍부했던 최대토크가 갑자기 수그러들었다.

 

사실 XF를 시승하기 앞서 인제니움 엔진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가장 컸다. 인제니움 엔진은 그야말로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최신 엔진이고, 재규어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기술력이 응집된 것이다. 하지만 BMW가 십여년전 만든 2.0리터 디젤 엔진에 비해 딱히 나을게 없었다. 또 BMW와 동일한 ZF의 8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하고 있지만, 세팅의 정밀함은 BMW와 큰 차이가 있었다.

 

형편없었단 뜻은 아니다. 단지 기대가 높았을 뿐이었다. 한편으론, 현재의 2.0리터 4기통 디젤 엔진이 더 이상 눈에 띄는 발전을 하기 힘든 단계까지 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 치명적인 단점을 극복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 가솔린 모델을 시승할 수 없게 됐다. 아쉽지만 디젤 모델을 더 심층적으로 분석해보자고 자위했다. 뒷좌석에 앉아 이동하기도 했으니 분명 더 많은 것을 경험했다.

이전 세대 XF의 가장 큰 약점은 뒷좌석 공간의 거주성이었다. 차 크기에 비해 다리 공간은 심각할 정도로 좁았고, 머리 공간도 여유로운 편은 아니었다. 또 센터 터널이 높게 솟아 답답함도 컸다.

 

센터 터널이 여전히 높긴 하지만 머리와 다리 공간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여유로워졌다. 레그룸은 15mm, 무릎공간은 24mm, 헤드룸은 27mm 확대됐다. 뒷좌석을 위한 배려도 늘었다. 포트폴리오 모델의 뒷좌석엔 4존 온도 조절 시스템과 전동식 리어 선블라인드도 적용됐다.

시트는 푹신하게 몸을 받쳐줬고, 17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메리디안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은 뒷좌석에도 섬세하게 음을 전달했다. 또 인테그럴 링크 서스펜션의 움직임이 더 명확하게 느껴졌다. 도로 포장이 일정치 않은 산길에서 신경질 한번 부리지 않았다. 

 

거주성에 있어서 괄목할 발전을 거뒀지만 5시리즈나 E클래스를 압도할 수준은 아니었다. 다만 트렁크 공간은 개중 가장 넓은 것 같았다. 또 트렁크에는 유로6 배출가스 규제를 만족시키기 위한 요소수 주입구도 있었다.

# XF의 확고한 정체성

재규어는 메르세데스-벤츠나 BMW처럼 전세계 곳곳에 공장을 지어 무한정 차를 찍어내진 않는다. 여전히 적당한 공급과 이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가치를 선사하고 있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는 이제 대중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재규어는 그들만의 매력을 더욱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E클래스나 5시리즈는 ‘좋은 차’라고 할 순 있지만 XF처럼 ‘섹시한 차’란 표현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2세대로 진화하면서 XF는 많은 대중적인 요소를 갖췄다. 단점으로 지적받던 부분에 대한 보완도 이뤄졌다. 그러면서 재규어만의, XF만의 특징은 더 짙어졌다. 이젠 이처럼 자신만의 매력을 어필하는 차도 드물다. 확고한 정체성과 자신감이 없으면 시도조차 힘들다. 그래서 신형 XF는 유독 빛나고, 가치있게 느껴진다. 

* 장점

1. 매력적인 디자인. 눈에 확 띈다. 실내도 마찬가지.

2. 섀시의 완성도는 현시점에선 독일차를 뛰어넘는다. 

3. 알루미늄, 가죽 등 값비싼 소재.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 단점

1. 새로운 인제니움 엔진은 특별함이 크지 않다.

2. 17인치 타이어가 장착된 모델은 주행성능이 현저히 떨어졌다.

3. 국내 판매 모델엔 여러 안전 장비가 모두 빠져있다.

 

재규어 XF 화보 - 모터그래프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