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지금] 우리에게도 저렴한 자동차 브랜드가 필요하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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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3.21 07:35
[독일은 지금] 우리에게도 저렴한 자동차 브랜드가 필요하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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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3.21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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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불평등으로 인한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런 측면들이 강해졌는데요,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장하성 교수가 쓴 '한국 자본주의'라는 책에서는 이런 점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현재 낮은 임금을 받는 저임금자가 전체 노동자 규모의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 비중이 더 늘어나 소득 상위 그룹과의 격차가 더욱 커진다는 내용입니다.

 

자동차 시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은 높은 마진을 얻을 수 있는 고급차를 만드려고 애씁니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최근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까지 만드는 등 더욱 적극적인 모습이죠. 문제는 점유율 70%를 차지하는 현대차그룹의 이런 전략이 국내 자동차 시장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얇아진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과는 다른 시장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서민의 발'이라 말하는 경차 조차도 화려한 옵션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소형차 선택의 폭은 좁아지고, 수동변속기가 달린 차량은 구경조차 하기 어려워졌습니다. TV 화면에는 크고 멋진 차들이 늘 등장해 소비자를 유혹합니다. 먹고 사는 건 더 힘들어졌는데, 자동차 가격은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 대안이 있는 유럽 환경

제가 살고 있는 독일은 유럽에서도 잘 사는 나라지만, 여기서도 비싼 독일차를 구입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서민들에겐 남의 떡일 뿐이니 저렴한 중고차를 구입하는 것으로 고급 세단에 대한 욕구를 꾹 눌러 담아야 하죠.

 

하지만, 이곳에는 중고차 말고도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대안이 있습니다. 폭스바겐 골프가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는데요. 골프는 85마력을 내는 1만7600유로짜리 기본 모델부터 3만유로가 넘는 GTI까지 다양한 모델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2000만원도 안되는 골프부터 4000만원이 넘는 골프까지 있다는 것이죠. 

물론 서스펜션의 구조가 다르고, 엔진 성능이나 내장재 품질 등에도 차이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골프라는 차를 자신의 경제적 형편에 맞춰 구매를 할 수 있다는 건 무척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많은 자동차 브랜드들이 이와 비슷하게 가격 폭을 넓혀 소비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있습니다. 

# 유럽인들의 저렴한 발, 다치아(Dacia)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대안은 뭐니뭐니해도 다치아 같은 경제성 높은 브랜드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국내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스코다에 '저가 브랜드'라는 수식이 붙고 있는데요, 엄밀히 말하자면 스코다는 폭스바겐에 비해 가격이 싼 것이지 결코 저렴한 브랜드는 아닙니다. 진짜 저가 브랜드는 루마니아 출신의 다치아(Dacia) 입니다. 

루마니아 국영 자동차 회사였던 다치아는 1999년 르노에 인수될 때만 하더라도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저렴한 인건비와 효율적 저가 시스템 등을 통해 유럽에서 유일하게 매년 두자릿수 성장을 기록하는 회사로 자리잡았습니다. 참고로 다치아는 현 르노 회장인 카를로스 곤이 주도해 이뤄낸 것으로, 업계에서는 가장 성공적인 자동차 기업 인수합병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다치아 두스터

그렇다면 다치아는 얼마나 저렴할까요? 유럽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타지아의 소형 크로스오버 모델인 두스터(Duster)를 가지고 경쟁 모델들과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두스터의 가격은 15390유로(약 2027만원)부터 시작합니다. 경쟁 모델인 피아트 500X(2492만원)을 비롯해 스코다 예티(2970만원)와 오펠 모카(3193만원), 르노 캡처(3325만원) 등에 비해 꽤 저렴합니다. 그나마 가장 비슷한 500X도 엔진 사양을 비슷하게 맞추면 3005만원까지 오른다.

소형차(B세그먼트)인 산데로의 경우도 기본 가격이 6890유로(약 906만원)에서 시작되는 등 다른 브랜드의 경차(A세그먼트)와 비교해도 낮다. 우리의 물가 개념으로 바꿔 보면 소형차가 700만원 전후의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가격이 이렇게 낮다 보니 실내 내장재 품질이나 차량 강판의 안전성, 부족한 옵션 등에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실내 소음과 주행성능 등도 확실히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름 만족할만한 연비와 3년 무상보증 등 철저하게 경제성에 초점을 맞췄다는 장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덕분에 잔존가치도 높아 중고차 시장에서도 꽤 인기가 있습니다. 

# 우리도 이제 저가 자동차 이야기할 때

다치아는 요즘 미니밴 광고를 통해 사커맘들의 마음을 훔치려 하고 있습니다. 비싼 SUV가 아닌 1만유로 짜리 저렴한 미니밴으로도 아이들을 태우고 얼마든지 다닐 수 있다는 내용인데요. 여기에 상업용 밴까지 추가해 자영업자들의 부담도 덜어주고 있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자동차 가격 속에서 철저하게 싼 가격으로 소비자들의 요구를 맞춰주고 있는 다치아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여러 이유와 환경으로 다치아 같은 저가 브랜드가 한국 땅에서 바로 나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또 이런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는 게 기술적으로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 다치아 산데로 스텝웨이

하지만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저렴한 자동차의 등장을 무조건 이런저런 이유로 안 된다고만 할 게 아니라, 정부가 다양한 세제 정책이나 유인책을 마련해 기존의 업체들이 저렴한 모델들을 내놓을 수 있도록 한다든지 하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찾고 논의를 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몇 년 전 독일 자동차 커뮤니티에서 본 글이 떠오르는데요. 지금은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폐쇄됐지만, 만약 개성공단이 자리를 잡고 성공하게 된다면 거기에 자동차 공장이 들어서고, 저렴하고 품질 좋은 차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차의 또 다른 경쟁력이 만들어지지 않겠냐는 식의 내용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다른 나라 일에 관심이 높은 사람이구나' 정도로 넘겼습니다만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꼭 개성공단이 논의에 중심에 들어올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양극화 시대에 맞는 중저가 브랜드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높아만 가는 자동차 가격, 올려다 보기 힘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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