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캐딜락 ATS-V, 명확한 목표가 만든 '로드 레이스카'
  • 미국 LA=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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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2.24 11:00
[시승기] 캐딜락 ATS-V, 명확한 목표가 만든 '로드 레이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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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S-V의 엔진은 캘리포니아의 날씨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카본파이버로 제작된 보닛의 공기 배출구엔 아지랑이가 폈다. 햇살은 강렬했지만 바람은 찼다. 찬바람으로 ATS-V는 한숨 돌렸다. 캐딜락은 트윈터보 냉각 시스템과 관련해 특허까지 보유하고 있지만, 10시간 넘게 태평양을 건너온 무리들은 예상보다 거칠게 ATS-V를 다뤘다.

 

그러고 보니 ATS-V는 캐딜락의 고성능 V시리즈 최초로 트윈터보 차저가 장착됐다. 배기량으로 밀어붙이던 미국차는 어디로 간 것인가. 심지어 캐딜락은 가장 보수적이고, 가장 미국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브랜드다. 심지어 미국 대통령이 꼭 집어서 캐딜락을 탄다.

한마디로 캐딜락은 미국의 자존심이란 얘기다. 그런 캐딜락이 미국적인 색채를 버리고, 세계적인 성향의 차를 내놓기 시작했고 ATS-V 또한 유럽의 고성능 세단에게 바짝 다가섰다. 다행스러운 점은 무작정 독일차를 따라 했단 느낌은 들지 않는단 거다. 단지 추구하는 바가 비슷할 뿐, ATS-V는 분명 자신만의 색을 지니고 있었다.

 

# 조금의 '터보랙'도 허용하지 않았다

사실 트윈터보 차저가 장착된 것이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반팔 티셔츠와 오리털 패딩이 공존하던 말리부 해변이 오히려 더 놀라웠다. 이미 이 세그먼트에서 자연흡기 엔진은 멸종됐다. 배기량의 차이는 있지만 메르세데스-AMG C63, BMW M4 등도 트윈터보로 무장했다. 이제부턴 정면승부다.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M4의 스티어링휠을 잡고 있었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ATS-V의 운전대를 잡았다. 

 

M4는 본격적으로 터보차저가 돌기 시작하면 순간적으로 모든 힘을 뒷바퀴로 보낸다. 그 상황이 꽤나 험상궂기 때문에 흠칫 놀랄 때가 있는데, ATS-V는 몹시 치밀했다. 슈퍼 차저나 자연흡기에 익숙한 미국인들이 선호할 성격이었다. 밟는 순간부터 꾸준하게 등을 떠밀었다. 예상치 못한 토크가 불쑥 튀어나오지 않았다.

 

캐딜락은 트윈터보 차저가 낮은 엔진회전수에서도 제성능을 발휘하도록 힘썼다. 터빈은 티타늄과 알루미늄의 합금(TiAl)으로 제작됐다. 불과 3500rpm에서 61.5kg.m의 최대토크가 발휘된다. 

대신 엔진회전수는 너무 일찌감치 제한됐다. M3나 M4는 자연흡기 엔진의 고회전 느낌을 살리기 위해 7500rpm에서 제한을 두는데 ATS-V는 고작 6500rpm부터 레드존이 시작됐다. 더욱이 8단 자동변속기의 반응은 크게 자랑할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에 바삐 변속을 해야 했다. 물론 트랙 모드에서는 훨씬 반응이 나아지긴 했지만, 듀얼클러치 변속기로 무장한 독일 경쟁 모델에 비해선 다운시프트가 눈에 띄게 느렸다. 그래도 마그네슘으로 제작된 패들시프트는 촉감이 무척 좋았다.

 

대개 고성능 모델은 계기반 중앙에 엔진회전수를 확인할 수 있는 회전계가 놓였는데, ATS-V는 ATS와 동일하게 속도계가 중앙에 놓였다. 작은 차이와 구성이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특히 캐딜락은 독일차와 겨루기 위해서 작은 부분까지 더 섬세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 빠른 속도를 위해 필요한 것들

트랙 모드에서 ATS-V는 잔뜩 신경질을 부렸다. 마치 혈기왕성한 사춘기 청소년처럼 민감했다. 가속페달을 살짝만 밟아도 목이 휘청했고, 밋밋했던 8단 자동변속기도 정신을 바짝 차렸다. 엔진회전수가 높아질수록 바리톤의 엔진 소리가 귓가를 자극했다. 배기음이 그리 큰 편은 아니었지만 과장된 AMG의 소리보단 훨씬 사실적이었다.

 

여러모로 AMG에 비하면 ATS-V는 매우 순수했다. 그 느낌이 마치 레이스카 같았다. 안그래도 GM의 차체 강성은 세계적인 수준인데, ATS-V는 고성능을 감당하기 위해 강성이 더 보강됐다. ATS에 비해 차체 강성은 25% 향상됐고, 엔진룸에는 스트럿바도 추가됐다.

눈에 띄진 않지만 뛰어난 강성은 코너에서 빛을 발했다. 또 나보다 차와 도로의 상태를 훨씬 잘 파악하고 있는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Magnetic Ride Control)이 눈 깜짝할 사이에 댐퍼의 상태를 바꿨다. 일반적인 서스펜션의 댐퍼는 유압을 이용하지만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은 댐퍼 안에 작은 자성체를 포함하고 있는 고분자 액체가 들어있다. 댐퍼에 전기가 흐르면 자성체의 배치가 변하고 액체의 점도도 달라진다.

 

천분의 1초로 노면을 감지하고, 이에 따라 서스펜션의 감쇠력이 변한다. 또 네바퀴 모두 각각 제어되기 때문에 하중 이동에 매우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여기에 새로운 스프링과 스태빌라이저가 장착됐다. 외에도 ATS-V엔 전자식 리어 슬립 디퍼렌셜, 고성능 브렘보 브레이크 시스템, 미쉐린 파일럿 슈퍼 스포츠 타이어 등이 기본으로 적용됐다.

# 손끝으로 전달되는 감각

첨단 기술의 도움을 받아 빠른 속도로 코너를 돌았는데, 그런 움직임보다 더 감동적이었던 것은 손끝으로 전달되는 감각이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스티어링휠을 돌리는 만큼, 그리고 의도한 만큼만 움직였다. ATS-V는 코너에서 매우 냉정했다.

 

ATS-V에는 BMW와 동일한 ZF 서보트로닉II 스티어링 시스템이 적용됐다. 캐딜락의 야욕이 보이는 부분이다. 동일한 스티어링 시스템과 BMW를 능가하는 섀시 구성을 통해 핸들링에서 우위를 점할 계획이다. 정말 손끝으로 전달되는 감각은 BMW 못지않았다. 또 ZF 서보트로닉II의 세팅도 달랐다. M4는 일반 모드에서 다소 부드럽기도 한데, ATS-V는 시종일관 전투적이었다.

# 태어난 이유가 명확한 차

생김새도 범상치 않았다. 얼핏 봐도 ATS와 차이점이 많았다. 더욱 거대해진 라디에이터 그릴과 카본파이버로 제작된 보닛과 프론트 스포일러, 세련된 18인치 단조 알로이휠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거대한 리어 스포일러와 카본파이버 디퓨저, 차체 중앙으로 모인 듀얼 머플러 등 ATS-V는 한눈에 봐도 고성능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단순히 고성능임을 과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공력 성능에도 일조한다. 실내는 레카로 퍼포먼스 시트와 카본파이버 패널을 제외하면, ATS와 큰 차별점이 없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승이었지만 ATS-V를 구성하고 있는 엔진, 섀시, 각종 첨단 기술 그리고 디자인 등은 서킷을 가리키고 있는 것만 같았다. 둔탁했던 승차감이나 다소 여유 있던 변속 반응도, 잘 다져진 트랙에서 한계 속도로 달리면 전부 상쇄될 것이었다.

강력한 엔진과 견고한 뼈대, 최신 스티어링 시스템과 첨단 기술력이 담긴 서스펜션 등은 독일 경쟁 모델보다 훨씬 서킷 친화적이었다. CTS-V가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BMW M5, 메르세데스-AMG E63보다 빠른 랩타임을 기록하며 파란을 일으켰던 것처럼, ATS-V 역시 독일 경쟁 모델보다 빠른 차가 되기 위한 확고한 방향성을 갖고 태어났다.

 

BMW M과 메르세데스-AMG가 현실과 타협하며 다소 나긋나긋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ATS-V의 등장은 잠시 잊고 있었던 질주 본능을 다시 깨워주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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