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모터쇼를 다녀와보니, '자동차 업체, 자만은 금물'
  • 로스앤젤레스=김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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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2.01 17:25
LA모터쇼를 다녀와보니, '자동차 업체, 자만은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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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세계 5 대 모터쇼'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이는 당연히 디트로이트, 제네바, 프랑크푸르트, 파리, 도쿄모터쇼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모터쇼의 순위다툼도 치열하다.중국과 인도의 모터쇼가 날로 커지고 있고, 미국에선 디트로이트의 빅3 몰락에 따라 뉴욕, LA모터쇼가 대안으로 등장했다. 그러다보니 주요 모터쇼 일정이 서로 겹치고 있는데 올초에는 뉴욕모터쇼와 서울모터쇼가 같은 날 개최됐으며 지난 20일에는 도쿄와 광저우, LA모터쇼가 모두 같은 날 개최됐다. 

물론 도쿄모터쇼가 비중으로는 더 크지만 굳이 멀리 LA까지 다녀온 이유는 따로 있다. 이미 미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의 지위는 중국에 빼앗긴지 오래지만, 미국의 부가 모이는 캘리포니아는 다른 모터쇼에 비해 훨씬 화려하고 풍요로운 모델이 발표 된다는 점이다.

또, 현대기아차가 가장 큰 시장으로 생각하고 있는 미국에서 어떤 모델을 내놓는지도 관심을 끌었다. 또 최근의 친환경 물결의 중심인 캘리포니아에서 바라보는 친환경차는 어떤것이 될지가 관전 포인트였다. 

- "도쿄에 이어 오늘 두번째 발표입니다"

도쿄에 비해 시차가 17시간이 늦다는 점에서 포르쉐 마칸, BMW 4시리즈 컨버터블, 벤츠 S65 AMG 같은 '월드프리미어(세계 최초 공개)' 모델의 의미는 조금 퇴색됐다. 이미 도쿄발 뉴스가 나온 후에야 베일을 벗긴다는 점에서 취재가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곳에서 건진것이 없지는 않았다. 

우리 매체도 그랬듯 세계 자동차 제조사들도 도쿄와 LA에 임원들을 나누어 보내곤 했는데, 때로는 초인적인 일정을 감내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우디의 기술담당인 울리히 하켄베르크 박사는 도쿄모터쇼에서 기자발표회를 한 직후 비행기에 올라 15시간만에 다시 LA에서 기자발표회를 했다. 하켄베르크 박사가 "도쿄에 이어 오늘의 두번째 컨퍼런스를 한다"고 말했을때 장내에선 웃음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 한국과 전혀 다른 미국 시장

LA에서 가장 놀라운 브랜드는 스바루다. 한국에서는 철저하게 외면 받다 결국 전격 철수라는 쓴잔을 마셨으나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어느 브랜드보다 관심이 높았다. 기자회견에 앞서 사람들이 이미 가득해져 인근 부스까지 기자들이 넘칠 정도. 판매 대수가 연간 70만대에 불과한 작은 메이커 발표에 이렇게 많은 관심이 모인다는 것이 놀랍다.

가장 관심을 끈 모델은 스바루 'WRX'였다. 수동변속기의 불모지로 알려진 미국에서도 수동변속기만을 내놨지만 팬의 지지를 받았다. 최대출력 268마력의 2.0리터급 수평대향 4기통 직분사 터보 엔진을 장착하고도 2만 5995달러의 가격표를 냈다는 점도 인기 비결이다. 이번 신모델에는 '리니어 트로닉'이라고 해서 순차적으로 변속되는 느낌을 적용한 CVT를 도입해 더 넓은 소비층의 관심을 모았다. 여기 305마력을 내는 WRX STi도 등장했다.

날짜가 겹치는 만큼 미국 빅3는 도쿄모터쇼에 불참하고 LA에만 참석했다. LA모터쇼의 세계적 위상을 높여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태리메이커인 피아트도 크라이슬러와 합병 이후 도쿄모터쇼에 불참하게 돼 묘한 업계 흐름을 반영했다.

픽업트럭과 대형 SUV 등도 도쿄모터쇼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유럽 브랜드 차량보다는 역시 전통적인 빅3, 즉 GM, 포드, 크라이슬러의 차량들이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그 변화의 속도가 늦다보니 기자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불러 일으키진 못했다. 

쉐보레는 중형 픽업트럭인 '콜로라도 2015'를 내놨다. 쉐보레 실버라도나 포드 F150등 대형 픽업 트럭이 여전히 인기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중형 픽업트럭을 강조하는 이유는 최근 미국의 연비 규제가 강화되는 것에 대응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쉐보레 콜로라도는 일본 이스즈의 D-MAX와 플랫폼을 공유하하는 형제차다. 193마력 2.5리터 직렬4기통 엔진, 혹은 302마력 3.6리터 V6엔진을 장착할 수 있고, 디젤엔진인 2.8리터 직렬 4기통 엔진을 장착 할 수도 있어 최근 친환경 붐에 걸맞는 차량이다. 

랜드로버는 기존 레인지로버의 차체를 조금 더 늘려 2열 승객과 적재공간을 확장한 '오토바이오그래피' 모델을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넓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3열이 없어 국내 실정에는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 현대차, 도요타, 혼다의 수소전지차…서로 '내가 원조'?

현대차와 도요타 혼다 같은 전혀 관계 없을 것 같은 3개 회사는 같은 날 일제히 각기 다른 수소전지차를 내놨다. 

현대차는 LA모터쇼에서 기존 전기차에 대해 "그리 친환경적이지 않으며 충전시간이 오래걸리는 문제가 있고, 멀리 갈 수 없다"는 등 맹비난을 퍼부은 후 '투싼 수소연료전지차'를 내놨다. 이 차는 기존 투싼과 큰 차이가 없는 외관에 수소전지셀을 장착한 것으로 한번 충전에 500km 정도를 달릴 수 있고 충전에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기존에도 수없이 나왔던 모델인만큼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진 못했는데, 독특한 판매 방식으로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판매는 우리돈 300만원 정도(2999불)를 보증금(다운페이)으로 내고, 대략 한달 53만원씩 내면 36개월간 차를 탈 수 있다. 수소연료는 무제한 무료, 각종 오일 교체 등 차량 유지보수는 직접 와서 가져가고 후에 다시 가져오는 방식(발렛메인터넌스)으로 해준다고도 했다. 여기 캘리포니아주 정부의 보조금 2500불을 받으면 처음 5개월간은 돈을 한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현대차는 투싼을 '세계 최초의 양산 수소 연료전지차'라고 홍보했지만 기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수소연료전지차는 이미 10여년전부터 시제품이 나왔고, 혼다는 리스를 통해 수년전부터 캘리포니아에 수소연료전지차를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혼다는 슈퍼 스포츠카 스타일의 연료 전지차 'FCEV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이 차는 기존 혼다가 리스를 통해 판매중인 '혼다 FCX 클래러티'에 비해 수소 발전 효율을 60% 증가시켜 리터당 3kW까지 높였고, 관련 부품을 33% 소형화했다고 혼다는 밝혔다.

혼다는 이미 'FCX 클래러티' 운전자들이 이 차를 '세계 최초 상용 연료 전지 차'로  사용되고있는 것을 어필했다. 그러나 혼다측은 FCX 클래러티의 순항거리는 384km 수준으로 미국인들의 주말 운전 패턴을 고려하면 다소 짧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고 설명했다. 'FCEV콘셉트'는 70MPa의 고압 수소를 충전해 480km의 순항 거리를 낼 수 있다. 혼다는 이날 GM과 손잡고 수소연료전지 관련 기술에 대해 우주 항공 및 의료분야까지 진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 메르세데스-벤츠, 게임 전용차를 만들어?

메르세데스 벤츠가 발표한 'AMG 비전 그란 투리스모'는 굉장히 의외의 자동차다. 실제 존재하지는 않지만 실제 존재하는 차보다 더 그럴듯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차는 1952년 팬아메리카나 레이스를 압도한 전설적 스포츠카 300SL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으로 복고적 디자인과 미래형 디자인이 절묘하게 뒤섞인 것이 특징이다.

메르세데스-벤츠에 따르면 이 차는 최대 출력 585마력을 내는 5.5리터 V8 트윈터보를 장착했고 경량화 된 바디로 인해 마력당 2.37kg를 내는 경이로운 차다. 소니의 콘솔게임기 PS3용 자동차 게임인 그란투리스모5에 등장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차다. 

- 친환경은 무엇일까…'환타지'를 인정해야

쇼장 밖에서 이뤄지는 친환경 시승 부스에는 폭스바겐 XL1을 비롯한 수많은 시승차들이 눈길을 끌었던 반면 테슬라는 시승차를 공급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 '친환경차'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테슬라는 최근 화재 사고 등의 여파 때문인지 이번 모터쇼엔 쏙 빠졌다. 반면 렌터카 업체인 허츠(HERTZ)가 테슬라 렌터카를 제공해 간접적인 시승을 지원했다. BMW는 특별히 i3를 약 50대 가량 세워놓는 별도 시승부스를 운영해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피아트 500e도 시승차로 등장했는데, 이 차는 친퀘첸토의 전기차 버전으로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저렴한 전기차다. 차량 가격은 3만달러(약 3175만원)정도지만 월 199달러(약 21만6000원)이면 리스로 탈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만 수백개의 전기 충전시설이 있으며, 현재까지 전기 충전은 모두 무료다.  

우리는 친환경차로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그랜드 체로키 같은 디젤차량도 친환경 시승차로 등장해 관심을 끌어모았다. 쉐보레 실버라도 같은 대형 픽업 트럭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 개조해 판매하는 VIA모터스도 눈길을 끌었다. VIA모터스는 과거 대우자동차를 인수했던 GM임원이 사장으로 있는데, 유창한 한국말로 "차량 가격이 1억원 넘는데도 불구하고 운영비가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8년 가량 운행하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저렴한 차"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LA모터쇼에서 유럽 슈퍼카 브랜드들은 정작 찾기 힘들었지만 세계 기자들은 북새통을 이뤘다. 이제 세계 모터쇼에서 우열을 정하기 힘든 시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을 보면 강자를 함부로 속단하기 어려운 시점이다. 그런데도 현대차는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전기차'를 너무 쉽게 비난해버렸다. 

LA 도로를 달리면 전기차 테슬라 모델S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다른 전기차들도 간간히 보인다. 이런 저런  틈새 기업이 빅3를 추월해 나가거나 근접해 가는 것을 볼 때 미국의 낙천적인 사고방식, 꿈을 쫓는 삶의 태도가 이채롭게 보이기도 하고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친환경 환타지'는 실제 효과를 숫자로 분석해서 깨부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올라타야 할 파도와 같다. 당장 '수익성이 없다'고 비난해선 안된다. 결국 우리가 참여하고 도전해야 할 시장은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